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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 지음 / 김윤성 옮김 / 바오로딸
1. 작가소개
- 지은이 : 엔도 슈사쿠
1923년 도쿄에서 태어나 게이오 대학 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리옹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하였다. 1955년 <백인>으로 제33회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였다. 그레이엄 그린이 "우리 시대 가장 훌륭한 소설" 이라고 평가한 그의 대표작 <침묵>은 동서양 문화의 차이나 신학으로 해결하기 난해한 문제를 밀도 깊게 다루었다는 극찬을 얻었으며 25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다. 또한 그의 다른 작품 <바다와 독약>은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를 시점으로 하여 한 젊은 군의관을 통해 전쟁의 비극성과 인간의 고뇌 등을 섬세하게 그려낸 수작으로, 일본문학을 세계문학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하였던 엔도 슈사쿠는 1996년에 사망하였다.
주요 저서로 <침묵> <바다와 독약> <예수의 생애> <여자의 일생> <그리스도의 탄생>외에 <자신 만들기> <심술궂은 인간에게> <이상한 자신을 사랑하라> 등의 주옥같은 인생론, 수필집이 다수 있다.
- 옮긴이 : 김윤성
2. 간추림 또는 내 마음에 다가온 구절및 느낌
침묵을 내면서
저자는 「침묵」에서 약자에 대한 신의 자비를 구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약자의 심경을 나타내는 한편, 이웃을 향한 끝없는 사랑, 고통과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이 아니라, 배교를 하느냐 아니면 자기 때문에 신자들이 거꾸로 매달려 고통을 받아야 하느냐의 양자택일의 궁지에 몰린 신부가 신자의 죽음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던 인간애를 통해 드러나는 이웃사랑을 보여준다. (p6)
「침묵」에 나오는 신은 약자인 기치지로를 끝까지 저버리지 않는 신이었다. 약자를 책하고 벌하는 엄한 신이 아니라 상처 입은 자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배반자를 용서하는 자비로운 어머니 같은 신이었다. (p6)
“그리스도가 가르친 신은 분노의 신도 벌하는 신도 아니었다. 이는 어머니처럼 넘어진 자를 일으켜 안고, 눈물을 씻어주며, 용서하고, 뉘우칠 때마다 머리를 끄덕이는 사랑하는 신이었다. 사랑은 그리스도의 근본 사상으로 불행한 자를 볼 때, 우는 자를 볼 때, 괴로워하는 자를 볼 때 그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리고, 그의 손은 절로 펴져 그들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나는 성경을 읽을 때 무엇보다도 이 사랑밖에 모르는 ‘사랑’의 모습에 감동한다. 그 ‘사랑’은 인간이 얼마나 슬퍼하는지 뼈에 사무치도록 알고 있었다. 자기를 응시하는 인간의 서글픈 눈을 보고 자기도 눈시울을 적시며 다가갔다. 그는 무엇보다도 사랑을, 모든 것을 초웧하여 사랑을 가르쳤다. 그가 가르친 신의 모습은 결코 분노하고 심판하는 신의 모습만은 아니었다.” (p7)
책머리에
다음날부터 고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일곱 명은 한 사람씩 펄펄 끓는 연못가로 가 들끓는 물보라 앞에 서서, 그 무서운 고통을 맛보기 전에 그리스도교를 버리라는 훈계를 들어야 했습니다. 추위 때문에 기온 차가 심한 연못은 무서운 기세로 들끓어, 하느님의 도움이 없다면 보기만 해도 기절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커다란 용기를 얻어, 어서 고문하라, 자신들이 신봉하는 종교를 절대로 버리지 않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관리들은 이 의연한 대답을 듣자 죄수들의 옷을 벗기고 두 손과 두 다리를 밧줄로 묶고 커다란 국자로 뜨거운 물을 퍼서 그들 머리 위에 부었습니다. 그것도 한꺼번에 쏟지 않고 국자 바닥에 구멍을 몇 개 뚫어, 고통이 오래가도록 했습니다. (p13)
세바스티안 로드리고의 편지
“그 땅에 있는 신자들은 목자를 잃고, 한 떼의 새끼 양들처럼 고립되어 있습니다.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그 신앙의 불씨가 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꼭 가야만 합니다.”
(p26)
이 사나이는 바로 히젠 구라사키 마을에서 스물네 명의 신자들이 수책(水磔)형에 처해지는 광경을 보았다고 합니다. 수책형은 바다 속에 기둥을 세우고 신자들을 묶어놓는 것입니다. 곧 밀물이 차오면 바닷물이 그 허벅지까지 차오르게 되는데, 그렇게 가만두면 죄수는 일주일쯤 후에 고통 속에서 죽어버린다는 겁니다. 이와 같은 잔인한 방법은 로마시대의 네로도 생각해 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p32)
☑ 인간은 얼마나 잔인한가!
우리 성직자들은 오직 인간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불쌍한 족속입니다만, 그 봉사를 할 수 없는 성직자만큼 비참한 존재도 없을 것입니다. (p35)
나는 기치지로 같은 사나이에게 우리의 앞날을 맡긴 것을 생각하면 웬일인지 즐거워지기까지 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들의 주님, 그리스도 자신의 운명을 믿을 수 없는 자들에게 맡기시지 않으셨습니까? 어쨌든 이런 경우 기치지로를 믿을 수 밖에 딴 방법이 없으니 믿기로 하겠습니다. (p38)
출발은 마침내 닷새 후로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자기 마음 외에는 하나도 일본에 갖고 갈 짐이 없으므로 그 마음의 정리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p41)
☑ 부가 절대의 가치인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무소유는 얼마나 큰 도전인가!
몇십 년 동안 수십 명의 선교사와 신학생들이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를 거쳐서 이 바다를 건너 일본에 도착하고 했습니다. 셀리케라 주교, 비리냐 신부, 오르간티노 신부, 고메스 신부, 포메리오 신부, 로페스 신부, 그레고리오 신부, 헤아려 보면 한이 없습니다. 그들 중에는 맛타 신부와 같이 일본을 눈앞에 바라보면서 난파선과 운명을 함께한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이 커다란 고통을 견디게 하고 그 크나큰 정열을 쏟게 했는지 나는 지금 알 것 같습니다. 그들도 모두 이 젖빛 하늘과 동쪽으로 흘러가는 검은 구름을 응시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그때 무엇을 생각했는지 그것도 나는 알 것 같습니다. (p43)
짐 곁에서 기치지로의 괴로워하는 신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이 겁쟁이는 폭풍이 부는 동안 선원들을 돕기는커녕 짐 사이에서 파랗게 질린 얼굴로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습니다. 허연 토사물이 흩어져 있는 그 가운데에서 일본말로 계속 중얼대고 있는 그의 모습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p44)
"파드레, 파드레.“ 노인이 십자성호를 그으면서 중얼대는 그 소리에는 우리들을 위로하는 부드러움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파드레(신부님)’라는 그리운 포르투갈 말을 여기서 듣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물론 노인은 그 이외의 포르투갈 말을 알고 있을 턱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공통적 표식인 십자성호를 긋는 눈앞에서 우리도 십자성호를 그어 보임으로써 대화는 충분했습니다. (p48)
기치지로는 모든 사람 뒤에 그 비굴한 웃음을 띠고서 숨어 있었습니다. 마치 생쥐처럼 무슨 일만 일어나면 언제든 도망치려는 자세입니다. 부끄러움에 나는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p49)
우리가 목에 걸고 있던 조그마한 십자가를 주었을 때 그들의 기뻐하는 모습은 도저히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두 사나이는 다 같이 공손히 땅에 엎드려 그 십자가를 이마 위로 치켜들고 한참 동안 경배를 거듭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오랫동안 이런 십자가 하나조차 손에 넣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p50)
☑ 지금 우리가 손쉽게 가질 수 있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갈망이었다
성직자가 이만큼 보람 있는 존재란 것을 일찍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해도(海圖)를 잃고 폭풍의 바다를 떠도는 배, 이것이 아마도 오늘의 이곳 신자들의 기분일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네들을 격려하고 용기를 가져다주는 신부나 수사를 한 사람도 만지지 못하여, 점차 희망을 잃고 어둠 속을 방황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p54)
정말로 오랫동안 이 백성들은 소나 말처럼 일하다가 그렇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종교가 이 지방 농민들에게 물이 스며들듯 퍼져간 것은 다름 아닌, 난생 처음으로 이 사람들이 따뜻한 인정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으로 대해 주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성직자들의 그 친절한 인정에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p55)
그들은 기쁨이나 슬픔마저도 얼굴에 나타내서는 안 됩니다. 오랜 비밀 생활이 이 신자들의 얼굴을 가면처럼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것은 괴롭고 슬픈 일입니다. 하느님은 왜 이 같은 고난을 신자들 위에 내리시는지, 저는 의문이 들 때가 더러 있습니다. (p58)
목덜미와 잔등에 조그마한 벌레가 기어 다녀 별로 잠을 자지 못합니다. 일본의 이는 낮에는 꼼짝 앉다가도 밤만 되면 우리 몸을 염치없이 기어 다니는 버릇없는 놈입니다. (p59)
그리스도는 아름다운 것과 선한 것을 위해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것과 선한 것을 위해 죽기는 쉽지만, 비참한 것과 부패한 것을 위해서 죽기는 어렵다는 말씀의 의미를 나는 그때 확실히 알았습니다. (p66)
☑ 그리스도는 의인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위해서 오셨다. 교회는 죄인의 편이 되어야 한다.
