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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공짜는 없다.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이층 계단에 그가 있었다. 그는 날 보고 씩 웃었다. 오른손은 피투성이였다. 왼손, 거머쥔 칼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살인 뒤의 만족스런 미소를 짓고 있었다. 희생자가 여자라는 사실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영화 속의 그때 그 장면처럼. 연쇄살인범이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그가 휘두른 칼에 난자당했다. 영화의 첫 장면,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역에 묘하게 끌렸다. 나는 그때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거의 매일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공포영화에 출연한 적이 없었다. 공포영화 한편이 고작인, 신인에 다를 바 없는 감독이 뜬금없이 시나리오를 내밀었을 때 순간 망설였다. 내가 나오는 장면은 친구의 별장에서 연쇄살인범에게 난자당하는 게 전부였다. 나는 그리 유명한 편은 아니어도 그럭저럭 알려진 배우였다. 며칠 전 내게 들어왔던 시나리오는 어설픈 코미디였다. 그런 밋밋한 작품은 성에 차지 않았다. 나는 강한 역을 맡고 싶었다. 밀양의 전도연같은. 나 자신을 못살게 만들고, 괴롭히고 싶었다.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넣고 싶었다. 그런 역이 들어오지 않았으니 나는 자살을 생각했다. 정체모를 불안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불안이 쉽사리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나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불만을 품게 됐다. 일년 전 내가 출연했던 영화는 일주일 만에 간판을 내렸다. 처참한 흥행성적이었다. 그 이유로 내가 자살을 생각한 건 아니었다. 이 영화 전에도 몇 편은 흥행에서나 비평에서 별 재미를 못 봤다. 모든 열정을 쏟아 부은 영화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이유 없는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앞으로 출연할 영화 모두 형편없을 거라는 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전환이 필요했다. 그때 새 시나리오가 들어왔다. 뿔테 안경, 꾀죄죄한 얼굴, 장발의 30대 후반인 감독이었다. 나는 그가 감독인지도 몰랐다. 독립영화 몇 편에, 홀딱 말아먹은 공포영화 한 편을 만든 게 전부였다. 공포영화에는 관심도 없었으니 그리 이상할 것도 없었다. 자기가 출연한 영화 외에는 관심도 없는 배우들이 꽤 되었다. 놀라운 건 내가 영화 첫 장면에서 죽는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유 없이. 기도 차지 않았다. 배역을 맡을 거라 생각한 건가. 그때 감독은 한마디 했다. “죽고 싶지 않습니까?” 나는 순간 놀랐다. 내가 거의 매일 죽음을 생각한다는 걸 알고 있다는 말투였다. 나는 터무니없다고 웃었지만 왠지 그에게 비밀을 들킨 기분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우울한 내 심정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었는지, 기억하려 애쓰고 있었다. 일주일 전 친구를 만나 새벽까지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친구 역시 배우였다. 그리 친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날은 무척 술이 당겼다. 술을 마시고 정신을 놓았다. 취했을 때 뭘 지껄였는지 도통 기억이 없었다. 술김에 죽고 싶다는 얘길 늘어놓았을지 몰랐다. 내 앞의 감독에게 친구는 발설했고. 그럼 대충 앞뒤가 맞다. 감독은 좀체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일분이 넘게 눈을 깜빡이지 않고 나를 보고 있었다. 괴물같이 느껴졌다. 