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퇘색됐지만 서울 포스코 센터앞의 '아마벨'이라는 조형에 대한 찬반을 올려봅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든 이런 논란이 우습기만 합니다. -서보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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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스텔라(1936~ ): 1936년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난 스텔라는 프리스턴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했으나, 그림에 심취해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색채와 표현이 극도로 배제된 검은 줄무늬 회화 시리즈를 발표하면서 60년대부터 국제 화단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70년대에는 평면화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로 자른 알루미늄 조각에 현란한 색채와 형태를 그려넣고 다시 이를 조립하는 부조회화 기법을 도입했으며, '캔버스의 틀은 사각형'이란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다양한 형태의 캔버스 작업을 시도해왔다
아마벨철거 찬성: 채정균-경북대학원 미술학과 재학중
원제는 꽃이 피는 구조물, 애칭은 아마벨이다. 꽃이 피진 않을 것 같고 그냥 그 거대함에 사람들은 바라보는 것 같다. 오늘날 현대미술을 설명하기란 나에게도 벅찬 일이다. 그러기에 "묵호를 아는가"를 쓴 소설가 심상대의 감상을 잠시 빌리자.
"나는 지금 성황당 담장에 기대선 사시나무 고목의 너른 그림자를 밟으며 고향집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현대 문명의 한 가운데를 통과해 21세기라는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길이지 하는 자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 고철덩어리야말로 현대인들에게 바치는 한 예술가의 갈채며 포효며 욕설이며 화두다".
여하튼 아마벨은 홍진에 묻힌 21세기 인듯하다. 가로세로 9m에 무게는 30톤, 재료비 5천4백만원 짜리가 1997년 계약당시 아파트 10채 값에 거래되었다고한다. 포철에서 일본경쟁업체와 힘겨루기를 하다 자사의 위상을 더 높이는 방편으로 외국작가에게 고액의 작품값을 치뤘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웃기는 일이다.
※아마벨은 작품완성 당시 19세의 나이로 숨진 스텔라의 친구 딸 이름이다.
작가 프랭크 스텔라는 1936년생 미국 매사추세츠 앤도버의 필립스 아카데미에서 미술을, 프린스턴에서 역사학과 철학을 공부했으며 제스퍼존스의 영향으로 줄무늬 작업을 시작, 추상 미술의 본류에 편입하였다. 1959년 뉴욕 근대미술관의 '16인의 미국인'전에 참가 두각을 나타냈다.
철거 찬성: 류석우 <시인·미술시대 주간>
포스코 건물의 조형물 ‘아마벨’을 철거한다는 회사측 결정에 일부 미술 관계자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세계적으로 나라 망신시 키는 발상이다, 현대미술에 대한 무식의 소치다, 세계적 작가인 프랭크 스텔라에 대한 모독이다, 철거 비용만 4억이 드는 쓸데없는 짓을 왜 하느냐! 등등 그들은 목이 부을 정도로 큰 반발을 보이고 있다.
일견 그럴듯한 소리처럼 들린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일리도 있어 보 인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다. ‘아마벨’이 작품성이 뛰어난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도 우선 순위로 중요한 게 아니다. 우선 중요하 게 생각할 것은 ‘아마벨’이 서울 강남의 대로변에 서 있는 조형물이 라는 점이다.
조형물의 의미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작가의 예술 세계를 보여주 는 순수 작업이기보다 그 해당 건물과 주변 경관과 그 앞을 수없이 왕 래하는 많은 사람의 시각을 배려하고 의식한 작업이어야 되는 것이다.
조형물은 그 건물을 상징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주변 환 경과 조화되는 미감이 우선돼야 한다. 감동, 안식 혹은 장엄미 같은 것 이 필수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이 조형물의 우선 과제라 할수 있다. 평 소에도 늘 하는 얘기지만 미술 작품이란 첫눈에 보았을 때 아름다움, 감동, 경탄 같은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현대미술은 실험적이고 난해하여 일반 대중은 물론 전문가들조차 접근 하기 힘든 것이 비일비재하다. 대중이 즐기고 사랑받아야 할 조형물이 난해한 미학적 이론을 통하여만 이해할 수 있고 그렇게 어떤 논리를 터득한 후에 감상해야 된다면 그것은 너무 무리한 주문이다. 또 세계 적 작가의 것이니 무조건 격조 높은 작품이고, 그래서 철거해선 안 된 다는 주장은 조형물이 지녀야 할 최소의 덕목을 외면한 것이라고 생각 한다.
