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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투표 결과 전체 후보의 순위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 다수결 방식의 경우, 득표율에 따라 후보 전체의 순위를 결정할 수 있다.
둘째, 투표 결과는 오로지 각 유권자의 선호도 순서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주사위를 던져서 최종 순위를 바꾸거나 하지는 않는다.
셋째, 모든 유권자가 후보 A를 후보 B보다 더 선호한다면, 최종 결과에서도 후보 A가 후보 B를 이겨야 한다.
넷째, 최종 결과에서 후보 A가 후보 B를 앞설 때, 다른 후보 C가 추가되거나 삭제되어도 여전히 후보 A는 후보 B를 앞서야 한다.
다섯째, 혼자서 투표의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독재자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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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의 역설 1
- 애로우의 가능성 정리 -
1.
게임 이론(game theory)의 관점에서 투표는 세 가지 구성 요소를 갖고 있는 게임의 일종으로 파악된다.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 곧 투표자들의 모임, 투표 결과에 관한 투표자 개개인들의 선호 방식, 그리고 각 투표자에게 허용된 전략들이 그 세 가지 구성 요소들이다. 법 앞의 평등을 강조하는 간접 민주주의 정치 체제의 국가에서 개개인에 허용되는 전략은 정부의 구성 방식에 의존적이다. 입법, 법의 시행, 법에 따른 심판과 해석을 담당하게 되는 민주제 정부는 크게 의원내각제, 대통령제, 그리고 준대통령제로 분류된다. 정부의 구성 방식에 따라 정치적 후보의 선거 전략 외에도 투표자 개개인에게 허용 가능한 전략의 범위가 법으로 규정된다. 이러한 규정의 차이는 투표 방식의 다양성으로 나타난다. 그렇지만 다수결 원칙이 민주제 국가의 다양한 투표 방식을 관통하고 있다.
다수결 원칙에 따른 투표의 게임은 후보들 중 명백한 승자가 결정되는 경우에 종결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다수결 원칙은 가급적 많은 투표자가 선거에 참여한 결과로 그러한 승자가 결정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때 두 가지 가능한 역설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 첫째는 합리적 절차에 따른 투표로 승자가 결정되지 않아, 합당하다고 여겨진 다수결의 원칙이 위협을 받게 되는 경우이다. 그 둘째는 다수결 원칙에 가정된 합리적 개인의 속성으로 인해 오히려 다수결 원칙이 민주주의를 촉진시킬 수 없게 되는 경우이다. 그 어떤 경우든, 합리적 절차와 합리적 개인의 속성에 대한 어떤 전제를 수정함으로써 해당역설을 피해나갈 수 있다. 따라서 역설을 피해 나가기 위해서는 그러한 전제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여기서는 첫 번째 종류의 역설에 대해서 알아보자.
역설은 일반적으로 모순적인 결론을 산출하는 논증 과정을 뜻하지만, 그 폭넓은 의미는 수수께끼에 가깝다.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함축하는 진술은 모순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모순적인 것을 전제로 삼을 수 없다는 논증 전통을 받아들이면, 모순적인 결론도 허용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모순적인 결론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국 그것을 전제로 삼아 논증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증 전통을 따를 때 합당하다고 여겨지는 어떤 원리나 전제를 위협하는 방법 중 하나가 역설을 사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러한 원리나 전제를 받아들일 때 모순적인 결론이 발생함을 보임으로써 그 원리나 전제에 위협을 가하는 것이다. 또한 역설은 어떤 원리에 반하는 예외 상황을 설계하여 그 원리에 제한을 가할 목적으로 사용된다.
투표의 역설 중 오래된 것 중 하나는 콩도르세의 역설(Condorcet paradox)을 들 수 있다. 세 명의 후보 x, y, z가 있다고 하자. 이들 중 승자를 뽑는 투표 절차, 곧 콩도르세 방법(Condorcet method)은 다음에 근거한다.
• 투표자 개인은 후보들을 선호하는 방식을 갖고 있다. 합리적인 투표자는 그러한 선호 방식에 의해 후보들에게 순위를 매기게 된다. 그가 x를 y보다 강하게 선호한다는 것은 y보다 x에 더 높은 순위를 매긴다는 것이며, 이를 ‘x≻y’로 나타내자. 그가 선호 방식에서 x와 y 사이에 아무런 차이를 두지 않는 경우, 이를 ‘x∼y’로 나타내자. 약한 선호 관계 ‘x≿y’는 ‘x≻y 또는 x∼y'를 뜻한다. 여기서 x, y는 수(數)가 아니라 후보나 선택 대안을 뜻하기 때문에, 선호 관계 ‘≻’, ‘≿’, ‘∼’를 산수의 대소 관계로 이해서는 안 된다.
• 합리적인 투표자는 다음의 완전성 조건(completeness condition)과 이행성 조건(transitivity condition)을 만족한다.
완전성 조건: 임의의 x, y에 대해 ‘x≿iy 또는 y≿ix'가 성립한다. 여기서 ‘x≿iy’는 ‘개인 i가 y보다 x를 선호하거나 둘 사이에 선호의 차이를 두지 않음’을 뜻한다. 이러한 완전성 조건에 따라 ‘x∼iy'가 성립하면, ‘y∼ix'도 성립하게 되며, 'x≻iy'와 'y≻ix'는 동시에 성립할 수 없다.
이행성 조건: 임의의 x, y, z에 대해 ‘x≿iy이고 y≿iz이면 x≿iz'가 성립한다. 이를 ‘x≿iy≿iz’로 줄여 표현한다.
• 세 후보를 반드시 x 대 y, y 대 z, 혹은 z 대 x의 쌍별로 비교하여 다수의 표를 획득한 후보의 순위가 그렇지 못한 후보보다 집단적 차원에서 더 높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하여 집단적 차원에서 후보들의 순위가 다수결 원칙에 의해 결정된다.
콩도르세 역설은 위의 방법에 근거하여 승자를 뽑을 수 있다고 기대했지만 예외적인 경우가 발생하는 상황 설계에 해당한다. 즉, 개인들의 선호 방식은 이행성 조건을 만족하지만, 집단적 차원의 투표 결과는 그렇지 못한 상황이 배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례로 콩도르세의 방법에 따른 투표 결과가 ‘x≿y이고 y≿z이지만 z≿x'와 같이 순환적인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경우, 콩도르세 방법에 따른 승자, 곧 ‘콩도르세 승자(Condorcet winner)’는 없게 된다.
콩도르세 역설은 다수결 원칙을 위협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단지 다수결 원칙을 실현하는 방법 중 하나인 콩도르세 방법에 제한을 가할 뿐이다. 콩도르세 역설을 피하기 위한 다른 방법을 고안할 수 있다. 실례로 1770년 파리 과학세미나에서 발표된 보다(Jean-Charles de Borda)의 산출법을 들 수 있다. 보다 산출법은 마지막 글의 [예제 15]에서 살펴볼 것이다. 게다가 콩도르세 방법의 다수결 원칙이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말할 근거도 없다. 게임 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콩도르세 역설은 투표자들의 모든 ‘선호 방식의 프로필(preference profile)’ 중 콩도르세 승자가 나올 수 없는 예외 상황을 건설한 것에 불과하다.
애로우의 가능성 정리(Arrow's possibility theorem)는 민주적 절차에 따른 다수결 원칙이 갖춰야 할 조건들을 고려하여 콩도르세 역설을 일반화한 것에 해당한다. 그러한 조건들을 받아들이면, 가능한 모든 선호 방식들에 대하여 다수결 원칙은 후보나 대안을 선택하는 집단적 선택 규칙으로 여겨질 수 없다는 것이다. 다수결 원칙이라는 것이 무조건적인 절차가 아닌 까닭에, 애로우의 정리 자체가 다수결 원칙이나 이에 근거한 어떤 정치 체제의 불가능성을 논리적으로 함축하는 것은 아니다.
