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이자와6 - 구가루이자에서 우키요에 그림을 보고 쿠모이케 호수를 찾아가다!
2019년 4월 13일 쿠사츠 온센에서 버스를 타고 가루이자와 かるいざわ 軽井沢(경정택) 역에
도착해 코인로까 를 찾아 배낭을 넣고 신사가지를 걸어서 구 가루이자와역 ( 駅舍旧軽井沢
역사구경정택) 을 구경하는데... 어느 집 앞에 멈춰 서서 보니 Trick Art Musium Karuizawa 라?
우키요에 (浮世絵 부세회) 옛 그림 이 보이니 軽井沢物産館(경정택물산관) 간판을 달았는데
우키요에(浮世繪(부세회) 란 무로마치 시대 부터 에도시대 말기까지 서민생활을 기조로
제작된 목판화(木版畵) 로 평화가 정착되면서 사회풍속· 인간 묘사 등을 주제로 삼았다고 합니다.
우키요에 의 “우키요” 는 중세에 전란에 휘말려 생활이 비참했을때 불교사상으로
현세는 “우키요(憂き世)”로 무상의 세계라고 생각해 내세의극락정토 를
꿈꾸었으니...... 우키요(憂き世)는 덧없는 세상, 속세 를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키요에 는 삽화에서 목판화 로 독립하면서 다색 목판화 인 니시키에(錦繪) 기법 을
개발하여 전성기를 맞이하데 17세기에 일본 도자기가 유럽에 수출되면서 그
포장재로 쓴 우키요에 그림은 고흐와 모네등 프랑스 인상파 미술 탄생의 계기가 됩니다.
유럽에 수출된 일본 도자기 들은 “古伊万里 고 이만리“ 라고 부르는데 임진왜란때
남원에서 사쓰마번 시마즈씨에게 끌려간 이들은 규슈 가고시마에 심수관가
등을 이루었고..... 김해에서 히젠번 나베시마씨에게 끌려간 이들은 규슈
북부 아리타(有田) 에서 도조(陶祖) 이삼평의 지도하에 조선 도예촌 을 이루었습니다.
사가현 아리타(有田) 에 가면 “고이마리”, “카키에몽”, “이로나베시마” 등 도자기를
감상할수 있는데 오늘날에도 일본은 도자기 왕국 으로 통하니 “닛코나 노리다케"
상표의 엔티크는 세계 유명 미술품 경매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 으로 거래 됩니다!
지금도 매년 5월 이 되면 아리타에는 20여만명의 관광객 이 운집하는.... 400년 역사의
도자기 축제 가 열린다는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청자가 맥을 잇지 못하고
완전히 사라져 버렸으며 그후 조선시대에 어렵게 익힌 이조백자도 대가 끊어 졌을까요?
일본이나 조선이나 “士農工商 사농공상” 의 신분제 사회였으니 도공 들은 신분이
낮았으니.... 특히나 조선에서는 사람축에도 들지 못하는 "천민" 으로
연속극 “추노, 징비록" 등에서 보듯이 도공들은 수탈과 착취의 대상 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제도가 너무나도 엄격하여 신분을 바꿀수 없는 데다가 기술을 우대하는 사회
이니 기술자들은 자손대대로 숙련을 거듭하여 "그 기술 분야에서 1인자" 가 되어 익힌
기술을 자손대대로 물려주었던 것이니 중국을 능가하는 최고의 도자기 로 발전했던 것입니다.
조선에서는 신분제도가 물러서 상인이나 도공도 돈을 벌어 논 을 사서 지주 가 되고 노비를
거느리면 족보를 사서 양반행세 를 할수 있었으니..... 자식에게는 천한 신분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자식에게 기술을 가르치는 것을 꺼리고 하루 빨리 돈을 벌어 신분을 바꾸었습니다.
상인이나 기술자들은 남을 속여서라도 떼돈을 벌려는 생각으로 상도가 타락 했던 것이니
조선 말기에는 도자기 기술도 거의 사라져 버리고 일본의 양은 남비를 수입 하는데,
남의 성을 도용 하는지라..... "양반은 조선 초기 5% 에서 무려 95%" 로 늘어나게 됩니다.
한국의 성씨는 300개인데 본관을 달리하면 3천개 정도 이지만 중국은 2만 3천개 이고
일본은 11만개 에 달하는데, 일본에서 메이지유신후 정부가 성씨를 등록하도록 하자
친척들이 모여서 새로운 성씨를 만들었기 때문으로 한국과 일본은 문화가 다른가 합니다.