정상적인 사람의 안목으로 ‘아마벨’을 보았을 때 제일 먼저 무엇을 느낄까? 퇴폐스럽고 흉물스럽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게 정직하고 정확한 답이다. 적어도 일반 대중에겐 말이다. 난해한 아메리카 현대미 술의 미학적 이론으로 그들의 세계를 뒷받침하는 건 좋지만 그런 전문 적 지식을 가지고 ‘아마벨’을 이해하고 긍정하기를 누구도 누구에게 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이론보다 앞서는 것이 감성이다. 감성에 반하는 것이 현대미술의 진수 라면 우리는 거기에 승복하지 않아도 된다. 언제부턴가 현대미술이 범 람하고 그들이 내세운 작가가 높게 평가되고 대접받는 우리 나라 풍토 에서 그들의 작업을 모방하고 답습한 소위 현대미술가가 판치는 오늘 의 현상을 이젠 한번 되짚고 가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국력이 화가의 위상과 상관 관계를 갖는 오늘에 우리가 우리 것을 방기하고 무조건 추종, 찬양, 답습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에 대해 성찰해 볼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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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반대:
◆◆◆◆◆'아마벨' 철거 시비와 공공미술로서 환경조각의 문제◆◆◆◆◆
1997년 1년 6개월이란 제작기간을 거쳐 높이 9미터에 무게만도 30톤에 이르는 대형 옥외
조각 '아마벨'이 포스코빌딩 앞에 설치된 지 불과 이 년만에 철거시비에 휘말렸다. 포항제
철이 세계철강협회 회장의 천거에 따라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에게 직접 주문하고 17
억 5천 4백 만원이란 구입비와 1억 3천만원을 투입하여 새로이 문을 연 사옥 앞에 세웠던
이 작품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하기로 결정했다는 포항제철 경영진의 결정이 언론을 통
해 알려짐으로써 촉발된 '퇴출시비'는 전임 경영자의 잔재와 흔적을 지우기 위한 '정치논리
의 음모[1]라는 비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포항제철측이 제시한 철거 이유는 이 작품이
의도를 파악하기 힘든 난해성을 지닌 고철덩어리인데다 심지어 추락한 비행기 잔해를 보는
것처럼 끔찍하여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포항제철의 경영진은
포스코센터를 설계할 당시 작품이 놓여질 장소는 작은 공원으로 계획되었으므로 작품을 철
거하고 그 자리를 원래 계획대로 공원으로 조성하도록 결정했다고 한다. 사실 포항제철 경
영진이 내린 이런 결정은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왜 하필이면 경영진이 바뀐 시점에서 전
임자가 설치해놓은 작품을 이 년 만에 철거하기로 결정했는지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 작품
은 1%법과는 상관없이 포항제철(혹은 전임 경영자)이 독자적으로 판단하여 설치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해 볼 때 새로운 경영진의 결정을 '정치적 음모'로 보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철거를 반대하는 논리에 따르자면 '포스코센터는 이른바 1%법에 따른 '예술
장식품'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그야말로 형식적인 구색 갖추기에서 탈피하여 건축물을 지으
면서부터 건축공간과 미술작품이 건물 내·외부에서 조화롭게 서로 만날 수 있도록 미술품
배치를 위한 마스터플랜을 함께 만들어 미술품을 체계적으로 배치'했으며, '이런 접근 태도
는 건축물과 관련된 공공미술작품에 좋은 선례를 남겼다는 평가까지 얻었다'고 한다.[2] 결
과적으로 아마벨을 인수하기로 했던 국립현대미술관이 심의를 거쳐 인수를 유보함으로써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시비만 불러일으켰으나 이 논쟁은 공공미술의 개념과 의미,
가치, 또 공공미술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계기를 제공했다. 사실 철거
반대론을 펴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많은 작품들이 제작 당시부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심지어 계획 장소에 설치가 저지되거나 지연된 경우가 한두 번이 아
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1889년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만국박람회때 완공된 에펠탑에 대해 많은 파
리 시민들은 이 기괴한 철구조물이 파리의 경관을 헤친다는 이유로 비판했으며 심지어 모
파상은 "이 괴물이 꼴 보기 싫어 파리를 떠나야겠다"고 푸념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에펠탑
이 보지 않으려고 이 탑이 완공되며 개업한 2층 식당에서 매일 점심을 먹었다니 이 얼마나
역설적인 일인가? 그후에도 문인협회가 로댕(Gustave Rodin)에게 주문하여 제작한 <발자
크상>이 실제 주인공과는 전혀 닮지 않은 유령과도 같은 석고덩어리로 완성되자 이 협회는
작품의 설치에 반대하였으며, 에밀 졸라 등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로댕의 작업실
에 방치되다시피 하다 그가 죽은 뒤 한참 후에야 원래 계획장소인 몽파르나스에 세워질 수
있었으며, 역시 장식미술관을 위해 주문되었던 <지옥의 문>의 한 부분인 <생각하는 사람>
을 크게 확대하여 1905년 팡테옹 앞에 세웠을 때도 파리시민들의 비난은 끊이지 않았다.
