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우산
이름 : 정찬영
학교 : 원광여자고등학교 3학년
비가 오는 날이면 어깨가 쑤셔왔다. 중학교 때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야구방망이를 휘두른 탓에 생겨버린 습관성 탈골이 아마 가장 큰 원인이었을 것이다. 나는 접골원으로 가기위해 어젯밤 허물처럼 벗어놓은 유니폼을 챙겨 입었다. 구겨진 유니폼에선 냄새가 조금 나는 것 같았지만, 어차피 접골원에 갔다 바로 연습을 가야했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신발을 신고 우산을 챙기려는데 내 우산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것을 들고 나왔다. 우산을 펼치려는데 오래된 것이라 녹이 슨 건지 잘 펴지지 않았다. 억지로 눌러 반쯤 펼친 우산에 내 몸을 우겨넣고 접골원으로 향했다. 다 낡아 글씨가 희미해져 가는 간판을 단 건물 지하로 내려갔다. 입구에 들어서자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나를 가장 먼저 반겼다. “앉아서 잠깐만 기다리세요.” 내 얼굴을 본 간호사가 턱으로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내가 왜 이곳에 찾아왔는지 다 안다는 표정이였다. 나는 축축하게 젖은 우산을 내 옆에 세워두고 의자에 앉았다. 우산을 타고 흘러내린 빗물이 작은 웅덩이를 만들 때 쯤 진료실의 문이 열렸다. 온종일 내리는 비 탓인지 진료실 안은 유독 습했다. 눅눅한 침대 위에 눕자 할머니가 떠올랐다. 신발장에 할머니 신발이 있었던가. 오늘 같이 비가 내리는 날에는 아무리 열심히 폐지를 주워도 소용이 없었다. 빗물을 잔뜩 머금은 폐지를 받아주는 고물상은 없기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할머니의 손에 길러진 탓에 나는 약국보다는 한의원 정형외과보다는 접골원에 자주 다녔고, 야구를 한다며 접골원을 제집처럼 다니는 철없는 손주 탓에 할머니는 비가 오나 눈이오나 폐지를 주웠다. 뚜둑, 뚝, 뒤틀린 어깨뼈를 맞추는 소리가 진료실 가득 울려 퍼졌다. 팔을 두어번 돌려보자 뻐근하던 어깨가 휙휙 돌아간다. “이봐, 을매나 시원혀, 원래 모든건 기계가 아니라 사람 손으로 직접 해야되는겨. ”접골원에 함께 올 때마다 할머니가 늘 하시던 말이 떠올랐다. 밖에는 아직도 비가 내리는지 빗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이 기세라면 연습이 취소되지 않을까 생각하던 참에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폭우로 인해 연습이 취소되었으니 오늘은 나오지 말라는 코치님의 문자였다. 내가 앉아있던 의자 옆에는 우산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역시나 잘 펴지지 않는 우산을 유심히 들여다보니 우산대가 하나 휘어 있었다. 구부러진 대를 손으로 늘려보니 생각보다 쉽게 원래모양으로 돌아왔다. 대가 제 골격을 갖추자 우산이 활짝 펼쳐졌다. 나는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집 근처 공터로 향했다. 공사를 하던 곳이 부도가 났는지 공사를 더 이상 진행하지도 설치된 간이천막을 치우지도 않은 텅 빈 공간이었다. 할머니가 이곳은 지나가시기까지 대략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마침 빗방울도 약해진 천막아래에 있으면 충분히 비를 피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가방 안에서 미리 챙겨온 배트를 꺼냈다. 부응, 야구배트가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깨뼈들도 제 위치를 찾았는지 움직임이 한결 가벼웠다. 부응, 부응, 할머니의 바퀴소리가 들려 올 때까지 허공을 가르는 스윙은 몇 번이고 계속 팼다.
