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산책28. 대과(大過) - 역량을 벗어난 일
제28괘 대과(大過)
- 역량을 벗어난 일 -
大過 棟橈 利有攸往 亨(대과 동요 리유유왕 형)
藉用白茅 无咎(자용백모 무구)
枯楊生稊 老夫得其女妻 无不利(고양생제 로부득기여처 무불리)
棟橈 凶(동요 흉)
棟隆 吉 有它 吝(동륭 길 유사 린)
枯楊生華 老婦 得其士夫 无咎 无譽(고양생화 로부 득기사부 무구 무예)
過涉滅頂 凶 无咎(과섭멸정 흉 무구)
** ⓵동(棟)은 ‘용마루 동’입니다. 용마루, 마룻대, 주석(柱石), 중임을 맡을 인물을 뜻합니다. ⓶요(橈)는 ‘꺽일 요’, ‘노 뇨’의 두 가지 뜻과 음이 있습니다. 꺽이다, 굽다, 약하다, 휘다, 라는 뜻과 짧은 노를 뜻하는 글자입니다. ⓷자(藉)는 ‘깔개 자’입니다. ‘왁자할 적’으로도 쓰입니다. 모(茅)는 ‘띠 모’입니다. 띠는 잡초라기에는 어울리지 않게 꽃차례가 우아합니다. 은백색 꽃이 산들바람에 흔들릴 때면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띠 풀은 농촌 들녘 제방이나 길가에서 흔하게 보이는 풀로 들판에서 쇠(牛)가 꼴을 배불리 먹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던 어린 목동에게 지루함을 달래주는 천사 같은 풀이었습니다. 벼꽃이삭(禾穗)에서 약간의 단맛이 나기 때문입니다. 띠의 우리말 방언에 삘기, 빼기가 있으며, 모두 빨다, 라는 의미와 동원어이고, 벼꽃이삭을 빤 데에서 유래합니다(한국식물생태보감). 제(稊)는 ‘돌피 제’로 볏과의 한해살이풀, 나무를 베어 낸 뿌리에서 나는 싹이나 움을 말합니다. 륭(隆)은 ‘클 륭’으로 크다, 풍성하다, 극진하다, 성대하다, 라는 뜻입니다. **
대과(大過)는 이 괘에서 큰 잘못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역량을 벗어난 일”을 말합니다. 크게 지나쳤다는 것은 역량과 능력이 맡은 일을 감당하기에 무리하다는 뜻입니다. 정년퇴직을 하거나 임지를 옮기게 되었을 때 인사말에 흔히 등장하는 “대과 없이 소임을 마치게 되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는 구절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입니다. 큰 사고가 없었다, 큰 잘못이나 지적사항이 없었다, 라는 의미로 허물을 당하지 않게 되었다는 소극적 의미로 쓰였습니다. 공무원이나 대기업 임직원 등은 복지부동하거나 무사안일하여 정년까지 무탈하게 일하면 물론 승진도 하고 보수를 받아 삶을 안온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의 역량에 맞는 일을 하였는가, 그 일에 합당한 역량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였는가, 하는 적극적 사고로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대과 동요 리유유왕 형(大過 棟橈 利有攸往 亨). 역량을 벗어난 일을 누군가에게 맡기는 것은 지붕이 너무 무거워 대들보가 휘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리유유왕은 통상처럼 해석하면 의미가 연결되지 않으므로 리(利)를 장년의 때로, 뒤의 형(亨)을 청년의 때로 새기면 좋겠습니다. 역량을 벗어나 일을 맡게 되는 것은 젊을 때 잘못으로 빚어지게 됩니다. 자신의 역량을 과대평가하거나, 자신의 위치에 걸맞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약간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순서 그대로 해석하면 “역량을 벗어난 일을 맡아 대들보가 휘어지는 정도가 되어도 젊은 시절에는 역량을 신장시켜 맡은 일을 처리해 나가면 이롭다.”고 보아도 되겠습니다.
⓵ 자용백모 무구(藉用白茅 无咎). 흰 띠풀로 자리를 매서 쓰면 허물이 없다는 말입니다. 지붕에 화려하고 웅장한 기와를 얹으면 약한 들보는 휘어집니다. 그러나 들보가 약해도 띠풀 초가지붕은 가벼워 휠 염려가 없습니다. 초라하나 검소하기 때문에 허물이 되지 않습니다. 동서고금을 통해 검소하고 겸손한 자세는 처세의 제일로 통했습니다. 검소하고 겸손한 사람은 아무도 싫어하지 않는 걸 보면 그렇습니다.
