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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MR. Monday 미스터 먼데이.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는 어떠했을까?
주마가 차 안에서 오늘 고답사에서 느꼈던 소감을 수첩에 간단히 메모를 하고 있는데 하얀 색 소나타 한 대가 주마의 차 옆으로 매끈하게 들어오더니 멈춰 섰다. 그리고는 하얀 면바지에 노란 긴팔 블라우스 차림의 여자가 차에서 내렸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주마가 타고 있는 차의 차창을 가볍게 두드렸다. 살짝 고개를 숙인 여자의 목 아래로 자그마한 목걸이가 반짝 빛나며 출렁거렸다. 색깔 선명한 녹색의 에메랄드가 박혀있는 사슴형상의 목걸이였다.
“저기요, 실례하지만 여기가 도투락펜션이 맞지요?”
“네, 그렇습니다.”
“저어~ 여기에서 사람을 만나기로 했는데, 혹시 카메라를 들고 모여 있는 사람들 보지 못하셨어요?”
“아, 네. 저기 오늘 출사를 나오신 일행들을 찾고 있습니까?”
“네, 그분들을 보셨어요? 숲길에 나있는 갈림길에서 전화를 해보았는데 전화가 터지지 않아서 아직 일행들과 연락을 못 해보았거든요.”
“오늘 예약된 방이 도투락펜션 난실이라고 하지 않던가요?”
“네, 맞아요. 혹시 우리 일행이세요?”
“그러시군요. 네, 맞습니다. 일행들은 먼저 사진을 찍는다고 고답사로 올라갔답니다. 나는 이곳에 일찍 도착을 해서 고답사를 보고 내려왔기 때문에 나더러 기다렸다가 고답사까지 안내를 해달라고 부탁을 하더군요.”
“어머, 그러셨어요. 저 때문에 미안합니다. 많이 기다리셨어요?”
“뭐, 약간요. 지루하지는 않았습니다. 날씨가 흐려서 좀 그렇기는 하지만 참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네요.”
“그렇지요? 이곳을 다녀온 친구에게 이야기를 듣고 고답사와 이 부근에 있는 폐교를 출사지로 추천한 사람이 바로 저거든요. 참 좋지요?”
“네, 근방에 있다는 폐교도 경치가 뛰어나다고 그러더군요. 나는 잠시 후에 폐교를 다녀올까 합니다만.”
“어머나, 그러세요? 저도 친구가 폐교 자랑을 얼마나 하던지 사실 폐교부터 가보고 싶었거든요. 저어~ 폐교로 가시는 길이면 저도 좀 함께 데려가 주실래요?”
“그럴까요? 고답사까지 안내를 해드리고 나서 폐교를 보러 가려고 했는데,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폐교로 가보시겠어요?”
“네, 차에서 배낭 안에 카메라가방만 챙겨 넣어 가면 되니까 잠깐만요. 고맙습니다.”
주마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차안에서 카메라가방이 든 배낭을 챙겨들고 있는 여자를 쳐다보았다. 우드가 지방에서 바로 올라오는 일행이 여자라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하고 생각을 해보았지만 어느 사진 동호회나 여자회원들은 남자회원 못지않게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으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가 배낭을 어깨에 메고 날렵한 동작으로 주마 옆에 차렸!하는 자세로 섰다. 주마는 별 다른 준비물이랄 게 따로 없었다. 펜션 주차장에서 숲길까지 나간 두 사람은 숲길 위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해를 완전히 가린 흐린 하늘에다가 간간히 불어오는 숲 바람으로 인해 일주일 전의 서울 날씨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시원해진, 하루 중에도 일기의 변화가 심한 산속의 날씨였다. 하지만 이 정도의 기온이라면 설혹 비가 내려 옷이 좀 젖더라도 쌀쌀하거나 춥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 비교적 편안한 숲길이었지만 여자는 배낭을 멘 채 고른 호흡으로 씩씩하게 잘 걸어갔다. 아마 출사를 자주 다니거나 산행을 많이 해본 솜씨 같다고 생각을 했다. 하늘이 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았으나 날씨는 더 흐려졌는지 아직 시간상으로는 훤해야할 텐데 어느 순간부터는 해질 무렵 같은 느낌을 주었다. 아무래도 산 속이라 대기가 비를 준비하는 듯 숲으로 산안개가 스멀스멀 밀려오기 시작했다.
