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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동양학이 세인(世人)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일대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김용옥교수의 「노자(老子)와 21世紀」란 TV 강의이다. 주역(周易)은 동양의 모든 사상을 담고 있는 성전(聖典)이다. 그 속에는 동양의 우주관과 세계관 그리고 인생관이 있고, 자연과학이고 천문학이며 수리학(數理學)이며 물리학인 동시에 철학서이며 점서(占書)이기도 하다.
동양의 성인(聖人)인 공자도 주역 죽간(竹簡)의 가죽 끈이 닳도록 읽고 공부하였다고 하니, 저 같은 둔재(鈍才)가 어찌 주역의 오묘한 이치를 조금이나마 깨달음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역리학(易理學)의 한 부분인 상수역(象數易)의 명리학(命理學)에 대한 나의 의견을 펴고자 한다.
역리학은 의리역(義理易)과 상수역(象數易)으로 갈라져 옛 부터 연구되어지고 있었는데 의리역은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학문으로 지배계급층에서 많이 연구 정리되어 왔고 현재에는 대학의 강단에서 석․박사를 배출하고 있는 양지(陽地)의 학문인 반면, 상수역은 강호(江湖)의 술객(術客)에 의하여 연구 실증(實證)되어 왔으며 주로 일반 서민대중에게 밀착된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인 음지(陰地)의 학문으로서 점서(占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의리역은 생활도덕규범과 국가경영의 학문으로 상위 5%를 위한 학문이라면 상수역은 일반 민중의 대다수가 신봉하는 강호(江湖)의 술수학(術數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상수역에는 크게 나누어 풍수(風水)와 관상(觀相)과 사주(四柱)가 있는데 한국인에게는 사주팔자라는 말은 언제 어디라도 많이 사용되어지고 있고 심정적(心情的)으로 신봉(信奉)하면서도 겉으로는 터부시하고 있는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 원인은 조선의 국가 이념을 성리학(性理學)에 두어 상수학(象數學)을 배척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나, 역리학을 제대로 터득하지도 않고 사람의 운명을 함부로 간명(看命)하여 재물을 탐하고 혹세무민한 점도 적지 않음은 사실이다.
의리역과 상수역은 두 바퀴로 마차가 굴러갈 듯, 같은 맥락에서 연구와 개발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지배계급층은 오로지 의리역에만 의존하여 민중을 다스리는 교본으로 택한 것은 상수역이 인간의 평등사상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앗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주만 잘 태어나면 누구라도 왕후(王侯)가 될 수 있다는 의식을 심어주는 사상으로 인해 근세 조선시대의 각종 반란의 이면에는 상수역이 한 몫을 하였음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단종 시대인 세조의 집권시 이징옥의 난과 이용의 반란도 모두가 자신이 군왕의 팔자로 태어났다고 믿었기 때문이고 정여립의 난 역시 사주와 무관하지 않다. 단종실록에 기록된 계유정란(癸酉靖亂)에 성공한 수양대군의 수하(手下)들은 안평대군 일파의 25가지 죄목(罪目) 중 그 첫 번째와 두 번째가 모두 사주팔자에 기인된 것이다.
의정부(議政府)에서 상주한 내용은 맹인 지화가 안평대군인 이용(李瑢)의 사주팔자를 보고 망령되게 군왕(君王)의 운수라고 하였고, 이헌로가 말하기를 귀(貴)하기가 말할 수 없어서 국군(國君)의 팔자라고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후 명종(明宗)때 대윤과 소윤의 세력다툼에도 팔자가 있었는데 그것은 진복창이 정흥종과 왕(王)의 지친인 남기(南沂)가 문정왕후와 명종의 사주를 공공연히 추명(推命)하였다고 무고(誣告)하여 이들을 참(斬)하고 재산을 몰수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 후 명리학은 반골지학(反骨之學)과 혹세무민의 술수학(術數學)으로 비하(卑下)되어 공공연하게 연구 개발되지 못하고 지하로 숨게 되었다.
최근세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본 관동군 장교시절 길거리의 술사(術士)에게 사주를 본 적이 있는데, 사주를 보더니만 황제의 사주로 출생하였다는 것이다. 사주가 지지에 寅巳申亥 사맹(四孟)이 모두 있다는 것은 범상하지 않는 사주로서 황제나 삼공(三公)에 들 명(命)임에는 분명하다.