⓶ 고양생제 로부득기여처 무불리(枯楊生稊 老夫得其女妻 无不利). “버드나무 고목에 새움이 돋으니 이는 늙은이가 젊은 여인을 처로 맞는 것과 같다. 크게 불리할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역량을 벗어난 일, 균형과 일반적 형평을 벗어난 일 중에는 탓하거나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남녀 사이의 일은 국적과 나이를 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이건 길한 것도 흉한 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⓷ 동요 흉(棟橈 凶). 휘어진 들보를 사용하면 흉할 수밖에 없지요. 외형이 훌륭하고 수려해도 본래부터 무게를 감당할 재목이 못되면 흉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겉모습이나 스펙이 아니라 역량을 보고 일을 맡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가치관이나 됨됨이가 바르지 못하면 능력이 출중해도 흉할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⓸ 동륭 길 유사 린(棟隆 吉 有它 吝). 겉모습은 거칠고 볼품없어도 올곧고 속이 단단하여 들보로 쓰이는 나무가 동륭입니다. 이런 목재로 들보를 삼아야 건축물이 튼튼하지요. 뱀처럼 굽은 나무는 겉모습은 번지르르하나 위험하지요. 능력이 안 되면서도 위장하고 포장만 요란한 경우 그런 사람을 채용해서 일을 맡기면 위태롭게 됩니다.
⓹ 고양생화 로부 득기사부 무구 무예(枯楊生華 老婦 得其士夫 无咎 无譽). 앞에 나온 고양생제와 대비되는 구절입니다. “버드나무 고목에 꽃이 핀다. 이는 늙은 여인이 젊은 선비를 남편으로 맞는 것과 같다. 허물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칭찬받을 일도 아니다.” 통상적인 일은 아니지만 흉볼 일도 아닙니다. 몇 천 년 전에 결혼이민 같은 것이나 이주여성, 이주 노동자 문제에 대해 예견한 것이 놀랍습니다. 그냥 그렇구나 생각하면 될 일입니다.
⓺ 과섭멸정 흉 무구(過涉滅頂 凶 无咎). 과섭멸정은 무모하게 큰 내를 건너면 멸망한다는 말로 흉하다 합니다. 이때 혼자만 죽고 주변사람을 끌고 들어가지 않으면 허물은 면합니다. 리섭대천(利涉大川)은 때가 되고 철저한 준비를 마친 도전과 모험인데 비해 과섭멸정은 때를 모르고 무모한 도박을 하는 점이 다르다 하겠지요.
독재자들이나 부패한 고위관료들의 인사방식을 보면 능력이 자리에 약간 못 미치는 자를 앉히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야 과분한 줄 알고 죽을 줄 모르고 충성한다고 하지요. 부당하거나 위법한 일을 시켜도 군소리 없이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능력위주로 인사를 하는 게 아니라 충성심을 보고 인사를 한다고 하지요. 개인에게는 유익한 인사원칙인지 모르겠지만 국민의 입장에서는 참 황당한 일입니다. 나라가 나라다우려면 능력에 맞는 인사를 하는 원칙이 자리 잡아야 합니다.
능력이 조금 부족해도 허물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젊은 시절 약간의 무리가 따르는 모험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실패로 모든 것을 잃고 재기불능이 되면 흉한 일이지만 패자부활전이 보장되는 경우라면 해볼 만한 도전입니다. 실패할 때도 잘 망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제가 예비창업자들을 위한 법률강의를 할 때 첫 시간에 잘 망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사업은 15% 정도 성공확률을 가지고 하는데 상당수 실패가 예견되는 사람들에게 재기의 발판이 되는 것은 잘 망하는 경험입니다. 개인회생절차나 파산절차에서 세금 등은 탕감이 되지 않습니다. 돈도 먼저 갚아야 할 것이 있다는 말이지요.
또한 사적인 영역에서 통상적이지 않은 일이 있어도 크게 비난하거나 칭찬할 일은 아니라는 점도 생각해야 합니다. 고목에 움이 트고 꽃을 피우는 경우처럼 개인이 사적으로 능력이 있어 법의 테두리 안에서 호화스럽거나 나이 어린 배우자를 맞는 일은 그리 아름답지는 않지만 허물이라고 비난할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은 달리 취급해야 한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