어둠 속에 숨을 죽이고 잠자코 있었습니다. 아무리 바보 같은 포졸도 이 정도의 함정은 파놓고 덤벼들 것입니다.
“믿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저희들은 후카자와 마을의 농민인데… 저희들은 오랫동안 신부님을 뵙지 못했어요. 고해성사를 받고 싶습니다.”
이쪽 침묵에 체념한 듯 문을 흔드는 소리가 그치고, 슬픈 듯한 발소리가 멀어져 갑니다.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이 포졸이고, 함정이라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신자라면 너는 어찌할 셈이냐는 소리가 마음속에 강하게 울렸기 때문입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태어난 성직자입니다. 그 봉사를, 비굴한 육체 때문에 게을리한다는 것은 수치였습니다. (p67-68)
☑ 그리스도가 죽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듯이, 성직자는 신자들을 위하여만 존재한다.
사정이 조금씩 밝혀졌습니다. 역시 기치지로는 한 번 배교한 일이 있었던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8년 전, 그와 그의 형과 누이는 그들에게 원한을 품은 밀고자 때문에 고발을 당해 취조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때 기치지로의 형제들은 주님의 얼굴이 들어 있는 성화판을 발로 밟으라는 강요 앞에서 이것을 거절했습니다만, 기치지로는 관리의 위협하는 말만 듣고도 그만 배교하겠다고 외쳤습니다. 형과 누이는 곧 투옥되고, 석방된 그는 끝내 마을에 돌아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화형에 처해지던 날, 형장을 둘러싼 군중 속에 이 겁쟁이의 얼굴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들개처럼 흙투성이가 된 그의 얼굴은 형과 누이의 순교 모습을 지켜보지도 못하고 곧 사라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p70)
☑ 겁쟁이, 이것이 이 소설의 주요 동기다.
우리는 오늘날까지 너무나 비겁했습니다. 발을 다치고 산에서 노숙까지 해가며 우리를 찾아온 이들에 비해 너무나도 겁이 많았습니다. (p71)
갑자기 나는 두려워졌습니다. 의혹이 스쳐갔습니다. ‘어쩌면 이 사나이는 도모기 마을 사람들이 근심한 것처럼 나를 팔아넘기기 위한 앞잡이인지도 모른다. 왜 발을 다친 사나이와 이 빠진 사나이는 따라오지 않았을까?’ 이러한 때 불상(佛像)처럼 표정 없는 일본인의 얼굴은 더욱 기분이 나쁩니다. 뱃머리에 쭈그리고 앉아 나는 추위보다도 공포 때문에 몸을 떨었습니다. 그러나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타일렀습니다. (p72)
☑ 성직자도 인간이기에 당연하다. 그리스도도 수난의 잔을 앞에 두고 몸을 떨었다. 인성을 지녔기에.
고토의 농민과 어부들이 얼마나 신부를 기다리고 있었던가는 그 이 빠진 사나이가 말한 대로였습니다.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잠을 잘 틈도 없습니다. 그들은 나라의 금지령 따위는 아랑곳없는 듯 내가 숨어 있는 집으로 속속 몰려들었습니다. 어린이에게 세례를 주고 어른들에게는 고해성사를 줍니다. 하루 온종일 해도 사람들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마치 사막 속을 계속 걷던 대상들이 간신히 오아시스의 물을 발견한 듯 그들은 나를 마구 퍼마시려 합니다. 성당 대용으로 쓰고 있는 허물어져 가는 농가에 잔뜩 들어앉아 있어 공기가 탁한 데다가, 구토증이 날 정도로 구린내 나는 입을 가까이 대고서 자기네들의 죄를 참회합니다. (p73)
도모기 마을 사람들도 그러했습니다만, 이곳 농민들도 나에게 자꾸 조그마한 십자가라든가 메달, 성화 등을 갖고 있지 않느냐고 졸랐습니다. 그런 물건은 배 안에 모두 놓고 왔다고 하자 대단히 슬픈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갖고 있던 묵주의 알을 하나하나 풀어서 나누어 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일본 신자들이 숭배하는 것은 그다지 나쁜 일은 아닙니다만 왠지 묘한 불안이 생겨납니다. 그들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것이 아닐까요? (p77)
☑ 기복 신앙은 양날의 칼이다. 어쩌면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다음날이 되자 도모기 부락민들의 생각이 동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나는 새삼스럽게 그들을 책하러 하지는 않습니다만 모키치의 보고에 의하면, 그들은 우리 두 사람을 어디 딴 곳으로 옮겨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끝까지 자기네들 손으로 숨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로 갈라졌다고 합니다. 부락에 재난을 가져온 것은 결국 나와 가르페라고 말한 사람까지 있었다는 것입니다. (p89)
사교(가톨릭)를 믿고 있는 자를 알려주는 사람에겐 앞으로의 연공을 경감해 주겠다고 제의했습니다. 연공의 경감은 이곳 농민들에게 얼마나 크고 달콤한 유혹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가난한 농민들은 그 유혹을 이겨냈습니다. (p90)
☑ 눈앞에 재물은 얼마나 큰 유혹인가! 그것을 이겨낸다 함은 엄청난 힘이다.
"신부님, 저희는 성화를 밟으라 할 때 그걸 밟지 않으면 … .“
모키치는 고개를 숙이고 자기 자신에게 타이르듯 말했습니다.
“발로 밟지 않으면 저희들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 전체가 같은 취조를 받게 됩니다. 아, 저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연민의 정이 가슴에 치솟아, 나는 나도 모르게 신부님 같으면 결코 입 밖에 내지 않았을 대답을 하고 말았습니다. 일찍이 운젠 박해 때, 가브리엘 신부는 이 나라 사람으로부터 성화 밟기를 강요당했는데 그때
“그걸 밟기보다 이 다리를 잘라버리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는 얘기가 머리를 스쳤습니다. 수많은 일본 신자와 신부가 같은 기분으로 자기 발 앞에 놓인 성화를 대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이 불쌍한 세 사람에게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밟아도 좋아요, 밟아도 좋아요.”
