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이름 찾아 떠나는 여행 23>
숭늉
밥을 짓는 데에 따라 여러 가지 밥이 나오는데 떡밥, 고두밥, 된밥, 진밥, 눌은밥이 나옵니다. 밥의 물기가 없어지면, 용기의 바닥 부분에 누룽지가 남게 됩니다. 여기에 물을 담아 끓인 음식은 누룽지밥(눌은밥)이라고 합니다. 1905년에 나온 ‘프랑스 외교관이 본 개화기 조선’이라는 책에는 ‘한국의 주부들은 쌀(밥)을 둥근 반죽과 같은 형태로 미리 오래 전에 말려 두었다가 식사 때에는 이 반죽을 물에다 녹여 먹는다.’고 적었습니다. 누룽지(눌은밥)를 보고 한 이야기입니다. ‘밥이 눌은 것’이 곧 ‘눌은밥’이어서 원래 오늘날의 ‘누룽지’란 말의 이전 말은 ‘누른밥’ 또는 ‘누룬밥’이었습니다.
‘누른밥’은 17세기의 문헌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하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부터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누룽지’와 ‘눌은밥’은 구별하지 않고 사용되었습니다. 모두 ‘솥에 눌어붙은 밥’이란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눌은밥을 누룽지와 혼동하거나 누룽지를 눌은밥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눌은밥과 누룽지는 의미가 다른 말입니다. 누룽지는 ‘솥바닥에 눌어붙은 밥’이고 눌은밥은 솥 바닥에 눌어붙은 밥에 물을 부어 불려서 긁은 밥‘입니다. 이러한 구분을 제대로 하는 사람 중에도 눌은밥을 ’누른밥‘으로 잘못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눌은밥’은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지만, ‘누룽지’의 대표성에 그 의미를 바꾸어 ‘누룽지를 함께 잘게 부수어서 물에 만 밥’만을 일컫게 되었습니다. 갓 만든 누룽지는 구수합니다. 솥에 누룽지를 그대로 둔 채 물을 부어 끓인 것이 ‘숭늉’입니다. 누룽지로 만든 숭늉의 구수한 맛은 한국인만이 느낄 수 있는 고유의 맛입니다. ‘고소하다’ ‘구수하다’는 말은 다른 나라 말로 옮길 수도 없습니다. 일본에서는 ‘고마지(胡麻味)’-곧 참깨에서 나는 맛이라 하고 영어에서는 호두맛 또는 참기름 맛이라고 합니다. 그 맛을 나타내는 말이 없다는 것은 그 맛을 내는 음식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LA에 이민 간 한 노부부는 무쇠가마솥 하나만 들고 가서 식당을 차렸습니다. 식탁이라곤 댓 개밖에 없는 영세식당이었지만 자리를 차지하고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식사를 마칠 때까지 교민 손님들을 유인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데, 밥을 다 먹고 나면 구수한 숭늉이 나오고 그 속에 누렇게 탄 누룽지가 들어 있습니다. 누룽지가 들어 있는 숭늉이 교민들의 향수를 자극한 것이었습니다.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옛날처럼 구수한 누룽지를 맛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일부 식당에서는 일부러 커다란 가마솥을 가게 앞에 걸어 놓고 구수한 누룽지 냄새로 손님들을 유인하기도 합니다. 옛날 어머니들은 밥을 지을 때 일정 분량의 물과 쌀을 가마솥에 넣고 끓이다가 여분의 물이 없어질 때까지 뜸을 충분히 들여 누룽지를 만들었습니다. 또 누룽지를 긁어모아 양푼에 넘치도록 담은 다음 밥솥 바닥에 눌어붙은 누룽지에 다시 물을 붓고 푹 끓여서 숭늉도 만들었습니다. 이와 같은 누룽지와 숭늉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 고유의 음식이며 독특한 음료입니다. 17세기 일본 문헌에 ‘식탕(食湯)’이라는 음식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일본에도 누룽지와 비슷한 것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의 것과는 크게 다른 것이라 합니다.
‘고려도경(高麗圖經)’(1123년)에는 “고려의 관원과 존귀한 사람들이 숭늉을 제병(提甁 · 들고 다니는 물병)에 넣어 다닌다.‘고 적고 있습니다. ‘구급간이방’(救急簡易方 · 1489)이나 ‘동의보감’(東醫寶鑑 · 1610년)등 의서에는 누룽지를 취건반(炊乾飯)이라고 했습니다. 건후(乾餱), 건반(乾飯), 황반(黃飯) 등으로도 불렸는데, 누룽지가 약으로도 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누룽지를 ‘강밥’ 또는 ‘깡밥’이라고도 했는데, 단단히 만들어 놓은 밥이란 뜻인 강반(强飯)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그 딱딱한 누룽지에 물을 붓고 끓인 것이 숭늉으로 바늘 가는 데 실이 따라가듯이 누룽지에는 반드시 숭늉이 따랐습니다. ‘식사가 끝난 뒤 숭늉을 마시고 나서는 다시 반찬을 먹지 말라’(청장관전서 · 1795)고 한 것처럼 우리 한민족은 오래 전부터 식사의 마무리로 숭늉을 먹었습니다.
숭늉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19세기 초 발간된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서 숭늉을 숙수(熟水)라 했는데, 중국 송나라 손목(孫穆)이 지은 백과서인 <계림유사(鷄林類事)>(1103년 이후 지음)에 ‘숙수를 이근몰(泥根沒 : 익은 물)이라 한다(熟水曰泥根沒)’는 표현이 나오므로 고려 초나 중엽에 이미 존재하였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숙랭은 조선 숙종 때 박두세(朴斗世)가 지은 ‘요로원야화기(要路院夜話記)’(1678) 등의 문헌에 나옵니다. 그러다 조선이 개국하면서 불교 대신 유교를 국교로 삼았기에 당시 집권자들은 차를 멀리했습니다. 이것의 대체제로 생겨난 것이 숭늉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광해군 때 시인 박인로의 시조에 “서홉밥 닷홉죽에 연기도 하도 할샤 설 데인 숭늉에 빈 배 속일 뿐이로다. 생애 이러하다 장부 뜻을 옮길런가”라 하여 숭늉은 당시에도 가난을 상징하는 음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숭늉이라는 말은 조선시대에 생겨난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러나 당시는 숭늉을 뜻하는 순우리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자에서 이를 차용해 썼습니다. ‘반탕(飯湯)’ · ‘취탕(炊湯)’이라고도 불렀으나 ‘숙냉’(熟冷)’으로 고착되었습니다. 숙냉은 숙냉(熟冷)의 어원적 의미는 '솥바닥의 눌은밥에다 물을 부어 끓여 식힌 물'을 뜻합니다. 처음엔 ‘숙랭’으로 불리다 ‘슉랭’을 거쳐 ‘숙룅>숙뇡>숙늉>숭늉’의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 언어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제주도에서는 그 색깔을 보고 '누랭이물'이라고 하며, 자강도에서는 당나라의 더운 차와 같다 해서 당수(唐水)라고도 합니다. 다음은 숙랭이 각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 방언적 형태로 불리다가 숭늉이 표준어가 되었음을 알 수 있는 자료입니다. (충북 지방의 경우) 숭냉(음성), 숭눙(제천), 숭눙(청원), 숭눙(보은), 숭낭(괴산), 숭낭물(옥천), 숭념(단양), 숭녕(충주), 숭녕(영동), 숭늉(진천), 숭늉(청주)
*** 註: ‘숙룅>숙뇡>숙늉>숭늉’의 숙룅>숙뇡에서 정확한 표기는 ㅗ 대신 '아래 ㅏ' 발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