애로우의 가능성 정리는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로 불리기도 한다. 애로우의 정리는 한때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거나, 단 두 정당만을 허용해야 가능하다는 식으로 대중에게 와전되었다. 애로우의 가능성 정리라는 용어가 채택된 이유는 이러한 대중적 오해를 불식시킬 목적도 갖고 있지만, 애로우의 정리를 가지고 민주적 절차에 따른 다수결 원칙의 불가능성을 강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글에서 이에 대해 알아보자.
2.
경제학자 애로우(Kenneth J. Arrow)를 유명하게 만든 ‘애로우의 정리’는 1951년 그의 학위 논문(Social Choice and Individual Values)에 처음 등장한다. 주어진 대안들에 대한 개인의 선호 방식을 합리적으로 규정하는 특정 조건들이 마련된 경우, 다수결 원칙에 따른 집단적 선택 규칙(a collective choice rule)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애로우의 정리이다. 그러한 특정 조건들은 무엇인가? 이를 알기 위해 두 명의 개인으로 구성된 집합 I(={i, j})와 세 개의 대안, 실례로 세 명의 후보로 구성된 집합 X(={x, y, z})로 국한된 선택 상황에 논의를 국한하자. 이때 X에 대한 각 개인의 선호 방식은 완전성 및 이행성 조건을 만족하는 것으로 가정하자. 이 가정은 합리적 투표자가 만족해야 할 최소한의 조건으로 여겨진다. 논의를 더욱 단수화하기 위해 개인들의 선호 방식이 선형적(linear)인 경우만 고려하자. 다시 말해, 서로 다른 X의 두 대안에 대해 각 개인은 반드시 어느 하나를 선호해야 한다. 또 각 개인의 선호 방식은 쌍별로, 즉 [x 대 y], [y 대 z], [z 대 x]로 비교하자. 여기서 선호 방식은 2항 관계를 만족하는 것으로 가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생각해 볼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선호 방식들의 프로필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선호 방식의 프로필>
[x 대 y] 1 2 3 4 |
[y 대 z] 5 6 7 8 |
[z 대 x] 9 10 11 12 | |
i j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선호 방식의 프로필>에서 1, 2, 3, ..., 12는 두 개인 i, j의 쌍별 선호 방식을 나타낸다. 1의 경우, i, j 모두 x보다 y를 선호하고 있다. 12의 경우, i, j 모두 z보다 x를 선호하고 있다. 위 경우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비합리적인 개인의 선호방식, 즉 이행성 조건이 깨어져 순환적 순서(x≻y이고 y≻z이지만 z≻x)를 보이는 것도 있다. 실례로 (1, 5, 11)의 조합을 보자. 이때 ‘x≻jy이고 y≻jz이지만 z≻jx’가 성립하는 까닭에, j의 {x, y, z}에 대한 선호 방식은 비합리적인 것이 된다. 각 행에서 ‘≻, ≻, ≻’ 혹은 ‘≺, ≺, ≺’의 배열에 해당하는 선호 방식은 비합리적이다. 이러한 비합리적인 선호 방식의 배열을 사전에 배제시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다만, 합리적인 배열에 해당하는 경우, 실례로 (1, 6, 11)과 같은 경우들에 대해서는 집단적 차원에서의 선호 결과가 완전성과 이행성이라는 조건을 만족하면 된다. 이를 만족시켜주는 집단적 선택 규칙이 있다면, 그것을 ‘SWF(사회 복지 함수, Social Wellfare Function)’라 하자. 그러한 SWF가 있다면, SWF는 어떤 의미에서 합리적 개인을 그대로 빼닮은 초유기체를 건설해주는 기능을 갖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원하는 SWF는 다음 도식에서 개인 차원의 합리적 선호 방식들을 집단 차원에서의 합리적 선호 방식(≿c)과 연결시켜주는 기능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 ‘c'는 집단적임을 뜻하는 ’collective'의 약자이다.
(도식의 >는 ≿c로 대체 가능)
그러나 투표가 민주적 절차에 따라 진행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SWF는 개인들의 선호 방식의 강도 및 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두 대안에 대한 ‘개인의 선호 방식의 순서(ordering of individual preference)’에만 근거하여 결정되는 것으로 가정되었다. 즉, 집단 차원의 쌍별 대안 비교는 오로지 해당 쌍의 두 대안에 대한 개인 차원의 선호 방식에 근거한다. 집단 차원에서의 [x 대 y] 비교는 개인 차원의 [x 대 y]들의 비교에만 의존적이라는 것이다. 실례로 ‘x≿cy’에 기여한 i의 두 선호 방식 ‘z≻ix≻iy’, ‘x≻iz≻iy’ 모두 ‘x≻iy’로 취급되는 까닭에, z는 [x 대 y]의 비교에서 무관한 것이 되어 버린다. 즉, [x 대 y] 비교에 근거한 집단 차원의 선호 방식은 [y 대 z]와 [z 대 x]의 비교와 독립적인 것으로 취급될 수 있다. 이러한 조건을 ‘무관한 대안의 독립성(IIA: Independence of Irrelevant Alternatives)’이라 한다. 앞서 언급된 모든 조건과 IIA를 만족하는 SWF에 의해 얻어진 결과가 다수결 원칙을 반영하려면, 주어진 두 대안에 대해 모두가 하나를 강하게 선호하는 경우는 집단적 차원에 그대로 반영되어야 한다. 실례로 모두 y보다 x를 강하게 선호한다면, ‘x≻cy’가 집단 차원에서도 성립해야 한다. 이를 ‘만장일치(U: Unanimity)’의 조건이라 한다. 또 SWF가 민주적 절차에 따른 다수결 원칙을 반영한다면, 집단 차원의 선호 방식이 특정 개인의 강한 선호 방식과 항상 일치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특정 개인은 독재자(dictator)로 규정된다. 독재자가 없어야 한다는 것을 ‘비(非)독재자(ND: Nondictatorship)’ 조건이라 한다. 이제 중요한 물음은 다음이다.
• 두 명의 개인으로 구성된 집합 I(={i, j})와 세 개의 대안, 실례로 세 명의 후보로 구성된 집합 X(={x, y, z})로 국한된 선택 상황에서 IIA, U, ND 모두를 만족하는 SWF가 있을까?
이어지는 글에서 그러한 SWF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일반화된 애로우 정리를 살펴보자.
3.여기서 우리는 다음을 증명하려고 한다.
• 두 명의 개인으로 구성된 집합 I(={i, j})와 세 개의 대안, 실례로 세 명의 후보로 구성된 집합 X(={x, y, z})로 국한된 선택 상황에 논의를 국한하자. X에 대한 각 개인의 선호 방식은 완전성 및 이행성 조건을 만족하며, 개인들의 선호 방식은 선형적이다. 또 각 개인의 선호 방식은 쌍별로, 즉 [x 대 y], [y 대 z], [z 대 x]로 비교 가능하다. 이때 IIA, U, ND 모두를 만족하는 SWF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선 앞글에서 살펴본 <선호 방식의 프로필>을 U만을 고려하여 수정하면, 다음의 프로필을 얻게 된다.
<선호 방식의 프로필>
[x 대 y] 1 2 3 4 |
[y 대 z] 5 6 7 8 |
[z 대 x] 9 10 11 12 | |
i j c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IIA, U, ND를 만족하는 SWF가 어떤 f가 있다면, 그에 대응하는 집단 차원의 선호 방식 c도 합리적 선호 방식을 나타내야 한다. 즉, 완전성과 이행성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왜냐하면 SWF는 개인 차원에서의 합리적 선호 방식을 집단 차원으로 옮겨주는 기능을 갖는 것으로 규정되었기 때문이다. f가 있다는 가정 아래 전체적인 증명의 윤곽은 다음과 같다. (아래의 증명 윤곽은 두 명의 개인과 세 개의 대안들이 주어진 선택 상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일반적인 증명 절차에 해당한다.)