이렇게 소리친 뒤에야 나는 내가 신부로서 입 밖에 내서는 안 될 말을 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p92)
하느님께서 이 시련을 그저 무의미하게 내리셨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모두가 선하므로 이 박해나 형벌도 나중에 가면 왜 우리를 위해 내려졌나 뚜렷이 이해할 날이 올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쓰는 것은 출발하던 그날 아침, 기치지로가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리던 말이 마음속에서 차츰 무거운 짐으로 변해 갔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무엇 때문에 이런 괴로움을 내려주십니까?”
그러고 나서 그는 원망스러운 눈길을 내게 보내며 말했습니다.
“신부님, 저희들은 별로 나쁜 짓을 한 것이 없는데 말입니다.”
그냥 들어 넘기면 아무렇지도 않은 겁쟁이의 이 어리석은 한탄이 왜 예리한 바늘 끝처럼 가슴을 이렇게 아프게 찌르는지요. 주님은 무엇 때문에 이 비참한 농민들에게, 이 일본일들에게 박해와 고문이라는 시련을 내려주시는지요. 아니, 기치지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좀 더 다른 무서운 얘기였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침묵입니다. 박해가 일어나 오늘까지 20년, 이 땅에 많은 신자들의 신음소리가 가득 차고, 신부의 붉은 피가 흐르고, 교회의 탑이 무너져 가는데도, 하느님은 자기에게 바쳐진 너무나도 참혹한 희생을 앞에 두고도 여전히 침묵만 지키고 계십니다. 기치지로의 어리석은 한탄에는 그에 대한 질문이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나는 느꼈습니다. (p93-94)
☑ 주님의 침묵은 이 소설의 주제다.
"그렇다면 다음에 또 시키는 일을 해보아라.“
그 성화에 침을 뱉고, 성모 마리아는 남자들에게 몸을 팔아온 매음부라고 말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얼마 후 곧 알게 된 것입니다만, 바리냐노 신부가 가장 위험한 인물이라고 한 이노우에가 발명한 방법이었습니다. 전에 출세를 위해 세례까지 받았던 이노우에는 일본의 가난한 농민 신자들이 무엇보다도 먼저 성모 마리아를 숭배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나도 도모기에 와서 농민들이 때로는 그리스도보다 성모 쪽을 더 숭배하고 있는 것을 보고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왜 침을 뱉지 못하는가? 왜 시킨 대로 말하지 못하는가?”
이치조는 두 손에 성화를 들고 포졸한테 등을 찔리면서 용기를 내어 침을 뱉으려고 했지만 도저히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기치지로도 고개를 숙인 채 꼼짝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찌 된 거냐?”
관리에게 엄한 재촉을 받자 모키치의 눈에서는 마침내 눈물이 솟아 빰을 흘러내렸습니다. 이치조도 괴로운 듯 고개를 저었습니다. 두 사람은 이로써 마침내 자기들이 가톨릭 신자라는 것을 몸 전체로 자백해 버린 것입니다. 기치지로만이 관리의 위협을 받아 헐떡거리듯 성모를 모독하는 말을 토했습니다. 그리고
“침 … .”
하는 말에, 그는 성화 위에 씻을 길 없는 굴욕의 침까지 뱉었습니다. (p97)
☑ 무엇이 이들을 죽음 앞에서도 굴하지 않게 하는 것일까!
십자로 엮은 두 개의 나무가 바다 속에 세워졌습니다. 이치조와 모키치는 거기에 묶이는 것입니다. 밤이 되어 조수가 밀려오면 두 사람의 몸은 턱 있는 데까지 물속에 잠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당장엔 절명하지 않고 이틀 사흘씩 걸려 심신이 다 지쳐서 숨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장시간의 고통을 도모키 부락민이나 다른 농민들에게 충분히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두 번 다시 가톨릭에 근접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관리들이 노리는 점이었습니다. (p99)
하늘도 바다도 캄캄하여 모키치와 이치조가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었고,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었으나 모두들 울면서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파도소리에 섞여 그들은 모키치의 목소리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 청년은 자기 생명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을 부락민에게 알리기 위해서인지, 숨이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끊어질 듯 가톨릭 성가를 불렀습니다.
“어서 가자, 어서 가자.
천국의 궁전으로.
천국의 궁전이라 하지만… .
넓고 넓은 궁전이라 하지만.“
모두들 잠자코 모키치의 그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감시하는 사나이도 듣고 있었습니다. 그 노랫소리는 비와 파도소리에 자주 끊겼다가는 또 들려왔습니다. (p101)
신음소리는 가끔 끊겼습니다. 모키치에겐 어제처럼 자기를 격려하기 위해 노래를 부를 기력조차 없었습니다. 끊겼다가는 한 시간쯤 지나 다시 바람을 타고 흘러 이쪽 해안에 있는 부락민에게 전해져 옵니다. 짐승이 으르렁대는 듯한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농민들은 온몸을 떨며 울었습니다. 오후에 다시금 밀물이 들어오기 시작하여 바다가 그 검고 차디찬 빛을 더하고, 말뚝은 그 속에 가라앉은 듯합니다. 흰 물거품이 이는 파도가 가끔 그 말뚝을 넘어 해변가로 밀려오고, 한 마리의 새가 바다에 닿을 듯 닿을 듯 스치면서 멀리 날아갔습니다. 이것으로 모든 것은 끝났습니다. (p102)
혼자가 되었을 때, 몸은 내 의지와 관계없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무섭지 않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입니다. 아무리 신앙을 갖고 있다 해도 육체의 공포는 의지와 관계없이 엄습해 오는 것입니다. 가르페가 있었을 때는 빵을 두 조각으로 나누듯 공포까지도 서로 나누었습니다만, 이제는 혼자서 이 밤바다 속에서의 추위와 어둠을 모두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p106-107)
☑ 성직자도 인간이다. 어찌 죽음 앞에서 두렵지 않을까?
만약 나도 신부가 아니고 한 사람의 신자였다면 이대로 도망쳤을지도 모릅니다. 나로 하여금 이 어둠 속을 가게 하는 것은 신부로서의 자존심과 의무였습니다. (p107)
하루의 피로가 나를 그 자리에서 쓰러지게 했습니다. 낙타처럼 벽에 기대어 잠들어 버렸습니다. 고양이가 내 몸 주위를 걸어 다니고, 썩은 생선을 입에 물고 돌아다니는 것을 꿈결 속에 느꼈습니다. 가끔 눈을 뜨면 부서진 몸 틈으로 별도 없는 캄캄한 밤하늘이 보였습니다. (p111)
어둠 속에 들려온 그 어두운 북소리와 같던 바다 소리, 밤새도록 아무 뜻 없이 밀려왔다간 밀려가고 밀려왔다간 다시 밀려가던 그 소리. 그 바다의 물결은 모키치와 이치조의 시체를 아무 감동 없이 씻어 삼키고, 그들의 죽음 뒤에도 똑같은 표정을 하고서 저기 저렇게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저 바다와 마찬가지로 침묵만 지키고 계십니다. 계속 침묵만 지키고 계십니다. (p117)
'그러나 만일… 물론 만일의 경우의 얘기지만‘ 마음속 깊은 한구석에서 또 다른 하나의 목소리가 속삭였습니다. ’만일 하느님이 안 계시다면… .‘ (p117)
☑ 한 번쯤은 가져보았을 상상이 아닌가? 그렇다면 얼마나 엄청난 사기극에 속은 것인가?