타인의 모든 걸 안다는 듯한 행동을 취하는 놈들은 역겹기 짝이 없다. 내 앞의 감독처럼. “날 보러 와요라는 연극 아시는지 모르겠군요. 날 보러 와요를 봉준호가 살인의 추억이란 영화로 만들었죠. 근데 왜 제목이 날 보러 와요일까요.” 감독은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어차피 대답은 그의 몫이었다. “조명 꺼진 관객석에 그 연쇄살인범이 앉아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자신의 얘기를 다룬 연극을 지켜보고 있었고 그는 유유히 사라졌어요. 자신의 얘기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궁금했던 겁니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준다는 건 꽤 기분 좋은 일이거든요. 연극의 흥행에 힘입어 봉준호가 영화까지 만들었습니다. 영화는 연극보다 더 대중적이죠. 알다시피 많은 사람들이 그 영화를 봤습니다. 그러면서 꽤 오래된 그 사건을 기억한 겁니다. 살인범도 포함해서죠. 치를 떠는 범죄 행각에 숨죽이고 있는 관객을 흘깃거리며 살인범은 자신이 대단한 존재란 걸 깨달은 겁니다. 마침내 극장의 불이 켜지는 순간 그는 내가 범인이다 라고 외칠 뻔 한 겁니다. 이 놈들아. 내가 그 살인범이다 하고 말입니다. 그는 간신히 그걸 꾹 참아야 했죠.” 나는 감독의 말에 차츰 귀를 기울였다. “형사 역을 맡았던 김상경이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무척 찜찜했다는 겁니다. 잡히지 않은 살인범에 관한 영화에 출연했으니까요. 살아있는 살인범은 여전히 희생자를 찾고 있었고 또 다른 곳에서 살인을 하고 돌아다닐 겁니다. 살인은 계속해서 일어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다루는 건 꽤 위험한 일입니다. 알다시피 난 영화 한편 만든 게 고작이죠. 그것도 공포영화고. 데뷔작이 공포영화다 보니 어느새 공포영화만 만들어야 하는 감독이 돼 버렸어요. 편견은 무서운 겁니다. 나는 그에 걸맞은 시나리오를 써야했고. 제작자들은 살인의 추억이 히트하고 나니 실제사건을 소재로 영화 찍는 걸 상당히 선호했어요. 허리우드 제작자들도 제일로 좋아하는 건 바로 연쇄살인마 얘기거든요. 연쇄살인마는 돈을 벌어다 주니까요. 미해결 사건이라면 더 좋겠죠. 범인은 신비스런 존재니까. 나도 그런 시나리오를 쓰게 됐습니다. 예상대로 제작자도 구하게 됐고요. 다른 시나리오였다면 퇴짜를 맞았을 테지만요. 근 십년동안 잡히지 않은 놈이 하나 있죠. 그 놈은 규칙도 없어요. 그저 마음 내킬 때마다 새벽에 집을 나와 눈에 띄는 젊은 여자를 잡아 죽이죠. 흔적도 남기지 않고요.” “근데 왜 내게 이 시나리오를 가지고 온 거예요?” “아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그러니까 어떻게 내가 자살을 생각한다는 걸.” “세상에는 말로는 설명 안되는 게 있습니다. 저도 몰라요. 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첫 번째 희생자로 난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왜인지는 몰라요. 그저 당신에게는 어딘지 불길한 데가 있습니다. 정확히는 설명 못해요. 당신이 내 영화에서 처음으로 죽어준다면 영화는 성공할 거란 예감을 가지고 있어요. 다리오 아리젠토는 자신의 실제 애인을 영화에서 꼭 죽였죠. 애인이 죽었던 첫 번째 영화가 대박을 터트린 뒤 다리오는 그런 집착에 빠진 겁니다. 문에 부착된 확대경을 깨고 총알이 여자의 눈알을 뚫고 두개골을 관통해 버리는 장면이 있는데 애인은 당연히 거절했죠. 하지만 다리오는 고집을 부렸고 애인은 결국 그 역을 맡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화에서 애인이 죽어줘야 영화가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나도 그렇습니다. 당신이 처음으로 살인범에게 난자당한 채 죽어준다면 영화는 틀림없이 성공할 거라고. 당신 역시 재기할 수 있을 겁니다. 당신같이 아름다운 여자가 첫 번째 희생자가 되면 관객들의 뇌리에 깊게 박힐 겁니다. 두 번째 세 번째 희생자보다도.” 나는 그의 열정에 항복했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 도장이 피로 휘감긴 도장이 되리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감독은 흥분해서 목청을 높였다. 