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에 대하여
다 깨어지는 때에 혼자 성키 바랄소냐
금이야 갔을망정 벼루는 벼루로다
무른 듯 단단한 속을 알 리 알까 하노라. (최남선 작)
나는 작가가 되어 그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면서 친일파의 문제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견지했다. 나는 그런 태도를 속으로 강화해 가면서 식민지시대를 꼭 소설로 써야 한다는 결심을 굳혀가고 있었다.
친일파들이 모든 분야를 장악한 새 나라에서 독립운동가라서 취직이 안되고, 일제의 고등계형사질을 하며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했던 자들이 새 나라의 경찰로 둔갑해서 똑같은 지하실에서 다시 독립운동가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고문하고, 친일파들에 대한 연구를 하던 젊은 학자가 사회진출이 완전 차단되어 버린 사실 같은 것들을 구체적으로 확인해가면서 나는 끝없이 괴로워했고 아픔을 겪었고 밤잠을 설쳤다. 그러면서 반역의 역사에 대한 나의 분노는 이성화되었고, 증오는 논리화되어 갔다. 그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는 소설을 써야 한다는 욕구와 열정으로 변모했다.
(중략)
나는 <아리랑>을 시작하면서 나 자신의 의지를 어느 부분 믿을 수가 없어서 써붙인 글이 있다.
kbs 인문학 강의에서
작가는 36년 동안 죽어간 우리 민족의 수가 400여만! 2백자 원고지 2만 매 12권('한국일보90.12~'95.7월,광복 50주년 탈고)를 쓴다 해도 내가 쓸 수 있는 글자 수는 얼마인가?(400여만자가 안 됨)
군산에서 출발 일본, 중국(만주), 연해주, 미국 등 지구 3바퀴 반의 취재역정을 통하여 잃어버린 조국을 찾고자 몸부림쳤던 독립운동가들의 처절했던 활동과 반민족행위자들이 가한 동포들의 한많은 설움과 희생이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으로 그려진 근.현대사 아리랑.
나는 <아리랑>을 쓰면서, 쓰는 일 자체에서 오는 지겨움과 괴로움에 부딪칠 때마다 그 시대를 처절한 고통 속에서 위대하게 싸우다 죽어간 많은 분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나를 추스르고는 했다.
(중략)
우리 모두의 삶 속에 체질화되어 있는 무책임과 거짓말과 속임수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대부분 전문가들은 돈이 절대권능을 발휘하고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된 천민자본주의가 주범 이라고 진단한다. 일정 부분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이 횡행한 이 사회의 40년과 직결되어 있다. 다시 말하건대 친일파 민족반역자, 그들이 누구인가? 기회주의자 이기주의자 파렴 치한의 표본이 아닌가. 그들이 저 대통령에서부터 사회 구석구석의 기득권을 장악한 채 40년을 지배한 이 땅에 어찌 정의가 있고 양심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 천민자본주의도 바로 그자들에 의해서 잉태되었음을 주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나는 <아리랑>을 통해서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이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가도 소상히 쓰려고 노력했고, 그들이 왜 민족의 이름으로 단죄되어야 하는지를 밝히고자 했다.
이제 우리는 광복 50주년을 맞았다. 이 시점을 계기로 우리가 해야 될 두 가지 중대한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민족통일에 대한 남북의 진정하고 진실된 태도 확립이다.
둘째는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이 만연시킨 사회적 병폐를 일소시키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반민족행위자 특별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
이 말에 나를 시대착오적인 미친놈이라고
비웃을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의 근거는 우리와 똑같은 비극을 겪은 이스라엘을 근거로 하는 것이다. 그들은 민족의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라는 것을 아예 인정하지 않고 영원히 처단하는 단호성을 보이고 있다. 그 단호성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프랑스 에서 배운 바도 적지 않을 것이다.
『아리랑』에 대하여
박제된 민족의 역사에 불어넣은 강인한 생명력! 우리 한민족의 뜨거운 숨결과 기상을 되살려낸 『아리랑』!
