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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木에 피는 꽃
제 4부 삼구뇌천일수탁(三球雷天逸手卓)!
대련열기로 한창 뜨거울 때 갑자기 장내가 웅성거렸다. 전 국가대표이자 현재 실업탁구단 맹주인 김택수 탁신이 휘하의 고수들을 대리고 대련장에 홀연히 나타났다. 앗! 그때 또한 사람의 탁신이 등장했다. 추교성 맹주가 만면에 웃을 지으며 구장에 들어섰다. 그들이 들어서자 탁객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열광했다.
탁술 시범대련이 펼쳐졌다. 이 경기는 민노파 구장 이 맹주가 개최한 탁객들의 축제에 탁구의 절대지존 김 탁신이 친히 대회를 격려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탁신들의 탁술은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숨쉬기조차 어색할 정도로 장내 분위기는 탁신들의 절기에 모두가 넋을 잃고 있었다.
썩어도 준치라 했든가. 하얀 새치가 제법보이고 부분적인 탈모로 속히 훤히 보이는 머리 결로 장년 티가 몸에서 물씬 풍기는 김 맹주는 역시 노련했다. 맹주는 여전히 날카로운 서브와 파워풀한 드라이버진을 전개하고 날렵한 경신술을 펼치면서 춤을 추듯 하며 필살기를 날리자 운집한 탁객들은 연신 감탄을 질러댔다.
묘기가 속출했다.
오른손을 허리 뒤로 돌려 백으로 받아치기를 하자 관전탁객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앗! 저렇게도 친다!” 하고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아! 저것은 세계 탁술의 10대 진기묘기에 등장하는 기술이 아니던가!” 놀랍구나! 놀라워!
쌍굴절마구탁(雙屈折魔球卓)! 이 현란하게 펼처졌다. X자를 그리듯 좌우로 번갈아 치고 받아가며 때리는 드라이브 랠리가 일품이었다. 장거리 드라이브 타구가 계속되자 뒤로 물러나 랠리를 계속하는데 와!. 와! 하는 관전자들의 환호가 이어지는 순간 아뿔사! 공이 천정에 닿았다. 지하 동굴 구장이라 천정이 낮은 탓에 묘기가 멈추었다.
그대는 기억하는가? 방콕아시안게임 때 김 맹주가 무려 30여개의 쌍굴절마구탁(雙屈折魔球卓)을 펼치며 탁술의 진수를 보여주지 않았는가. 어마하게 크게 그려지는 드라이버 곡선과 찢어질 듯 파고드는 곡예 같은 파상공격이 절묘하기 그지없었다. 영상으로 감상만 했던 공수의 탁법이 눈앞에서 전개되자 운집한 안양중원 탁객들은 저마다 감탄을 하며 입을 딱! 벌리고 있었다.
보았는가? 탁구지존 김 맹주가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었다. 작달막한 체구에 딱 벌어진 어깨위로 뿜어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드라이버의 궤도! 현란한 푸드워크와 섬광같은 스피드! 아! 20세기 최고의 펜 홀드의 거두. 세계 탁신 TOP10 절대지존의 모습은 처연하리만치 위대해 보였다.
경기는 듀스에서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장년이 된 김택수 맹주가 비지땀을 질질 흘리며 다크호스로 등장한 약관의 후배 탁신 이준상 선수에게 쩔쩔매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숨을 몰아쉬던 김 맹주가 갑자기 음흉한 미소를 감추며 “아! 잠깐 여기서 걸자!”하며 반전 기회를 잡기위해 꾀를 부렸다. 상대의 사기에 참 물을 끼얹는 도박을 걸어왔다.
“우!우!우!...” 하는 관중들의 탄성인지 비아양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괴성이 길게 쏟아졌다. 한 민노파 고참 탁객이 나서며 지갑에서 10만 냥을 꺼내 흔들며 투전장 같은 분위기로 몰아가며 돈 걸기를 충동질 하고 나섰다.
그러자 초전 열기 때부터 김맹주의 탁술에 넋을 놓고 관전하던 젊은 탁객이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투견 장 개싸움은 싸움도 아니다 야!” “10만 냥은 내가 건다!” 하면서 10만 냥을 흔들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드디어 2점 선승 자에 거금 20만 냥을 걸렸다.
관전하던 관중들이 일제히 두 선수를 응원하고 나섰다. “김택수!” “김택수!” 하며 한 무리가 외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반대쪽 관중에서 더 큰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이준상!” “이준상수!” “이준상!” 하며 박수가 터져 나왔다.