(금상)
섬
이름 : 오가빈
학교 : 서울여자고등학교 3학년
우리집 닭은 해가 뜨지도 않은 새벽 4시에 운다. 곧이어 부스럭거리는 바람막이 입는 소리가 들린다. 배가 엄청 와서 고기잡이 배가 안 떴으면 했지만 오늘의 날씨는 맑음이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간다. 어제 사둔 미역을 물에 불린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부엌을 가득 메운다. 내 미역국을 내가 직접 끓이기 시작한 지 6년이다. 6년 전 그 미역국이 엄마의 마지막 요리였다는 것을 알았다면 한 그릇이라도 더 먹어둘걸. 아빠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한 게 언젠지. 내가 기억하는 아빠는 항상 입가에 초장냄새가 베어있는 모습이었다. 배 안에서 바로 회 쳐 먹는 게 일품이라곤 했지만 그걸 매일 혼자 먹는 아빠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뭐 때문에 저렇게 치열하게 사는 걸까. 나는 아빠에게 전화를 건다. 아빠 오늘 일찍 오나. 나는 살짝 기대해본다. 나중에 전화해라. 내 바쁘다, 아빠의 짜증스러운 목소리 뒤로 드르륵거리는 그물 올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직 전화를 끊지 않은 것도 모르는 건가? 생생하게 들리는 작업소리에 나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전화를 끊은 이후에도 내 귓가엔 아빠의 그물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작은 드럼통 세탁기에 아빠가 벗어둔 옷들을 하나씩 집어넣는다. 비릿한 바닷물 냄새가 저려있다. 매일 물고기 머리, 몸통이 걸려 있는 그물망만 무한반복으로 올려대는 아빠가 떠올랐다. 나는 손에 들려 있는 아빠의 목 늘어난 란닝구를 세탁기 안에 패대기치듯 넣었다. 새벽1시 이미 내 생일의 유효기간은 끝이 났다. 난 이미 식어 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미역국을 멍하니 응시한다. 그럼 그렇지. 나는 옷소매로 눈가를 벅벅 비빈다. 대문이 삐거덕거리며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현관문 앞에 선다. 아빠가 소금물에 절인 배춧잎처럼 축 처져 들어온다. 아빠는 또 그 시간만 자고 일어나겠지. 그리고서 아빠는 전쟁터인 고기잡이 배로 또 가버리겠지. 어제가 하나뿐인 딸의 생일이었다는 것도 잊은 채. 내 두 눈의 시야가 점점 뿌옇게 어른거린다. 니 와 또 징징거리는데. 아빠가 마른세수를 하곤 미간을 찌푸린 채로 날 내려다 본다. 화내야 할 사람이 누군데하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꾸역꾸역 삼킨다. 좀..일찍 오면 안돼요? 나는 말을 작게 읆조린다. 내가 놀러다니나? 니랑 내랑 배떼기라도 채울라고 안이라나. 아빠의 말에 나는 아랫입술을 꽉 깨문다. 나 생일이에요. 아빠의 검은동자가 흔들린다. 고립되어 치열하게만 이 사람의 섬이 요동친다. 나는 저 섬과 더 멀어지는 것만 같다. 날 사랑하긴 할까. 이상하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목이 욱신거린다. 침만 삼켜도 목안이 따끔거린다. 목부터 이마까지 후끈거린다. 아빠. 나는 방문쪽으로 아빠를 불러보지만 이미 아빠는 집에 없었다. 나는 무거운 몸을 뒤척이다 일으켜 세운다. 비상약을 모아둔 아빠 서랍장으로 갔다. 선반 위에도 서랍장에도 약은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맨 아랫칸 서랍장을 열어본다. 나는 서랍장 손잡이에서 한동안 손을 때지 못했다. ‘혜은이 대학 등록금’ 나는 통장을 꺼내 펼쳤다. 30만 원, 50만 원, 10만 원, 돈이 들쑥날쑥하다. 통장에서 비릿한 생선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나는 통장을 품에 안고 터질 것만 같은 목구멍을 억누르며 울어댔다. 아빠가 자신이 만든 섬안에 갇힐 수밖에 없었던,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이 이 네모난 통장 안에 새겨져 있다. 그 때 그 흔들리던 섬의 끝자락에 육지와 이어질 수 있는 해상도로를 나는 놓아보려한다.
