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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의 장편 '새의 선물'이 스페인어로 출간되었다. 내처 멕시코 과달라하라 도서전에 참가할 기회까지 얻었다. '세계에 한국 문학을 알린다는 벅찬 사명감을 안고'라고 하면 지나치게 뻔한 말이고, '멕시코라는 나라에 대한 작가로서의 호기심에 설레며'라고 해도 절반밖에 솔직하지 않은 것이다.
때마침 새 장편을 힘들게 탈고한 뒤라서 나 자신이 지겨워 죽을 지경이었다. 소설을 쓰는 것이야말로 나와의 고통스러운 독대가 지겹게 되풀이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또 새 장편에 대한 애정이 나를 전전긍긍하게 만들까 봐 은근히 신경이 쓰이는 시기이기도 했다. 멀리 도망칠 수 있다니, 희소식이었다.
솔직히 도서전 행사에 대해서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때 우리나라가 주빈국이어서 주빈국 작가로 참가했는데, 내 문학보다는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기초 홍보를 해야 했던 기억 때문이다.
현지 매스컴의 질문은 한국의 전쟁과 독재, 작가가 여성이라는 점 등이 작품활동에 제약을 주느냐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 후 한국문학번역원에서 꾸준히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사업을 벌여왔으니 과달라하라는 좀 다를까 싶었다. 그곳에서 발표할 에세이의 제목을 '인간은 모순, 세계는 비밀, 그리고 문학은 질문'으로 붙인 뒤 나는 생각했다. 그래, 세계에 대해 관찰하고 의심하고 물어보는 데에 성실하자. 하지만 거기까지다.
한 가지 기대를 품은 행사는 과달라하라 고등학교에서의 강연. 젊은이들을 만나는 건 즐거운 일이니까. 젊은이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면 인간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갈지 힌트를 얻게 된다. 때마침 나의 새 장편 '소년을 위로해줘'도 17세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었다. 남미 소년과 소녀들아, 너희들은 어떤 위로가 필요하니….
5일간의 일정 중에는 과달라하라 대학에서의 강연도 있었고 몇 차례의 인터뷰, 현지 작가와의 만남도 있었다. 도서전 행사장에서의 강연 때는 진지한 청중들이 두 시간 동안 자리를 지켰다. 번역원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한국에 석 달간 머물렀던 멕시코 소설가의 안내를 받아 멕시코 문화 체험도 했고. 기대를 적게 하길 잘한 걸까, 모든 것이 기대 이상이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예상대로 고등학생들과의 만남. 3교대로 수업이 이루어지는 공립학교의 오후반이었는데,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안내하던 문학교사의 말. "선생님의 소설을 읽게 했으니 질문이 많을 거예요." 과연 200명 넘는 학생들은 충분히 자유롭고 활기에 넘쳤지만, 주변이 산만해질 때마다 여기저기에서 '쉬잇!' 소리를 내며 자기들끼리 분위기를 자정했다.
"어른들 말을 그대로 따르지 마세요. 참고로만 하고, 나쁜 짓을 많이 하세요"라는 내 말에 모두 소리 내서 웃었다. "나쁜 짓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그 방법은 문학작품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라고 하자 일제히 박수를 쳤다. 학생들의 질문. "소설 속 주인공이 선생님 자신인가요?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하세요? 한국의 정치상황이 좋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내 생각 '아, 우리는 개별을 통해 보편으로 가는 거구나.'
강연이 끝나고 사인하는 시간이 있었다. 옥타비오, 헥토르, 파울리나, 페르난도, 바네사, 미겔…. 그런데 와우, 한 사람도 빠짐없이 내게 포옹을 하고 쪽 소리와 함께 뺨 인사를 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친근이 있구나, 무려 100명이 넘는 소년 소녀들과의 포옹이라! 그 순간 떠오른 것이 있었다.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지만 나는 고등학교에서의 강연을 피해왔다. 나의 경직된 학창시절, 그리고 실패한 교사시절, 나를 억압하던 분위기가 떠올라 학교라는 장소에 들어서는 순간 나 자신이 위축돼 버리기 때문이다. 몇 번인가 대한민국 어른이 할 만한 상투적인 이야기만 간신히 늘어놓고 후회하면서 돌아온 뒤로는, 아예 나의 트라우마를 솔직히 고백하면서 강연을 거절하고 있는 형편인 것이다. 그런데 난처하게도, 남의 나라 학교에 가서는 자유로움을 느끼다니.
돌아오는 길에 통역 선생님이 말한다. "이런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교사의 열정과 사랑을 보니 희망이 있는 나라 같아요." 내가 대답했다. "네. 그리고 자신이 받고 있는 교육을 존중하는 학생들의 태도에도요. 그건 배움에 대한 동기가 있다는 뜻이니까. 그거야말로 타율적인 입시교육에 억눌려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결핍된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학창시절의 나처럼요. 마지막 말은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그리고 혼자 이 말을 덧붙여보았다. '지원, 나영, 민규, 성훈, 하나, 영준…. 너희들, 어떻게 뽀뽀해줄까. 멕시코식은 한 뺨에만, 스페인식은 양쪽 뺨에 한대. 소리는 똑같이 쪽!'
멕시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림자를 거느린 강렬한 햇빛과 뭔가 끼적이고 싶어지는 기나긴 벽, 그리고 그 벽 앞에서 포옹하던 젊은이들이었다. 응, 그래. 세계의 소년들, 있는 그대로 자기답게 유쾌한 모습으로 죽죽 뻗어났으면.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