이것은 무서운 상상이었습니다. 하느님이 안 계시다면 그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만약 그렇다면 말뚝에 묶여 파도에 씻기던 모키치나 이치조의 인생은 그 얼마나 우스운 희극이란 말이냐. 그 먼 바다를 건너 3년이란 세월을 보내면서 이 나라에 당도한 선교사들은 그 얼마나 우스운 환영만을 쫓았단 말인가. 그리고 지금,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이 산속을 헤매고 있는 나는 또한 얼마나 우스운 짓을 하고 있는 걸까? (p118)
가장 큰 죄는 하느님에 대한 절망감이란 것을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만, 왜 하느님은 침묵만 지키고 계시는지 나에겐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지혜는 의인 하나를 구해 내어 다섯 성읍에 떨어지는 불을 피하여 달아나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불모의 땅이 지금도 연기를 피워 올리고, 나무들이 익지 않은 열매를 달고 있는 이때, 그분이 신자들을 위해 한마디라도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p118)
☑ 지금이라도 하느님이 한 마디라도 해주신다면 세상 모든 사람이 믿을 것 아닌가하는 상상도 해본다. 하지만 침묵하시는 하느님 안에 무엇인가가 숨어 있을 것이다.
배교한 자들이 포졸의 앞장이 노릇을 한다는 것은 전부터 들었습니다. 배교한 자는 자기의 비참과 상처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옛날 동지를 한 사람이라도 더 자기와 동일한 운명 속에 끌어들이려 합니다. 그 심정은, 추방된 천사가 하느님의 신자를 죄 쪽으로 유인해 들이려는 심리와 비슷할 것입니다. (p125)
"나의 몸값이 은전 3백 냥이란 말이지?“
이것이 기치지로에게 내가 처음으로 건 말이었습니다만, 그때 쓰디쓴 웃음이 나의 입가에 떠올랐습니다. 유다가 그리스도를 팔아넘긴 값은 은전 3십냥이었는데 내게는 그 열 배의 값이 매겨진 것입니다. (p127)
"모키치는 강합니다. 논에 심은 강한 모포기처럼 강합니다. 하지만 약한 모포기는 아무리 비료를 많이 주어도 자라거나 영글지 않지요. 저처럼 천성이 약한 자는 신부님, 바로 이 약한 모포기나 마찬가지지요.“
나에게 심한 비난을 받은 것처럼 느꼈던지 그는 매맞은 개처럼 겁먹은 눈을 하고서 뒷걸음을 쳤습니다. (p135)
기치지로가 말한 대로 인간은 모두 성자나 영웅은 아닙니다. 만약 이런 박해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얼마나 많은 신자가 배신하거나 목숨을 내던질 필요도 없이 그대로 자유로운 신앙을 계속 지켜 나갈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은 그저 평범한 신자였기에 육체의 공포를 이기지 못했던 것입니다. (p136)
☑ 만일 이 시대에 이런 박해가 닥쳤다면 겁쟁이인 나는 어떠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두 종류가 있습니다. 강한 자와 약한 자, 성자와 평범한 인간, 영웅과 두려워하는 자, 그리하여 강자는 이 같은 박해시대에도 신앙을 위해 불속에 뛰어들고 바다 속에 가라앉는 것을 견딜 것입니다. 하지만 약자는 이 기치지로처럼 산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너는 어느 쪽 인간이냐? 만약 신부라는 자존심과 의무감이 없다면 나는 또한 기치지로와 마찬가지로 성화를 밝았을는지도 모릅니다. (p136)
“신부님, 용서해 주십시오.”
기치지로는 땅에 무릎을 끓은 채 울음 섞인 소리로 외쳤습니다.
“저는 약합니다. 저는 모키치나 이치조같이 강한 자가 못 됩니다."
사나이들의 팔이 나의 몸을 붙잡고 땅에서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은전 몇 닢을 아직도 끓어앉아 있는 기치지로의 코앞에다 경멸하듯 내던졌습니다. (p137)
☑ 그런데 말이다, 예수님은 이런 약자를 위하여 오셨다! 의인이 아닌 죄인을 위하여 오셨듯이 …
"당신이 배교하지 않으면 농민들은 구덩이 속에 매달리게 됩니다.“ (p161)
자기는 지금 기도도 잊고 이 개밥과 같은 음식에 허겁지겁 덤벼들었다. 기도드릴 때는 하느님께 감사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구원을 청하기 위해서나 불평과 원망을 토하기 위해서다. 그것은 신부로서 굴욕이며 수치였다. 하느님은 칭송을 받기 위해 계시고 원망하기 위해 있지 않다는 것은 물론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시련의 날에 나병에 걸린 욥처럼 하느님을 칭송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p165)
"주님, 모든 것을 뜻대로 하소서.“ 하는 기도를 그는 잠꼬대처럼 중얼대었다. 그러나 지금 자기가 빠져 있는 감정은 많은 성인들이 섭리대로 하느님께 자기를 맡기려 한 것과 얼핏 보아 비슷하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이래서는 안 된다. 너는 조금씩 신앙마저 잃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려왔는데 지금은 그 목소리를 듣는 것도 괴로웠다. (p169)
"당신은 왜 모든 것을 그냥 내버려 두셨습니까?“ 하고 신부는 가냘픈 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당신을 위해 만든 마을까지도 당신은 왜 불타도록 내버려 두셨습니까? 사람들이 내쫓길 때에도 당신은 그들에게 용기를 주시지 않고, 이 어둠처럼 왜 그저 침묵만 지키고 계셨습니까? 왜? 그 왜라는 이유만이라도 가르쳐 주십시오. 우리는 당신이 시련을 위해 나병에 걸리게 한 욥처럼 강한 인간이 못 됩니다. 욥은 성자입니다만 신자들은 가난하고 약한 인간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시련에도 견딜 수 있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이상의 고통을 더는 내려주지 마십시오.‘ 신부는 기도를 드렸으나 바다는 여전히 냉랭하고 어둠은 완강하게 침묵만 계속 지키고 있었다. (p171)
하얗게 구부러지고 있는 지나온 길로 한 거지가 지팡이를 짚고 따라오는 것이 보였다. 기치지로였다. 저 바닷가에서 배를 전송하고 있던 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지금도 입을 벌리고 흐느적흐느적 걷고 있었다. 신부가 이쪽을 돌아본 것을 깨닫자 그는 황급히 나무 그늘 뒤로 숨었다. 자기를 팔아넘긴 사나이가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뒤쫓아 오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p175)
"신부가 만리타향인 이곳에 갖은 고난을 겪으며 찾아온 그 굳은 의지에 우리는 매우 감동하고 있다. 아마도 오늘까지 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상대방의 말은 부드러웠고, 그 부드러움이 신부 가슴에 아프도록 스며왔다.
뜻하지 않은 관리의 말에 긴장돼 있던 마음이 갑자기 허물어졌다. 국적이나 정치라는 제약만 없다면 우리는 서로 손을 맞잡고 오순도순 얘기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감상에까지 빠져들었다. 그러면서도 그런 감정으로 기울어진 자기를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p191)
멍하니 그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어린애처럼 순진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며 다시 손을 문지르고 있었다. 이렇게 자기의 상상을 뒤집어 놓은 상대는 처음이었다. 바리냐노 신부가 악마라 부르고, 선교사들을 속속 배교시킨 사나이를 그는 오늘날까지 창백하고 음산한 사나이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눈앞에는 상냥스레 보이는 온화한 인물이 앉아 있었다. (p194-195)
☑ 악은 가면 뒤에 숨어있다.
“저는 신부님을 처음부터 쭉 속여왔습니다. 제 말을 듣고 계십니까? 신부님은 저를 경멸하고 계셨어요. … 저는 신부님도 다른 신자들도 모두 미워했습니다. 저는 물론 성화도 밟았습니다. 밟고말고요, 모키치나 이치조는 강한 데가 있습니다만 저는 그들처럼 강해질 수가 없는 걸 없는 걸 어찌합니까?” (p199-200)
"하지만 저에겐 저 나름대로 할 말이 있습지요. 성화를 밟은 자에겐 또 그런대로 할 말이 있단 말입니다. 성화를 제가 좋아서 밟은 줄 아십니까? 성화를 밟은 이 발은 아프고 쓰립니다. 정말 못 견디게 아프답니다. 저를 이렇게 약골로 태어나게 해놓고서 강한 자 흉내를 내라고 하느님께선 말씀하십니다. 그건 너무 무리입니다. (p200)
☑ 약한 자의 절규다
그의 고함소리는 가끔 끊어졌다가는 애원하는 소리로 변하고, 그 애원하는 소리는 또다시 울음소리로 변했다.