여성 톤이 가미된 간혹 새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나는 그 소리에 짜증이 나곤 했다. 실제 별장에서 영화를 찍게 됐다. 별장으로 꾸며놓은 세트장에서 촬영을 진행해도 됐지만 감독은 자기가 특별히 아는 곳이 있다고 했다. 그곳은 실제 살인이 발생한 곳으로 이런저런 괴담이 떠도는 곳이었다. 추리소설에 흔히 나오는 마누라를 의심한 의처증 남편의 살인행각이 벌어진 곳이었다. 남편은 열 살도 안 되는 아들까지 잔인하게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단다. 지리에 약했던 나는 내가 도착한 곳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촬영을 위해 오랜만에 집을 떠난 것이고, 복잡한 심정을 추스르는데 답답한 집에서 벗어나는 것도 나쁠 게 없다고 생각했다. 감독과 함께 별장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었다. 별장은 평범했다. 무서울 게 없었다. 나는 여전히 무서운 게 있다면 사람이고 그 사람을 둘러싼 현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현상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귀신을 봤다고 해서 귀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건 사고의 오류에 불과하다. 확대해서 생각한 거다. 그건 그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다. 하여튼 나는 별장으로 들어갔고, 별장에는 미리 온 스텝들이 준비하고 있었다. 살인이 일어나는 시간으로 밤이 적절했다. 히치콕은 햇볕이 따뜻한 대낮, 시냇물 졸졸졸 흐르는 곳에서의 살인이야말로 허를 찌르는 공포를 유발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이 영화의 감독은 아니었다. 감독은 철저히 그 살인범의 행태를 따라했다. 시나리오를 쓸 때도 그랬고 연출할 때도 그랬다. 그의 머리 속에는 오로지 살인범 생각 밖에는 없었다. 감독은 이미 살인범이 되어 있었다. 생생한 공포로 가득한 내 얼굴을 클로즈업할 때 감독은 살인범이 된 것처럼 좋아하고 있었다. 살인범 역을 맡은 배우는 왜소한 자였다. 얼굴도 단 한번 본 적 없는 자였다. 연극무대에 선 게 전부였다. 온순하게 생겼고 처음 인사를 나눌 때는 수줍음을 타는 것 같기도 했다. 감독은 실제 살인범도 이런 사람들 중 한명일 거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수줍음을 잘 타는 내성적인 사람들은 의외로 원한을 오래 쌓아두는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 특히나 자기가 무시를 당했다고 생각되면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증오를 폭발시킨다. 더없이 잔인해지는 것이다. 사실 나는 살인범을 맡은 배우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는 나보다 키도 작았고 약해 보였다. 그런데 그는 어딘지 이상한 구석이 있는 자였다. 혼자서 무슨 말을 중얼거렸는데, 대사가 아니었다. 그는 대사가 없었다. 언뜻 방언같이 들렸는데 제대로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그때 나는 그런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때의 섬뜩함은 잊을 수가 없다. 나를 정말 죽여 버릴 것 같은 눈길이었다. 그런 그의 눈길을 쉽사리 잊을 수 없었던 나는 어색해졌다. 나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작품의 완성을 위해 실제 살인을 저지르는 예술가에 대한 환상. 처음엔 자신이 쓰는 소설과 경계를 긋지만 점차 자신이 쓰고 있는 소설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스티븐 킹은 자신의 공포 소설 중 상당수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역시나 공포소설가를 내세웠다. 소설 속 공포소설가를 통해 그는 자신의 공포에서 벗어나려 했다. 소설 속 공포소설가와 현실 속 공포소설가는 물론 별개의 존재겠지만 독자는 그렇게 생각하길 좋아하지 않는 법이다. 사람들은 날 별난 여자로 볼지 모르겠다. 배우로서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역은 그리 반길만한 게 아니었다. 