2002. 10. 6. 우중(雨中)특명 1호 "주작산"을 침투하라.
토요일 저녁 9시 뉴스의 일기예보는 비관적이다.
전국에 비를 뿌리겠단다. 예술제만 시작하면 년중 행사처럼
비가 내리는 지역이라 예상은 하였지만 실망이 아닐수없다.
예상보다 주작산 등반을 하겠다는 회원이 많아 차량문제로
고민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가을에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전국에 내린다니 왕짜증이 아닐수없다.
부산에 모 여성산악회 몇분도 비 때문에 오지 못한다는
비관적인 전화를 받고 새벽 2시30분 부터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새벽 6시 그때까지 비가 내리지않아 어쩌면 비가 안올수도
있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비나리가 시작 된다.
참 하늘도 무심하지 지난달에는 "태풍루사"때문에 산행도
못하고 8월에는 황산.천자산 때문에 산행 집행도 못한
나로서는 2개월만에 가는 정기산행이라 잔뜩 기대를
하였건만 결국 비 때문에 무산이 된다고 생각하니 하늘이
원망스럽기는 당연지사가 아닌가. 그래도 비가 적게오면
출발하리라 오기를 부려보지만 문제는 일일회원이 과연
이 비에 몇분이나 올까 그것이 고민거리가 아닐수없다.
서너군데서 전화가 오길래 무조건 출발하니 시청앞으로
오라 하고 서둘러 시청으로 갔다.
비 때문에 오겠다던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 도로 누웠단다.
출발 1시간이 지연되고 산행지에 가면 비가 그칠것이라는
진짜 산꾼 몇분과 우리 산악회 처음 오시는 분을 합쳐
총 24명이다. 차비는 안되지만 이분들이 너무 고맙다.
출발이다.
가는도중 비가 계속내려 진짜 산들머리만 보고 오는게 아닌가
걱정하며 속은 새카맣게 탄다.
3시간30여분을 달려 두륜중학교옆을 지나 오소재 들머리에
도착하니 이게 무슨 조화고 징조인가 스스히 하늘이 열리기
시작하지 않는가. 사방은 안개비로 뒤덮혀 시계 5-6미터
밖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강한 바람으로 이내 시야가
트일것이라는 기대는 가파른 362봉에 오르니 적중했다.
▲비 구름이 스스히 걷히며 모습을 드러낸 362봉
지난 6월 함께 답사왔던 김장길 이사를 선두에 세우고 비온뒤
미끄러운 바위능선을 조심조심 하라는 당부를 수회하고
후미에 서니 남다른 감회다.
몇개월새 제법 많은 사람들이 주작산을 찿은것 같다.
그래도 아직은 잘 정돈되지 않은 작은 등산로는 진달래와 잡풀이
뒤엉켜 진행에 어려움을 준다. 362봉에 서니 장수 저수지가
보이고 남도의 작은섬들과 황금빛 으로 변한 간척지 들녘이
가을을 안고 넉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시야는 점점 트이고 401.5봉을 지나자 함께간 친구는
이 정도의 산이면 얼마든지 가겠다고 한다.
속으로는 이 사람아 조금만 가봐라 412봉 부터는 눈물고개가
될것이다. 행복한 산행은 여기가 끝이야 사실 주작산은
암봉이라 아찔한 구간이 많고 비갠뒤라 미끄러워
초심자 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코스지만 오늘 오신분들은
조심조심 잘도 가고 있다. 허긴 이 비오는날 왠만한
꾼 아니면 어디 나서기라도 하겠는가.
앞서가던 일행이 야. 진달래가 피었다며 소리를 친다.
가을이 깊어가는데 왠 진달래 하며 가보니 정말 진달래가
두어송이 피어있다.
기이한 진달래 구경도 잠시 눈앞에 펼쳐지는 톱날바위
드디어 암릉지대 거친암봉 20여개가 숨어서 다 보이지않고
서 있다. 이제 고행의 시작이다.
▲암릉지대가 시작되는 412봉 부근
땀이 범벅이 된다. 머리 다친 후유증에 종주산행은 무리
라 판단되어 날씨가 좋아 회원이 많이 왔으면 반대 방향에서
탈것이라고 예상했던 나는 결국 정상 산행에 따라 나섰고
결국 모자 때문에 나무가지에 머리를 받혀 정신이 멍하다.
