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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인생의 꿈과 소망/ 인생2모작
/석계 윤행원
나는 1939년 기묘생(己卯生)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많은 곡절의 세월을 겪었다. 어떤 사람은 500년의 조선시대(朝鮮時代) 보다 더 길고 더 많은 변화를 체험하면서 살아 온 세대라고 한다. 어릴 때 일제시대(日帝時代)를 지나 해방이 되고, 뒤숭숭한 세월에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한지 얼마 안 있어 6.25전쟁이 일어났다. 참혹한 전쟁이었고 혹독한 가난이었다. 4.19를 지나 5.16혁명, 그리고 경제적인 안정과 번영의 시기를 맞는다. 험난한 세월에 죽지 않고 살아 온 같은 세대 사람들에게 고마움과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어느 나라나 빈부격차는 어쩔 수 없지만, 오늘날은 한껏 발달된 문명과 문화의 전성시대라 할 만큼 온갖 혜택을 누리며 산다. 국민소득 67불에서 2만 불이 넘는 시대에,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유일한 나라로 대한민국의 긍지를 자랑하고 있다.
어두운 세월을 지나 밝고 활기찬 오늘날까지 그런대로 불만 없이 언제나 감사하며 살아온 나의 인생이다. 나는 군(軍)에서 제대한 후, 10여년 월급생활을 끝내고 30여년 넘게 조그만 개인 사업을 하면서 가족을 부양했다. 우연찮게도 2010년3월5일 만 71년 되는 생일날에 내가 하는 사업에서 손을 떼게 됐고 소위 은퇴생활로 접어들게 된다. 그날로 작심을 하고 은퇴를 한 게 아니라 그날에 와서야 모든 일이 정리가 되고 시원섭섭하게 그러나 홀가분하게 나의 인생 2모작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지나온 인생에 미련이나 후회는 없다. 그런대로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다.
은퇴하면서 이제부터 남은 생을 어떻게 보람 있게 만들까를 골똘히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부터는 하고 싶은 대로, 마음먹은 대로 더욱 자유롭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74세를 산 공자는 칠십이종심소욕 불유거(七十而從心所欲 不踰距)라고 말했다. 일흔 살이 되면 마음이 가는대로 해도 법도를 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만큼 인생이 성숙해진 나이라는 뜻인가 보다. 이제는 가족부양의 무거운 짐도 벗어나게 되었고 자식들 공부도 다 시켰으니 남은 인생 두 내외만을 위해 살아도 떳떳한 세월이다.
우선 두 가지 꿈을 세워 보았다.
하나는 은퇴한 해로부터 10년 정도는 건강이 있는 한 주위 사람들과 공생공존(共生共存)하면서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 주위 친구들이나 친족들에게 또는 가까운 사회공동체에 더욱 부드러운 관심을 가지고 싶다.
또 다른 꿈은, 내 나이 만 80세가 되는 날, ‘한 시간 정도의 올드팝 리사이틀’을 갖고 싶다는 소망이다. 나는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의 오래된 팝송과 일본 엔카(演歌) 부르기를 좋아한다. 젊을 때는 밤잠을 자지 않을 정도로 팝송에 심취(心醉)해 있었다. 그리고 요즘에는 일본어를 배우고 있다. 해방 후에 초등(국민)학교에 입학을 했기에 일본어를 못 배웠다. 요즘 사회에선 두, 서너 개의 외국어를 하는 것은 일반적인 교양에 속한다. 일본드라마를 보면서 듣기공부를 하고 엔카를 부르면서 단어공부를 하니 편리하고 재미도 있어 진척이 된다. 그럭저럭 여러 개의 엔카를 부르게 되어 엔카클럽에 가면 제법 인기도 있다.
그리고 요즘은 이태리 칸초네도 배우고 스페인 가요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노래를 배우면 자연히 그 나라의 언어도 공부를 하게 된다. 살아있는 한, 언제나 촌음을 아끼면서 배우는 학생이 되고 싶다.