“신부님, 저 같은 겁쟁이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때 돈이 탐나서 신부님을 밀고한 게 아닙니다. 저는 그저 포졸들에게 협박을 받았을 뿐이에요 … .” (p200)
“신부님, 제 말을 들어주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할 수 없어서 그런 짓을 했습니다. 포도 나으리, 나도 그리스도인입니다. 나도 감옥에 넣어주시오.”
신부는 눈을 감고 사도신경을 외었다. 지금 빗속에서 울부짖고 있는 사나이를 그냥 내버려 두는 데는 역시 일종의 쾌감이 따랐다. 그리스도는 유다가 피 밭에서 목을 매달았을 때 유다를 위해 기도하셨을까? (p200-201)
☑ 묵직한 질문이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신부에겐 고해성사를 거절할 권리가 없다. 고해성사를 요구해 올 때 자신의 감정에 따라 그것을 승낙하거나 거절해서는 안 된다.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그는 기치지로가 있는 곳까지 다가갔다. 손을 들어 축복의 표시를 해주고, 의무적으로 기도문을 외우면서 귀를 가져다 대었다. 구린내 나는 입김이 얼굴에 다가왔을 때, 이 사나이의 누런 이와 교활한 눈이 어둠 속에서도 떠올랐다.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신부님, 저는 배교자입니다. 하지만 십 년전에만 태어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천당에 갔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배신자라고 신자들에게 경멸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겁니다. 그만 박해시절에 태어난 죄로 … 원망스럽습니다. 저는 원망스럽습니다.” (P202-203)
커다랗게 한숨을 내뿜으며 변명의 말을 찾으면서 기치지로는 몸을 움직인다. 땀냄새가 풍겨나온다. 인간 가운데서도 가장 더러운 인간까지 그리스도는 버리지 않으려 하지 않으셨던가 하고 신부는 문득 생각했다. 악인에게는 또한 악인의 장점과 아름다움이 있다. 그러나 이 기치지로는 악인보다도 못한 것이다. 누더기같이 그저 더럽기만 한 것이다. 불쾌감을 누르고서 신부는 고해성사의 마지막 기도문을 외우고는 습관대로 “평안히 가십시오.” 하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한시바삐 이 구린내 나는 입김과 체취로부터 피하기 위해 신자들 쪽으로 돌아섰다. (p203)
'아니다, 주님께서는 누더기같이 더러운 인간밖에 찾지 않으셨다.‘ 신부는 마룻바닥에 누우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성경에 나오는 인간들 중 그리스도가 찾아 헤맨 것은 가파르나움의 하혈병 앓는 여인이라든가, 사람들에게 돌로 얻어맞는 창녀처럼 아무 매력도 없고 아름답지도 않은 존재였다. 매력 있는 것, 아름다운 것에 마음이 끌린다면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것은 사랑이 아니다. 빛이 바래 누더기가 다 된 인간과 인생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사랑이다. 신부는 그것을 이치로는 알고 있지만, 그러나 기치지로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다시금 그리스도의 얼굴이 그에게 가까이 오며 그 물기 어린 부드러운 눈으로 가만히 이쪽을 바라보았을 때, 신부는 오늘의 자기가 부끄럽게 여겨졌다. (p204)
☑ 예수님은 누더기같은 인간을 찾아 오셨고, 그들과 어울렸다. 그것이 예수님의 사랑이었다.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매미가 계속 울고 있다. 바람은 없다. 파리 한 마리도 여전히 그의 주위를 윙윙거리며 날고 있다. 외계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한 사람의 인간이 죽었다고 하는데도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p209)
'이런 일이… , 이럴 수가… .‘ 신부는 창살을 꼭 잡은 채 현기증을 일으켰다.
그가 혼란 상태에 빠진 것은 갑자기 일어난 이 안마당의 고요함과 매미소리, 그리고 윙윙거리는 파리소리였다. 한 인간이 죽었다는데 외계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금 전과 조금도 다른 데가 없다. 이런 엉터리 같은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이것이 순교라고 하는 것인가? 왜 당신은 잠자코 계십니까? 당신은 지금 저 애꾸눈의 농부가―당신을 위해서―죽었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것이다. 그런데도 왜 이런 고요함만 계속되고 있는가? 이 대낮의 고요함, 파리소리, 어리석고 무참한 일들과도 전혀 아무 관계도 없는 듯이 당신은 모른 척하신다. 그 점이 … 견딜 수가 없다. (p209-210)
그리스도가 유다에게 팔린 것처럼 자기도 기치지로에게 팔렸고,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자기도 지금 지상의 권력자로부터 심판을 받으려 하고 있다. 그분과 자기가 서로 비슷한 운명을 지니고 있다는 이런 감각은, 이 비 오는 밤 쑤시는 듯한 기쁨으로 신부의 가슴을 조인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맛볼 수 있는 하느님의 아들과 연대하는 기쁨이었다. (p218-219)
“지쿠고노가미께서는 만약 가르페 신부가 배교하겠다고 한마디만 하면 세 사람의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말씀하고 계시오. 이미 저자들은 어제 관야에서 성화에다 발을 대었소.”
“성화에 발을 댄 자에게 너무하시지 않습니까… 이제와서.”
신부는 헐떡이면서 이렇게 말했는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우리가 배교시키고자 하는 것은 저런 송사리들이 아니오. 우리나라에는 여러 곳에 아직도 비밀히 가톨릭을 믿는 백성들이 많이 있소. 그들의 마음을 되돌려 놓기 위해서 신부들이 우선 배교를 해야 하오.” (p231-232)
그는 사람들을 위해 죽으려고 이 나라에 왔는데 사실은 이 나라 신자들이 자기를 위해 차례차례 죽어가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행위하는 것은, 오늘날까지 교의(敎義)에서 배워온 바와 같이 이것이 옳고 이것이 나쁘고, 이것이 선이고 이것이 악이다, 하는 식으로 확실히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가르페가 만약 고개를 흔들면 저 세 명의 신자들은 바다 속에 돌처럼 내던져진다. 그가 관리들의 유혹을 쫓는다면, 그것은 가르페의 일생의 좌절됨을 뜻한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저 가르페 신부는 어떠한 대답을 할지, 가톨릭의 가르침은 우선 자비롭고, 하느님 역시 자비롭다고 들었는데… (p232)
☑ 그들의 유혹은 뱀처럼 교활하고 신부의 선택은 진퇴양난이다.
갑자기 거적을 두른 신자들이 뒹굴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관리가 뒤에서 힘껏 떠밀자 죄수들은 모래사장 위에 쓰러졌다. 모니카만이 벌레 같은 모습으로 꼼짝도 않고 청회색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여인의 웃음소리와 품에서 꺼내주었던 참외 맛이 신부의 마음속에서 되살아났다.
‘배교해라. 괜찮아. 배교해도 좋다.’
그는 멀리 이쪽으로 등을 지고 관리들의 말을 듣고 있는 가르페를 향해 마음속으로 외쳤다.
‘배교해도 좋다. 아니 배교해서는 안 된다.’
이마에 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 눈을 감고, 이제부터 일어날 일로부터 비겁하게도 신부는 시선을 돌리려고 했다.
당신은 왜 잠자코 계십니까? 이런 때에도 역시 잠자코 계시는 겁니까? 눈을 떴을 때 세 명의 신자들은 이미 관리들에게 쫓기면서 배를 향해 가고 있었다.
