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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륙의 도시에서 살다가 어느날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마주하면 ‘영혼의 해방감’을 느낍니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과 하늘이 만나는 경계는 좁아진 시야와 답답한 마음을 단숨에 탁 트이게 만들어 주고 해변에 부서지는 파도와 수면에 반사되는 햇빛의 반짝임은 동적인 생명력을 줍니다.
마이힐링로드가 10일 남해바래길 10코스 ‘앵강다숲길’을 걷기위해 경남 남해군의 ‘앵강만’을 찾았습니다. ‘꾀꼬리가 우는 강’이라는 뜻으로 파도가 소리도 없이 다가올 만큼 잔잔하고 아늑한 바다입니다. 남해군은 1970년대초 남해대교가 개통되면서 육지가 된 곳으로 앵강만에 이르는 길은 드라이브코스로도 일품입니다.
우리가 걸은 앵강다숲길은 원시림같은 숲과 붉은 기암절벽, 그리고 푸른 바다와 석방렴, 계단식논이 가을햇살과 어울려 시선이 닿는곳마다 소소한 울림을 줍니다.
마힐로는 16km에 달하는 앵강다숲길의 중간인 월포두곡해변을 들머리로 삼았습니다. 맑은 햇살이 하얀 가루처럼 쏟아지는 해변 뒷편으로는 울창한 해송숲이 버티고 있고 바닷가를 향해 동글동글한 몽돌이 깔려있어 파도가 칠 때마다 돌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는듯 합니다.
연휴를 맞아 남해를 찾은 행락객들의 텐트가 줄지어 세워진 해변에서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뒤 해송숲 임도길을 거쳐 홍현해우라지마을로 출발했습니다. 홍현(虹峴)은 '무지개 고개'가 있어 붙여진 지명으로 '해라우지'는 홍현의 남해 토속어입니다.
이 곳은 포구의 몽돌해변에 돌을 둘러 물고기를 잡는 전통적인 어로 시설인 석방렴으로 유명한 마을이지만 아쉽게도 밀물때라 물속에 잠겨있습니다. 200여년전부터 앵강만에서 성행한 바닷속 돌담은 만조와 간조의 시차를 이용한 고기잡이 방식입니다.
이를테면 ‘'원시적인 고정식 가두리 어업’으로 대나무를 이용해 멸치를 주로 잡는 죽방렴과 달리 농어, 도다리, 우럭등을 잡습니다. 썰물때가 되면 석방염에는 활어가 펄떡일듯한데 기다리기엔 갈 길이 멉니다.
해변에서 제법 운치있게 숲이 우거진 해안오솔길로 들어서면 흉물로 남아있는 옛 초소를 만납니다. 20여년전까지 전투경찰들이 초소와 초소로 이동했던 통행로로 이젠 도보꾼들의 사랑받는 걷기길로 변신했습니다. 오래전 이곳에서 근무했던 전경들은 길을 걸으며 만감이 교차할겁니다.(앵강만에서 전경생활을 했던 마힐로 사진작가 백화산도 구중 하나입니다)
숲을 빠져나와 윤슬이 반짝이는 바다풍경에 감상하다보면 2.5km의 원시림이 기다립니다. 나무가 얼마나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지 햇볕 한줄기도 허용하지 않는 시원한 오솔길입니다. 숨을 헐떡이며 오르막과 내리막을 정신없이 걷다가 느닷없이 등장한 대숲을 빠져나오면 어느새 해안가 언덕의 팔각정이 길손을 맞이합니다.
이미 추수가 끝난 다랭이마을의 108층 계단식 논 아래로 탁 트인 수평선과 청명한 하늘이 맞닿은 바다엔 비단같은 물결이 차분하게 일렁이고 해변엔 기암괴석이 마을 풍경을 농밀하게 채색합니다. 산비탈에 계단 모양으로 층층이 들어선 다랭이논은 바닷가 농민들이 굳은 살이 배이고 갈라진 나무껍질같은 손으로 일구어내 더욱 숭고하고 아름답습니다.
경사가 45도에 달하는 척박한 땅에 한 뼘의 논이라도 개간해 가족을 먹여살리고 자녀를 교육시키기 위해 모진 고생을 했던 가장들의 지난(至難)한 삶이 담겨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젠 ‘남해의 걸작'이란 말을 들을만큼 핫플레이스가 됐습니다. 미국 뉴스전문채널 CNN이 '한국에서 가봐야할 아름다운 50곳' 중 하나로 선정한 것은 그림같은 풍광보다도 그 이면에 깃든 눈물겨운 ‘스토리’ 때문일 겁니다.
이 길을 걸으면 왜 남해를 조선시대부터 화전((花田)’이란 별칭으로 부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앵강만과 앵강다숲길은 남해가 가진 천혜의 자연과 그 곳에서 터전을 일구고 뿌리를 내린 사람들의 애환(哀歡)을 구구절절 느낄 수 있는 의미있는 도보여행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