숲길의 양 옆에서 짙고 옅은 안개의 흐름이 나올치듯 흘러 다녔다. 아주 미세한 물방울들이 목덜미와 팔등에 묻어나는 것 같았다. 가까운데서 보면 안개지만 멀리서 보면 산 중턱을 감고 있는 구름으로 보일 듯한 습윤濕潤의 덩어리들이 땅바닥에 낮게 깔려서 바람도 없는데 서서히 밀려다녔다. 그러자 금세 바짓단은 축축해지기 시작했으나 주변의 풍경들은 희부연 요정의 세상으로 바뀌어버린 듯 신비롭게 변해갔다. 숲길에 깔려있는 돌멩이들이 밟는 위치에 따라 심하게 미끈거렸다.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에서나 각자가 서 있는 위치와 발로 밟거나 딛고 있는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자신이 있어야할 위치선정과 안정감을 표현하는 또 다른 말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주마는 안개 속을 거니는 숲길 산행이 꿈속의 어느 한 대목 같아서 예기치 않게 만난 행운 속을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세상이 하얀 안개와 짙은 구름에 휩싸여 있을 때는 더럽고 추한 것이란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없어져버린 것 같았다. 하얀 융단 같은 폭설이 내린 뒤 얼룩진 산야가 두꺼운 눈에 덮여있을 때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풍경은 붉은 해가 다시 솟을 때까지 잠시 동안이겠지만 그 동안만큼은 우리들의 마음을 위무慰撫해주고, 또한 우리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서 우리들 마음속에 새로운 세상을 하나씩 만들어 주는 마법의 손길을 펼쳐준다고 생각을 했다. 주마는 자신의 뒤에서 따라오는 여자를 의식하면서 신비로운 요정들의 세상으로 바뀌어버린 숲길을 향해 차근차근 걸어 나갔다. 주마가 걸음을 옮기려고 발을 들어 올릴 때마다 발 주변에는 작은 안개의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사라져갔다.
잠시 후 그들은 산등성이에 올라섰다. 시원한 바람이 지나가면서 등성이로부터 부연 안개를 밀어냈다. 등성이 부분만 초등학교 운동장만 하게 초지가 형성되어 있었고, 키 큰 억새들이 무성하게 자라있는 사이로 능선을 따라 정상으로 향하는 길과 등성이 너머로 내려가는 숲길이 보였다. 여자가 볼이 발그레하게 상기된 채 시야가 훤히 뚫린 경치를 연신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주마는 이런 분위기에서도 경치가 사진에 잘 나올 수 있으려나 생각을 했다. 한참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던 여자가 주마에게 안개가 뭉쳐서 굴러다니는 숲을 배경으로 서보라고 했다. 주마가 조금 어색한 몸짓으로 주춤거리자 여자가 다가오더니 팔 위치와 얼굴의 방향을 고쳐주었다. 몇 번인가 장소를 바꾸어 사진을 찍어주던 여자가 주마에게 카메라를 넘기면서 자신을 찍어달라고 했다. 주마는 여자가 가르쳐준 대로 그 위치에 서서 셔터를 눌렀다. 주마가 카메라를 여자에게 건네주려고 하는데 저쪽 키 큰 억새 틈새로 가르마처럼 뚫려있는 사이 길에서 사람이 걸어 나왔다. 검정바지에 회색 반팔 티셔츠의 수수한 평상복 차림이 등산객이 아니라 이 부근 어느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으로 보였다. 주마는 그렇지 않아도 폐교의 위치를 확인하고 싶었는데 잘되었다 싶어서 가볍게 목례를 하고 그 사람에게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날씨가 비가 오려나봅니다. 어디를 가시는 중이세요?”
“아 예. 어떻게 이런 날씨에 산에를 오셨구만요. 저쪽 마을에서 사는데 고답사 스님을 만날 일이 있어서요. 그런데 이런 날씨에 어디를 가시려고요?”
“네, 우리들도 고답사에 왔다가 등성이 너머에 있다는 폐교가 경치가 좋다고 해서 그쪽으로 가는 중입니다.”
“아, 폐교로 가신다고요. 작년 가을엔가 그 폐교에서 영화를 찍는다고 하더니만 그 뒤로는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몇 차례씩이나 무슨 테레비 방송을 찍어가고 난리를 피워대더니 하여튼 그 폐교를 보러간다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지요.”
“그 폐교가 유명해진 모양이네요. 그런데 그 폐교로 가는 길은 저 등성이 너머로 숲길을 곧장 따라가면 되는 겁니까?”
“뭐, 그렇게 가도 되고요, 저쪽 능선을 따라가다가 오른쪽 숲길로 내려가서 그 옆 등성이로 올라가도 되지요.”
“폐교 주위에 마을이 있는 모양이지요. 학교가 폐교되기 전에는 학생들이 학교를 다녔을 테니까요.”
“그야 그렇지요. 폐교의 원래 이름이 봉두분교인데요, 그 주변에 부락이 띄엄띄엄 몇 개 있었지요. 폐교가 있는 등성이를 따라 바로 숲 모퉁이를 돌아가면 가장 가까운 부락이 하나 있는데, 예전에는 그곳이 한 이십여 호가 모여 살던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반나마는 비어있는 집이고, 아마 한 십여 가구가 살고 있지요. 나는 이 능선을 따라 쭉 가다보면 아래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이는데, 그 계곡 안쪽으로 한 십여 가구가 모여 있는 마을에서 살고 있지요. 아, 뭐냐 폐교 옆에 있는 마을이 요사이에는 안개마을이라고 부르지만 옛날 이름은 도깨비마을이었지요. 그쪽 도깨비마을 숲 부근이 유독이도 안개가 자주 끼는데다가 비가 오거나 안개가 끼고 바람이 불면 숲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하더구만요. 지난봄엔가 테레비 방송국에서 나와 가지고 비오고 바람 부는 날 숲에서 나는 소리랑 도깨비마을이랑 찍어서 방송을 했거든요. 그런 뒤로 사람들이 더 부쩍 많아졌어요. 예전에는 폐교가 주인 없는 집처럼 방치되어 있었는데, 이제 사람들이 구경하러 몰려오니까 군에서 보수도 하고 관리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덕분에 도깨비마을 숲도 사람들이 가끔 구경하러 가나 보던데요.”