‘난 배교하겠다. 배교할 테니.’ 그 말은 목구멍까지 거의 나왔지만 이를 악물고 그 말이 음성으로 변하는 것을 참았다. 죄수들 뒤로 창을 든 두 명의 관리가 옷을 허벅지까지 걷어올리고 배에 올라타자 배는 파도에 얹혀 흔들리면서 바닷가를 떠나기 시작했다. 아직도 시간은 있다. ‘제발 이 모든 것을 가르페와 제 탓으로 하지 말아주십시오. 그것은 당신께서 짊어지지 않으면 안 될 책임입니다.’ 이때 가르페가 달리기 시작하더니 해변에서 바다를 향해 두 손을 치켜들며 뛰어들었다. 첨벙거리면서 배 쪽으로 다가간다. 헤엄치면서 부르짖고 있다.
“Audi nos(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비명인지 노호인지 알 수 없는 그 소리는, 까만 머리가 파도 속에 파묻힘과 동시에 사라졌다.
“Audi nos(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p233-234)
“당신은 비겁자요. 신부란 이름이 아깝소이다.”
승창에서 일어난 통역은 말했었다.
자기는 신자들을 구하지도 못했으며, 가르페처럼 그들을 쫓아 파도 속에 사라져 가지도 않았다. 자기는 그 사람들에 대한 가엾은 연민의 정에 이끌려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연민의 정은 행위가 아니었다. 사랑도 아니었다. 연민은 정욕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본능에 지나지 않았다. (p236)
움푹 파인 눈을 감고 그는 어둠의 고통을 가만히 견딘다.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 자기를 알고 있는 자들이 모두 잠들고 있는 이 밤, 신부의 가슴속을 도려내듯 가로지르는 것은 이와 비슷한 어느 날 밤이다. 대낮의 더위를 안고 있는 겟세마니의 회색 땅 위에 웅크리고 잠들어 있는 제자들로부터 홀로 떨어져 ‘죽도록 고통을 느끼고 땀과 피를 줄줄 떨구는’ 그분의 얼굴을 신부는 지금 골똘히 생각해 본다. 일찍이 그는 수백 번도 더 그분의 얼굴을 머리에 떠올리곤 했는데, 이처럼 땀을 흘리며 괴로워하는 얼굴만은 웬일인지 먼 존재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오늘 밤 비로소 그 여윈 표정이 머릿속에서 초점을 맞추고 있다. (p239)
그분도 그날 밤, 하느님의 침묵을 예감하고 전율을 느꼈을까? 신부는 생각하기가 싫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가슴을 느닷없이 통과하는 하나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신부는 두어 번 심하게 고개를 저었다. 모키치나 이치조가 말뚝에 묶인 채 잠겨버린 비 내리는 바다, 배를 뒤쫓는 가르페의 까만 머리가 이윽고 힘이 다해 조그마한 나뭇조각처럼 떠돌고 있던 바다, 뱃전에서 거적을 두른 몸뚱이가 수직으로 떨어져 간 바다. 바다는 끝없이 넓고 애닮게 펼쳐져 있었는데, 그때도 하느님은 바다 위에서 그저 딱딱하게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p239-240)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갑자기 이 목소리가 짙은 회색 바다의 기억과 함께 신부의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올랐다.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금요일 오후 세 시, 이 목소리는 온통 어둠에 덮인 하늘을 향해 십자가 위에서 울렸는데, 신부는 그것을 오랫동안 그분의 기도소리라 생각했을 뿐 결코 하느님의 침묵에 대한 공포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p240)
☑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느님의 침묵에 대한 공포어린 탄식 말이다.
하느님은 정말로 존재하는가? 만약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먼 바다를 건너 이 불모의 섬에 한알의 씨앗을 갖고 온 자기의 반생은 우스꽝스럽다 할 수밖에 없다. 매미가 울고 있는 한낮, 목이 짤린 애꾸눈 사나이의 인생도 우스꽝스럽다. 헤엄치면서 신자들의 배를 쫓은 가르페의 일생도 우스꽝스럽다. 신부는 벽을 향해 껄껄 웃었다. (p240)
☑ 하느님은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순교자의 죽음은 얼마나 헛된 것인가!
"신부님.“
겨우 신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개 숙인 얼굴을 약간 치켜들고서 페레이라 신부를 흘긋 보았다. 그 눈길에 비굴한 웃음과 수치스런 빛이 동시에 스쳤으나 곧 태도를 바꾸어 오히려 도전하듯 커다란 눈으로 이쪽을 내려다보았다.
신부는 또 신부대로 무슨 말을 입 밖에 내야 좋을지 몰랐다. 가슴이 막히고, 이제는 어떠한 말도 모두 거짓말이 될 듯싶었다. 이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스님이나 통역의 우월적인 호기심도 이 이상 자극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리움, 노여움, 슬픔, 원한, 이러한 여러 가지 감정이 얽혀 가슴속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왜 그런 얼굴을 합니까? 나는 당신을 책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나는 우월한 자가 아닙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억지로 미소를 지으려고 했지만, 미소 대신 마음에도 없는 한줄기 눈물이 솟아 그 눈물이 신부의 빰을 천천히 흘러내렸다. (p246-247)
“나는 이 나라에서 도움이 되고 있소.”
그동안 신부는 슬픈 듯 눈을 깜박이며 페레이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 사람들을 위해 유익하며 도움이 된다는 것은 성직자들의 유일한 소원이며 꿈이다. 신부들의 고독이란 자기가 남을 위해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페레이라는 배교한 지금에 와서도 옛날과 같은 심리적 의무감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마치 미치광이 여인이 자기 아이에게만 젖을 먹이는 것을 잊지 않듯이, 페레이라는 남에게 자기가 유익한 존재이기를 바라는 그런 옛날 생각에 지탱되고 있는 것이다. (p250)
이노우에 지쿠고노가미의 명령으로 매일 책상 앞에 앉아있는 페레이라. 일찍이 자기가 평생을 걸고 믿어온 그리스도교를 옳지 못하다고 쓰고 있는 페레이라. 붓을 들고 앉은 페레이라의 구부정한 등이 신부에겐 보이는 것만 같았다.
“무자비합니다.”
“뭐라고?”
“참혹합니다. 그 어떠한 고문보다도 이만큼 무자비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부는 얼굴을 돌리고 있는 페레이라의 눈에서 갑자기 하얀 눈물이 반짝인 것을 보았다. 일본식의 검정옷을 입고 갈색 머리카락도 일본식으로 땋고, 그리고 이름까지 사와노 추안이라 불리고 … 더욱이 아직껏 살아가고 있다. ‘주님, 당신은 아직도 침묵을 지키고 계십니다.’ (p252)
“신부님은 이제는 내가 알고 있는 페레이라 신부가 아닙니다.”
“그렇소, 나는 페레이라가 아니오. 사와노 추안이라는 이름을 관아의 수령한테 받은 사나이오. 이름만이 아니오. 사형당한 사나이의 처와 자식까지도 함께 받았소.”