공공미술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비교적 잘 갖추어진 것으로 평가받는 미국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1985년에 재연되었다. 뉴욕연방정부(General Services Administration)는 국제무역
법원 앞의 연방광장(Federal Plaza)을 장식할 목적으로 세라(Richard Serra)에게 작품을 의
뢰하여 1981년 악명 높은 <굴곡진 호(弧)>를 설치하였는데 이 작품이 세워지자마자 보행
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철거시비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당시 주문자였던 연방정부는 이
작품이 보행을 방해함은 물론 비디오 카메라의 작동을 가로막고, 마약 밀매자에게 좋은 장
소를 제공해줌은 물론 폭탄테러와 같은 재앙을 잠재적인 원인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이유
[3]를 들어 1985년 작품 철거를 결정해버렸다. 세라는 '이 작품으로 뉴욕연방정부 광장의
권위적인 성격을 제거하고, 이 장소의 정체성이 조각을 위한 장소로 재정의될 수 있도록
높이 3미터, 길이 약 36미터에 이르는 철판을 설치'[4]하였는데 연방정부가 여러 이유를
들어 작품 철거를 단행하자 더글라스 크림프(Douglas Crimp)는 '작품을 옮기는 것은 작품
을 파괴하는 것이다'(To remove the work is to destroy the work)란 세라의 주장을 인용
하며, '세라의 작품이 놓여진 장소의 특수성은 공공장소이며 이 작품의 재료, 규모, 형식은
그 환경의 형식적 성격뿐만 아니라 60년대 후반의 예술에 충격을 받은 매우 다양한 대중들
의 기대와 가정을 교차하는 것으로서 세라는 이런 공적 영역에 물을 튀기듯(splashing) 작
품을 던져놓음으로써 이러한 전복이 암시하는 모순을 보여주고자 했다'는 이유를 들어 세라
를 지지했다.[5] 사실 세라의 '물튀기기'는 갤러리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의미를 지닌 것[6]
으로서 미니멀리즘의 목표 또한 예술의 자율성, 순수성에 대한 모더니즘의 신화를 그 내부
에서 비판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 작품은 연방정부광장이란 매우 공적 장소인 듯하면서
동시에 정치적 의미를 지닌 장소가 내뿜는 권위의 무게를 뒤흔들어 놓았으나, 대중들의 빗
발치는 반대여론을 야기함으로써 공공미술에 있어서 그 공공이 과연 누구이며 그들에 의한
여론재판이 불러일으킬 문제는 없는지에 대한 논의의 계기를 가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세라의 작품을 철거하는데 동원되었던 수많은
논의와 논쟁에 비교해 볼 때 아마벨의 경우 순전히 주문주인 기업의 판단에 따라 설치하였
다 다시 주문주의 결정으로 철거를 통첩하는 일방적이고 상명하달 식의 절차에 익숙해 있
는 우리 나라 기업가들의 발상의 무책임한 관행이다. 포스코센터 주변의 지역주민들이 이
기업에 어느 정도의 의견을 제시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을 공개하고 민주적 논의의
절차를 거쳤더라면, 설령 그것이 많은 시간에 걸쳐 분분한 논쟁을 가져온다고 하더라도 이
기회를 통해 비단 <아마벨>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에 1984년 이후부터 엄청난 수와 규모로
조성된 환경조형물의 현황과 문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계기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환경조형물의 설치와 관계된 사람들의 공공미술에 대한 인식의 결여가
만들어낸 시비를 재연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공공미술로서 환경조형물에 대한 관심이 필요
한 것이다.
추신-현재 이 조형품은 철거를 결정했고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할 계획이나 현대미술관에서 유보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