자살을 생각하는 내게 나를 괴롭히고 싶다는 피학욕구 때문에 난자당하는 희생자 역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막상 그 역을 소화하려니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왜소하게만 보였던 낯선 살인마-배우가 죽일 듯 노려보면서 내 몸에 칼집을 냈을 때 그리 나쁘지 않았다. 모든 게 연기라고 생각하면서도 정말 나는 공포를 느꼈고 그 공포는 무섭다기보다 짜릿한 것이었다. 아, 정말 죽는 것인가. 죽는 게 이런 것인가. 나는 로맨틱한 구석이 있었다. 내 몸을 덮은 피도 진짜 피처럼 느껴졌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피투성이 상태로 별장 바닥에 쓰러졌다. 연기였을망정 죽음을 연기함으로써 역설적으로 나는 삶에 대한 에너지를 얻었다. 그건 영화의 흥행도 한몫했다. 죽음이 날 살렸다고 해야 할까. 공포영화로는 드물게 흥행에 성공했다. 그해 여름 개봉한 공포영화들 중 유일했다. 감독의 직감대로 언론은 첫 신에 살해당한 나에게 깊은 관심을 표했다. 간만에 주목받는 것이어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 별장을 찾았다. 별장은 내게 뜻 깊은 곳이었다. 영화가 대박 난 데 대한 자축파티를 그 별장에서 열기로 한 것이다. 나도 찬성이었다. 감독과 제작자 그리고 배우 몇 명이 참석한 가운데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감독은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 살인범 역을 맡은 배우는 시종 말이 없었고 역시나 나 앞에서 수줍어하고 있었다. 영화에서 살해당한 나는 주목을 받았지만 살인범 역을 맡은 배우는 아직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는 철저히 존재를 숨겼다. 세븐의 살인범, 케빈 스페이시가 그랬던 것처럼. 결국 흥행 전략 중 하나였다. 사람들은 배우의 리얼한 연기에 그가 실제로 존재하는 살인범이란 착각을 품게 되고 그건 흥행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안소니 홉킨스처럼 대놓고 자신의 악마기질을 대중에게 드러내는 배우도 있지만. 그는 렉터박사가 된 뒤 태연히 이렇게 광고했다. 자신이 영화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범죄자가 됐을 거라고. 렉터박사를 연기했을 때 행복했다고. 하지만 그것도 곧이곧대로 믿을 건 없다. 잡히지 않은 살인범이 혹 그 살인범 연기를 한 배우는 아닐까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것. 그건 우리 영화의 흥행에 중요한 변수였다. 영화에 출연한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해 봤다. 어딘지 사이코처럼 보이는 감독은 영화를 위해서라면 그런 무모한 짓도 저질러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정을 넘었을 무렵, 살인범 역을 맡았던 배우가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나간 뒤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투성이로 달빛 중에 나타났을 때, 이런 내 생각은 처참히 깨져버렸다. 그를 처음 발견한 두 번째 희생자였던 여배우는 비명도 못 지르고 기절하고 말았다. 나는 그때 케이크에 꽂아둔 촛불에 막 불을 끄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우리 곁으로 다가오며 방언을 중얼거릴 때 일대 소동이 일었다. 그는 발도 떼지 못하고 앉아 있던 나를 보더니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불을 켜! 불을!” 누군가 스위치를 올렸지만 불은 켜지지 않았다. 달빛만이 고즈넉했다. 한순간 우리들 사이엔 깊은 침묵만이 흘렀다. 그리고 그때 유리창이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귀를 틀어막았다. 감독은 내 손을 붙잡았다. 누군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다. 가면을 쓰고 있었다. 파란 가면이다. 눈구멍만 두개 뚫려 있었다. 피가 흥건한 칼이 들려 있었다. 나는 감독의 손에 이끌려 이층으로 뛰어올라갔다. 일층 거실에는 정체불명의 가면을 쓴 자만이 있었다. 