박정희 대통령이 5.16군사 쿠데타를 시도한 것도 추측 건데 자신의 명(命)이 일국(一國)의 원수(元首)가 된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믿어진다. 이렇게 사주는 한국인에게는 어떤 확신을 가지는 희망이기도 하고 때로는 체념이 되기도 한다.
고려의 개국(開國)에도 상수역의 도사(道士)인 최지몽이 왕건의 참모가 되었고, 조선 초기 수양대군에게 한명회라는 천문지리에 능한 책사(策士)가 있었기에 절대적인 열세에서 쿠데타를 성공할 수 있었다.
그 후(後)에도 중종 시대 왕권의 향배(向背)에 지대한 관심이 많은 시기에는 대군(大君)들의 팔자가 왕재(王才)인지가 중요하게 작용하게 되는 것은, 권력층뿐만 아니라 일반 민중이 사주팔자를 그 만큼 확신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여, 사주의 조작 등 암투와 그에 따른 역술인(易術人)의 수난도 비일비재하였다.
중국 명나라의 개국공신인 유백온은 적천수라는 역리서(易理書)를 편찬한 명리학의 대가(大家)이고, 중국 삼국시대의 제갈공명도 천문과 지리를 읽을 수 있는 역리학의 대가(大家)임에 분명하다.
이렇게 상수역은 정치, 경제, 사회 군사전략 등 다 방면에 이용되어 우리 동양인의 사고에 크게 작용하였으나 조선시대부터 터부시하여 천대와 멸시를 받아 음지(陰地)의 학문으로 전락한 것은 전술(前述)한 것과 같이 상수역(象數易)은 지배계급에게는 왕권의 흥망성쇠를 알 수 있는 체제(體制)에 대항할 수 있는 위험한 학문이기 때문에 양지(陽地)의 학문으로 공공연히 공부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유학자(大儒學者)인 율곡 이이 선생도 10만 양병(養兵)을 주장하여 미래에 닥칠 왜란에 대비하자고 한 것은 상수학에서 나온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지혜이고, 언제인가 이곳으로 왕과 백성들이 강을 건너게 될 것이고 그 때를 위하여 임진강 나루터에 정자(亭子)를 지어 기름을 수시로 칠 한 것이 훗날 이항복이 불을 놓아 한 밤중의 선조와 백성들의 피난길을 도왔다는 것은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慧眼)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 혜안은 모두가 격물치지(格物致知)로 알게 되는 역리학(易理學)의 고수(高手)임이 틀림없으나 후세 사람들은 성리학(性理學)의 대가(大家)로만 인식하고 있을 따름이 안타깝다.
이웃의 일본은 아베라는 걸출한 명리학자가 배출되어 명리학에 아베학설이란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고, 중국의 위천리(韋千里)라는 학자는 장개석 총통의 자문역을 맡을 정도의 국사(國師)대접을 받았고, 우리나라의 삼성그룹의 설립자인 고 이병철회장도 경영과 투자 등 여러 면에서 위천리의 자문을 받아 의사결정에 많이 참고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뒷골목의 천대받는 점술가로 전략한 것은 우리 것을 천대시하고 서양의 문물에만 눈을 돌린 면도 없지 않으나 얄팍한 명리지식(命理知識)으로 돈벌이에만 급급한 술사(術士)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명리학을 연구 실증한 강호(江湖)의 학자들이 배출되었는데, 자강 이석영 선생은 사주첩경을 저술하여 명리학의 바이블이 되고 있고, 도계 박재완 선생과 제산 박재현 선생 같은 명리학의 대가(大家)가 배출되어 우리나라의 정.재계의 정책결정에 음으로 양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으나 이들은 음지(陰地)에서는 대접받은 귀빈(貴賓)일지는 모르나 양지(陽地)에서는 별로 대접을 받지 못하였다.
