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을 깨우다
연극<에쿠우스>, 김태훈, 류덕환 출연/ 이한승 연출/ 피터 쉐퍼 작/ 2015.1.6 관람
인간의 몸이 이토록 아름답다니 연극 <에쿠우스> 보고 감탄했다. 인간의 나체를 예술로 승화시킨 무대다. 에쿠우스는 라틴어로 말(馬)이라는 뜻이다. 피터 쉐퍼의 창작 희극 <에쿠우스>는 실화를 토대로 썼다고 한다. 에쿠우스는 여기서 신이라든지, 숙명의 굴레라든지, 냉혹한 현실이라든지, 원초적인 성의 본능으로 파악되고 있다.
연극 <에쿠우스> 러닝타임은 120분(인터미션 10분포함)이다.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1부와 2부의 몰입시간이 대단하다.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에서 공연되며 17세 이상 관람가다. 정신과의사 다이사트(김태훈)와 알런(류덕환)이 주연하는 공연을 봤다. 일곱 마리의 말들이 등장한다. 아니 말들이 아니고 말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다. 무대 장치는 나무 의자 두개와 마굿간 겸 독방이 전부다. 배경음악도 웅장하다.
훌륭한 각본은 훌륭한 연극을 낳는다. 철학적 대사들과 온 몸에 땀을 쏟아내는 배우들의 연기력에 관객들은 1부, 2부가 끝날 때 마다 박수소리가 오랫동안 객석 안을 채운다. 몸으로 말을 표현하는 일곱 마리의 연기는 강렬하다. 검은 말, 갈색 말, 흰 말이 쉴 틈 없이 말 모습은 진짜 말처럼 쉭쉭~ 말소리를 흉내 냈고 몸동작과 몸짓으로 말을 표현했다. 에~~쿠우스하며 절규하는 알런의 연기도 압도적이다. 1부의 엔딩은 열정과 충격으로 심장이 뛴다.
연극<에쿠우스>는 1974년 런던 초연, 1975년 한국초연을 시작으로 40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희대의 명작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17세 소년 알런은 7마리의 말의 눈을 찌르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헤스터 판사는 감옥 대신 친구인 정신과 의사 마틴 다이사트에게 보낸다. 다이사트는 알런에게 여러가지 치료기법을 써본다. 알런의 어머니는 엄격한 기독교인으로 교사다. 아버지는 인쇄공이며 알런에게 강압적인 양육태도를 보인다. 어머니는 외아들 알런에게 매일밤마다 성경책을 읽어주며 청교도적인 삶을 주입시키지만 아버지는 못마땅하다. 17살 알런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데 혼란을 느낀다. 어느 날 마굿간에서 일하게 되며 말들과 교감을 나눈다.
다이사트는 치료과정에서 알런에게 질투를 느낀다. 자정이 넘어 바닷가 안개 속을 말을 타고 달리는 알런의 모습에 젊은 야수성과 순수성을 본다. 자신은 알런처럼 모든 걸 걸었던 적이 있었던가! 알런의 눈빛은 인간의 원초적인 시작인 것이다. 인간의 자연성, 본질, 개성을 살려주지 못하는 시간의 흐름에 다이사트는 자신을 보게 된다. 알런에게 악마가 들어있다는 엄마의 대사에 알런처럼 고통스럽다. 다이사트의 대사가 더욱 아프게 들리는 이유다.
“의사는 정열을 파괴할 순 있어도 창조할 순 없어” 청춘과 충돌하는 지점이다. 이 한문장이 연극 <에쿠우스>를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한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연극은 말해준다. 왜곡된 사랑에 짓눌린 알런에게 다이사트의 존재는 그래서 위안이 된다.
관객들과 대화가 있었다.
류덕환 배우는 이렇게 말한다. “알런을 잘해야겠다는 생각보다 다이사쓰가 말하는 것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최연소 23세 알런을 연기했고 6년 만에 다시 연기한다. 170도 안 되는 키로 파워풀한 일곱마리 말과 대결해야는 알런을 두고 감정적인 부분을 건드렸다. 알런이라는 캐릭터를 생각할 때 부모, 환경, 억눌림, 분출, 신앙적인 부분에서 알런의 슬픔이 보인다. 자신을 표출하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했다.”
다이사트를 열연한 김태훈 배우는 “40-50대 관객보다 20대가 많아 보인다. 20대가 보는 <에쿠우스>와 40대가 넘어 보는 <에쿠우스>는 다르다. 에쿠우스를 보고 우는 관객들은 40대 이후다. 시간의 흐름이 아프기 때문이고 누구나 다이사트가 된다는 것이다. 알런에게 다이사트가 있어 발전과 진보로 순수성을 잃을 때 인간을 지키려는 힘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 든다. 말을 타고 달리는 알런을 정신병원에 집어 넣는 시각과 그것을 인정해주는 차이를 본다. 다이사트라는 인물의 존재는 발화점이 되어 알런도 계속 살아가는 것이다.”
백마 너제트를 연기한 이동훈은 “말의 호흡, 동작을 봤는데 어느 순간부터 말도 생명체이기 때문에 감정이 있을것이다. 알런이 생각하는 너제트는 웅장한 말보다 슬픈 말로 보였다. 너제트도 감정을 가지고 알런과 호흡하는 연기에 중점을 뒀다.”
무겁다. 연극 한 편이 이토록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뜨겁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연극이다. 양가감정이 한꺼번에 와서 말문을 열 수 없게 만든다. 너제트의 이동훈 배우가 말한 “살아가는 모든 분들이 알런처럼 살고 싶지만 결국은 다이사트처럼 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젊은 날의 야성같은 연극 <에쿠우스>다.
<연극평-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