햇볕이 없는대도 목이탄다. 그만큼 주작산 산행은 고행의
산행이라고 표현해야 정석이다.
우습게 시작했던 친구도 넘어도 또 다시 나타나는 암봉이
짜증이 나는지 원망스런 눈치다. 산은 뒷산이라도 얕보면
안되는거야 자만하다가는 언제나 낭패본다를 눈빛으로
보내고 칼날바위를 조심조심 넘어며 걸어온길 되돌아보니
비는 완전히 그치고 멀리 바위사이로 두륜산이 아득하다.
▲암봉사이로 두륜산이 아스라히 보인다.
금방 떨어질것 같은 바위를 기리키자 친구는 올라가서
밀어 떨어뜨리고 가자며 지친 육신을 농담으로 위로하지만
가로막힌 암봉이 그걸 용납하던가.
아직 봉우리 몇개쯤 남았니 묻길래 10여개도 더 남았을걸 하자
실망의 눈빛이 역력하다.
이산 미친게이 산이다. 무슨 암봉이 이리 많노
문득 월간 "산" 5월호의 주작산 기사중 "미운놈 산에 가자면
주작산에 데리고 와야겠다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산은 우리네 삶이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그리고 평온한 능선이 있다.
산은 그리움이고
목마른 염원이다.
때로는 넉넉함으로 서 있다가
무시하면 이내 광기로 변해
한치 서툼도 용서치 않는다.
산은 인자한 어머니로 있다가도
사정없이 회초리를 들어
종아리를 내리치는
주작산은 그런 산이더이다.
▲인고의 산 주작산 412봉과 427봉 사이
▲주작산에는 로프를 타고 내리는 위험구간이 많아 각별히 주의가
요망된다.
12시 30분에 시작한 산행은 오후2시를 지난다.
427봉을 조금지나 선두에 간 사람들이 도시락을 풀고있다.
뭐라뭐라해도 정감이 가는건 역시 나눠먹는 도시락
동산 산악회 총무님 팀은 출장 뷔페처럼 반찬이 푸짐하다.
실로 오랫만에 소주 한잔을 마시니 짜릿하면서 이내
취기가 돌아 걱정했더니 금방 깬다.
식사후 갈 봉우리를 보니 눈앞인것 같아도 아직도 가려진
봉우리가 6-7개는 더 될것이니 흐트리진 마음 추스리고
선두를 제외한 전원이 모여 기념촬영을 했다.
들국화 향기도 사라지고 또 다시 다가온 낭떠러지 줄타기
여성회원들 외미디 비명소리가 잿빛 산야를 깨운다.
멀리 종착점이 보이지만 아직도 암봉은 더 있다.
무릅이 깨지고 팔목에 상채기가 난다.
등산복 바지가 톱날바위와 가시덤불에 엉망이 되었다.
부채바위는 우리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풍상에도 꼼짝안고
자리를 지켜간다. 이제 능선이 보이고 억새가 나부끼는걸 보니
작천소령이 지척인가 보다 친구도 저절로 힘이 생긴것 같다.
언제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쉽게 정상을 가는 삶이 있는가 하면
죽어라 고생해도 정상을 못가는 삶이있다.
산도 그러 하리라
종주를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반대편에서 올라와 회귀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다들 나름대로 의미를 느끼지 않을까
친구에게 말했다.
나는 주작산은 이제 더 이상 오지 않으리라
지키지못할 약속을 하면서 맥주한잔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한줄기 할것 같다.
무슨 저런산이 다 있어 산이 아니라 괴물이야
친구는 끝내 이 말을 밷는다.
그래도 집에가면 오래오래 기억 남을산이야
돌아오는 길가엔 왠 코스모스가 지천으로 서 있는지...
2002. 10. 6. 주작산 산행에 동참하여 완주하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이 산을 종주하신 여러분은 대한민국
어떤산도 오를수 있습니다. 남은 사진 게재합니다.
진주 자연산악회장 유 남 배 올림
※ 기본 게시판에는 위 내용과 사진을 정지하여 게시
하였습니다.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