특히 제산 박재현선생은 박도사(朴道士)로 이름이 더욱 알려져 있는 사람으로서, 박정희 대통령과는 군수기지사령부의 사령관과 졸병으로 만나 간혹 운명을 간명(看命) 받은 적이 있는데, 군사령관으로 끝나지 않고 일국(一國)을 통치할 명(命)임을 간명(看命)하였다는 이야기와 유신헌법 선포시 정책결정에 자문을 받기 위하여 간 비서실 직원에게 유신(維新)을 유신(幽神)이란 글을 담배 갑에 기록하여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곤욕을 당하였다는 이야기는 우리사회에 널리 유포된 사실이다.
또한 박태준 전 포철회장이 김영삼 전대통령과 대통령후보 경선에 참여할 당시 박도사에게 자문을 받기 위하여 헬리콥터를 타고 갔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어 점쟁이에게 국사를 논의한다고 비꼬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또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 부장으로 재직시 도계 박재완선생에게 운명을 상담하였는데 「풍표낙엽(楓飄落葉) 차복전파(車覆全破)」라는 점괘(占卦)가 나왔는데 이것은 단풍이 떨어져 낙엽이 될 즈음 차가 엎어져 전복한다는 뜻으로, 운전사에게 운전조심을 당부하고 자동차사고를 그렇게 조심하였으나 차복(車覆)이란 차지철이 엎어졌다는 뜻이고, 전파(全破)란 전두환에게 깨어진다는 계시(啓示)를 담고 있으나 당시로서는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
전술(前述)한 것과 같이 정계(政界)뿐만 아니라 재계(財界)에서도 운명 학을 많이 참작한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하여도 이병철 전 삼성그룹 창업주일 것이다. 삼성그룹이 세계 일류기업으로 성장한 것도 인재의 적재적소 배치와 투자의 종류와 시기를 결정하는데 역리학을 많이 참작하였다는 것이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명문대학 출신이라도 상수학으로 적임이 아니면 채용을 하지 않는다는 항간의 소문은 사실임에 틀림없다.
인간의 지혜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경우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많이 발생된다. 이럴 때 종교에 의지하여 열심히 기도 드려 해결하려는 사람과 명리학에 나타난 운명에 의지하려는 사람과 무엇이 다른가?
명리학은 태양과 달과 그리고 우주의 별들을 신(神)으로 하여 그들에게 갈구하여 운명을 개척해 보려는 것은 인간의 내면(內面)에 잠재된 나를 낳은 성신(星神)에 대한 경천사상(敬天思想)이다.
동양의 성인인 공자도 「부지명(不知命)이면 무이위군자(無以爲君子)」라 하여 명(命)을 모르는 자는 군자가 될 수가 없다고 하였으며, 열자는 「치농고아가호부(痴聾痼瘂家豪富) 지혜총명각수빈(智慧聰明却受貧) 연월일시해재정(年月日時該載定) 산래유명무유인(算來有命不有人)」이라 하여 어리석고 병들고 귀먹고 눈먼 자도 집은 호화롭고 부자요 지혜가 있고 총명하지만 도리어 가난한 것은, 연월일시에 분명히 정해져 있으니 계산하여 보면 부귀는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라 팔자 때문이라고 설파하였다.
서양의 철학자 “시세로”도「일생을 좌우하는 것은 지혜가 아니라 운명이다」말하였는데 과연 운명은 어떻게 결정되며 그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동서양의 철학자들이 수천년을 두고 지혜를 모았으나 현재 지구상에는 음양오행의 사주학보다 인간의 운명을 더욱 잘 알 수 있는 학문은 어떤 것도 없다.
그러면 사주명리학(四柱命理學)이란 과연 무엇인가? 조선의 양반가(兩班家)에서도 벼슬을 하고 출세를 위하여서는 성리학(性理學)은 필수이나 암암리에 상수역인 사주와 풍수를 신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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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에는 명리(命理)를 학부에 정규과목으로 가르치는 대학교는 없으니 명리(命理)란 보석이 시궁창에 빠져 빛을 못보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명리학을 연구 실증하여 인간의 적성(適性)과 병(病)만이라도 명리학을 이용한다면 대학을 졸업하고도 갈 길을 찾아 못하여 방황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을 것이고, 적성에 맞는 직업을 얻어 능력을 배가(倍加)함으로서 국익과 개인의 행복에도 기여하리라 확신하는 바이다.
