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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정치위원회, 아르헨티나 브라질 방문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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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북으로만 선거 운동한 거 아니냐?
금속노조(CNM) 위원장 파울루 까이리스도 “혹시 페이스 북으로만 선거 운동한 거 아니냐?”라면서 “3위를 한 사회당 후보 시우바를 지지한 사람 중 얼마나 이쪽으로 올 것인가 여부가 중요하다. 상파울로에서 이겨야 우리가 이긴다.”라며 분발을 촉구하고 있었다. 국제노총 위원장으로 CUT 출신인 주앙 펠리시우지오도 “사회당과의 차별성이 무엇인지, 우리가 뭘 주장하는지를 정확히 알려야 한다.”라고 거들었다. 비록 무슨 말을 하는 지 통역을 통해 늦게 듣긴 했지만 1차 대통령선거 투표를 끝낸 그들의 팽팽한 긴장을 느낄 수 있었다. 브라질 노총은 역사를 뒤로 돌리지 않기 위한 사활을 건 투쟁을 전개하고 있었다. “선거운동을 제도에 의존해서 해 온 것이 문제”라며 대 시민 설득 전략을 강화하고, 사회운동 등 전통적 기반의 동원에 나서야 한다는 내부 지적을 하고 있었다. 세계의 금속노동자와의 연대가 중요 연
수단은 룰라 전임 대통령의 핵심 지지기반이자 정치적 고향인 상파울루 주의 ABC 지역을 방문했다. 그 곳에서 총 280만명의 금속노동자 중 837,853명의 조합원(30%)을 가진 금속노조(CNM) 위원장과의 면담을 통해 브라질 노총의 현재와 고민을 들을 수 있었다. 알다시피 룰라 전 대통령도 선반공 출신으로 금속노조 위원장 출신이다. 1980년 이곳에서 최대 10만명이 참석한 41일간의 파업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현직 파울루 까이리스 위원장은 프레스공 출신이다. “위원장으로서 역점사업은 단체협약이 지역마다 다른 지역을 방문해 그 지역 금속노동자와 소통하고 연대해 전국적으로 동일한 단체협약을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는 미래의 노동운동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특히 여성이나 흑인 등 소외된 계층에서 미래의 노동운동 지도자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과제는 유럽지역 외에 아프리카 등의 세계 금속노동자들과 연대하는 것이다.”라는 그의 말에서 브라질 노총이 가진 고민의 일단을 볼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에서도 그랬지만 브라질 역시 “연대”를 유난히 강조하고 있음이 신선했다.
특히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위해 단체협약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예를 들면 내 임금은 여기에서 2400달러를 받고 있다. 하지만 바이야라는 다른 지역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동지는 1,000달러를 받고 있다. 이런 격차를 줄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똑같이 일하는데 임금이 달라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이런 차이들을 맞추지 않으면 노동조합의 단결에 큰 장해가 된다. 자본가들은 마치 지역마다 생활임금이 달라서 격차를 둔다고 하지만 삶의 유지비용은 동일할 수밖에 없다. 자본가들의 말은 거짓말이다. 나아가서 브라질 내부에서만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아니라 전세계 금속노동자들은 다 같아야 한다고 본다.”면서 단체협약국을 둔 이유를 설명했다.
연수단은 브라질 노총과 함께 10월 7일 세계적으로 동시에 개최하는 “좋은 일자리 촉구 집회”에 함께 했는데 그 때도 주요 요구 중의 하나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었다. 우리는 정당에 대해 독립적이다 “룰라가 브라질 노동자당(PT)을 창설할 당시 위원장이었고, 정당과 대단히 긴밀한 관계이긴 하나 기본적으로는 노조와 정당과의 관계는 독립적인 위치에 있다. 물론 지향에 대해서는 일치한다. 그러나 우리는 정당은 물론 정부와도 독립적이다. 노조는 노조의 일을, 정당은 정당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다. 우리의 역할은 노동계급의 투쟁을 통해, 노동계급의 이해에 매진하는 것이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금속노조 출신들이 상파울로시의 시장과 연방의원들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정당활동이지 노조활동은 아니다. 정당과 노조의 정책적 교류와 소통은 활발하지만 여전히 독립성은 유지한다. 연방 하원의원 중 노동자 출신의원은 전체 513명 중 45명이다. 이전에는 86명이었다고 한다. “노조출신의 정치가는 임기가 종료되면 노조활동가로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그들은 다시 밑에서 부터 시작해야 한다. 결코 위로 바로 복귀하지는 않는다.”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비록 지향에 있어 같기에 브라질 노동자당을 지지하긴 하지만 노동조합은 노동조합의 고유한 사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도 룰라 대통령과 지우마 대통령 등 노동조합에 우호적인 정부가 들어선 후에 조직률이 증가하지 않았을까? 돌아 온 답변은 늘긴 했지만 CUT에서 모택동주의를 따르는 공산당과 PSTU라는 2개 조직이 분리되어 별도의 노총을 만들면서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현재 브라질에는 6개나 되는 노동조합총연맹이 존재한다. 마치 서울처럼 인구의 1/4 정도인 4천 5백만명이 몰려 사는 상파울로 주지사는 한 번도 노동자당이 집권하지 못했다. 지난 20년동안 사회민주당(PSDB)이 집권한 상태다. 연수단이 방문한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도 사회민주당 후보가 36%로 32%를 얻은 노동자당의 지우마 후보를 이기고 있었다. 이에 따라 중앙정부를 12년 동안 집권했지만 연방정부의 정책이 상파울로 주에서는 전혀 실행되지 않고 있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반면에 상파울루 시는 12년 동안 PT당이 집권하고 있는 중이다. 노동자당의 성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교육 룰라 집권이전 90년대 내내 까르도주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이로 인해 비공식부문이 공식부문을 추월해 55%의 노동자가 비정규직이었다. 룰라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룰라 정부는 약 30%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고, 그 결과 현재 약 35~45%가 비정규직이다.”라고 했다. 브라질은 상대적으로 문맹율이 높은 편이다. 평균 교육년수가 6년~7년에 불과하다. 따라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으로 나갈 경우 미숙련공이 되며 따라서 저임금에 시달리게 된다. 룰라 정부는 숙련공을 양성하기 위해 교육 모델을 바꾸었다. 노동자당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게 모든 정책의 최우선이다.” 라며 룰라가 취임한 첫해인 2003년 빈민 350만명에게 정부예산을 분배했다. “거지에게 베푸는 동냥이다”라는 비난도 받았지만 월 소득 120헤알 미만의 가구에 소득의 절반이상인 70헤알을 지급했다. 2006년에는 1,110만가구, 2010년에는 1,280만 가구에 생활보조금을 지급했고 결국 브라질 인구 4분의1이 생활보조금을 받게된다. 그러나 생활보조금엔 엄격한 전제조건을 제시하여 반드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했고 결석률이 15% 이상이면 지원을 보류했다. (저소득층 생계지원 프로그램. 볼사파밀리아Bolsa familia) 이를 통해 교육의 질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룰라가 가장 많은 학교를 세웠다.”라고 할 정도로 기술 교육과 실업 교육을 전반적으로 재편해 대학을 세우는 등 투자를 많이 했다. 브라질노총은 노동자당 집권이후 이러한 가난한 사람을 중심으로 한 사회통합 정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4,200만명에 해당하는 최저임금 해결을 위해 투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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