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망에는 수가 있다는 말은 운수가 있다는 말이다. 오백년 고려 왕조 또한 운세의 흐름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세월의 흐름이고 운세의 흐름이 아니던가.
가을 풀밭에 쓰러져 나뒹구는 고려 왕조 잔해의 모습을 보고 만감이 교차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겨워 하여도 세상의 흐름을 어찌 막을 것인가?
때가 그르쳐 그리 된 것이야 탓해본들 원망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이랴 마는 그래도 아쉬워하는 것이 인간적인 모습일진대, 원천석의 마음 씀이 참으로 따뜻하다고 할 수 있다.
눈 맞아 휘어진 대를 뉘라서 굽다 던고
굽을 절이면 눈 속에 푸르르랴
아마도 세한고절(歲寒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이 시조는 태종의 부름에도 나아가지 않고 고려의 충정을 지키려던 자신의 모습을 비유하였다고 볼 수있다. '눈맞아 휘어진 대'에서 그 뜻을 짐작할 수 있다. 지조를 지키려는 선비의 뜻이 시류에 편승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정신이 있었기에 역사는 항상 정의로운 모습이 아니지만 정의로운 편에 대하여 미소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