인체도 오장육부들을 관장하는 오행이 있으니 그것을 잘 관찰하면 병(病)이 어디에서 오며, 잠재된 병(病)의 유전인자가 무엇인지 알아, 약한 부위를 보(補)하기 위하여 섭생이나 색깔과 기호 등으로도 얼마든지 병 없는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보석과 같은 학문이 명리학(命理學)임을 밝히는 바이다.
최근 정윤회와 李 모 역술인의 만남이 언론에 큰 話題를 끌고 있다. 정치인이 역술인에게 상담함이 큰 나쁜짓이라도 한 듯 유명인사들의 역술인 만남을 금기시하고 있다. 그 역술인은 김대중 대통령 입후보시 이휘호 여사를 모시고 대구지방에도 내려오기도 한 것은 사실이고 정.재계에 암암리에 많은 영향을 미침도 사실이다. 이렇게 정.재계사람이 역술인에게 자문받는 것이 무엇이 큰 잘못이라도 行한 것처럼 사회가 야단법석이다.
위에서 기술 한 것처럼 옛날에는 역술인을 國師로 또는 참모로 삼아 정책이나 군사와 인사 다방면에 자문을 받았음이 사실이다. 왜 역술인이 음지로만 대접받는 사람일까? 이제는 제도권의 양지로 나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한 有名 易術人의 命造
乾命 1956년생
辛 壬 戊 丙
亥 子 戌 申
대운 39 壬寅, 49 癸卯, 甲辰
1, 秋節의 明鏡止水로서 壬水가 申에 장생하고 일.시지의 子亥에 녹왕(祿旺)을 득하니 秋水가 거세나 월상의 戊土가 월령을 득하여 제방이 되니 안동 땜과 같은 큰 호수와 같은 象인데 추수는 己土로 혼탁함을 가장 꺼리고 木으로 洩氣함이 가장 貴하게 여긴다.
2, 그러므로 壬寅 대운을 만나 秋水가 맑게 흐르니 발복하는 象으로 道通하여 역술인으로 世人에 脚光 받게 됨이고 재물 운도 발복함은 丙火 편재가 寅에 長生하기 때문이다.
3, 己卯년에는 관재수가 생겨 囹圄의 몸이 되었는데 그것은 己土가 추수의 맑은 물을 혼탁하게 함이고 상관 운을 만났기 때문이다.
4, 木 食傷이 없는 년상 편재가 투간하니 일확천금을 꿈꾸는 자이나 壬寅대운에는 巨金을 얻게 되나 木 식상이 없는 丙火는 戊戌 편관에 洩氣되니 訟事나 官界에 빠져나가는 재물이 되므로 지니기 힘이 들게 된다.
5, 道通함은 추수가 명경지수로서 木運을 만나 秀氣를 泄精하여 淸하고 戌亥 天門과 申 地軸을 모두 갖추었기 때문이다.
첫댓글 사이비 (似而非)[사ː이비]
[명사] 겉으로는 비슷하나 속은 완전히 다름. 또는 그런 것
역술인이 징역을 간건 거의 대부분이 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곱게 볼수가 없겠지요....
유명한 역술인이라는 분도 결국은 사기로 징역을 갔을 것이고 정윤회 씨가 만났던 그 역술인 또한 사기전과가 있는 겄으로 압니다.
이러니 일반 국민들이 좋게 볼수가 없겠지요.
이모씨라는 유명한 역술인도 지금 사기로 징역생활 하고 있지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좋은 의견을 개진해주어 고맙습니다.