• 각 쌍별 비교에서 다수에 반하는 선호 방식을 갖고 있는 유일한 개인이 있는 경우, 그를 ‘다수에 대한 반대자(d: dissenter)’라 하자. 두 명의 개인으로만 구성된 집단의 <선호 방식의 프로필>에서는 2, 3, 6, 7, 10, 11의 경우에 d가 존재한다. 각 경우에 실제적 다수가 없는 까닭에, i가 d라면 j는 상대적 다수의 위치를 점하게 된다. 또 j가 d라면 i가 상대적 다수의 위치를 점하게 된다. (세 명인 경우의 선호 방식의 프로필을 구성해 보면, 선호 방식에서 차이를 보이는 경우에도 역시 단 한명의 d만 존재한다. 이는 증명이 끝난 다음 분명해질 것이다.)
• [단계 1]
쌍별 대안 비교에서 선호 방식의 차이를 보이는 경우, 즉 d가 존재하는 각 경우의 두 대안에 대한 선호 관계는 집단적 차원에서 선호의 차이를 보임을 증명한다. 실례로 2, 3, 6, 7, 11의 경우에 대해 ‘x∼cy’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때 해당 각 경우의 두 대안에 대한 집단적 선호 방식은 상대적 다수가 아니라 d의 것을 따른다고 가정한다. 이러한 가정 아래 해당 각 두 대안과 합리적 연관성을 맺는 경우들, 즉 이행성 조건을 만족할 수 있는 경우들을 찾아 빈 칸을 채워나간다. 이렇게 얻어진 집단 차원의 선호 방식은 IIA, U, ND를 최초에 만족한다고 가정된 f에 대응되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각각의 <선호 방식의 프로필>을 조사하여 d들이 독재자였음을 보인다. 실례로 2의 경우에서 d를 j로 가정할 때 집단 차원의 선호 방식은 항상 j와 일치하게 된다. j는 독재자로 규정되는 것이다. 이는 IIA, U, ND를 만족하는 SWF가 있다는 가정과 모순되므로, 2의 경우에서 두 대안에 대한 집단 차원의 선호 방식은 다수의 선호 방식을 따라야 한다.
• [단계 2]
다수의 선호 방식에 따라 집단적 차원의 선호 방식이 구성될 때, 개인들의 합리적 선호 방식, 즉 완전성과 이행성 조건을 만족하는 선호 방식이 집단적 차원에서는 깨어지는 경우가 있음을 보인다. 그러한 경우가 있다면, 이는 SWF f가 IIA, U, ND를 만족한다는 최초의 가정에 모순된다. 이러한 [단계 2]는 두 명의 개인으로 국한된 선택 상황에서는 불필요하다. 왜냐하면 다수에 반하는 반대자가 곧 상대적 다수이며, 이 역도 성립하기 때문이다. [단계 2]는 세 명 이상이 개입된 선택 상황에 대한 증명에서 필요하다.
이제 살펴본 증명의 윤곽을 자세히 펼쳐보자.
(1) 2 명의 개인과 세 개의 대안이 주어진 상황에 대한 애로우 정리의 증명
이러한 상황에서는 [단계 2]의 증명 절차는 불필요하다. <선호 방식의 프로필>에서 [x 대 y]에 해당하는 2의 경우에서 j를 d라 하자. 만약 [x 대 y]의 비교에서 ‘x∼cy’가 성립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i와 j 각각의 줄에서 ‘≻, ≻, ≻’ 혹은 ‘≺, ≺, ≺’의 배열이 성립하는 경우는 이행성 조건이 깨진 것에 해당하는 까닭에 고려할 필요가 없다. (2, 5, 11)과 (2, 8, 11)의 조합은 그러한 배열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5와 8의 경우는 만장일치의 조건 U를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y≻cz’와 ‘z≻cy’가 성립한다. ‘x∼cy’가 성립한다고 가정되었으므로, 5의 ‘y≻cz’와 이행성 조건에 의해 ‘x∼cy≻cz’가 성립한다. 따라서 11에는 ‘x≻cz’가 해당한다. ‘x≻cz’는 조건 IIA에 따라 11의 경우에만 근거하여 결정된 것으로 취급될 수 있는 까닭에, ‘z≻cx’의 가능성은 배제된다. IIA에 따라 11에 해당하는 c는 이행성 조건에 의해 얻어지더라도 2, 5 및 2, 8과 무관하게 성립하는 것으로 가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x∼cy’가 성립하면, ‘y∼cx'도 성립한다. 이때 8에 의해 ‘z≻cy∼cx’가 성립하며, 따라서 11에는 ‘z≻cx’도 성립한다. ‘x≻cz와 z≻cx’가 동시에 성립한다는 모순적 결과가 발생한 것이다. 이를 도식화해 보면 다음과 같다.
<허용 불가능한 선호 방식의 프로필>
[x 대 y] 1 2 3 4 |
[y 대 z] 5 6 7 8 |
[z 대 x] 9 10 11 12 | |
i j c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위의 프로필에서 ‘≻≺’ 같은 경우는 ‘x∼cy’를 가정했을 때 발생하는 모순에 해당한다. 따라서 2의 경우에 ‘x∼cy’는 성립할 수 없다.
이제 ‘y≻cx’가 성립한다고 가정하자. 이는 경우 2에서 d(=j)의 의견에 따른 것에 해당한다. 이것이 이행성 조건을 만족하게 되는 경우는 ‘y≻cx≻cz’ 또는 ‘z≻cy≻cx’이다. 이에 해당하는 경우의 조합들은 각각 (2, 7, 12)와 (2, 8, 11)이다. 정말 이러한 조합들이 ‘y≻cx≻cz’ 또는 ‘z≻cy≻cx’라는 결과를 낳는지 검토해야 한다. 12는 조건 U가 충족된 경우인 까닭에, ‘x≻cz’가 성립한다. ‘y≻cx’와 ‘x≻cz’에 의해 ‘y≻cx≻cz’가 성립한다. 따라서 7에는 ‘y≻cz’가 들어가야 한다. 8은 U를 가 충족된 경우인 까닭에, ‘z≻cy’가 성립한다. ‘y≻cx’와 ‘z≻cy’에 의해 ‘z≻cy≻cx’가 성립하기 때문에, 11에는 ‘z≻cx’가 들어가야 한다. 이러한 결과들을 <선호 방식의 프로필> 넣어 보면, 다음과 같다.
<선호 방식의 프로필>
[x 대 y] 1 2 3 4 |
[y 대 z] 5 6 7 8 |
[z 대 x] 9 10 11 12 | |
i j c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위 프로필에서 (3, 7, 12)의 조합에 주목해 보자. 7과 12에 의해 ‘z≻cy’, ‘x≻cz’가 성립한다. 따라서 3에는 ‘x≻cy’가 들어가야 한다. 이제 (3, 6, 9)의 조합을 주목해 보자. 3과 9에 의해 ‘x≻cy’, ‘z≻cx’가 성립하므로, 6에는 ‘z≻cy’가 들어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3, 5, 10)의 조합을 주목해 보자. 3과 5에 의해 ‘x≻cy’, ‘y≻cz’이 성립하므로, 10에는 ‘x≻cz’가 들어가야 한다. 이제 최종 <선호 방식의 프로필>은 다음과 같다.
<선호 방식의 프로필>
[x 대 y] 1 2 3 4 |
[y 대 z] 5 6 7 8 |
[z 대 x] 9 10 11 12 | |
i j c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이 단계에서 얻어진 최종 <선호 방식 프로필>을 자세히 보면, 집단적 차원의 선호 방식이 d, 곧 j와 동일함을 알 수 있다. 이는 j가 독재자임을 뜻한다. 이는 IIA, U, ND를 만족하는 SWF 어떤 f가 있다는 최초의 가정에 모순된다. 3, 6, 7, 11 각각에서 출발하는 경우들에 대해서도 지금까지의 절차를 적용해 보면, j에 따른 집단 차원의 선호 방식은 항상 j와 일치한다. 따라서 독재자 j가 이난 상대적 다수 i의 선호 방식에 따라 c의 선호 방식이 구성되어야 하는 가능성만 남게 된다. 하지만 이때 i가 독재자가 된다. 이 역시 IIA, U, ND를 만족하는 SWF가 있다는 가정에 모순된다. 따라서 두 명으로 국한된 선택 상황에서 [단계 2]의 증명 절차는 불필요하다.