『아리랑』은 일제 침략기부터 해방기까지 한민족의 끈질긴 생존과 투쟁, 이민사를 다룬 민족의 대서사시다. 《한국일보》에 원고지 2만 매의 분량으로 연재된 원고는 제1부 〈아, 한반도〉, 제2부 〈민족혼〉, 제3부 〈어둠의 산하〉, 제4부 〈동트는 광야〉의 전체 4부로 구성되었다.
『아리랑』은 군산과 김제를 비롯 지구를 세 바퀴 반이나 도는 수많은 취재여행과 자료조사를 거치며 ‘발로 씌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만주·중앙아시아·하와이에 이르는 민족이동의 길고긴 발자취를 따라가며, 일제 수탈기 소작농과 머슴, 아나키스트 지식인의 처절한 삶과 투쟁을 위대한 문학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아리랑』은 하나의 역사적 연대기이면서도 각 등장인물들의 행동이나 심리, 일상들을 세밀하게 엮어낸다. 그리하여 이름 없는 민중들의 행위 하나하나가 역사의 진행 방향에 어떻게 작용하고, 역사적 진실을 일궈내는가를 자세히 보여준다.
특히 지난 1996년 프랑스 아르마땅 출판사와 전12권 출판계약을 맺고 1998년 1부 3권이 나온 데 이어, 2003년 5월 전권이 완간되었다. 이는 유럽에서 한국의 대하소설로는 최초의 기록이다. 또한 작품의 무대인 전북 김제에 아리랑문학관이 건립되어 뜨거운 작가정신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살아 있는 문화체험과 역사교육의 장으로서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아리랑』은 일제의 폭압에 맞서는 우리 민족의 저항과 투쟁, 그리고 승리의 역사를 부각시켜 민족의 자긍심과 자존심을 회복시켜 주는 민족문학의 기념비라 할 수 있다.
▶『아리랑』연보
1990년 12월 11일 《한국일보》에 연재 시작
1994년 1부 「아, 한반도」, 2부 「민족혼」, 3부 「어둠의 산하」 출간, 연재를 중단하고 본격 집필에 들어감
1995년 8월 총 2만 매의 대장정 끝내고 해방 50주년을 맞이하며 제12권을 출간함으로써 완간, 우리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 3위(《시사저널》), 20대 남녀독자 294명이 뽑은 ‘가장 읽고 싶은 책'1위(《도서신문》), 사회 각 분야 전문가 47인이 뽑은 ‘올해의 좋은 책'1위(《출판문화》)
1996년 단일 주제 비평서인 『아리랑』 연구서 『아리랑연구』 가 조남현 외 11인의 집필로 출간, 프랑스 아르마땅출판사와 완역 출간계약 체결,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 4위(《조선일보》)
1998년 서울대학 도서관 대출1위(《조선일보》)
1999년『태백산맥』과 나란히 20세기 한국의 베스트셀러(《중앙일보》)에 선정
2000년 9월 29일 『아리랑』의 발원지 전북 김제에 시민의 이름으로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 문학비’를 벽골제 광장에 세움, ‘소설 분야, 90년대의 책’(교보문고)
2003년 전북 김제에 아리랑문학관 개관, 아리랑 프랑스어판 전12권 완역 출간
책속으로
조국은 영원히 민족의 것이지 무슨무슨 주의자들의 소유가 아니다. 그러므로 지난날 식민지 역사 속에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피흘린 모든 사람들의 공은 공정하게 평가되고 공평하게 대접되어 민족통일이 성취해 낸 통일조국 앞에 겸손하게 바쳐지는 것으로 족하다. 나는 이런 결론을 앞에 두고 소설 『아리랑』을 쓰기 시작했다. 그건 감히 민족통일의 역사 위에서 식민지시대의 민족수난과 투쟁을 직시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만이 아니다. 미래의 설계가 또한 역사다. 우리는 자칫 식민지시대를 전설적으로 멀리 느끼거나 피상적으로 방치하는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 그러나 민족분단의 비극이 바로 식민지시대의 결과라는 사실을 명백히 깨닫는다면 그 시대의 역사를 왜 바르게 알아야 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