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군기지 건설 저지 활동을 벌이다 벌금형을 받은 평화활동가들이 벌금 대신 노역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강정, 부당한 벌금에 맞서는 사람들의 모임’은 지난 5월 2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당한 벌금에 평화롭게 저항”하겠다며 “자진 노역 결의”를 밝혔습니다. 이들 중 한 사람이었던 임보라 목사(섬돌향린교회)는 기자회견에서 “강정마을뿐 아니라 쌍용차, 밀양,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부과되는 벌금폭탄이 얼마나 부당한지 시민들에게 고하기 위해 노역을 선택했다”고 말했습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부당한 벌금 대신 노역을 선택’한 임보라 목사가 서울구치소에서 6일을 지내며 쓴 노역 일기를 나누어 싣습니다. ―편집자 |
오늘 낮 낯선 번호의 전화가 두 차례 왔다. 심방 중이어서 받지를 못했는데 좀 이따 같은 번호로 다시 전화가 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서울구치소에서 3일을 같이 지낸 J다. 추가 건이 계류되었다는 소식에 손꼽아 기다리던 출소를 하지 못할까봐 노심초사였는데, 다행히 잘 해결된 듯 했다. 통화를 마치고 보니 “그 짧은 시간동안 저랑 있으면서 전해준거 감사드려요^^ 연락주세요”라는 문자도 와있다. 범죄자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그곳에 있기까지는 온갖 사연이 있는 이들이다. 뿐만 아니라, 교도관들과 장기 수용자이면서 각 사동의 도우미를 맡아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용자들의 수발을 드는 분들의 일거수일투족과 한마디, 한마디의 말은 구치소 생활이 처음이었던 내게 여러 가지를 일깨워주었다. 행여 나의 말과 행동이 ‘나는 여기에 있을 사람이 아니거든요’라는 식의 메시지를 줄까 싶어 스스로 검열을 많이 한 시간이기도 했다. 지난 5월 20일 화요일 저녁부터 그 다음 월요일 자정 넘어 출소할 때까지 머물렀던 서울구치소. 그곳에서 내 가슴을 휘젓고 다니던 문구는 “여기, 사람이 살고 있다!”였다. |  | | ▲ 임보라 목사 (지금여기 자료사진) |
첫날. 오전 10시, 법률지원팀과 서울중앙법원 인근 카페에 모여 기자회견 점검을 했다. 나는 그곳에 세 번째로 도착했는데 먼저 와있던 해민 님이 ‘어디 야유회 가는 분위기’라고 하여 한바탕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으로부터 시작하여 내가 유치장에 들어가기까지 함께했던 이들의 웃음은 그야말로 “웃는 게 웃는 게 아냐”라는 노랫말을 떠올리게 했다. 이렇게 시작된 하루의 일정은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기자회견, 점심식사와 커피로 이어졌고, 드디어 서울검찰청에 ‘자수’하러 들어가는 시간이 되었다. 다소 긴장감이 느껴지는 가운데 진짜 내가 ‘지명수배자’였다는 것을 재확인한 후, 간이유치장에 들어갔다. 그 안에는 이미 벌금 50만원으로 인해 연행되어 온 분, 술에 취해 연신 검찰청 직원들에게 시비를 걸고 욕을 하는 분이 계셨다. 이 풍경 역시 낯설지는 않았다. 제주의 동부경찰서 유치장에 있었던 날도 술에 취해 밤새 온갖 욕을 하며 난리를 피우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구치소로 이송하기 위한 서류 작업을 하는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검찰청 내의 다른 유치장으로 옮겨졌다. 유치장이라기보다는 간이 감옥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겠다. ‘03’이었는지 ‘3’이었는지 가물가물하지만 누군가의 신발이 이미 놓여있던 3번 방에 들어가라 한다. 곱게 생긴 여성 분이 불안한 듯 연신 좁은 방을 서성이던 그 공간은 찜질방처럼 바닥이 뜨거웠다. 공소시효 7년 중 15일을 남기고 연행되어 검찰 조사 중이라는 그녀는 나의 ‘강정 평화대행진’ 노란 티셔츠를 보더니 텔레비전에서 보았다며 아는 체를 한다. 자세한 설명을 할 기운이 없어서 옅은 미소로 화답을 하고 그녀가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갔다가 돌아오는 동안 잠시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최현숙 지음)라는 책을 펼쳐놓고 집중을 해보려고 애를 썼다. 