페레이라는 눈을 아래로 깔고 대답했다. (p263)
"오늘 밤, 알겠나? 오늘 밤 그대는 배교할 것이다. 이노우에 님께서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이노우에 님이 신부들을 배교시킬 때 이렇게 미리 말씀하시고 틀려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사와노 씨 때도 … 그리고 그대도 … .“ (p274)
그분도 또한, 지금 자기가 겪고 있는 이 공포를 맛보셨다는 사실만이, 지금의 그에게는 둘도 없는 마음의 지주였다. 자기만이 아니라는 이 기쁨, 이 바다에서 말뚝에 묶인 두 명의 이 나라 농부가 하루 종일 똑같은 고통을 겪으면서 ‘머나먼 천국으로’ 갔다. 자기가 가르페와 그들과 연결이 되고, 다시 십자가 위의 그분과 결합돼 있다는 기쁨이 갑자기 신부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분의 얼굴은 이때, 일찍이 보지 못한 활기찬 모습으로 그에게 육박해 왔다. 고통을 느끼고 있는 그리스도, 견디고 있는 그리스도, 그 얼굴에 자기 얼굴이 진정으로 다가가도록 그는 충심으로 기도했다. (p275)
벽은 목재로 돼 있고, 그것을 만져보면 무엇인가 깊숙한 틈새 같은 것이 손 끝에 느껴졌다. 처음엔 그것을 나무와 나무를 이은 자국으로만 알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고 무슨 무늬처럼 느껴졌다. 다시 그것을 더듬어 만져보는 동안 L자라는 것을 차차 알게 되었다. 다음에는 A라는 글씨도 있었다. ‘LAUDATE EUM(주님을 찬미하라).’ 신부는 장님처럼 그 주위를 손으로 더듬어 보았지만 그 글씨 이외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손 끝에 닿지 않았다. 아마 어느 선교사가 이곳에 갇혀, 다음에 올 사람을 위해 라틴어로 벽에 글씨를 새겨놓았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그 선교사가 이곳에 있는 동안은 결코 배교도 안 하고 오직 신앙에 불타 있었다는 점이다. 이 사실은 어둠 속에 혼자 남은 신부를 갑자기 통곡할 만큼 감동시켰다. 최후까지 자기가 그 어떤 형태로 지켜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P277)
'LAUDATE EUM.' 이라고 써 있는 벽에 얼굴을 대고 그는 언제나처럼 그분의 얼굴을 마음속에 그린다. 청년이 머나먼 타향에서 친구의 얼굴을 생각하듯, 신부는 예부터 고독한 순간이면 그리스도의 얼굴을 상상하는 버릇이 있었다. 하지만 체포된 뒤―특히 저 잡목림의 바람소리가 들리는 한밤의 옥사에서는 좀더 다른 욕망으로 그분의 얼굴을 망막 속에 새기고 있었다. 그 얼굴은 지금도 이 어둠 속에서 바로 그 가까이에 있으며, 침묵을 지키고는 있지만 다정한 눈으로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 마치 그 얼굴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대가 괴로워하고 있을 때 나도 곁에서 괴로워하고 있다. 끝까지 나는 그대 곁에 있겠다.’
(P278)
☑ 결코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그분은 함께 계신다.
이 어두운 울안에서 죽음을 눈앞에 두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감정을 맛보고 있을 때, 다른 인간이 저렇게 태평스럽게 코를 골고 있다는 것이 웬일인지 몹시 우스웠다. 인생에는 어째서 이런 못된 장난이 허용되는 것일까, 하며 그는 또 작은 소리로 웃었다. (P279)
어둠이 숲 속을 지나는 바람처럼 갑자기 죽음의 두려움을 신부의 마음속에 날라왔다. 두 손을 꼭 쥐고 그는 “아, 앗!”하고 큰 소리로 외친다. 그러면 두려움은 썰물처럼 물러난다. 그러고는 다시 밀려온다. 열심히 주님께 기도드리려고 했지만 마음속을 띄엄띄엄 스쳐가는 것은 ‘피땀을 흘린’ 그분의 찡그린 얼굴이었다. 지금은 그분이 자기와 마찬가지로 죽음의 공포를 맛보았다고 하는 사실도 위로가 되지 못했다. 이마를 손으로 닦으면서 오직 마음을 돌리기 위해 신부는 좁은 울안을 서성거렸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는 배겨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P280)
"신부님, 용서해 주셔요.“
신부는 눈을 감고 고해성사의 기도문을 입속으로 외었다. 혀 끝에 쓰디쓴 맛이 남았다.
“저는 원래가 마음이 약합니다. 마음 약한 자는 순교도 못 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아, 어째서 저는 이런 세상에 태어났는지요?”
그 목소리는 바람에 끊어지듯 다시 멀어져 간다. 고토에 돌아왔을 때 신자들에게 인기가 있던 기치지로의 모습이 그 사나이도 명랑하고 익살스런 신자로서 한평생을 보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P282)
☑ 나의 모습이다.
"오늘 밤 그대는 틀림없이 배교할 것이다.“ 하고 통역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마치 베드로를 향해 그분이 말한 것처럼.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여명은 아직 멀고 닭은 울 때가 아니다. (P284)
신부는 페레이라가 통역 뒤에 서 있는 줄은 몰랐다.
“시와노 씨, 좀 가르쳐 주시오.”
아주 먼 옛날, 신부가 매일 들던 그 페레이라의 목소리가 조그맣고 슬프게 간신히 들였다.
“저건 코 고는 소리가 아니오. 구덩이에 거꾸로 매달린 신자들이 신음하고 있는 소리요.” (P286)
“나도 저 소리를 들었다. 구덩이에서 거꾸로 매달린 사람들의 신음소리를 말이다.”
그 말이 그치자 다시금 코 고는 소리가 높게 낮게 귀에 들려왔다. 아니, 그것은 이미 코 고는 소리가 아니라, 구덩이에 거꾸로 매달린 사람들의 지쳐 떨어진 숨이 끊길 듯한 신음소리라는 것이 신부에게도 지금은 뚜렷이 느껴졌다.
자기가 이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동안 누군가가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었다. 자기는 그것도 모르고, 기도도 드리지 않고 웃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신부의 머리는 이제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자기는 그 소리를 우스꽝스럽다고 소리 내어 웃기까지 했다. 자기만이 이 밤 그분과 마찬가지로 괴로워하고 있다고 오만하게도 믿고 있었다. 하지만 자기보다도 더욱 그분을 위해 고통을 받고 있는 자가 바로 곁에 있었던 것이다. (p288)
☑ 전율!
"LAUDATE EUM(주님을 찬미하라). 나는 그 글씨를 벽에 파놓았다.“
하고 페레이라는 되풀이했다.
“그 글씨를 찾지 못했나? 찾아보게.”
“알고 있소.”
노여움을 이기지 못해 신부는 비로소 외쳤다.
“잠자코 계시오. 당신에겐 그런 말을 할 권리가 없소.”
“권리는 없다. 확실히 권리는 없지. 나는 저 소리를 밤새도록 들으면서 이미 주님을 찬미할 수 없었다. 내가 배교한 것은 구덩이에 거꾸로 매달렸기 때문이 아니다. 사흘 동안 … 나는 오물로 가득한 구덩이 속에 거꾸로 매달렸지만 한마디도 하느님을 배반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페레이라는 마치 포효하듯 고함을 쳤다.
“내가 배교한 것은 말이다. 잘 듣겠나. 그 뒤 이곳에 갇혀서 들은 저 소리에도 하느님께서 아무것도 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필사적으로 기도를 드렸지만 하느님은 아무 일도 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P289)
"저 신자들은 지금 그대가 알지 못하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다. 어제부터, 조금 전에도, 지금 이때도, 왜 그들이 저렇게까지 고통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되는가? 그런데도 그대는 아무 일도 해주지 못한다. 하느님도 아무 말을 하지 않으신다.“
신부는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며 두 귀를 손으로 막았다. 그러나 페레이라의 목소리, 신자들의 신음소리는 그의 귀에 사정없이 들려왔다. 그만 해주시오. 그만 해주시오. 주님, 당신은 이제야말로 침묵을 깨셔야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잠자코 계셔서는 안 됩니다. 당신이 옳고, 선하고, 사랑의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고 당신이 엄연히 있다는 것을 이 지상과 인간들에게 명시하기 위해서라도 무슨 말씀이든 하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P290)
“내가 이곳에 있던 밤에는 다섯 명이 매달려 있었다. 다섯 개의 소리가 바람 속에서 뒤엉켜 귀에 들려왔다. 관리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배교하면 저 사람들을 곧 구덩이에서 끌려올려, 밧줄도 풀고 약도 발라주겠다고. 나는 대답했다. 저 사람들은 왜 배교하지 않으냐고. 관리는 웃으며 가르쳐 주었다. 그들은 벌써 몇 번이고 배교하겠다고 실토했다. 하지만 그대가 배교하지 않는 한 저 농부들을 살려줄 수는 없노라고.” (P291)
☑ 자신이 배교하지 않으면 저들이 죽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대는 그들보다 자기가 더 소중한 모양이지. 적어도 자기의 구원이 더 중요한 모양이지. 그대가 배교한다고 하면 저 사람들은 구덩이에서 끌어올려진다. 고통에서 구출된다. 그런데도 그대는 배교하려 하지 않는다. 그대는 그들을 위해 교회를 배반하는 것이 무섭기 때문이다. 나같이 교회의 오점이 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노한 듯 단숨에 말한 페레이라의 목소리가 차츰 약해졌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 캄캄하고 차디찬 밤, 나 역시 지금의 그대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것이 사랑의 행위인가? 신부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야 한다. 만약 그리스도가 이곳에 계시다면… .”