70도 훌쩍 넘겼으니 얼마나 더 생존할지 아무도 장담은 못한다. 그러나 사는데 까진 열심히 살아야 한다. 80세 되는 그날은 나의 친족, 친구 이웃들을 초대해서 탄생 80년을 자축하는 무대를 만들겠다는 조그만 목표는 나의 꿈이다. 조금은 엉뚱한 일이긴 하지만, 꿈은 없는 것 보담 있는 게 낫다. 사람은 꿈이 있는 한 삶의 가치가 달라지고 인생은 풍성해 진다.
나는 약관(弱冠) 스무 살 때 내 인생에서 해야 할 좌우명(座右銘)을 만들었다.
첫째 자강불식 자원자득(自强不息 自願自得)이다. 꾸준히 노력하면 내가 원하는 것은 얻을 수 있다는 신념이다. 두 번째로는 남아일생 독파만권서(男兒一生讀破萬卷書)다. 한 평생 만권의 글을 읽겠다는 야무진 계획이다. 이 두 가지 일은 지금도 꾸준히 지키고 있다. 그리고 만사에 낙천적(樂天的)으로 살고 있다. 낙천적인 생각에 습관이 되면 언제나 즐거운 일이 생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인생덕목이고 삶의 지혜다.
노인이 되었다고 지레 겁을 먹고 하루를 어영부영 보내선 안 된다.
사무엘 울만이 말했듯이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스무 살의 청년보다 일흔 살의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다.
사람은 젊으나 늙으나 목표를 세우고 꿈을 꾸면서 살아야 한다.
목표를 이룬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서 가지는 즐거움과 행복감이 소중한 것이다. 인생은 꿈과 목표를 세우고 사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결과는 엄청 다르다. 개개인에 따라 크고 작은 소망이 있지만, 목적의식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매우 훌륭한 작업이다.
나는 언제나 시간을 아낀다. 주어진 시간을 생각없이 낭비하는 것은 없어야 한다. 전철을 타고 서울을 갈 때나 산책을 할 때도 자투리 시간을 가만두지 않는다. 글을 읽거나 시를 짓거나 수필소재를 구상하거나... 아니면 노래를 듣거나 노래를 부른다.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는 제법 큰 소리로 마음껏 목청을 높이기도 한다. 노래를 부르면 온 몸 운동이 되고 스트레스가 날라 가고 심신이 즐거워진다. 그리고 나들이 하면서 일어나는 주위풍경을 나름대로 즐긴다.
나는 절약과 씀씀이에 균형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어떤 계산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자동차의 경제를 설명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가령 3,000만원 가격에 자동차를 사고 십년을 운행하고 폐차를 했다면, 일 억 원의 돈을 소비한다는 것이다. 삼천만원은 자동차와 함께 십년이 되면 소멸이 되고, 십년동안 그 돈의 이자와 자동차 세금과 보험, 수리비와 기름 값 등등 유지비를 따지면 얼추 일억 원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 계산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1,200만원에 소나타를 사서 22년5개월을 즐겁게 운행했으니 그것으로도 상당한 돈을 저축한 샘이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비싼 명품을 산 적이 없다. 트렌치코트도 세일하는 아울렛에 가서 8만원 주고 구입을 해서 어언 십년을 입었다. 지금은 충무로 길가 이동가게에서 12만원 주고 산 아주 근사한 새 트렌치를 즐기고 있다. 올겨울 내내 감고 다니는 목도라도 사당역을 지나가다 벼룩시장에서 일금 일천 원을 주고 샀다. 색갈도 좋고 감촉이 부드러워 흐뭇하게 愛用하고 있다. 가격이 높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나에겐 좋은 것이다. 요즘은 제품의 질이 좋아서 심리적인 사치만 거둬낸다면 어지간한 것은 좋은 물건이다.