한국은 성씨 숫자도 적지만 특정한 성씨에 편중된게 참 특이한데, 1억 2천 7백만 일본에서
1위 사토(佐藤)씨는 1.5% 인 189만 이지만, 김해김씨는 7.9% 412만 이고 2위 밀양박씨
303만, 3위 전주이씨 261만... 20위 전주최씨 39만까지 2,200만 이며 30위 함안조씨
까지 합하면 2.500만 이니 본관으로 쳐서 3천개 성씨 중에 30개가 인구의 50% 에 달합니다?
일본은 교토에 천년넘는 기업이 6개 로 결혼용품점 겐다는 1,300년, 부채가게 마이센도는
1,200년 그리고 떡가게 이치와가 천년이 되었다고 하며.... 곤고구미 는 쇼토쿠태자의
초청으로 백제에서 건너와 사천왕사를 짓고 절을 관리한게 578년이니 1,440년이 되었네요?
여관 호시는 718년 이시카와현 고마쓰에서 창업해 지금도 그 자리에서 영업 을 한다니
천삼백년 이 되었고, 규슈 사쓰마의 도공 심수관가도 400년 이 넘었으며 스미토모는
1,623년에 창업했으니 400년, 다이마루 백화점은 1,717년에 창업했으니 300년이 됩니다.
일본은 백년이 넘는 기업이 3만 3천개 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자신의 기술과 직업을 자손
에게 물려주길 꺼리고 너도나도 "지주 양반" 이 되려다 보니... 100년이 넘는 기업
이라야 1896년에 박승직 상점으로 출발한 "두산" 과 1897년에 동화약방으로 출발한
활명수 "동화약품" 2곳인데 금년에 갓 100년에 달한 기업이 4개라니 합해 6개 에 불과합니다.
여기 거리는 별의 별 것이 다 있어서 관광객들의 시선 을 사로 잡는데... 그중에도 특이한게
자전거 가 하나 보이는데 페달이 2개가 아니라 무려 6개 인데 페달마다
운동화 를 신겼으니 그 모양이 웃깁니다? 독일 드레스덴 에서 보고 여기서 두번째로 봅니다?
오래된 구가루이자와 의 예쁜 가게들이며 또 넘쳐흐르는 관광객들의 모습을 구경
하고는 다시 되돌아서서 내려오는데..... 이제 대로변에 와키타 미술관
脇田美術館(협전미술관)을 찾는데 표지판 이 보이기는 한데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구가루이자와 를 뒤로 하고는 걸어내려 오면서 우리가 찾는 와키타 미술관 脇田美術館
(협전 미술관)은 1991년 서양화가 와키타의 그림 전시를 위해 지은 곳으로 새, 아이,
꽃 을 소재로 천점을 전시하니 정원 도 볼만하다고 했으며 입장료는 천엔이라고 했는데...
시내지도를 맞추어 보고 또 건물의 모습들을 보건대 특이하게 생긴 건물 이
있어 여기가 와키타 미술관 이 맞지 싶은데, 간판이 없는데다가
문도 닫혀있고 사람들도 전혀 보이지거 않으니..... 그럼 폐업한 것일까요?
그럼 이제는 다음 코스인 쿠모바이케 호수 雲場池(진장지)로 가야 하는지라
인력거 꾼 을 스쳐 지나서 시내 지도를 확인한 다음
대로변을 따라서 걸어 내려가다가... 부동산 중개소며 숍 을 잠시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참 특이하게 생긴 건물에 KAZAGU RUMA 라는 간판을 보는데 얼른
무엇을 하는 이름인지 떠오르지는 않지만 진열된 물건으로 봐서 옷이나
가방 을 파는듯 한데...... 그러고는 드디어 오른쪽으로 난 도로 를 발견합니다.
쿠모바이케 호수 雲場池 로 들어가는 이 도로는 조금전에 우리가 보았던 대로나
또 구가루이자와 거리 와는 전혀 딴판인 것이 모습이 180도로
전혀 다르니...... 어디 한가한 농촌 을 지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듯 합니다.
번화가가 아니고 사람 인적이 드문지라 집 주변에는 4월 중순 임에도 눈이
많이 쌓여있는데..... 집들이 참 고풍스러운게 서양식 으로 지어진
집들을 보다가 여긴 대도시 부지들의 별장 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