페레이라는 순간 침묵을 지키다가 곧 명백하고 힘차게 말했다.
“분명히 그리스도는 그들을 위해 배교했을 것이다.” (p292-293)
“그리스도는 사람들을 위해 확실히 배교했을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
신부는 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그 손가락 사이에서 잡아당기는 듯한 소리를 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리스도는 배반했을 것이다. 사랑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시키더라도.” (p293)
☑ 이것이 이 소설의 주제다. 가슴을 울리는 묵직한 질문이다.
새벽의 희미한 빛, 빛은 노출된 신부의 닭처럼 가느다란 목과 쇄골이 드러난 어깨에 비쳤다. 신부는 두 손으로 성화를 들어 올려 얼굴에 갖다 댔다. 수많은 사람들의 발에 짓밝힌 그 얼굴에 자기 얼굴을 대고 싶었다. 목판 속의 그분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짓밟힌 까닭에 마멸되고 오그라든 채 신부를 슬픈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에서는 진정 한 방울의 눈물이 흘러 떨어질 것만 같았다. (p296)
신부는 발을 올렸다. 발에 둔중한 아픔을 느꼈다. 그것은 형식이 아니었다. 자기는 지금 자기 생애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다고 여겨온 것, 가장 성스럽다고 여겨온 것, 인간의 가장 높은 이상과 꿈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밟는 것이었다. 이 발의 아픔, 이때 밟아도 좋다고 목판 속의 그분은 신부를 향해 말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들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나, 너희들의 아픔을 나누어 갖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졌다.
이렇게 해서 신부가 성화에다 발을 올려놓았을 때, 아침이 왔다. 닭이 먼 곳에서 울었다.
(p296-297)
☑ 밟아도 좋다. 이것이 사랑의 끝이다.
이제는 나의 모든 약점을 감추지 않는다. 저 기치지로와 나와 어느만큼의 차이가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보다도 나는 성직자들이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신과 나의 주님이 다름을 알았다.‘ (p301)
많은 사람들이 밟은 탓으로, 동판이 박힌 판대기에는 거무스레한 엄지발가락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얼굴도 너무나 밟힌 탓에 움푹 파이고 마멸돼 있었다. 움푹 파인 그 얼굴은 고통스럽게 신부를 쳐다보며 호소하고 있었다. ‘밟아도 좋다. 밟아도 괜찮다. 너희들에게 짓밟히기 위해서 나는 존재하고 있다.’ (p302)
☑ 우리에게 짓밟히기 위해 오신 그분.
성화판은 대개 길이 7푼에서 8푼, 너비는 4푼서부터 6푼까지의 널판에다, 성모나 예수상을 박아 놓았다. 우선 집주인이 밟고, 그다음에 아내가, 그러고 나서 아이들이 밟는다. 젖먹이는 어머니가 안고 밟게 했다. 병자가 있으면 관리 입회 하에 누운 채로 성화판에 발이 닿게 했다. (p319)
그는 나직한 소리로 웃었다. 운명은 그가 표면적으로 바라고 있던 것을 모두 가져다주었다. 종신토록 독신으로 살겠다고 맹세한 신부였던 자기가 아내를 맞는다. ‘나는 당신을 원망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인간의 운명에 대해 웃고 있을 뿐입니다. 당신에 대한 신앙은 옛날의 그것과는 다릅니다만 역시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p325-326)
“저는 신부님을 팔아넘겼습니다. 성화판에도 발을 올려놓았습니다.”
기치지로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계속된다.
“이 세상에는 약자가 있습니다. 강자는 그 어떤 고통에도 굽히지 않고 천당에 갈 수 있겠지만 저 같은, 태어나면서부터 약자는 성화판을 밟으라고 관리들이 고문하면… .” (p328)
그 성화판에 나도 발을 얹었다. 그때 이 다리는 움푹 파인 그분의 얼굴 위에 있었다. 내가 수백 번도 더 머리에 떠올린 얼굴 위에, 산속에서 방랑할 때, 또 옥사에서 한시도 잊지않고 있었던 그 얼굴 위에, 인간 중에 가장 착하고 아름다운 그 얼굴 위에, 그리고 한평생 사랑하려 했던 분의 얼굴 위에, 그 얼굴은 지금 성화판 나무 판대기 속에서 마멸되고, 움푹 파여, 슬픈 듯한 눈을 하고서 이쪽을 보고 있다. ‘밟아도 괜찮다.’ 하고 슬픈 듯한 눈초리는 내게 말했다.
‘밟아도 괜찮다. 너의 발은 지금 아플 테지. 오늘날까지 나의 얼굴을 밟은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아플 것이다. 하지만 그 발의 아픔만으로 이제는 충분하다. 나는 너희들의 그 아픔과 고통을 나누어 갖겠다. 그 때문에 나는 존재하니까.’
‘주님, 당신이 언제나 침묵하고 계시는 것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함께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
‘그러나 당신은 유다에게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네가 하려는 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유다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지금 너에게 성화판을 밟아도 괜첞다고 말한 거와 같이 유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말한 것이다. 너의 발이 아픈 것처럼 유다의 마음도 아팠으니까.’
(p328-329)
☑ 약한 자의 하느님의 모습이다. 그분은 강한 자뿐만 아니라 약한 자도 사랑하신다. 그것이 우리의 위안이 된다.
그때 그는 성화판에 피와 먼지로 더럽혀진 발을 올려놓았다. 다섯 발가락은 사랑하는 분의 얼굴 바로 위를 덮었다. 그 치열한 기쁨과 감정을 기치지로에게 설명할 도리가 없다.
“강한 자도 약한 자도 없다. 강한 자보다 약한 자가 괴로워하지 않았다고 그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p329)
나는 그들을 배반했을지 모르나 결코 그분을 배반하지 않았다.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형태로 그분을 사랑하고 있다. 내가 그 사랑을 알기 위해서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이 나라에서 지금도 최후의 그리스도교 신부다. 그리고 그분은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설령 그분은 침묵하고 있었다 해도 나의 오늘날까지의 인생이 그분에 대해 얘기하고 있으니까. (p330)
3. 이 책에 대한 간략한 나의 느낌 또는 소개
수십 년전 젊은 시절에 읽은 이 소설을 다시 읽었다. 역사는 강한 자의 기록이라 했던가! 순교사 역시 강한 자의 기록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약한 자의 고뇌도 분명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던 주님의 고뇌도 역시 있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얼마나 용기있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회개합니다.
일본 사람들도 우리 나라와 같이 천주교로 인해 박해를 많이 받았군요. 일본에도 순교자가 있었다는 것을 몰랐던 무식이 부끄러운 새벽입니다. 아직도 잡서의 재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있는 지금입니다.
영성서적 일는 맛도 쏠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