그녀가 돌아온 후 나는 처음으로 수갑과 포승줄에 손목을 맡겨야 했다. 서울검찰청에서 서울구치소로 이송되는 남성 8명과 나와 그녀를 포함한 총 10명은 한 줄로 늘어선 채, 밧줄로 허리를 한 번씩 더 감아 굴비처럼 엮여진 채 호송차량에 실렸다. 호송차량으로 들어가는 서울구치소 문은 육중한 철문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다소 괴기스러운 분위기의 문이었다. 아! 이제 정말 여기서의 생활이 시작되는구나 하며 마음을 다잡게 되는 위압감이 느껴지던 문. 그 문을 들어서서 휴대전화 등을 다시 분리하여 확인하더니, 여와 남으로 분리하여 각 사동으로의 이동이 시작되었다. 이미 몇 주 전 먼저 자진노역을 감내하신 박경석 선생님의 노역일기에도 있었지만 입고 있던 옷가지와 속옷마저 다 벗어 확인받아야 했던 그 잠시의 시간동안 나는 유체이탈을 하고 싶었다. 벽에 걸려있는 가운이 보여 “입어도 되나요?” 했더니 입어도 되지만 다들 안 입는다는 교도관의 답변이 돌아온다. 그 말과 동시에 별스럽게 행동하지 않으려는 자기검열이 시작되어 이내 가운 입는 것을 포기는 했지만 ‘신체검사 방법이 이 방법 밖에는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위아래로 쭉 훑어보는 것으로 검사를 마친 교도관은 파란색 죄수복을 건네준다. 대법원 판결까지 끝났으니 나는 기결수, 함께 온 그녀는 아직 조사 중이어서 옅은 쑥색의 미결수로 옷을 주섬주섬 입는다. 수건 한 장, 칫솔, 치약, 하늘색 하의와 상의 속옷, 양말, 매우 중요한 도구인 초록색 플라스틱 숟가락, 젓가락, 그리고 두루마리 휴지 하나를 배급받은 후, 신발장에 놓여 있는 신발을 골라 신고 나니 또 한 명이 이송되어 온다며 잠시 기다리란다. 마약 건으로 인해 보호감찰을 받던 중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연행되어 온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다. 우리와 같은 절차를 밟는 동안 교도관이 저녁을 안 먹었으면 밥을 먹으라며 옆 책상을 가리킨다. 구치소에서의 첫 식사다. 서 있는 채로 우적우적 먹으며 서로 더 먹겠냐며 챙겨주는 구치소에서의 저녁 만찬으로 인해 내 마음이 한결 편안해져 간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고, 아무리 자진노역이니, 정치범이니 뭐니 해도, 나 역시 이 안에서는 그저 한 사람의 수용자, 죄수일 뿐, 잘 지내야지 하는 다짐이 절로 솟아오른다. 신입교육과 신원조사라는 이름으로 비록 세 사람만 있었지만, 당직 교도관은 온갖 질문을 공개적으로 던진다. 결혼 유무, 무슨 건으로 들어왔는지, 다른 건은 없는지, 가족 누구와 연락을 해야 하는지 등등을 물음으로 우리 셋은 서로에 대해 간접 정보를 얻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으며, 대체 서로 업무연계가 되고 있기나 한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두세 차례 거듭되었다. ‘수용자들에게 인권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또 하나의 대목이다. 내게는 ‘602’, ‘1상05’라고 쓰여 있는 천 조각이 주어졌다. 나는 앞으로 여기서 “602번”이라고 불린다고 했다. 양팔을 벌리면 팔 하나의 공간 정도가 더 나오는 노역실에 수감되어 첫 날 밤을 맞는다. 바라기는 누군가와 같이 지내길 바랐는데 짝꿍은 없었다. 수세식 변기가 바로 옆에 있고, 작은 싱크대와 물품보관함, 플라스틱 밥그릇이 있고 벽 한쪽에는 수용자들을 위한 구치소 하루 생활, 면회, 영치금 안내, 그리고 처음에 배급받은 것 외에는 모두 사야 한다는 것을 알리는 물품과 약품 구매표가 붙어 있다. 파란담요 한 장과 겨울용 털 달린 담요 두 장을 펴고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잠자리 준비를 했다. 눈을 감으니 오늘 하루 함께했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 미안하고 고마운 맘에 또르르르 눈물이 흘러나오는 것 같더니, 어느새 잠이 든 것 같다. (계속) 임보라 목사 (섬돌향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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