이런저런 비용을 아끼면 상당한 돈이 저축이 된다. 늙으면 주위 사람들에게 같이 나누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밑천이 된다. 그렇게 해서 절약된 돈으로 친구들이나 주위 친족들에게 밥과 술사기를 좋아한다. 앞으로도 여유가 있는 한 이런 짓을 계속할 생각이다.
우리는 본다. 돈을 쌓아만 두고 아끼다가 죽는 사람을 본다. 그리고 자식들은 유산싸움에 집안이 풍비박산하는 꼴을 볼 때도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진다면 베푸는 것은 여러 가지로 좋은 점이 많다. 배려한다는 것은 상대도 물론 좋지만, 본인도 흐뭇한 즐거움이 된다. 주위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즐겁게 살면 우선 몸과 마음이 건강해 진다. 그리고 인생의 참된 보람을 갖게 된다.
앞으로의 세상은 100세 시대라고 한다.
90세에 사망을 하면 신문 부고란 에는 조기사망이라는 기사가 나올 것이라고 우스개를 하는 사람도 있다. 얼마쯤 있으면 95세가 평균나이가 된다고 한다. 어떤 성급한 사람은 조금 더 세월을 보내면 120세도 거뜬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보아야 알 일이고 지금은 열심히 즐겁게 사는 게 더욱 중요하다. 사는데 까진 즐겁게 건강하게 친구 좋아하고 주위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서 사는 게 제일이다.
나는 가끔 주위의 불우한 친구들에게 얼마큼의 돈을 보낼 때가 있다.
어느 날 고향에서 온 신문을 읽다가 깜짝 놀란 일이 있다. 국가공무원을 하다가 신병(身病)으로 사직을 하고 거기다 상처(喪妻)를 하고 어렵게 사는 고향친구가 있었다. 그는 어느 날, 고향신문 독자투고란에다 대문짝만하게 글을 올린 것이다.
(前文 생략)
나는 몇 년 전, 대구 가톨릭 병원에 입원을 한 적이 있는데, 수술실에서 죽느냐 사느냐, 혼수상태에 빠져 있을 무렵 석계 친구는 평택에서 대구까지 불원천리하고 문병을 와주었다, 문병을 왔으면 됐지 그것도 부족한지 거액의 병원비까지 놓고 갔다. 작년 연말연시에도 시외 전화로 “너, 절대 오해하면 안 된다,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말고!” 하더니 상식을 뛰어넘는 거금을 내 통장에 입금시켜 놓은 것이다. 또 한 번은 생활 용품을 마대에다 가득 채워서는 어깨에 메고 왔는데 “홀아비살림 살라카면 필요할 것 같아서...”하며 내려놓는 것이다. 이런 예가 하도 여러 번이라 일일이 언급하기도 불가하다.
이 친구는 평택서 대구까지 왔으면 대구 친구들로부터 접대를 받고 가야 당연지사일 텐데 도리어 대구 친구들을 불러 모아서는 자기가 한턱을 내고 간다.
-중얼중얼 후략_
김용도/ 합천신문 독자투고(2010년4월22일)
다행이 목숨이 길어 80세를 넘긴다면 그때부터 또 다른 계획을 세우고 꿈을 꿀 것이다. 지금 생각으로는 도학(道學)을 공부하고 싶고, 일본문학 특히 하이쿠(俳句)에 관심을 갖고 싶다.
이렇게 하다 보니 엉뚱한 자랑이 된 것 같아 민망하고 쑥스럽기 거지 없다. 개인적인 결점이 많은 사람이지만 부끄러운 일은 생략하고, 우선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본 것이다. 젊은 독자님께서 싱긋이 웃으면서 읽어 주신다면 그것으로 다행이다.
실버넷뉴스 윤행원 기자 harvardy@silver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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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藝春秋 理事
합천신문/논설위원
수필가/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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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넷뉴스에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인생2모작 -
이라는 책을 기획, 편집, 발간을 하겠다고 원고 부탁을 해서
보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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