“김 맹주는 오늘 제삿날이다!” 하며 누군가 소리쳤다.
힐끔! 소리 나는 곳으로 쳐다보는 김맹주의 눈가에서 싸늘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오싹 소름이 돋았다. 관전 탁객들이 뻥튀기처럼 대련 분위기를 튀기자 장내의 응원열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바로 그 때 심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경기 속개를 선언했다. “오늘 대결이 소싸움보다 재미있다! 경기 승자에 20만 냥이다!” “일수불퇴고 나중에 뒷말 없기다!” “완전 국제 경기룰로 한다!” 하고 좌중을 돌아보며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장내가 물을 끼얹은 듯 잠잠해졌다.
듀스에서 서브는 이준상 선수가 먼저였다. 짧은 서브를 넣고 3구를 노리는 회전이 걸린 서브였다. 그러자 김맹주가 그걸 이미 파악하고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고개를 처든 코브라처럼 상대를 노려보고 있던 라켓이 번쩍했다. 순간 파팍! 하고 섬광 같은 불꽃이 튀었다. 날카로운 2구 공격이 눈 깜짝하는 사이 상대 테이블 코너로 파고들었다.
이구건곤일척탁(二球乾坤一擲卓) 이 작열했다.
신기였다. 짧게 오는 회전서브를 백핸드 ‘풋싱’으로 송곳처럼 처리하는 2구공격법이다. 탁계 하수들이 이구건곤일척탁(二球乾坤一擲卓)앞에서는 쪽을 못 쓴다. 이준상 선수가 3구부터 특기인 굴절마구탁(屈折魔球卓) 진으로 몰고 가 숨을 헐떡이는 김맹주를 지치게 할 작전이었는데 이는 엄청난 오산이었다.
독수에 한 빵을 대통 얻어맞은 이선수가 망연자실했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상대가 누구였던가? 탁계의 절대지존 김맹주가 아니던가. 순간의 방심은 절대 금물이었다. 탁구대 앞으로 바짝 다가서며 다시 몸을 사렸다. 두 눈을 부릅뜨고 상대를 째러 보았다. 죽림대호(竹林大虎)! 대나무밭에 호랑이가 납작 엎드리고 눈에 불을 켰다.
이번엔 김 맹주의 서브였다. 비시시 입가에 비웃음인지 자신감인지 음흉한 미소가 번졌다. 먼저 1점을 선취한 뒤라 기분 좋은 표정을 짓고 있으면서도 긴장한 탁신의 모습은 상대를 몹시 겁주고 있었다. 광대뼈가 유난히 튀어나온 얼굴과 이마에는 끈적이는 땀이 형광 불 빛을 받아 퍼렇게 번들거렸다.
빨간 색의 라버가 형광불빛에 반사되어 핏빛처럼 구장에 붉게 번졌다. 신중한 서브 모션.
고양이가 쥐를 잡아 챙기려는 움 추린 자세. 팽팽한 긴장감이 돌자 구장 안은 쥐죽은 듯 조용하다. 누군가 꼴-깎! 하고 마른 침 넘기는 소리가 정적을 깨고 크게 들렸다. 모든 눈길이 김 맹주가 서브하는 손길에 쏠렸다. 그 순간 김맹주의 오른손이 천천히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따딱!” “팍!” “파팍!” 단 세 번의 짧은 탁음이 들렸다. 찰나였다. 두 손을 번쩍 든 김 맹주가 주변을 돌아보며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어느 틈엔가 탁채를 내 던진 한 손이 20만 냥을 쥐고 흔들고 있었다.
삼구뇌천일수탁(三球雷天逸手卓)!
아! 전광석화 같았다. 짧은 하회전서브 후에 넘어온 뜬공을 손목의 스냅을 이용하여 ‘플릭’으로 처리하는 현대 탁계의 고난도 필살기였다. 앗! 하는 순간 이었다. 구구하나도 어떤 탁법인지 분명히 보지를 못했다. 어안이 벙벙한 이준상 선수는 순간 넋을 잃은 듯 멍한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삼구뇌천일수탁(三球雷天逸手卓)은 김 맹주가 즐겨 사용하는 전매특허 필살기였다. 승부의 분수령에서 펼치는 비장의 일타에 장내 탁객들은 그 찰나의 순간 바늘에 찔린 듯 아찔했다. 망연자실한 하얀 표정들이 말문조차 닫았다. 한동안 멍한 장내 정막이 오래 동안 이어졌다.