(2) 세 명의 개인과 세 개의 대안이 주어진 상황에 대한 애로우 정리의 증명
세 명의 개인 {i, j, k}와 세 개의 대안 혹은 후보 {x, y, z}가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도 위의 두 단계 증명 절차를 적용하여 IIA, U, ND를 만족하는 SWF는 없다는 것을 보일 수 있다. 그러한 상황의 쌍별 비교에서도 선호 방식이 불일치하는 경우의 d는 유일하기 때문이고, 이는 다음의 선호 방식들의 프로필에서 분명해진다.
<세 명의 개인과 세 개의 대안이 주어진 상황에서의 선호 방식의 프로필>
[x 대 y] 1 2 3 4 5 6 7 8 |
[y 대 z] 9 10 11 12 13 14 15 16 |
[z 대 x] 17 18 19 20 21 22 23 24 | |
i j k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경우 2에 주목해 보면, k가 유일한 d임을 알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단계 1]의 증명 절차에 따른 집단 차원의 선호 방식은 k와 동일하게 나타난다. 경우 3에 주목해 보면, j가 유일한 d임을 알 수 있다. [단계 1]의 증명 절차에 따른 집단 차원의 선호 방식은 j와 동일하게 나타난다. 각각의 d에 따른 결과는 d가 항상 독재자라는 것이다. 결국 다수의 선호 방식에 따른 집단 차원의 선호 방식만이 검토 대상으로 남게 된다. 이때 [단계 2]의 증명 절차에 따라 그러한 선호 방식에서 콩도르세 역설을 발견하면, 즉 집단적 차원에서 이행성 조건이 깨어지는 경우들의 조합이 있음을 보이면, 증명은 완결되는 것이다.
세 개 이상의 대안이 주어진 경우, 세 명이 아니라 임의의 n 명의 개인들이 개입된 선택 상황에 대해서도 지금까지의 증명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 조건 U를 만족하지 않는 경우에 대응된 각각의 쌍별 대안 비교에서 임의의 개인을 다수의 의견에 반하는 유일한 인물 d로 가정하고, 동일한 선호 방식을 보이는 이들을 묶어 하나의 개인처럼 취급하면 된다. 이때의 그 증명은 세 명의 개인들로 구성된 증명 방식의 확장에 해당한다.
여기서 펼쳐진 애로우의 정리에 대한 증명 방식은 합리적 선택 이론에 대한 수학적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지루하게 비춰질 것이다. 그는 애로우 정리와 연관된 다른 수학적 정리나 보조정리들을 알고 있는 까닭에 훨씬 단순한 방법으로 애로우 정리를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택 이론에 대한 기초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여기서 펼쳐진 증명 방식을 통해 애로우 정리가 콩도르세 역설의 확장 혹은 일반화로 여겨지는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5.
다수결 원칙에 따른 합당한 투표 방식으로 정치 후보를 뽑는 행위, 곧 선거 행위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제도적 장치로 여겨진다. 이론적 측면에서 민주주의를 규정할 때 민주주의의 이상은 정치적 평등을 실현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에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부의 권위도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까닭에, 정치적 평등을 실현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힘들다. 실제 투표 방식이 정부의 다양한 구성 방식뿐만 아니라 국가의 경제 구조 및 규모에도 의존적이기 때문에, 수학적으로 무모순한 다수결 원칙이 반드시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콩도르세 역설을 피하기 위해 보다 산출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면, 투표자가 후보들에게 점수를 매긴 모든 방식이 개표에서 고려되어야 하며, 또 투표자도 후보들 각각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이상적이다. 이러한 투표 방식을 택하는 나라는 경제적으로도 풍요할뿐더러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한 사회 기반 시설도 잘 갖춰져야 한다. 애로우 정리가 콩도르세 역설의 확장임을 감안할 때 이는 정치적 평등을 촉진시키기 위한 효과적인 투표 방식이 단순히 수학적인 모형으로 결정될 수 없음을 암시한다. 또 실제 투표자들이 특정 수학적인 모형에 등장하는 합리적 개인은 아닌 까닭에, 권력과 교육이 소수 엘리트층에 세습되는 현상이 지속되어 민주제 정부가 실제로는 과두 정부 형태의 양상을 띠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평균 교육 수준, 경제 규모, 인구수 등을 고려하여 특정 민주 정부 형태에 최적화된 집단적 선택 규칙을 찾아보는 수학적 작업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적어도 그러한 작업을 통해 피해야 할 것을 사전에 진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로우의 정리 등이 여러 현실적 변수들을 고려하여 특정 민주 정부 형태에 최적화된 집단적 규칙을 찾아보는 수학적 작업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애로우의 정리 등이 그러한 수학적 작업에 토대가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의 정리는 쌍별 대안 비교에 근거한 단순한 다수결의 원칙, 즉 다수 선호 방식은 이상화된 수학적 모델에서조차 일방적으로 통용되기 힘들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투표의 역설 2
- 공간이론 -
1.
콩도르세의 역설과 함께 투표의 역설로 많이 거론되는 것은 ‘다운스 역설(Downs paradox)’이다. 이 역설은 경제학자 앤서니 다운스(A. Downs)의 1957년 저작 <민주주의의 경제학적 이론(An Economic Theory of Democracy)>에 등장한다. 다운스 역설에 함축된 ‘합리적 투표자’는 손익 계산을 근거로 투표권을 행사한다. 여기서 합리적 투표자는 고전 경제학의 ‘합리적 개인(rational individual)’을 뜻한다. 그 합리적 개인은 주어진 대안들 중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결과를 계산하여 선택하는 행위자로 가정되었기 때문에, 고전 경제학의 합리성 개념은 ‘개인 중심의 합리성’ 개념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때 ‘개인’은 일상생활에서 ‘개인적’이라는 수식어에 함축된 ‘개성을 가진 존재’를 뜻하지 않는다. 그 ‘개인’은 합리적이라고 평가 될 수 있는 것이 개인의 속성만으로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는 관점에 기댄 ‘이상화된 개인’이다. 이러한 개인의 합리적 선택은 최적 결과를 지향하는 까닭에 ‘결과주의(consequentialism)’라 불리는 정치철학의 중요한 주제가 된다. 따라서 다운스 역설은 선택이론뿐만 아니라 공리주의(utilitarianism) 전통의 연장선에 서있는 결과주의가 갖는 설명력의 범위와 한계를 따지는 데 중요한 분석 대상이 된다. 또 다운스 역설은 정치적 행위 예측을 위한 ‘시각화 모형(visualization model)’을 다루는 ‘공간이론(spatial theory)’과도 관련되어 있다. 현실 세계의 복잡한 문제는 경제학 및 정치학의 추상적인 이론과 경험적인 통계 자료에만 국한하여 풀릴 수 없다. 그러한 이론과 통계 자료를 연결해주고, 자료 분석을 통해 이론을 견고하게 하거나 수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 장치가 있어야 하며, 시각화 모형은 그러한 장치를 대표한다. 시각화 모형을 다루는 별도의 이론들이 생겨났으며, 그 대표적 이론으로 ‘공간이론(spatial theory)’을 들 수 있다. 이 작업의 목적은 다운스 역설을 공간이론과 연관시켜 투표 행위에 함축된 문제의 복잡성을 드러내주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다운스 역설을 먼저 살펴보자.
2.
