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게묘년이다
나는 60년 전 계묘년에 해운대 장산사에서 행자로 있다가 도 닦는다고 윗 절 폭포사 행자인 현근이와 같이
지리산으로 간 적이 있다. 중산리 남명서원을 거처 도솔암까지 갔는데 빨지산 잔당이 있어 위험하다고
못들어가게 하여 도는 못닦고 왕복 20여일 간 걸식을 하며 고생만 하다가 해운대 장산사로 다시 돌아 왔다
신통력을 얻겠다는 철부지들의 환상이 다 깨지고 말았다. 무엇이든 마음 먹은대로 다 될수 있다는
신통력을 얻으려 했던 철부지 시절의 허상은 다 사라지고 이제는 이뭣고만 남아 있다.
한해가 끝나고 새해가 밝으니 지난 날들의 감회가 새롭다.
올해 나이 75살이다. 누구나 연말 연시에는 주변을 정리하기도 하고 심신을 새롭게 가다듬게 된다
나는 어떠한가 살펴본다. 옷가지나 가진 물건은 별로 없어 정리할 것도 없고
수시로 입출금하는 우체국 통장 하나와 빈 발우가 한벌 있다. 책은 한번 정리했지만 아직 몇권 남아 있다
이 마저도 모두 정리 해야겠다. 인간 관계는 묵은 신도 몇분, 지인 몇 사람 도반이 전부다.
스쳐가는 인연이야 부지기수지만 정리할 것도 없다. 번뇌를 조복하는 일은 늙은 것이 큰 힘이 된것 같다
돈 식욕 명성 오래 살아야겠다는 욕구는 미약해저서 별 미련이 없다
행 불행은 인연 따라 받아드리려 한다. 언젠가 그날이 오면 온 곳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정신이 온전한 동안 변해가는 내 모양을 지켜 보려고 한다 연명 치료는 안한다는 서약서를
건강 공단에 제출했고, 생명 실천 본부에 시신 기증도 해 놓았다. 속가 가족들은 조카들이 몇 있지만
동진 출가했기에 그들과 함께한 추억이 없어 굳이 알릴 것도 없고, 사형 사제를 맺은 인연은
은사스님 49재 마치고 문중을 없애면서 일불제자로 살기로 햇다. 다만 한평생 진 시주의 은혜를
생각하면 미약하지만 조그마한 성의라도 표하고 싶다.
어떻게 연말 정리가 유언장 쓰듯 되었지만 이렇게 언질을 두고 살면 하루 하루가 덤으로 사는 것처럼
자연스러워 지리라.
앙상한 나무들의 적라나한 모습, 호젖한 거처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중노릇하는 덕이리라.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란다
2023년 1월 1일 지리산 연암난야 도현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