시범경기가 끝났지만 진한 흥분과 감격은 구장에 맴돌았다. 탁객들이 각 테이블로 돌아가 속개된 경기는 이제 막바지 결전에 돌입하여 마지막 열기를 내 품고 있었다. 마지막 결전을 관전하던 각파의 탁객들이 일제히 응원에 나서는 바람에 구장은 또 한 차례 가마솥같이 끓어올랐다. 결승전을 치르는 대결장 주위로 운집한 관중들이 두 선수의 탁술 실랑이에 눈을 떼지 못했다.
탁객들 환호를 받으며 활짝 웃는 오늘 우승자는 아리따운 여(女) 탁객이었다. 그녀는 뽕 라버로 무장하고 내공이 담긴 경신술을 펼치며 나비처럼 가벼운 풋워크로 테이블 주위를 날아다녔다. 그녀는 잘록한 허리에 요염한 미소까지 흘리면서 지독한 독수로 상대탁객을 교묘히 농락했다.
탁객들의 무수한 살수가 난무했던 대련장은 땅거미가 내리자 막을 내렸다. 본부석에 운집한 수많은 탁객들은 비탁대련의 흥분을 아직 삭이지 못하고 면면한 얼굴끼리 만면에 웃음을 나누며 작별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탁객들은 푸짐한 상품들을 한 아름씩 받아들고 헤벌린 입들을 다물지 못하고 건 내는 술잔에 얼굴들은 모두 홍조로 물들어 갔다.
삼삼오오 카메라에 추억을 남기며 즐탁의 정을 어루만지고 손들을 흔들며 눈웃음을 지었다. 아쉬움을 달래며 거나하게 나누어 마신 뒤라 빈 막걸리 병들이 꼴사납게 마구 딩굴고 있었다. 얼큰히 취기가 오른 안양중원 탁객들이 하나 둘씩 구장을 빠져나가자 구장 이 맹주가 사립문 밖까지 나와 그들을 배웅하고 있었다.
좋은 경험이었다. 안양중원 탁림이 험준하기 이를 데 없고 계곡은 엄청 깊었다. 탁객들의 비범함 탁술과 진법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탁객들의 내공은 그 깊은 경지를 알 수도 없었고 특히 굴절마구탁(屈折魔球卓)은 모든 탁객들이 신형을 약간씩 변형하여 필살기로 다루고 있었다. 굴절마구탁(屈折魔球卓)! 화려하고 현란한 ‘탁구의 꽃’ 그 자체였다.
늙은이는 처음으로 존재감을 알렸다. 졸탁이었지만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탁객들의 탁술이 구력에 따라 차이가 있었지만 조금만 더 내공에 정진하면 충분히 진법을 전개할 수 있는 탁법들이었다. 심기일전(心氣一轉)의 기회였다.
古木에 피는 꽃
제5부. “우 째 그런 일이!.”
섹스 폰을 배우는 대학동창이 있다. 한 때 호기심으로 악기는 가지고 있었는데 환갑을 지낸 후에야 제대로 불어보고 싶다며 열심이다. 그는 얘기한다. 3년이 되니 악보가 제대로 보이고 5년이 되니 500여곡 정도 불겠고 대중 앞에 연주하려면 10년쯤은 해야 한단다. 그 때가 되면 한강유람선 선상에서 섹스 폰을 불고 싶다고 했다.
탁객의 경지에 닿으려면 탁술수련을 10년쯤은 해야겠다 싶었다. 그러나 관장은 우선 탁림에 나가 대련부터 하게했다. 험악한 탁계에 수련중인 늙은이를 헐헐 단신으로 비탁(比卓)대련장에 내모는 관장이 너무나 야속하고 원망스러웠다. 쥐구멍이라도 있었으면 숨어버리고 싶었던 심정을 누가 알겠는가.
큰 대련을 치른 뒤라 동호회 가입 전 좀 머쓱하던 고수탁객들과의 관계도 한분 두 분씩 더욱 가까워졌고 주고받는 눈길도 따사로워졌다. 퇴근하면 구장에 얼른가고 싶고 밤늦어도 “한게임 더 하고 가야지!” 하는 유혹을 하고 다닌다.
주름진 이마에 흐르는 땀은 헤드밴드로 가렸지만 비 맞은 듯 흥건히 젖은 티 샤츠가 밤바람에 차가웠다. 늦은 밤 현관 앞에 와서는 언제나 마누라 눈치 살피느라 얌전해진다. 탁객의 경지에 도달하기에는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세월이 문제 아니라 의지가 문제였다. TO BE OR NOT TO BE. 그것이 문제였다. 존재감을 보여줘야겠다.