역설은 어떤 전제에서 모순을 함축한 결론을 이끌어낸 논증 과정으로 규정되기 때문에, 역설의 일반적인 해결 방식은 해당 전제를 부정하거나 수정하는 것이다. 다운스는 정치 집단을 판매자에, 투표자를 구매자에 비유하였다. 이때 정당의 공약은 일종의 상품에 비유된다. 어느 투표자가 특정 정당을 선택하는 것은 그런 상품을 사는 것에 해당한다. 고전 경제학의 관점에 따른 합리적 투표자는 자신의 투표로 얻게 될 이득을 고려해야 한다. 이때 합리적 투표자는 투표 행위의 결과인 그러한 이득과 함께 투표 행위에 들어가는 비용, 실례로 투표로 인한 육체적 에너지 소모 및 시간 낭비 등도 고려해야 한다. 간접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정당 민주제를 채택한 지역의 경우, 선거에 미치는 투표자 개개인의 기여도는 미미하다. 이 때문에 투표로 얻게 될 이득보다는 손해가 커진다. 결국 투표자가 합리적 개인이라면 투표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손익 계산에 밝은 대다수 투표자들은 투표권을 행사한다. 또 다운스의 역설은 부동산이 안정화되었고 사교육비 등이 들지 않아 투표를 통해 자산 증식을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를 가정해도 발생할 수 있다. 투표를 통해 개인에게 돌아올 이득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투표를 하는 까닭에 역설이 발생한다.
다운스 역설을 해결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이다. 우선 합리적 투표자를 고전 경제학의 합리적 행위자로 규정한 전제를 부정하는 것이다. 각 개인이 경제 활동의 측면에서 고전 경제학의 합리적 행위자와 닮은 모습을 보여주더라도 정치적 측면에서는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투표를 하지 않고 집에서 음악을 듣는 것이 자신에게 이득이지만, 투표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투표할 수도 있다. 개인 중심의 합리성 개념을 포기하지 않더라도, 상황 의존적인 인간의 합리적 선택 및 판단이 그러한 개념만으로 설명 가능한 것은 아니다. 또 손익 계산과 무관하게 투표를 행사함으로써 대다수 사람들은 만족감을 얻는다는 주장도 다운스 역설에 대한 해결책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이때 개인의 만족 수준은 항상 합리적 계산과 정비례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것을 논해야 한다.
그러나 다운스 역설을 정치적 권력의 평등한 분배라는 민주주의의 이상과 연관시켜 살펴볼 때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다른 데 있다. 투표를 정치적 권력 분배의 제도적 수단으로 삼을 때 개인은 ‘사회 설계의 능동적 참가자’로 여겨져야 할 필요가 있다. 정치가나 정치 집단을 판매자에, 그리고 시민을 구매자에 비유한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정치가나 정치 집단을 고양이를 유혹하는 생선 가게 주인에, 그리고 시민을 고양이에 비유한 것과 다름없다. 이러한 비유 속에서 정책 결정을 담당하는 정부의 구성에 영향을 미치는 투표는 시민이 권력 집단에 제어를 가하는 수단은 될 수 있어도, 시민에게 사회 설계의 능동적 참가자의 지위를 부여하는 데에는 한계를 갖는다. 다운스 역설을 공간이론에 근거하여 분석하는 가운데, 시민의 ‘정치적 무관심(political apathy)’을 정치권이나 일부 멍청한 학자들이 떠드는 것처럼 시민의 권리 포기나 무책임으로 여겨질 수 없음을 논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투표가 갖는 한계를 인식할 때, 그리고 시민을 사회 설계의 능동적 참가자로 인식할 때 투표 및 투표율의 문제는 현시점의 사회가 민주주의의 이상에 얼마나 가까운가 혹은 먼가를 가늠하는 척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때 낮은 투표율과 관련된 다수의 정치적 무관심은 다운스 역설을 발생시킨 합리적 투표자의 손익 계산 논리로 설명될 수 없다. 다시 말해, 다운스 역설의 전제를 부정하거나 수정하는 이론적 해결 방식은 민주주의의 실천에 필요한 투표를 둘러싼 문제의 복잡성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자극제 정도로 이해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실천은 결코 정치적 권력의 평등한 분배라는 이상을 한 번에 구현해주는 완벽한 제도를 꿈꾸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사회가 그러한 이상에 다가가는 것을 방해하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데 있다. 이제 공간이론에 근거하여 다운스 역설을 분석해 보자.
3.
다운스 역설을 공간 모형에 비추어 이해해 보기 위해 먼저 호텔링 모델과 관련된 ‘다운스 딜레마(Downs' dilemma)’를 살펴보자. 어느 도로를 따라 핫도그를 파는 두 노점상이 있다. 해당 도로에는 많은 사람이 모이는 거대한 백화점이나 횡단보도 등이 없는 까닭에, 두 노점상은 도로의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성격을 가진다. 즉, 두 노점상의 판매량은 입장 시 주변 사람들의 눈길을 의식하게 되는 러브 모텔과 달리 전적으로 사람들의 이동 거리에 의존적이다.
위 그림에서 보듯이, 두 노점상은 각각 A와 C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도로를 이동하는 데 소모되는 비용이 핫도그 가격에 비해 무시될 만하다면, 두 지점의 노점상은 평균적으로 거의 비슷한 수익을 올릴 것이다. 하지만 두 노점상이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의 수익을 올리려면 A와 C의 중앙인 B 지점으로 위치를 옮겨야 한다.
위에서 살펴본 호텔링 모형(Hotelling's model)은 장소와 상품의 특성 등을 연관시켜 경제 활동을 분석했다는 점에서 현대적 공간이론의 효시로 거론된다(Hotelling, H.(1929), “Stability in Competition”, Economic Journal). 다운스는 거리와 같은 공간 개념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호텔링 모형을 투표라는 정치적 상황에 적용해 보았다. 진보당과 보수당의 두 후보 중 한 명을 뽑는 선거가 있다고 하자. 각 정당은 전당대회를 통해 후보를 선출해야 한다. 진보당 회원들 다수는 현 사안에 대해 진보당을 대표할 수 있는 정책 P(1)을 선호하고, 보수당 회원들 다수는 보수적인 정책 P(2)를 선호한다고 하자. 진보당의 후보가 되고 싶은 이는 P(1)을 피력할 수밖에 없고, 보수당의 후보가 되고 싶은 이는 P(2)를 피력할 수밖에 없다. 각 정당을 대표하는 두 후보 D와 R이 선출되었다고 하자. 이때 D와 R 각각은 ‘진보적 핫도그’와 ‘보수적 핫도그’를 판매하는 노점상에, 그리고 투표권을 가진 시민은 구매자에 비유된다. 투표자들의 정치적 성향은 고루 분포되어 있으며, P(1) 혹은 P(2)의 정책 지지자들이 정당을 바꾸는 경우는 없다고 가정하고, 다음 질문을 던져 보자.
• D와 R 각각이 계속 P(1) P(2)를 주장하는 것은 과연 효과적인 선거 전략인가?
각 정당의 후보가 선출되기 전과 선출된 후의 상황은 다르다. D가 진보당의 후보로, R이 보수당의 후보로 선출된 후, D와 R은 하나의 도로를 놓고 서로 경쟁하는 두 노점상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두 후보 모두에게 유리한 선거 전략은 P(1)과 P(2)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 정책 P(1.5)가 된다. 이를 공간적으로 도식화해 보면 다음과 같다.
수평선은 정당의 정책 성향을 나타낸다. D는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진보당 내에서 P(1)을 주장했다. R은 P(2)를 주장했다. 그러나 그 둘이 정당 후보로 선출된 후에는 그 중간 지점에 위치한 P(1.5)를 주장하는 것이 양자에게 유리한 선거 전략이 된다. 두 후보는 ‘진보적 핫도그’도, ‘보수적 핫도그’도 아닌 ‘중도 핫도그’를 팔게 되는 셈이다. 각 후보는 그러한 ‘중도 핫도그’를 ‘진보적 실용주의’, ‘중도 보수주의’ 등으로 칭하며 차별화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두 후보 사이의 실질적 정책 차이는 미미한 것이며, 결국 각 후보의 외모나 선동적 구호와 같은 것이 선거의 당락을 결정할 수도 있다. 이를 ‘다운스 딜레마’라 부르자. 다운스 딜레마와 유사한 투표 상황이 항상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다운스 딜레마의 조건들이 갖춰진 상황에서만 유사한 경우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또 선거에서 승리한 후보가 정말 P(1.5)를 강력하게 추진할 것인지도 앞으로 진행될 상황적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쉽게 진단할 수 없다.