기절한 여배우는 여전히 소파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는 여배우에게 다가갔다. 그러더니 옷을 하나씩 벗겨냈다. 가슴이 드러나자 잠깐 움직임을 멈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칼날이 사정없이 가슴을 도려내기 시작했다. 눈을 뜬 여배우는 자신의 배를 찔러대는 칼을 똑똑히 보았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그는 여배우의 입을 틀어막고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짓거리를 거리낌 없이 해댔다. 이미 숨을 끊은 여배우를 고깃덩어리마냥 옆으로 치워 버리고 일어난 그가 입을 열었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난 대가를 못 받았거든. 허락도 없이 날 영화에 썼거든. 돈도 많이 벌었잖아. 근데 왜 나한테는 대가가 없는 건가. 이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거든. 태연히 내 얘기를 써먹고 여기서 즐기고 있는 거냐? 날 빼 놓고. 날 초대했어야지. 누구 때문에 돈을 벌었는데. 영화에서 날 또라이 취급했겠다. 경찰의 총에 초라하게 뒤지게 만들었겠다. 그게 니들 방식이지. 난 더러운 돈 따윈 바라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니들은 잘 알 거다. 쥐새끼 같은 감독. 난 감독 목숨을 원한다. 그는 배우도 잘못 썼어. 어디서 그런 저질 새낄 불러다가 날 욕 먹였지. 날 연기한 배우는 엉망이었다. 날 미친놈으로 만든 쥐새끼 같은 감독. 나와라. 진짜 파티를 벌여보자.” 나는 감독을 보았다. 감독은 하얗게 겁에 질린 얼굴로 살인범의 뒤통수를 보고 있었다. 감독의 뿔테 안경이 땀 때문에 계속 코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감독 뒤에 붙은 여배우는 손등을 꽉 깨물고 있었다. 나는 다시 살인범을 보았다. 달빛에 녹아 든 살인범은 감독 말대로 덩치가 크지 않았다. 정말 왜소한 편에 속했다. 하지만 살인범은 자신을 왜소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그 사실을 부인하다 잊어버렸는지 모른다. 어렸을 적의 놀림과 학대로 이런 살인범이 됐을까. 영화에서는 그렇게 묘사됐지만 처음 내가 받아본 시나리오는 그렇지 않았다. 국어 선생님이었던 아빠와 디자이너였던 엄마. 행복하게만 보였던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기는 환경적으로 전혀 불우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살인범이 되는 것으로 그려진다. 어렸을 적, 영향을 끼친 것이 있다면 벌거벗겨진 마네킹들의 강렬한 인상 정도였다. 살인범에게 사람은 마네킹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사람을 죽이는 건 마네킹의 목을 비틀거나 팔을 뜯어내거나 다리를 박살내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살인범은 그렇게 자신만의 놀이를 하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시나리오는 변경되었다. 제작자는 이유 없이 살인범이 되는 얘기 자체가 터무니없다고 했다.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낸 아이가 살인범이 되는 것이 이치에 맞을뿐더러 교훈적이라는 것이다. 불우한 아이를 방치하면 어른이 된 뒤, 사회악이 될 테니 사회는 그 아이에게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을 보내야 한다고. 지하철에 불이나 질러버리고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칼이나 휘두르고 가진 자들에 대한 근거 없는 증오로 사회를 향해 복수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불우한 아이를 사랑해서 그 아이에게 애정과 관심을 쏟는 게 아니다. 제작자는 그게 순리에 맞는 거라 했다. 결말도 마찬가지였다. 살인범은 잡히지 않고 유유히 사라져 영화는 깊은 비극을 남기기로 했다. 정의가 없는 이 사회가 실은 범인이라는 열린 결말. 그러나 이런 결말도 제작자는 반대했다. 경찰 손에 죽게 해야 정의가 바로 서고 관객 역시 좋아한다는 것이다. 힘없는 신인감독은 제작자의 요구를 수용했다. 