충신 효부 열사 고장없이 기리네
역술인 사주는초기사령에해당되여
기해월 로보시고 대운은1대운으로보시면
부목사주에 나쁜짖은다한다고나옵니다
그럿쵸,,을사대운,,,사해충하넌 운에 진입햇네요,,부목이 재차 부목운을 만난것 갇슴니다,,,
초기사령을 모러고 주절주절하면 실족함니다,,
이걸 알아야한다
辛壬戊丙하면 初氣사령이면 辛은 戌로 가고 壬은 坐地 子로 가고 戊는 申亥로 가고 丙은 午로 간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支地
亥子戌申하면 戌만 초기 사령 辛이 아니다 申도 戊고 戌은 辛이고 子는 壬이고 亥는 戊라 하는 것을 알아야한다 알아갓는 감, 更新할려면 다 갱신이지 하나만 更新이 아니다
사주 좋으네요
갑진운
용신 고지군요
인.묘운 참좋았네요
편재이니
월주 무술의 제방을 만나서 공업용수로 쓰이든 농업용수로 쓰이든 쓰임이 많을 사주로 보이네요. 저는 역술인들 중에 자신의 질곡의 삶에 의문을 품고 공부를 하신 분들이 많아 성격적으로 치우친 분들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욕을 얻어먹을 만한 짓을 많이 하니 얻어먹는 것이겠지요. 혹세무민한다는 비난을 받을만도 하지요. 어쩔수 없는 것이겠지요.
이상한 사람들 많이 봅니다. 저도 이공부를 하고 있지만 욕을 하고 싶어지네요. 이곳 게시판도 그렇지만 아집과 독선은 이 학문을 하는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봐도 되겠지요. 다들 지 잘난맛에 사니까. ㅎㅎ
이 공부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집이 강하다고 봅니다. 그러하지 않으면 이 학문에 입문하지도 않겠지요. 그러나 이학문은 중화를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하는 학문이므로 공부를 하면 할수록 무게있는 삶을 살아간다고 봅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공부하고 갑니다.
명리학 들여다보는 자 치고 심보 고약 양인살이 끼지 않음 열에 하나 꾀재재함을 면치 못한다 양인살이 가득 끼어선 남을제압할 정도로 흉폭함 모를가 거의가 꾀재재한 타입 몸이 어디 부실하다든가 가정적으로 문제가 있다든가 이런 자들이 대략 팔자를 들여다 보고선 갑록을박 하게 되는 것 , 젊은 사람들 그렇치 않다 우기겟지만 그꼴을 닮아 가는 것. 일신이 영달 하면 가정이 문제요 가정에 충실하다보면 일신이 고단 이렇게 어느 것 선택 하겠느냐 이렇게 편갈라 한줄로 서라 해선 제 좋은데로 선것이 그런 거다 두손에 떡 쥐어 받긴 힘든 거에요
辛 壬 戊 丙..........1956
亥 子 戌 申..........乾59
69 59 49 39 29 19 09
乙 甲 癸 壬 辛 庚 己
巳 辰 卯 寅 丑 子 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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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월.병무신으로 모두 투출했으나 그 계절을 취하며 인수격이다. 따라서 토관이 상신이
되고 목식상이 용신이며 화재가 희신이다. 금수는 구기신이다.
임수일간이 신술자해로 장생.관대.양인.시록하고 시상인수를 얻어 태강한데, 또 인수가
병화재를 합하여 비겁기신을 만드니 과하고 병이 크다. 상희는 모두 묘고지에서 나왔고
약하며, 용은 숨고 공망이되 온통 정임암합을 지어 의외로 강력해질 수가 있다. 따라서,
29신축대운에는 병신합 해자.축술형으로 재관을 모두 입묘시키고 인수비겁만 극강해지니,
입산하고 동굴에서 도 닦는 사람이 되었고,
49계묘대운에는 무계합 자묘형.목국으로 제살태과.형살로 영어의 몸이 되었다.
연후에, 그 상세를 말하고 신살 물상 등도 대입해야 온전해진다.
이분은 팔공상 암자 토굴에서 수도를 하여 영통한분입니다.