‘관장배’ 대련회가 있은 지 2개월 후에 ‘왕중왕전’이 있었다. 경기 후에는 민노탁객동호회의 총회와 송년행사를 겸하니 불참할 수가 없었다. 고수급과 하수급의 탁객 동호인 50여명이 총 출동하는 민노파 탁객들의 년 중 최고의 축제로 그 전통과 함께 아름다운 사연들이 얽힌 비탁(比卓) 경기로 인기가 대단하였다.
안양 각 탁파들이 이날 대련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드는 바람에 도장은 자갈치시장을 방불케 했다. 대련은 구력부수에 따라 적당한 핸디로 예선을 거쳐 본선은 토너멘트방식으로 치른다. 안양중원 탁림의 본산 민노파 탁객들이 벌이는 최고의 탁술 경연이다 보니 평소 비탁(比卓)하며 서로 탁친(卓親)이었던 상대조차도 노골적으로 적대시 했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였다.
구장에 들어서니 대회장 대련휘장이 벽에 걸렸고 각계에서 보내온 축하화환과 꽃들이 긴 복도를 메우고 있었다. 돈가스를 넣은 고봉김밥과 별미인 바푸리 숯불김밥이 준비되어 있었고 도야지를 잡아 안주로 내 놓았다. 멀리 뉴질랜드산 줄 바나나를 송이채 가져왔고 제주산 감귤이 박스에 가득했다. 한 컨에는 막걸리 독을 채우고 바가지를 띄워 놓았다.
구장테이블에는 벌써부터 탁의(卓衣)로 갈아입은 탁객들이 탁법초식을 연습하고 있었다. 한쪽 본부석 테이블에는 번쩍거리는 ‘회장배’ 다섯 개가 커다란 유리케이스에 안에서 불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화려하고 예쁜 포장지로 싼 갖가지 상품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탁객들의 투혼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왕중왕전’은 민노파 구장 동호탁객회장배로 평소 같이 수련하며 대련하던 탁객들이니 “이 늙은이 실력이면 중간정도는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꿈도 야무지게 출전장을 내고 내심 “두고 보자 이 놈 들아! 이 노장이 한 수 가르쳐 주마 흐흐흐.” 하고 음흉한 미소를 감추고 있었다.
대련경기가 시작되자 그들의 이리처럼 승리에 굶주려 있었고 하이에나처럼 늙은이 한 사람을 둘러싸고 으르렁거렸다. 예상도 하지 못했는데 그들의 승부욕을 엄청났다. 어른 대접도 할 줄 모르고 몰아 부치는 악 날 함에 치를 떨어야 했다.
더구나 늘 즐탁하며 히쭉거렸던 김 씨는 한술 더 떴다. 굶주린 승냥이가 따로 없었다. “세상에나! 세상에 믿을 사람하나 없구나!” 혼신의 힘을 실어 드라이버를 날렸던 상대는 예기치 못한 커트로 받아내자 내심 “이것 봐라!”하며 겨우 휘청거리던 몸을 지탱하고서 언제 연마 했는지 루프드라이브로 위기를 모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은 이 늙은이도 김 씨에게는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탁술동영상으로 본 블로킹이 생각나 살짝 눌러 맞받아 주며 김 씨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평소 한수아래거니 하고 어쭙잖게 여기다가 그날은 목구멍에서 신물이 나도록 혼 줄이 났을 것이다.
처음 대련하는 상대마다 다들 힘든 상대였다. 커트와 스매싱을 여러 차 레 주고받아 넘기자 상대도 무척 당황해 하는 눈치였다. “이 양반 생긴 모습하고는 영 딴판이네!. 얕잡아 보다가는 큰 코 다치겠는걸!” 싶었던지 난감한 표정들이었다.
실은 이 늙은이도 진땀을 빼고 있었다. “이겨야 한다” 는 승부욕이 목을 죄이는 바람에 침만 바짝 마르고 입속이 타 들어가 물도 여러 잔 들이켰다. “아이야! 일주일만 젊었어도 그냥...!? ”하며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릴 구시렁거리며 비지땀을 질질 흘렀다.