감독은 불만이었지만, 영화가 잘 되고 보니 말없이 넘어갔다. 몇 초 지나지 않았지만 그 몇 초가 감독에게는 몇 시간보다 길었을 테다. 제작자는 감독의 등을 떠밀었다. 감독은 움츠렸다. 육십이 넘은 제작자는 빨리 감독이 나가서 이 사태를 마무리 해주길 바랐다. 감독이 죽으면 끝날 거라는 순진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게 잘못은 아니다. 단 제작자에게는 다른 잘못이 있었다. 감독은 소리 지르듯 얘기했다. “내가 그런 게 아니야! 제작자가 그랬거든! 당신이 들려주는 대로 시나리오를 썼어! 근데 제작자가 시나리오를 고쳐버렸어! 난 힘이 없거든. 내 목소리를 낼 만큼의 힘이 없었어! 이건 사실 내 영화가 아니야! 난 책임이 없어! 죽을 사람은 내가 아니라 제작자야! 난 약속을 지켰잖아. 영화를 완성하고 나서도 당신과의 비밀을 지켰잖아. 당신을 신고하지 않았잖아!” “김 감독. 그럼 진작부터 이 놈을 만났단 말이야!” “딱 한 번이예요. 딱 한번! 그가 살인을 저질렀던 곳을 둘러보다 그와 마주쳤을 뿐이에요. 자기 영화를 만든다는 걸 알고 꽤나 흥미 있어 했고 자기 얘기를 들려줬고 난 그 얘길 토대로 시나리오를 썼어요. 근데 당신이 시나리오를 고치자고 한 거잖아요!” “시나리오는 여러 번 고쳐지기 마련이야. 그때 얘길 했어야지.” “이런 얘길 어떻게요?” 그때 내가 끼어들었다. “그러고도 신고를 안했어요?” “그건 암묵적인 계약이었어. 더구나 그가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가 개봉되면 신비감도 있고 좋다고 생각했어. 그가 경찰에 잡히면 영화가 죽을 거라고 생각했어. 이게 모두 제작자 당신 때문이야!” “쥐새끼 같은 감독 나와. 빨리 나오란 말이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제작자가 시나리오를 수정…하자고 해서…그런.” “이게 어떻게 내 잘못이란 말이야. 이 쳐 죽일 새끼야.” “할 수 없군. 내가 움직일 수밖에.” 살인범의 한마디는 상황을 일단락 시켰다. 그때 제작자는 감독을 떠밀어 버렸고 감독은 계단을 굴러 간신히 계단에 몸을 걸쳤다. 갑작스레 벌어진 일이라 감독은 다시 일어서려다 날카로운 칼날에 목을 찔리고 말았다. 목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왔다. 갈라진 구멍으로 흘러넘치는 피를 손으로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살인범의 칼날이 감독의 배를 힘껏 찔러대기 시작했다. 감독은 죽은 게 아니라 기절했다. 그가 살인범의 칼날에 잠시 뒤 떨어져 나갔다. “가소로운 놈들. 니들은 살 줄 알았더냐.” 제일 먼저 잡힌 사람은 또 다른 여배우였고 여배우의 긴 생머리는 살인범의 손에 잡혀 나갔고, 살인범은 목을 확 그어버리고 던져 버렸다. 가면을 벗어버리고 맨 얼굴을 드러냈다. 살인범은 나와 제작자를 번갈아 보았다. 이층은 방이 달랑 하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좁은 복도 끝에는 작은 창문이 있었다. 달리 도망칠 곳이 없었다. 제작자는 재빨리 방으로 달아났다. 내가 달려갔을 때는 이미 문을 잠근 뒤였다. 몇 번을 두드려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칼을 움켜쥔 살인범이 이층으로 올라오고 있었고 내가 도망갈 곳은 없었다. 창문을 깨고 뛰어내리는 건 무리였다. 살 길은 한 방법 밖에 없었다. 난간을 부수고 일층으로 뛰어내리는 수밖에는. 난간에 걸려 넘어질 뻔 한 걸 간신히 뛰어넘어 일층 맨바닥에 그대로 고꾸라져 버리고 말았다. 쾅하고 떨어졌을 때 눈앞이 순간 깜깜했다. 하지만 재빨리 정신을 차렸다.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이층 계단에 그가 있었다. 그는 날 보고 씩 웃었다. 오른 손은 피투성이였다. 왼손, 거머쥔 칼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살인 뒤의 만족스런 미소를 짓고 있었다. 희생자가 여자라는 사실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나는 뒤로 물러섰다. 그때였다. 그가 입을 연 것은. “연기가 꽤 훌륭했어. 그럴 줄 알았어. 왜 당신이 영화에 출연하게 된 줄 아나. 내가 부탁했거든. 감독한테. 난 당신 팬이야.” 나는 깜짝 놀랐다. 감독이 내게 시나리오를 내밀었을 때 둘러대던 이유가 생각난다. 불길이 어쩌고저쩌고. 빌어먹을 개새끼. 이 사실을 알고 나자 살인범이 더 끔찍하게 느껴졌다. 