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 후기 영남 10대 명문]
1, 진주강씨 정민공 잠은 강흡 증조 강억 가문[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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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안동권씨 시인,문장가 하당 권두인 선조 우찬성 충정공 충재 권벌 가문[닭실= 유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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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의성김씨 관찰사 문충공 학봉 김성일 부친 청계 김진 가문[내앞=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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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의성김씨 임시정부 의정원 부의장 심산 김창숙 선조 김희삼 가문[사월,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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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전주유씨 병조참판 정재 유치명 선조 유성 가문[박실,무실, 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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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풍산유씨 영의정 문충공 서애 유성룡 부친 관찰사 유중영 가문[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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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여주이씨 형조참판 금파 이정병 선조 좌찬성 문묘배향 문원공 회재 이언적 가문[영일,영천,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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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진성이씨 판의금부사 이효순 선조 우찬성 문묘배향 문순공 퇴계 이황 가문[상계,하계,원촌,번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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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소개[영남 8대 명문; 147번 영남 5대명문 추가 보완] (2004-09-16 오후 8:52:10)으로 나간 위의 [조선 중, 후기 영남 8대 명문]에다가 아래 두 가문을 추가하고자 합니다.
아 래[가나다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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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풍산 김씨 이조참판 망와 김영조 증조 김의정 가문[경북 오미동, 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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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사대부의 영예를 한껏 자랑한 문중입니다. 청백리로 명성이 있는 김양진의 증손 김대현은 아들 8형제를 두었습니다. 8형제가 모두 진사시에 합격하고 그 중 5형제가 문과에 급제하여 영남은 물론 왕실까지 놀라게 했습니다. 인조는 그 소식을 듣고 고금에 드문 일이라 하여 그들이 사는 영남의 오릉동을 오미동으로 이름을 고치라 명하고 그 마을 어귀에 경상감사로 하여금 봉황려라는 문을 세우게 했습니다.
5형제가 모두 현달하였으며 그 중 김영조와 김응조 형제는 문명을 떨쳤습니다. 영남 하도에서는 한강 정구가, 위녘에서는 망와 김영조와 학사 김응조 형제가 어지러운 세상의 기강을 붙들어 세웠다고 세상 사람들이 칭송했습니다. 이 5형제의 후손에서 문과 급제자가 쏟아져 나오고 글 잘하는 선비 또한 무리로 나왔습니다.
조선 침략의 아성인 일본 황성에 폭탄 한 개를 던지고 또 한 개는 니주바시 한복판에 던지다가 일경에 붙잡혀 무기징역을 받은 김지섭, 북만주 일대에서 왜적과 싸우면서 용맹을 떨친 김만수, 상해 임시 정부 법무차장을 지내며 독립 운동을 한 김응섭 등 많은 독립 운동가를 배출하였습니다.
현대 인물로 오록의 육군대장 김재창, 홍익대 총장 및 문교차관 김호직, 조선일보 논설위원 김상현, 한국일보 논설위원 김자환, 대구일보 사장 및 경북 부지사 김각현, 차장검사 김영재, 삼성공영 사장 김상재, 공군 소장 김진섭, 공군 준장 김병탁, 동양고무산업 사장 김우섭, 초대 성균관장 및 임정요인 김병옥, 신아조선 사장 김태섭, 요르단 대사 김재성, 부장판사 김재진, 부산부시장 김병순, 서울남부 보훈지청장[행시] 김병후, 연세의대 교수 김낙수, 숭실대 교수 박사 김성진, 치의학 박사 김창현, 공학박사 김형순, 의학박사 김만섭, 교수 김준현, 의학박사 김옥재, 교수 김우섭, 의학박사 김양, 박사 김재승, 박사 교수 김중대, 박사 김병진, 교수 김충섭, 전문의 김화섭, 의학박사 김재정
대검 검사 심계원 차장 김완섭은 아버지가 판사 변호사인 김병도이며 아들 재영[박사 교수, 부인이 약사로 대법원장 김병로의 손녀], 아들 재만[박사 교수], 아들 재철[사시, 인천 지방법원장] 딸 영자[부군 서울대 공대 학장 박사 김이양], 딸 달생[부군 고려대 부속병원장 박사 신흥수], 딸 영옥[부군 공학박사 홍승우], 딸 양미[부군 서울법대 교수 박사 이태로], 완섭의 사촌 김헌섭 광주 지법원장이다.
이 집안 사위들;김옥교 부군 쌍용양회 사장 김채겸, 김문자 부군 교수 배한경, 김선자 부군 변호사 서재웅, 김일희 부군 재일본거류민단 부단장 김시현, 김오생 부군 한진 이사 김진경, 교수 김득성 부군 교수 황의동, 김중희 부군 의대교수 조동택[조동택 부친 경북 도지사 조준영], 김정춘 부군 이영섭[이영섭 부친 내무차관 이상룡], 김미영 부군 박사 김영주, 김순희 부군 박사 교수 안병렬, 의학박사 부군 산림조합중앙회 회장 차종태, 김순자 부군 의학박사 고경환, 김찬주 부군 의학사 병원장, 김재남 부군 육군 소장 적십자 병원장, 김경옥 부군 육대 교수, 김윤희 부군 신한은 지점장 권영상[ 권영상 부친 육군 준장 권태순], 김선희 부군 의학박사 윤문호, 김남희 부군 공학박사 백승한, 김재장 부군 박사 교수 김학균
2.우참찬 문간공 여헌 장현광 조부 장계증 가문[ 이하 존칭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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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참찬 문간공 여헌 장현광의 후손은 문과 급제만 20명 이상을 냈다. 저서가 있는 선비가 4-50명이 된다. 숙종 때 부제학과 대사간을 지낸 장응일[여헌의 4촌 현도의 아들로 현광에 입양함]은 청렴, 강직하기로 명성이 높았다. 여헌 후손 장석룡은 헌종 12년 문과에 장원하여 형조판서를 지냈다. 그의 아들 승원은 경상도 관찰사를 지냈으며 승원의 아들 택상은 대한민국 3대 국무총리를 지냈다.
장시표는 문장에 능했으며 목민관으로 선정을 베풀어 이름이 있었다. 사미헌 장복추는 유일로 천거되어 감역, 도사를 거쳐 가선대부에 올랐다. 그 뒤 벼슬을 버리고 향리에서 학문에만 전심하여 성리학과 예학에 정통하였다. 남쪽에는 사미헌 장복추 북쪽에는 이재 권연하를 경학으로 꼽았다. 이진상, 이정상, 정삼석 등과 도의로 사귀었으며 조긍섭, 송준필, 장석영 등 많은 문인을 배출했다.
언론인, 계몽운동가로 황성 신문 사설에 [시일야 방성대곡]을 썼던 장지연이 유명하다. 임시 의정원 의원, 의열단원으로 독립운동을 한 장건상, 독립 운동가 장재성 등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현대 인물로 녹색대 총장 장희익, 3대 국회의원 장병만, 대구 고등법원장 장기상, 전주 교육대학장 장지형, 한국 경금속 협회 회장 장석종, 의학 박사 장우익, 2대 국회의원 장건상, 육군 준장 및 인천시장 장지영. 변호사 장세헌, 소아과 병원장 장성익, 이사관 장재형, 의학박사 장병하, 의학박사 장세경, 미국 검사 장병조, 법제처 이사관 장인진 등 다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