상대했던 모든 탁객들이 정말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안간힘을 다하며 탁 공을 받아 넘겼다. 그러나 그 순간 뿐 이었다. 대련을 거듭할수록 점점 지쳐갔다. 생선처럼 팔팔 뛰었던 초반에는 파족지세로 상대를 몰아붙였지만 대련상대가 여럿을 거쳐 갈수록 뒷심 부족이 드러났다.
관전하던 수련탁생들과 각 탁파의 탁객들은 모두 신바람이 났다. 테이블 주변을 빙 둘러서서 노 탁객의 묘기에 감탄을 자아내며 괴성들을 질러댔다. 온몸은 타구 공에 맞아 피멍이 흥건하고 살점들이 찢어져 나간 상처에서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상대를 불독처럼 물고 늘어지는 투혼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왕중왕전’ 대련 또한 분 루를 흘러야 했다. 힘이 딸 린 뒷심부족의 분패였다. 상대에 대한 분석을 하나도 하지 않았던 것 또한 큰 실수였다.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탁술 대련 경험이 없는 노 탁객은 한창 수련중인 회심의 필살기 비술을 제대로 한번 날려보지도 못하고 무릎을 꿇고 말았다.
눈앞이 캄캄하였다. 갑자기 순간 정전이라도 된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구장 바닥에 덜컹 주저앉았다. 분패였다. 두 줄기 눈물이 주루 룩 상기된 볼을 타고 땀에 젖은 탁의(卓衣)를 타고 앞가슴을 적시는데 아무렇게나 집어 던진 라켓이 발끝에 채였다.
“어르신!. 오늘 하마터면 내가 질 뻔했어요!. 백이 엄청 예리합디다!.” 하며 얼큰히 홍조가 띤 김 씨가 거품이 넘치도록 보리술을 따르며 기분 좋게 눈웃음을 보내왔다. “아따 메! 김 씨한테는 아직 쪽도 못 쓰겠더군요!”하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김 씨쯤은 ”고양이를 물속에 집어넣는 것 보다 싶겠지!“ 하고 이번 대련 기회를 노렸었는데 결국은 패하고 말았다.
“아! 내가 기쁨조였다니. 오호! 통제라!” 오늘 보니 약간 뒷심이 딸렸는데 내년에는 마누라 살살 꼬드겨서 십이영양탕이나 십전대보탕 몇 접 다려 먹어야겠다. 그리고 산에 자주 가서 뒷다리 심 키우고 탁배기는 좀 작작해야지 싶었다.
“소장님! 오늘 대단했어요.”
“내년에는 기대해도 되겠어요. 자! 한잔하고 잊아 뿌소!” 하며 잔을 부딪치며 관장이 나를 달래주었다. 내가 역부족으로 지긴 했지만 분을 이기지 못해 저녁자리에 와서까지 술잔만 홀짝거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뿌두둑! 쯥! 쯥! 잇 빨 까는 소리를 냈다. “오냐! 이 놈들아! 오늘 일을 결코 잊지 않으마!. 흑!흑! ”
아득한 옛날. 우물에 늙은 말이 빠졌다. 사람들이 도저히 끌어 올릴 수 없게 되자 힘없고 쓸모없는 말이니 우물에 그냥 묻어 버리기로 하고 흙을 퍼 부었다. 한동안 처연하게 울며 몸부림치던 말이 조용해졌다.
잠시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말이 흙을 털며 우물을 밖 차고 뛰어 나왔다. 파묻어 죽이려고 퍼 부은 흙을 발판삼아 다시 살아난 것이었다. 모두가 놀랐다. 세상 사람들은 이를 두고 “세상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했다.
좀처럼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생각할수록 낮에 있었던 흥분이 되 살아나 났다. “좋다! 이 놈 들아.” “내년에 한번 두고 봐라!” “흐윽! 흐윽!” 울먹이며 밤새도록 컴 앞에 앉아 자판에 울분을 토해냈다.
그들 탁객들의 무자비한 살생현장을 낱낱이 까 발라 “왕중왕전 출전후기”를 썼다. “패자는 말이 없다”고 했는데 억울해서 분을 삭일수가 없었다. 임자 없는 무덤 없다고 적당한 핑계를 대고 얼렁뚱당 덮고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이대로 묻힐 수야 없었다. 세상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했거늘 새옹의 말처럼 털고 일어나야겠다. 매몰찼던 그들의 만행을 적 나나 하게 고자질했다. 피비린내 나게 처참했던 참상의 현장이 속절없이 안양탁객동호인연합회와 민노파 탁객동호회 카페에 올려졌다.
계속됩니다.
첫댓글 소설을 써도 되겠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