일어서려다 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발목을 접질린 까닭에. 그는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듯이 날 보더니 제작자가 있는 방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내가 움직이지 못하는 걸 확인하고 마음 놓고 먼저 제작자에게 간 모양이었다. 마지막 희생자는 여자인 날 택할 모양이었다. 그가 제작자에게 가버린 그때 나는 재빨리 일어섰다. 연기였다. 내 발목은 멀쩡했다. 나는 별장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세워둔 차로 달려갔다. 좌석에 앉았지만 열쇠가 없었다. “씨팔.” 다시 차 밖으로 나왔다. 그때 별장에서는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제작자였다. 그때 차 열쇠가 감독 바지에 있는 게 생각났다. 어둠에 묻힌 숲길을 보았다. 모험을 무릅쓰고 다시 별장으로 들어가 차 열쇠를 가져오는 게 나을지, 아님 숲길로 달려가는 게 나을지 저울질 했다. 별장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감독이 누워 있었다. 그의 바지주머니에서 열쇠만 꺼내오면 되었다. 나는 별장을 선택했다. 별장에 들어섰을 때 의외로 조용했다. 이게 더 두려웠다. 나는 천천히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죽어있는 감독에게로 옮겼다. 그리고 감독의 오른쪽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없었다. 당연히 왼쪽 주머니로 손이 갔다. 그런데 감독은 왼쪽 주머니를 깔고 비스듬하게 누워 있었다. 그리로 손을 넣기 힘들었다. 그를 반듯이 눕혀야 했다.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보고 있는 감독을 대하기 괴로웠다. 가짜 피를 뒤집어 쓴 살아 있는 사람 같았다. 막 감독을 바로 눕혀놓고 왼쪽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을 때 찾던 열쇠가 손에 잡혔다. 열쇠를 낚아 채 다시 문을 나서려는 순간, 이층에서 살인범이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띤 채 내려보고 있었다. 한 손엔 늙은 제작자의 피 흥건한 머리를 늘어뜨리고. 제작자의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리는 핏방울에 정신을 차린 나는 재빨리 별장을 뛰쳐나간 뒤, 차에 올라탔다. 차 문을 닫고 열쇠를 꽂고 돌렸다. 엑셀을 힘껏 밟았다. 적막한 별장을 찢는 차 소리가 쿵쿵대는 가슴과 뒤섞였다. 차는 달빛 스민 산길을 거칠게 달렸다. 문득 뒤돌아봤을 때 별장은 사라지고 차창에는 어둠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영화 관계자들은 돈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면 물불 안 가리고 덤벼든다. 별장에서 일어났던 이 살인사건도 몇 년 뒤 영화로 제작되기에 이르렀다. 영화 제작자와 감독이 나를 찾아와 당시 상황을 들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때 문득 살인범이 떠들어대던 말이 생각나 그대로 들려주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이 말의 의미를 단지 돈을 바라고 하는 소리로만 이해했을 것이다. 끝
첫댓글 이거 재밌네요 ㅋㅋㅋ 초반에 약간 논리가 부족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파티때 살인범 나온 다음부터는 설명이 좀 되네요. 음... 비현실성을 꼽는 분들도 계시겠지만요. 그래도 이만하면 독창적이고 재미있는 이야기 아닌가요? 다른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 근데 문장 하나하나는 살짝 거슬리는 부분도 있는거 같아요. 호흡이 짧은건 좋은데 군데군데 좀 어색한 부분이 있기도 한 것 같아요. 뭐 저야 완전 초짜니까 제 얘기는 별로 신경쓰지 마세요 ^^;;;
그렇지 않아도 좀 이상한 부분은 다시 수정들어가야겠네요. 올리고 나면 꼭 그런 게 보여요. 고맙습니다.
복사 금지 좀 풀어주시면 안될까요? 컴터 화면에선 제대로 몬봐서요
재밌네요. 잘봤습니다.
재미있어요.^^ 이런 식으로 전개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