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내외가 휴가를 받아 외국으로 여행을 가는 잠시의 틈을 타서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숙소는 한 달 전에 미리 예약을 하고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 느껴질 정도로 쉼을 갖고 여행을 한다는 것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기다려지는 것인가 보다.
엘리뇨 현상으로 세계 각처에서 기상이변이 나타나고 한 겨울에 해수욕을 하는가 하면 미국에서는 벚꽃이 활짝 피어서 뉴스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겨울은 겨울다워야 하고 여름은 여름다워야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때로는 그 이치를 거스르는 현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고 어려움에 처하기도 한다. 미국의 토네이도는 차를 날리고 집도 단숨에 집어 삼키며 중국에서는 대홍수가 나고 산사태로 한 마을이 통째로 매몰되는 참상을 안방에 앉아서도 샅샅이 보면서 질서를 거스르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실감하게 된다.
1월13일 아침 출발을 보았지만 혼자서 여러 가지 준비를 하는 아내 덕분에 11시에 나설 수가 있었다. 화창한 날씨가 기분을 고조시키고 고속도로도 훤하게 뚫려서 싱싱 달리는 기분은 차가운 바깥 기온과는 달리 마음은 따뜻하고 좋다. 그런데 당진을 지날 즈음에 하늘에 구름이 생기고 흐려지더니, 서산을 지날 때에는 굵은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군산근처에 이르렀을 때는 함박눈이 쏟아져서 시야가 흐려지고 길에는 녹은 눈으로 질퍽거리며 차들은 시커먼 뻘을 뒤집이 쓴 것 같다. 원래는 고창으로 가서 읍성을 보려고 하였지만 날씨가 좋지 않고 길 사정이 나빠서 고창읍성 가는 것은 포기하고 바로 부안 인터체인지로 나와서 변산반도로 갔다. 길이 많이 변하고 자주 다는 길이 아니라서 그냥은 찾아가기가 쉽지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마침 티맵을 켜고 가니 자세하게 안내를 해주어서 길을 찾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다. 변산반도로 가는 길을 새로 만들어서 고속도로처럼 확 뚫려서 시원하게 달릴 수가 있었다. 그러나 중간 중간에 아직은 덜 된 곳이 있어서 좁고 꼬불꼬불한 시골 길을 곡예를 하며 차를 몰고 가니 그것은 그대로 재미가 있고 시골의 횡한 정경을 감상하는 묘미가 있다.
변산반도에 있는 대명리조트에 도착하니 2시30분경이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 숙소로 바로 왔지만 너무 이른 시간에 방에 들어오니 별로 할 일도 없고 심심하였다. 잠시 쉬고는 수산시장을 찾아 나섰다. 숙소에서 10분 거리에 바로 수산시장이 있고 거기가 격포라는 곳이다. 바닷가의 특성이 그렇듯이 격포라는 동네도 조금은 어수선하고 정리가 안 된 곳 같다. 바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골목길은 상당이 추웠다. 수산시장에서 우럭 한 마리와 삼식이 한 마리를 사니 조개와 쭈꾸미를 몇 마리 넣어서 찌개거리를 샀다. 그리고 바닷가에 왔으니 싱싱한 회를 맛보지 않을 수가 없어서 해삼과 멍게를 한 접시 시키니 초장도 같이 넣어 주어서 숙소로 와서 오랜만에 싱싱한 해삼과 멍게 회를 맛보았다. 오도독 하고 씹히는 해삼의 맛이 독특하고 멍게의 솔내가 나는 향이 구미를 돋우는 것 같고 항구의 맛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저녁에는 우럭과 삼식이에 조개와 쭈꾸미를 넣고 끓인 맑은탕으로 다른 반찬은 별로 먹지를 않고도 맛나는 저녁을 먹었다. 동해안의 해뜩이 생각이 나기도 하였다.
다음날 아침에 나오니 차는 하얀 눈을 덮어쓰고 말없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9시30분경에 출발을 하여 채석강을 찾아가는데 네비가 안내를 하는 곳을 따라 가니 바로 우리가 묵은 곳과 가까운 바닷가 였다. 숙소에서 창문으로 보이던 바다가 바로 채석강이었던 것이다. 마침 물이 빠져서 구경하기가 좋았다. 바닷바람이 차가워서 조금 들어가며 구경하고 사진 몇 장 찌고 돌아 나왔다.
채석강에서 돌아 나와서 새만금으로 차를 몰았다. 거대한 계획과 미래의 청사진으로 펼치며 한 때 매스콤을 많이 탔던 새만금이다. 부안과 군산을 연결하여 방조제를 쌓고 거대한 인공 바다를 만든 새만금(新萬金), 둑의 길이가 약 34km정도라고 알고 있다. 그 화려한 청사진과는 달리 아직은 별다른 것이 보이지를 않고 중간에 쉼터가 몇 군데 있으며 한국농어촌 공사와 관리실 정도가 전부인 것 같다. 약간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군산으로 와서 점심을 먹으려고 군산역 앞의 엄마손 식당을 찾느라고 많이 헤매다가 네비의 안내로 군산역을 찾아가니 옛날 역이 아니고 새로 만든 덩그렇게 역만 하나 있는 시골이었다. 헛걸음을 하고 나와서 군산 나들목으로 가다가 보니 백릉 채만식 문학관이 길가에 있어서 잠시 들어가서 둘러보았다. 그냥 문을 열어놓고 무료관람이라는 글귀만 하나 보일뿐 관리하는 사람도 관람하는 사람도 하나 없이 한적하고 쓸쓸하게 느껴졌으며 어느 문학관을 가든지 구조나 꾸밈이 거의 비슷하여서 별로 새로움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 아쉬웠다. 금강 하구둑 근처에 있는 문학관 2층에 가니 베란다에서 탁류를 보라는 안내 글귀가 있어서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니 잠겨서 나갈 수가 없었다. 유리창으로 비치는 금강 하류의 탁류를 보면서 채만식 선생님이 금강의 물을 보고 부패한 사회를 풍자한 탁류를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逐鹿者 不見山이요, 獲金者 不見人이라는 회남자의 사슴을 쫒는 자는 산을 못보고 금을 얻는 자는 사람을 못본다는 말처럼 바쁘게 살다보면 제대로 보고 느끼지를 못하며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이거든 여행에서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아름다운 것은 한참을 보아야 그 참맛을 느낄 수가 있듯이 모든 것이 그러한데 춥고 힘들고 바쁘다는 이유로 알면서도 실천을 못하고 또 잊어먹고 살 때가 대부분이다.
문학관을 구경하고 나와서 근처에 있는 셀프 한식 뷔페에서 점심을 먹고 활짝 갠 날씨의 겨울 햇살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오니 3시30분경 대낮이다. 이제 나이를 먹으니 어두운 밤에 먼 길을 다니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서둘다가 보니 한 낮에 돌아오게 되었다. 일찍 와서 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틈새를 이용하는 재미가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다. 며칠을 쉬고, 손주가 돌아오면 다음 월요일부터 다시 손주와 함께 놀아야 한다. 얼른 커서 손주의 손을 잡고 같이 다닐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2106. 1. 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