투표의 역설을 대표하는 다운스 역설이 다운스 딜레마가 아니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다운스 딜레마는 후보들의 정책 차이가 아닌 다수의 투표 참여 여부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운스 역설이 발생하는 상황을 설계해 보려면, 호텔링의 모형은 너무나 단순하여 복잡한 시장 경제를 예측하는 데 명백한 한계를 갖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동 비용이 핫도그 가격에 비해 무시할 정도로 작다면, 노점의 위치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수요는 가변 수요(elastic demand)가 아니라 총수요가 된다. 이동 비용을 무시할 수 없는 경우를 살펴보기 위해 다음 도식을 분석해 보자.
도로의 총 길이는 5km라고 하자. 영이와 철이는 2.5km에 위치한 곳에 노점을 차렸다. 구매자들이 핫도그를 사기 위해 1km 이상을 이동하는 경우는 없으며, 영이는 1.5km에서 2.5km 사이의 사람들을, 그리고 철이는 2.5km에서 3.5km 사이의 사람들을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만약 영이가 1km 지점으로 노점을 옮기는 경우, 2~2.5km 내의 고객을 잃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2km 내의 모든 사람들이 영이의 고객이 된다. 철이는 2~3.5km 내의 사람들을 고객으로 확보하게 된다. 판매량에서 영이가 비교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의 경쟁 관계가 평형 상태를 이루려면, 철이도 4km 지점에 노점을 차려야 한다. 원래의 호텔링 모형과 달리 경쟁 관계의 평형 상태는 중앙이 아닌 중앙에서 대칭적으로 떨어진 두 곳이 된다. 만약 영이와 철이가 판매하는 핫도그의 가격이 지나치게 비싼 경우, 이동 비용까지 치르면서 핫도그를 살 사람은 거의 없다고 예상할 수 있다. 다운스 역설은 투표에 소모되는 비용이 투표로 얻게 될 이득보다 크다고 가정하는 경우에 성립한다.
다운스 딜레마에서는 투표에 소모되는 비용을 고려하지 않았다. 만약 투표 비용이 투표 결과로 얻게 될 이득보다 크다면, 고전 경제학의 관점에 따른 합리적 개인은 투표를 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이것은 개인에 국한된 것이다. 다수가 투표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되는 경우는 언제 발생하는가? 투표 비용이 투표로 얻게 될 이득보다 크다는 것이 다수에게 해당하거나, 각 개인의 선거에 대한 기여도가 너무나 미미한 경우에 발생한다. 이러한 경우에 다수가 실제 투표를 한다면, 다운스 역설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다운스 역설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정치적 행위를 고전 경제학의 관점에서 해석해 보는 것이 유용하지만 명백한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가변 수요를 고려한 호텔링 모형을 투표 상황에 적용할 때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운스 역설의 교훈이 갖는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공간이론의 시각화 모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4.
만약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한다고 해보자.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접근 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목적 달성에 적합하도록 꼭 필요한 정보들만 선별하여 유기적으로 조직화한 ‘시각적 표상(visual representation)’이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한 시각적 표상은 시각화 모형의 일종으로 여겨질 수 있다. 즉, 모든 시각적 표상이 시각화 모형은 아니다. 또 모든 시각화 모형이 정보 및 지식의 효과적인 전달 목적으로 개발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다음의 네 가지 시각적 표상들을 분석해보자.
첫 번째는 김홍도의 그림, 두 번째는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자 아낙시만더(Anaximander)가 당시 생각했던 세계지도, 세 번째는 이제 기억 속에 사라져 가는 구형 수도꼭지의 내부 도면, 그리고 네 번째는 오스트리아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노이라트(O. Neurath)가 작성한 도표이다. 이들 모두는 시각적 표상이라는 넓은 범주에 속하지만 기능의 측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김홍도의 그림은 단순히 어떤 사실을 묘사한 표상이 아니다. 그것에는 묘사의 전통적 기법, 김홍도 자신의 개성, 그리고 양반에 대한 풍자가 뒤섞여 있다는 점에서 예술적이며 문화적인 가치가 배어 있다. 이 때문에, 김홍도의 그림은 예술품으로 분류된다. 아낙시만더의 세계지도는 그가 생각한 세계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지도는 지금의 지도와 달리 특정 세계 이해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기능을 갖는다. 수도꼭지의 내부 도면은 인공물의 구조를 이해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기능을 갖는다. 마지막으로 노이라트가 작성한 도표를 보자. 이 도표의 목적은 1933년 미국 특정 지역의 빈부 차이를 나타낸다. 배경 지식 차이로 인해 확률값이나 연속적인 그래프가 모든 사람에게 해석 가능한 것은 아니다. 흑인과 백인의 극심한 빈부 차이를 사회적 문제로 부각하기 위해 노이라트는 평균 수입을 나타내는 수직선을 따라 통계치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통계치 대신 흑인과 백인 가구수를 상징하는 아이소타입(isotype)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사용 목적은 해결되어야 할 문제를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표상하여 ‘사회 통합(social integration)’을 꾀하는 데 있다.
호텔링 모형 및 그 변형 모형에서 사용된 시각적 표상은 기능의 측면에서 지금 살펴본 것들과 다르다. 우선 호텔링 모형의 시각적 도식은 전문적인 관련 지식 없이는 의미 있는 표상으로 기능할 수 없다. 또한 호텔링 모형과 관련된 공간이론의 시각적 모형들은 어떤 정보를 쉽게 전달하거나 사회 통합을 위한 설득의 장치보다는 예측 도구의 기능을 갖는다. 호텔링 모형의 경우나 호텔링 모형을 투표 상황에 적용한 경우를 보면, 시각적 모형은 주어진 조건 아래 최적 판매 지점이나 선거 전략을 예측하는 데 사용되었다. 물론 호텔링 모형은 여러 측면에서 예측 도구로는 명백한 한계를 갖는다. 호텔링 모형에서 예측을 위한 주요 변수는 하나이다. 그것이 경제 활동 예측에 적용될 때에는 공간적 위치가, 그리고 투표 상황에 적용될 때에는 정책 성향이 주요 변수가 된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독자적 시각화 모형 이론으로 발달한 것이 공간이론이다.
5.
공간이론이 실제 정치적 상황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구성 요소를 갖춰야 한다.
• 공간 모형을 구성하기 위한 도구들
• 의사결정 이론
• 의사결정 이론의 배후에 깔린 가정들
• 컴퓨터 프로그램
• 정치 체제의 규정 방식
공간 모형을 구성하기 위한 도구들로 좌표축을 구성하고 좌표축에 위치를 정하는 수학적 기법 등을 들 수 있다. 좌표축의 위치가 실제적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단순히 벡터 함수와 같은 수학적 기법으로만은 불가능하다. 입법 절차 등과 관련된 의사결정 이론도 있어야 한다. 이때 공간이론에서 그러한 의사결정론은 결정론적(deterministic)인 것에서부터 확률론적(probabilistic)인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것들이 사용된다. 특정 의사결정 이론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 배후에 깔린 가정들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실례로 공간 모형을 만드는 데 사용된 의사결정 이론이 개인의 선호 방식에 따른 효용 함수에 기대고 있다면, 그 배후에 깔린 가정들은 고전 경제학의 합리적 개인들에 관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공간 모형을 구성하기 위한 도구들, 의사결정 이론 및 그 배후에 깔린 가정들에 익숙한 사람은 여론 조사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특정 사안에 대한 공간 모형을 구성해낼 수 있다. 하지만 자료의 복잡성으로 인해, 또 계산 능력의 한계로 인해 공간 모형을 구현하는 데 여러 컴퓨터 프로그램들이 사용된다. 공간 모형을 바탕으로 특정 사안에 대한 정책 결정 방식이나 후보들의 전략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의사결정 이론의 배후에 깔린 관점 외에도 입법부나 국회의 구성과 맞물린 정치 체제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해당 정치 체제에 대한 지식만으로 그럴듯한 예측이 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이해는 종종 실전 경험을 통해서 체득된다.
