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학교를 찾아서] (32)소명여자중·고등학교
공감·연대 기반의 주도적 활동… 소사벌 넘어 세상의 빛 되다
인권·평화 등 다양한 주제 고민
대규모 종합 창작극 직접 기획
공동체 화합하는 기쁨 체험
소명여자중·고등학교 전경.소명여자고등학교 제공
‘이웃을 위한 참다운 봉사자’
경기도 부천 소사동에서 사랑의 씨튼 수녀회가 운영하는 소명여자고등학교(교장 김나령 로사 수녀, 이하 소명여고)와 소명여자중학교(교장 김신영 사비나 수녀, 이하 소명여중). 당시 소사본당 주임 고(故) 신성우(마르코) 신부가 지역 여성들을 위해 시작한 야학에서 비롯됐다.
신 신부는 여학생들이 ‘소사(素沙)벌의 빛이 되라’는 뜻으로 ‘소명’(素明)이라는 이름을 붙여 1956년 소명가정기술학교를 설립했다. 이후 1961년 소명여중, 1962년 소명여고 개교로 부천 최초의 사립 여학교이자 첫 인문계 여고가 세워졌다.
두 소명은 어떻게 ‘소사벌의 빛’을 넘어 공동선에 기여하는 ‘세상의 빛’으로 학생들을 길러왔을까.
소명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저탄소생활 실천 취지로 태블릿 에코백을 만들고 있다.소명여자고등학교 제공
소명여자중학교 학생들이 꾸민 뮤지컬. 대본부터 무대까지 스스로 참여하고 기획한다.소명여자중학교 제공
■ 세계시민다운 성품
소명여고는 학생들에게 공동선을 향한 열망에서 학업 열의를 얻도록 이끈다. 2013년부터 유네스코 협력학교로서 유네스코가 지향하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교육활동에 접목해 세계시민을 양성한다.
그 특색은 매년 5월 전교생과 교직원이 함께하는 성모의 날 행사에 잘 담겨 있다. 성모의 밤 행사를 간소화해 환경, 평화 등의 메시지를 전하며 진행하고 있다.
올해도 학생 600여 명과 교직원들이 함께해 ‘공동의 집 지구를 돌보기 위한 촛불연대’를 주제로 모든 창조물의 화해, 치유를 염원했다.
이는 시대 정신에 발맞춘 공감 교육을 중시해서다. 특히 부활 미사는 시대의 아픔을 되새기는 교육의 장 기능을 한다.
올해 미사는 세월호 참사 9주기를 기억하며 노란 리본과 나비 걸기 캠페인을 진행, 희생자와 유가족을 넘어 미얀마, 우크라이나 등 지구촌 이웃들을 위해 기도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자살률이 높아진 오늘날, 학생들은 생명 수호 사도로도 자라난다. 한국자살예방협회와의 연계로 워크숍, 이야기 나눔 등의 형태로 진행되는 자살예방교육 세이프톡(safe TALK)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자살로부터 안전한 공동체를 가꾸고, 자살 위험성을 지닌 사람을 인지하고 기관에 연결하는 등 구체적 지원 방법을 배운다.
글로컬(글로벌+로컬) 시대에 지역사회와 연계해 기후위기 문제 앞에 함께 연대하는 프로그램도 진행해왔다.
소명여고는 청소년 스스로 환경문제를 바라보고 해결 방안을 찾도록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한 기후정의 활동을 2020년부터 추진해왔다.
지난해 시민단체 ‘환경정의’와 연계해 ‘기후위기 시대 청소년이 만드는 부천의 비전과 과제’를 주제로 본교생 14명이 ‘기후위기 시대, 청소년이 바라는 부천의 10대 과제’를 조용익 부천시장에게 직접 제안하기도 했다.
종교·인성 담당 안진성(데레사) 수녀는 “시대적 과제에 학생들이 깊은 관심을 가짐으로써 스스로 참여하는 주체로서 자부심을 갖는다”고 강조했다.
김윤채(2학년) 학생회장은 “감수성과 공감 능력을 갖춰 더 멋진 어른으로 성장해갈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마련해준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 스스로 찾아 능력을 키우고 펼치고 나누도록
소명여고는 ▲학생들이 스스로 진로와 자아를 ‘찾음’ ▲발견한 진로에 도달하도록 능력을 ‘키움’ ▲능력을 마음껏 ‘펼침’ ▲그 능력을 지역사회와 ‘나눔’이라는 학생 성장 맞춤형 4단계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나름대로 찾아가도록 진로 창의 수업을 마련해온 것이다.
그 일환으로 가톨릭대학교 김수환추기경연구소와 연계한 인성교육 프로그램 ‘생각사이다’가 열린 바 있다.
학생들이 자기 자신, 사랑, 정의, 행복 등의 주제로 자유롭게 토론하며 삶의 의미와 참된 가치를 발견하게 이끄는 인문학 특강이다.
1학년에 1주일 1시간 마련된 ‘생활과 인성’ 교양 수업은 인권, 평화, 문화 다양성, 난민 등 다양한 주제를 학생들 스스로 선택하고 고민하게 유도했다.
김종오(마티아) 교감은 “앞서간 철학자 등의 이야기를 조언으로 혼란스러운 시대에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가도록 이끈다”며 “정규 교과는 제공할 수 없는, 가치에 대한 고민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 더불어 사는 삶의 가르침
소명여중은 전국적 교육 운동인 마을교육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2년 전 인근 초등학교, 주민자치회, 마을관리협동조합과 ‘심곡마을교육협의회’를 맺어 마을과 함께하는 교육 과정을 실천 중이다.
학생들은 5개 교과 통합 프로젝트로 이웃들의 삶을 관찰하는 ‘소리사진전’을 열고 학교 근처 심곡천에서 생태·환경 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마을교육공동체 슬로건을 넘어 주민의 삶에 긴밀히 동참해 지역 구성원으로 함께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민영(바오로) 교사는 “마을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 들여다봄으로써 책이 아닌 현장에서 삶을 체험하며 교훈을 얻어 보다 성숙한 중학생으로 자라날 수 있다”고 역설했다.
■ 함께 만드는 기쁨
소명여중은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학교 문화를 이끈다. 체육대회와 축제도 전적으로 학생이 기획하고 참여한다. 학생 5명만 모이면 동아리를 개설할 수 있다.
학생이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학교 문화는 학생창작뮤지컬로 대표된다. 개교 50주년인 2011년 관내 중학교 최초로 대규모 종합 창작극으로 시도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뮤지컬 대본부터 공연까지 학생들이 하나하나 만들어 나가며 긍정적 성취감을 느끼고 교사와 학생의 정서적 교류, 학생과 학생 간 협동으로 혼자가 아닌 공동체가 화합하는 기쁨을 배우게 한다.
최찬비(3학년) 학생회장은 “뮤지컬 주제로 ‘나는 소중하다’는 것도 생각해보게 되고 친구들과 협력하고 호흡을 맞추며 마음의 키가 이만큼 자라난 것 같다”고 뮤지컬에 참여했던 보람을 드러냈다.
교장 김신영 수녀는 “서로 어울리는 행복을 느끼는 소명인들은 각자가 귀한 존재임을 찾아가며 성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기후정의 행진에 참여한 소명여고 학생들.소명여자고등학교 제공
소명여고 학생들이 자살예방교육 세이프톡 교육을 듣고 있다.소명여자고등학교 제공
소명여중 학생들이 지역 이웃들 삶의 모습들을 관찰하고 찍어서 마련한 소리사진전.소명여자중학교 제공
박주헌 기자(가톨릭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