“아, 그래요? 폐교 이야기는 들었지만 도깨비마을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았거든요. 그렇다면 간 김에 도깨비마을도 돌아보고 와야겠네요.”
“일부러 그러신 건 아닐 테지만 오늘 날씨가 비 오고, 바람 불고, 안개까지 끼는 날이라 도깨비마을이랑 숲 구경하기에는 딱 좋은 날이구만요. 그런데 나도 젊었을 때 친구들이랑 몇 번 일부러 호기심에 가봤는데, 해가 떨어질 쯤 해서는 그 숲에서 나오시는 것이 좋을 것 같구만요. 도깨비마을 사람들도 그런 날에는 일찍 저녁을 먹고 문 잠그고 잠을 자버린단 말씀이지요.”
“그래요? 그건 왜 그렇습니까?”
“도깨비마을에 내려오는 전설이 있었다고 하는데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모르겠소만 여하튼 그런다고 하더구만요.”
“어떤 전설인데요?”
“글쎄, 들은 지가 하도 오래 된데다 머리가 빠가가 되었는지 나도 기억이 가물거리는 게 잊어버렸는가본데 궁금하시면 도깨비마을에서 물어보시구려.”
“그래요,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 더 궁금해집니다. 그나저나 재미나게 설명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등성이를 따라 쭉 내려 가다보면 있는 도투락펜션에서 오늘 밤은 묵을 것 같습니다. 혹시 밤에라도 난실로 놀러 오시면 제가 술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아~ 도투락펜션 말이지요. 그 펜션 주인이랑 나도 다 아는 사람들이지요. 서로 엎드리면 코 닿을 산 중이라 이골 저골, 이 마을 저 마을 사람들은 거의 다 알고 있지요. 아무튼 밤늦기 전에 얼른 다녀오도록 하시구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살고 계시는 곳은 무슨 마을입니까?”
“내가 사는 마을이요? 오천부락이요.”
“오천부락이라고요?”
“네, 오천부락. 하루에도 하늘색이 다섯 번이나 바뀐다고 해서 오천부락이라지요.”
“하늘색이 다섯 번이나 바뀌다니 무슨 말입니까?”
“날씨 변화가 하도 심해서 비 왔다 개었다 바람 불었다 안개 끼었다 한다고 그런답디다.”
“그럼 정말로 그렇게 하루에 하늘색이 다섯 번씩 변합니까?”
“말하자면 그렇다는 이야기지요. 그나저나 이 산이 날씨 변화가 심한 것은 사실이지요.”
그 사람은 휘적휘적 걸어서 주마가 올라왔던 숲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숲으로 안개가 밀려가자 금방 뒷모습이 짙은 회색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 광경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여자가 주마 옆으로 다가오더니 말했다. “친구에게 폐교 이야기는 들었지만 도깨비마을 이야기는 못 들었거든요. 아마 친구도 폐교만 구경을 했지 도깨비마을은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방금 저분 이야기를 들으니 폐교보담 도깨비마을과 숲이 더 궁금해지는 것 같은데요.” 주마가 여자를 쳐다보며 얼마간 걱정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안개가 끼고 비가 올 것 같으니 어둡기 전에 얼른 다녀오라고 주의를 주던 마을 사람 이야기를 못 들으셨어요?” 주마의 말을 듣자 여자가 빙그레 웃으면서 눈을 장난기 있게 동그랗게 뜨고서 주마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혼자가 아니잖아요. 다 선생님을 믿고 하는 말이랍니다. 그리고요, 전설이네 뭐네 하는 이야기들도 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만들어낸 지방자치제 비즈니스용 상품인 것 같거든요. 몇 년 전부터 각 지자체마다 축제와 그 고장 전설이 갑자기 얼마나 많이 만들어져 나오는지 사실 이제는 좀 심드렁해졌거든요.” 그 말을 듣고 주마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그렇기는 하지만 태풍 영향으로 아무래도 날씨가 험해질 것은 분명한데 빨리 다녀오는 것이 좋겠네요. 그리고 그 오천부락이라는 명칭도 참 재미있지요. 그 부락 이름은 옛날부터 그랬을 테니까 이 산이 일기변동이 심하기는 한 것 같아 보이네요. 자, 그럼 갈까요.”
(- 해리가 샐리를 만났늘 때는 어떠했을까? -)
첫댓글 이야기가 흥미로워 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