(금상)
우산
이름 : 박나연
학교 : 전주기전여자고등학교 3
그 해는 마을 전체에 액운이라도 들었는지. 좋은 소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던 해였다. 막 졸업생들이 쏟아져 나오는 초등학교에서는 폐교가 운운되는 중이고, 건너 건너 커다란 저수지 앞에 혼자 사시는 정이 할머니는 지독한 감기가 삼개월째 떨어지질 않는다셨다. 그뿐인가, 그해 가을엔 수확을 일주일 앞두고 때 아닌 장대비가 쏟아지는 탓에 농사도 쫄딱 망해버렸다. 물론 우리 집도 화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때 나는 열다섯 살이었고, 부모님은 눈만 마주치면 서로에게 폭언을 일삼을 정도로 사이가 틀어진 상태였다. 낮에는 눈치를 보며 밭을 가꾸거나 다른 일을 하고, 밤에는 방문을 굳게 닫고서 배를 깔고 엎드려 숙제하는 일상이 몇 달이나 갔는지 세는 것도 포기한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지쳐버린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할 일을 하던 중이었다. 평소에는 신경도 쓰이지 않던 부모님의 언쟁이 너무도 선명히 들려왔다. 빗소리를 배경으로, 둘의 언성은 높아져만 갔다. 타이밍 좋게도 천둥이 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의 대화답지 않은 대화는 재개되었다. “그러니까 애는 네가 키워야지. 엄마잖아!” “당신은 아빠잖아! 몰라, 난 못 해.” 전부터 둘이 갈라설 준비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말로 나를 비참하게 만들어주실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탓에 난는 넋빠진 웃음을 짓는 것밖엔 할 수 없었다. 장마철의 습한 공기가 내 눈물샘에도 영향을 줘버린 모양이었다. 창문에 부딪힌 빗방울이 맥없이 흘러내리듯, 나도 그렇게 소리 죽여 울었다. 다음날 나는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살이 너덜너덜한 우산 하나만 가방에 넣고서, 집 반대 방향으로 계속 걸었다. 코딱지만한 마을 적서리라고 했는데. 쭉 걷다 보면 바다가 나온다고 했는데, 걸어도 걸어도 산골짜기 뿐이었다. 네 시에 학교를 나와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걸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게 좋을까 생각하던 때에 머리 위로 굵은 빗방울이 한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급하게 우산을 펼치니 녹슨 부분들에서 쇠냄새가 심하게 났다. 문득 아빠를 생각했다. 허영심이 많고 자신의 이상이 확고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처지를 자주 비관하던 모습이 머릿속 구석에 아직까지 남아있다. 꼭 서울로 가고 말겠다는 아버지는 늘 그의 젊은 시절을 그리곤 했다. 자식보다도 못다 이룬 꿈이 중요한 사람, 비를 전혀 막아주지 못하는 이 너덜너덜한 우산 같은 아빠였다. 나는 애써 걸음을 옮겨가며 집에서 더 멀어지려 했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올 때마다는 우산을 놓치지 않으려고 양손으로 붙들었다. 주변이 온통 까매지니 절로 엄마 생각이 났다. 미운데도 이럴 때면 엄마밖엔 떠오르지 않았다. 엄마는 당신의 작물을 가져다가 시장에 내놓고 팔았다. 아빠와는 다르게 그곳 생활을 퍽 마음에 들어 했지만. 내가 커가며 드는 돈이 많아지니 요즘 사는 게 팍팍한 듯했다. 상황이 이런데 자식 생각은 할래야 할 수가 없었을 테다. 마음놓고 미워하고 싶은데도 그러지 못하는 것이 분했다. 나는 이를 꽉 물고 우산을 쥔 손에도 힘을 주었다. 바람이 점점 세지면서, 눈앞을 가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하나뿐인 우산을 못 쓰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뒤집힌 채 이쪽저쪽을 뾰족하게 우산살이 튀어나와 있는 노란색 우산을 바라보다가 왼손에 구부러진 손잡이를 걸쳤다. 나는 진이 빠져 그 길로 돌아가는 걸 택했다. 왔던 길로 쭉 되돌아가면 되는 일이니 길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둘은 오늘도 싸우고 있겠거니 하며 아까 나섰던 학교를 지나던 참이었다. 축축하게 죄다 젖어버린 몰골이 학교 옆 문닫은 슈퍼 창문에 비쳤다. 한숨을 깊게 내쉬던 찰나, 양옆에서 내 이름이 크게 들렸다. 당황하여 옆을 돌아보자 한쪽에는 엄마가, 한쪽에는 아빠가, 그리고 아빠 옆에서는 옆집 동생 진아가 각자 우산을 한 개씩 든 채, 한 손엔 곱게 말린 우산 하나씩을 들고 있었다. 설움이 터져 우산 세 개를 다 받아들고 한참이나 가만히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간밤의 장대비가 무색하게도 다음날 아침에는 해가 고개를 들었고, 간만에 부모님도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 모양이었다. 우리 집엔 우산 여섯 개가 여전하다. 찌그러져 더는 제 구실을 못하는 4년전 우리 가족을 그대로 담은 우산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