공간 모형도 여느 시각화 모형과 마찬가지로 원활한 의사소통의 기반으로 작용해야 한다는 목적에서는 벗어날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전문가를 위한 시각화 모형이다. 위에서 언급된 공간이론의 구성 요소들에 대한 배경 지식 없이는 특정 공간 모형은 의미있는 시각적 표상이 될 수 없으며, 또 그런 배경 지식을 가진 전문가만이 공간 모형을 예측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공간이론의 다섯 요소 중 모형 구성에 사용되는 도구들은 수학적 기법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까닭에 경제학이나 정치학의 영역에 종속되지 않는다. 반면 의사결정 이론 및 그 배경 관점은 그러한 영역과 중첩된다. 이로부터 공간이론이 일방적으로 경제학이나 정치학의 이론의 단순한 하부 분과가 된다고 결론지어서는 안 된다. 공간이론의 모형 구성에서 의사결정 이론 및 그 관점은 선택 사항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투표자를 고전 경제학의 합리적 행위자로 보는 관점을 전제하고 투표 상황에 대한 2차원적 공간 모형의 보기를 건설해 보자.
정치적 사안 혹은 쟁점에 대한 정책적 성향을 X축으로, 정당별 이념적 성향을 Y축으로 잡자. 이때 공간 모형의 구성을 위한 다음의 2차원 좌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집권당인 여당 구성원들이 주어진 쟁점에 대해 진보적 성향을 띨지, 보수적 성향을 띨지는 상황 의존적이다. 진보적 이념을 가진 정당이 여당인 경우에도 특정 쟁점에 대해서는 보수적 성향을 보일 수도 있다. 따라서 위 기본 좌표에서 X축과 Y축, 즉 정책 성향과 정당 성향이 반드시 상관관계를 맺는 것으로 여겨질 필요가 없다. X축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보수적 정책에 가깝고, 왼쪽으로 갈수록 진보적 정책에 가깝다. Y축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야당의 이념에 가깝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여당의 이념에 가까워진다. 이러한 기본 좌표에 후보와 투표자들을 배열하기 위한 의사결정 이론이 있어야 한다. 고전 경제학의 합리적 행위자 관점에 따른 의사결정 이론을 택하는 경우, 좌표에서 각 개인의 위치는 그가 손익 계산에 따른 최대 효용치를 기대할 수 있는 곳이 된다. 즉, ‘R'을 효용 가치를 수치화한 실수의 집합이라 할 때 각 개인은 X축과 Y축을 변수로 한 효용 함수 ‘U(utility function): X×Y → R’로 추상화되고, 좌표상의 그의 위치는 그에게 해당하는 최대 효용치를 나타내는 곳이 된다. 다음 좌표를 보자.
위 좌표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효용 함수와 관련된 투표권자들의 선호 방식이 경험적으로 측정되어야 한다. 여론 조사, 거짓말 탐지기, 심지어 후보에 대한 감정 변화를 알려주는 심장 박동기 등이 그러한 경험적 측정에 동원될 수 있다. 하지만 각 개인의 선호 방식이 변할 수도 있고, 또 자신의 속내를 은폐하거나 측정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수도 있는 까닭에, 그러한 경험적 측정은 단지 각 개인의 최대 효용치를 알려주는 수단일 뿐이다. 다시 말해, 좌표상의 점들로 배열된 개인은 현실세계의 실제 사람이 아니라 호용 함수 개념에 근거한 ‘이상화된 사람(idealized person)’일 뿐이다. 복잡한 측정 자료를 바탕으로 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어느 투표자가 ‘a'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자. ‘a'는 그가 투표로 기대하는 최대 효용치와 연관된 곳이며, 이에 대응하는 좌표값 (0, 0)은 정책 및 정당에 대한 그의 선호 방식을 나타낸다. 고전 경제학의 합리적 개인 관점에 따르면, 그는 야당의 ‘갑’ 후보를 선택할 것이다. 이때 여당의 ‘을’ 후보도 다수가 몰린 ‘a' 근처에 다가가기 위해 진보 쪽으로 편향된 정책을 보수 노선으로 전환하는 선거 전략을 택할 것으로 예측된다.
위에서 살펴본 2차원 공간 모형의 예측 결과는 1차원 호텔링 모형을 투표 상황에 적용했을 때 얻어진 ‘다운스 딜레마’에 해당한다. 만약 효용 가치가 0 이하인 경우, 곧 투표에 소모되는 비용이 투표로 얻게 될 이득보다 큰 경우는 좌표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가정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하얀 바탕의 공간이 점들로 분포된 공간보다 넓은 까닭에, 다수가 투표를 하게 되면 다운스 역설이 발생하게 된다. 살펴본 공간 모형에 근거하여 다운스 역설을 해결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이다. 그 배후에 깔린 고전 경제학의 합리적 행위자 관점을 비판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정책을 단순히 진보적, 보수적 성향으로만 단순화시킨 것을 지적할 수도 있다. 동일한 정책도 경제, 종교, 교육 등 다른 차원과 맞물려 다양하게 평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차원들을 모두 고려하는 것은 처리해야 할 정보량의 증가로 인해 예측에 항상 유리한 것은 아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2차원보다는 3차원 공간 모형이, 혹은 4차원 모형이 예측에 효과적일 수도 있다. 공간 모형을 바탕으로 다운스 딜레마 및 역설이 보여주는 것은 고전 경제학의 합리적 개인 관점을 투표와 같은 정치적 상황에 적용할 때 드러나는 한계에 그치지 않는다. 다운스 역설은 간접 민주제가 갖는 근원적 문제에서 기인한 투표의 복잡한 상황을 드러내주기 때문에, 정치적 권력의 평등한 분배라는 민주주의 이상을 실천하고자 하는 이라면 한번쯤 관심을 가져봐야 하는 역설이다. 마지막으로 왜 그런지 살펴보자.
6.
그 누구도 인간이 손익 계산에 따라 선택을 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러한 성향이 상황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은 손해를 감수하기도 한다. 자기중심적이거나 자기 주변을 우선시하는 이기적 행위와 자기희생이나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이타적 행위에 대한 개념적 구분은 인간 행위를 설명하는 데 필요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상황 의존적이다. 그 누구도 인간 본성이 전적으로 이기적이라거나 이타적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더욱이 개인적 차원 및 집단적 차원에서 선(善)을 합리적 행위와 연결시켜 고려하는 경우는 더욱 복잡해진다. 스코틀랜드의 바보 우화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스코틀랜드의 어느 지역에 바보가 있었다. 바보는 노모를 위해 부자가 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에게 1 달러와 10 달러를 주면 항상 1 달러를 선택한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사람들은 바보를 실험했고, 그 결과 바보는 부자가 되어 노모를 편히 모실 수 있었다.”
행위는 일반적으로 행위 목적과 관련되어 평가된다. 개인적 차원 및 집단적 차원에서 선을 추구하는 행위의 주체, 즉 행위자는 최선을 판단을 해야 하고, 그러한 판단은 충동이나 습관이 아닌 합리적 계산에 근거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이 고전 경제학의 합리적 개인 관점에 깔려 있다. 그러나 경제 활동에 국한하는 경우에도 합리적 계산에 근거한 최선의 판단이 항상 좋은 결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한 원인으로 계산 용량의 한계, 계산에 고려되었어야 할 요인의 누락 등을 거론할 수 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의 바보 우화가 보여주는 것은 합리적 계산만으로는 행위 결과를 충분히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평가에서 합리적 계산 능력을 배제시킬 수는 없기 때문에, 스코틀랜드의 바보 우화가 합리적 계산의 무용지물론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러한 능력에 근거한 합리적 개인 관점에 인간을 가둬버리는 것을 부정한다. 행위 결과는 계산 능력, 행위 시점의 동기와 상황, 유사한 행위의 반복 여부, 목적 설정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 전통 및 집단적 가치 체계 등을 고려하여 평가되어야 한다. 다운스 역설도 이와 마찬가지로 고전 경제학의 합리적 개인 관점을 투표 상항에 적용하는 데 갖는 한계를 보여주는 사고 실험으로 여겨져야 한다. 이때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 고전 경제학의 이론들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가?