선생님의 실전사주가 아닌 이론명리를 잘 읽었습니다. 공자 이전의 주역(易)은 의리역이 아닌 복서를 중심으로 하는 상수역이다가 공자께서 십익을 달음으로서 철학으로의 의리역이 연원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주역이라고 말할 때 의리역+상수역이 믹서된 書로 파악을 하는 것 같으며, 한나라에 들어서서 동중서의 천인감응설을 바탕으로 맹희, 초연수, 경방, 등의 상수학이 당시 통용되던 금문학으로 태동되었고 그 시대를 풍미한 것 같습니다. 이 때는 윗글 내용과 달리 동중서, 상수학의 효시인 경방 등은 고관대작으로 현직 관료층이었고 비직, 마융 등의 의리역인 고문학은 비실세였다고 보여집니다. 경방의 상수역에서
오늘날 우리들이 명리학에서 사용하는 육친설, 왕휴설(왕상휴수사), 지장간설(납갑납지설)의 연원이 되는 것 같으며 경방의 상합과 상생 상극이론이 그대로 내려 오는 것 같습니다. 상수역의 일변도 시대인 한나라가 지나고, 위진남북조 시대에 들어오면서 위나라 젊은 왕필은 당시 융성하던 불교의 반야(空)사상과 도가의 노장철학의 무위자연의 道에 영향받아 주역의 有의 세계인 태극을 無의 세계인 무극으로 확대 해석하였고 득의망상설에 의해 義를 얻으면 象을 잊으라면서 의리역을 창설하여 상수학이 쇠퇴하게 되어진 것 같습니다. 그후 당나라까지 이런 경향이 계속되다가 주역에 노장철학을 너무 믹서한 왕필의 주역주가 비판 받으면서
공영달의 주역정의로 자연의 天사상으로의 주역이 태동하더니, 송나라에 와서 북송의 정호(명도), 정이(이천) 형제에 의하여 의리로 주역을 해석하는 의리역 일변도의 세상이 되다가 남송의 주자(주희)에 의해 의리역+상수역이 되어 주자학(성리학)의 신유학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한편 송나라(북송)에서 진희이(화산도사)를 시발로 해서 충방, 유목, 주돈이(렴계), 소옹(강절)은 주역이 아닌 하도낙서를 근원으로 하여, 이름하여 도서상수학(象易學)이 나타나 상수학을 이어 나왔고, 그 이후 의리역과 상수역은 성명쌍수로 상호보완하면서 발전하다가 근현대에 들어와 상수학이 미신이라는 이유로 의리역에 ko패 당한 것 같습니다.
자미온님의 좋은 글에 많이 배워갑니다.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십시요.
겸허하신 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다.
새삼 자미온님은 해박하신듯 합니다.
아이고.. 해박은요, 그냥 아는 척 폼만 잡아보는 것이지요. 감사는 합니다!
팔자는 역시 팔자를 따라가는구나!
壬寅대운 戊寅, 己卯년은 상관이 관을 보니 자기 마음대로 춤추다 囹圄의 신세가 된 것이고, 壬寅 대운 辛巳, 壬午, 癸未 식재의 기세이니 그런대로 재물을 모으는 것이고, 더구나 관살이 버티고 있으니 재물을 지키는 구나.
기왕이면 금전 모을 시기도 알아야 되지 않을까?
무인대운에는 많은 재물을 모았으나 정치헌금과 송사로 소진하여 재물을 지킬수 있는 방법은 부동산에 투자해 놓아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과수원등 토지를 구입하기도 하였습니다.
@무학 역시 무학님다운 조언입니다.
69을사대운 이후의 부귀영화를 누리려면, 59갑진대운 66신축년의 수삼합방국축진술로
화토금재관인삼자를 동시에 모두 매몰시키는 운을 넘겨야 하는데, 불가항력이다.
안타깝고도 허망한 일이나, 인생이 어찌 여덟글자.팔자의 꼭두가시 놀음이 아니겠는가?
다만,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 그리고 쉴 때 쉴 줄을 알고자 할 뿐인 것이다.
연역법 방식인 극장의 우상이 타파되고, 귀납법 방식인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없어지고 천지자연의 생성원리와 변화에 근거한 음양오행으로만 인간의 간지를 간명한다면 사주술수가 아닌 사주명리학문으로 정립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無爲而無不爲 좋은 자료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여러분들의 글잘보아습니다 욕심을버리면 사주쟁이 직업좋습니다
헛된길을 가는자를 참된길로 인도하는 사람이 참된사주쟁이다
책 몇줄읽고 이러타 저러타 하는겄은 잘못이라고 나는생각합니다
죄송합니다 오해없기를 바랍니다
맞습니다. 나도 많은 직업을 전전하였지만 사주쟁이 할때가 가장행복했습니다. 지금 선생하는 아들 내 뒤를 잇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교육대학원을 나왔지만 동양철학 석사과정을 이수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