고전 경제학의 합리적 관점에서 ‘이상화된 인간’은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관점 속에서 인간 행위의 모든 측면을 설명하려는 것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합리적 계산 능력에 따른 선택의 유용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운스 역설을 가지고 고전 경제학의 합리적 개인 관점을 일반화하는 것에 제한을 가할 수는 있으나, 고전 경제학의 이론들이 잘 적용되는 설명 영역을 제거할 수는 없다. 따라서 다운스 역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여러 측면에서 합리적 선택을 고려해 보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한 방안 중 하나는 투표자들이 단순히 손익 계산의 논리로만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책임에 따른 선택을 단지 학습 효과에 의한, 어떤 의미에서는 세뇌에 의한 행위로 간주하더라도, 집단 유지의 차원에서 합리적 선택을 평가할 때 책임에 따른 행위를 비합리적이라거나, 합리적인 것과 무관한 것으로 규정할 수 없다. 또 개인의 투표 행위를 손익 계산보다 책임감과 연관시키는 것은 다운스 역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가장 많이 거론된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중요한 물음은 다음이다.
• 다수가 책임감에 따라 투표를 한다면, 사회는 민주주의의 이상인 권력의 평등한 분배에 다가가는가?
책임감이 권력의 평등한 분배에 다가가기 위한 충분조건으로 과장되어서는 안 된다. 권력의 분배 정도는 시민의 평균 교육 수준, 경제력 및 복지 등과도 맞물려 평가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평등한 투표권이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효과적인 이유는 특정 세력이나 인물에게 권력이 지속적으로 집중되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표의 이러한 권력 집중 제한 기능만으로 권력의 평등한 분배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한 이유를 간접 민주제를 채택한 지역에 국한하여 논증적으로 풀어보자.
• 민주주의는 정치적 권력의 평등한 분배를 지향한다.
• 권력의 평등한 분배를 위해 시민은 입법권을 갖는 통치자이자 동시에 피지배자가 되기를 요청을 받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힘들다.
• 간접 민주제는 법치를 바탕으로 한다.
• 입법 및 법제 수정을 담당하는 권력 집단은 투표를 통해 구성되는 까닭에, 투표는 권력이 다수의 의견을 고려하도록 하는 제한 기능을 갖는 것으로 여겨진다.
• 권력의 평등한 분배를 위해서 시민은 사회 설계의 자발적인 참여자가 되기를 요청받는다.
• 이 때문에, 시민은 투표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책임을 요청받으며, 여기에는 시민을 사회 설계의 능동적 참여자라는 이상적인 관점이 깔려 있다.
• 그러나 투표로 구성되는 권력 집단이 실제적 다수의 지지를 받아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 실제적 다수의 투표자들이 정치 집단을 불신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 그러한 상황에서 실제적 다수가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 이때 시민의 투표 거부는 단순히 투표로 얻게 될 이득이 작아서도 아니고, 또 무책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 따라서 법치를 바탕으로 한 민주제가 정착한 경우에도, 특히 투표가 공정하게 이뤄지더라도, 민주주의의 이상인 권력의 평등한 분배에 다가가는 것은 난제로 남을 수 있으며, 정부도 그 내용의 측면에서는 과두제 형태를 띠게 될 수도 있다.
위 논증 체계를 완벽하게 해부하는 것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화’ 혹은 ‘민주주의의 진화’에 대한 긴 분량의 논의를 요구한다. 법치의 관점에서 형식적으로 민주화된 상태는 단지 민주주의의 진화 과정의 첫 단계일 뿐이며, 투표는 민주주의의 이상에 다가가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고전 경제학의 합리적 개인 관점의 한계를 지적하고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 다운스 역설을 해결하는 이론적 방안은 될 수 있어도, 그것이 형식적 측면에서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화라는 목적 달성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긴 논의를 요구하는 위 논증 체계를 공간 모형을 통해 시각화해 보자.
글 [5]의 공간 모형과 다른 점으로 주목해야 하는 것은 X축이다. X축은 정책의 정치적 성향이 아닌 정치적 관심도를 나타내고 있다. 각 개인과 관련된 좌표상의 위치는 투표로 인한 효용 가치가 아닌 시민과 정치적 집단, 즉 정당과의 신뢰 관계에 의해 결정되었다. 설문 조사를 통해 신뢰도가 -3과 3의 척도로 나눠진 정치적 관심도와 정당별 선호도를 비교하여 결정되었다면, 다수는 정당별 선호도와 상관없이 정치에 무관심하다. 이러한 다수는 투표의 손익 계산과 무관하게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하자. 다수의 정치적 무관심이 정당과의 신뢰 관계가 깨어진 것에 기인하며, 또 사회 설계의 능동적 참가자가 될 수 없다는 허탈감에 그 동기를 둔 것이라면, 정치 집단은 다수의 정치적 무관심을 무책임으로 몰아세울 수 없다. ‘갑’ 후보가 속한 야당과 강한 결속력을 보이는 사람들, 그리고 ‘을’ 후보가 속한 여당과 강한 결속력을 보이는 사람들의 비율이 각각 25%라고 하자.
• 이때 ‘갑’과 ‘을’이 택하게 될 효과적인 선거 전략은 무엇인가?
글 [5]의 공간 모형과 달리 ‘갑’, ‘을’ 모두 30%의 표만 확보하면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각자의 세 유지에 신경을 쓰면서 5% 정도의 부동표만 확보하면 된다. 결국 실제적 다수의 의견은 정책에 반영되기 힘들어진다. 물론 낮은 투표율이 반드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가 안정화된 경우, 즉 다수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되게끔 정부 조직이 기능하는 경우에도, 투표율은 낮아질 수 있다. 그러한 경우, 선거에 미치는 개개인의 기여도가 미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살펴본 공간 모형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다수의 정치적 무관심은 정당과의 신뢰 관계가 깨어진 데 기인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갑’과 ‘을’로 대표되는 두 정당이 이념적 성향만 다를 뿐, 동일한 학연, 지연의 연대망이 그 둘의 배경을 이룬다면, 어떻게 되는가? 어느 정당이 정권을 잡든, 그러한 연대망을 기반으로 한 기득권을 위해 사회가 기능하게 된다. 이때 정부는 법적으로는 민주적 절차를 따라 구성되고 기능하지만, 내용적으로는 과두 정부 형태를 띠게 된다. 이 경우 다수의 정치적 무관심은 시민이 사회 설계에 참가할 수 없다는 허탈감에서 기인한 것으로 여겨져야 하며, 또한 새로운 정치 세력의 형성을 유도하는 기능을 갖게 될 수도 있다.
7.
다운스 딜레마 및 역설이 보여주는 것은 고전 경제학의 합리적 개인 관점을 투표와 같은 정치적 상황에 적용할 때 드러나는 한계에 그치지 않는다. 다운스 역설은 간접 민주제가 갖는 근원적 문제에서 기인한 투표의 복잡한 상황을 드러내준다. 공정한 투표가 권력의 평등한 분배라는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적 장치인 것은 맞지만, 충분한 것은 절대 아니다. 투표가 다수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되도록 해주는 보증 수표는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가 정치적 권력의 평등한 분배라는 민주주의 이상에 다가가길 희망하는 이라면 투표 제도의 역사와 상황 의존적인 투표의 여러 방식을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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