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악산 기슭을 찾아
◇ 서울 경전철 신림선
- 서울 남부 지역의 교통난 해소의 목적으로 추진한 경전철
서울 경전철 신림선(輕電鐵 新林線)은 샛강역~관악산역을 연결하는 서울 경전철 노선이다. 현재 서울 도시철도로 수도권에서 2번째로 운행 중인 고무 차륜 경전철 노선이다.
이 경전철은 서울시가 1호선, 2호선, 7호선, 9호선과의 연계를 통한 서울 동·서·북측 교통망을 구축하여, 서울 남부 지역의 도시 교통난 해소의 목적으로 추진한 사업이다. 건설 사업자는 남서울 경전철 주식회사다. 운영 및 유지보수는 로템SRS가 맡는다.
이 경전철은 수익형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되어 시설의 소유권은 준공과 동시에 서울시로 귀속되며, 민간사업자가 운영개시일로부터 30년간 운영하게 된다. 서울 경전철 우이신설선을 비롯한, 김포 골드라인과 같이, 모든 정거장에 엘리베이터, 안전문 등 편의시설 설치는 되어 있지만 역무실과 매표소 등을 없앤 100% 무인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신림선의 차량기지는 보라매공원 지하에 건설되었으며, 국내에서 2번째로 차량기지를 지하화하였다.
신림선의 기점은 샛강역(서울시 영등포구)이고, 종점은 관악산역(서울시 관악구)이며 정거장은 샛강 - 대방 - 서울지방병무청 - 보라매 - 보라매공원 - 당곡 - 신림 - 서원 - 서울대벤처타운 – 관악산역의 11개 역이다.
◇ 관악산 (冠岳山 : 632.2m)
- 서울의 외사산(外四山) 중의 하나로 남쪽에 있는 산
관악산은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과 경기도 안양시·과천시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이 산 정상부에는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모습이 갓을 쓰고 있는 모습을 닮아 관악산(冠岳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관악산의 능선마다 바위가 많고 큰 바위 봉우리가 연결되어 웅장한 산세를 이룬다. 북한산(北漢山)·남한산·계양산 등과 함께 서울 분지를 이중으로 둘러싼 자연의 울타리로, 옛 서울의 요새지를 이루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각축전을 벌일 때 매우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고려시대에는 남경의 남쪽을 방위하는 산으로 중요성이 언급되었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관악산은 풍수지리설에 따라 강한 불기운을 가진 산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관악산을 화산(火山)이라고도 했는데 경복궁(景福宮)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관악산의 불기운이 너무 강해 그 해를 입을 수 있다고 우려하였다. 그 때문에 왕사였던 무학대사(無學大師)가 관악산의 불기운을 달래는 사찰을 세웠으며, 관악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숭례문(崇禮門) 앞에도 연못을 만들어 불기운을 막았다고 전해진다.
예로부터 개성의 송악산, 파주의 감악산, 포천의 운악산, 가평의 화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五岳)에 속했던 산으로, 서울의 남쪽 경계를 이루고 있고 그 줄기는 과천 청계산을 거쳐 수원의 광교산까지 이른다.
관악산에는 화강암으로 형성된 기암괴석과 바위들이 많은데 바위마다 다양한 이름이 지어져 있다. 두꺼비바위, 무당바위, 해골바위, 장군바위, 마당바위, 얼굴바위, 돼지바위, 열녀바위, 칼바위 등 각각의 바위마다 재미있는 전설을 담고 있다.
산중에는 연주암(戀主庵:경기기념물 20)·자왕암(慈王庵)·불성사(佛成寺)·삼막사(三幕寺)·관음사(觀音寺) 등의 산사(山寺)와 과천향교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삼막사는 원효·의상 등의 고승들이 수도하였다고 한다. 관악산은 높은 산은 아니지만, 산세는 험한 편이고 골짜기마다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주는 곳으로 예전부터 금강산에 비교되었다. 서울 도심에서 가까워 주말이면 많은 등산객이 찾는다. 매년 봄 철쭉제가 열린다.
◇ 관악산 자연공원
- 1968년에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됨
< 호수공원 > 관악산 제1 광장 앞에 위치하며, 정자, 분수, 그늘막, 석고상 및 시비, 화계 등이 설치되어 있다.
< 숲속도서관 > 관악산 제1 광장 입구에 위치하며, 어린이 도서, 환경도서 등 2,500여 권 보유하고 있으며, 또 숲 해설, 자연물 활용 만들기, 에코 북 제작 등 다양한 숲속도서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 관악산 둘레길 > 사람 중심 건강 숲길 체험을 위해 까치산 생태 육교~신림 공원까지 13km의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 전통 야외소극장 >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와 마풍양속을 재현하고, 선보이며 스스로 체험할 수 있는 대표적인 명소이다.
이 극장에서는 전통혼례부터 국악놀이마당이 펼쳐진다.
< 관악구 청년 공간 > ‘이음’부터 ‘관악 오랑’ ‘아야어여’ 등의 다양한 센터가 있다.
◇ 서울대학교 규장각 (奎章閣) : 관악구 관악로 1
- 조선후기의 왕립 학술기관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의 역사적 기원은 조선후기의 왕립 학술기관이었던 규장각(奎章閣)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중국에서 제왕(帝王)의 글을 ‘규장(奎章)’ 이라 부른 연유로, 조선에서 왕의 초상화·친필·저술·인장 등을 보관하는 건물을 규장각이라 이름 지었다.
1776년 정조(正祖)가 제22대 군주로 즉위한 직후 정식 국가기관으로 발족한 규장각은 역대 왕의 글·글씨·그림, 왕실의 족보 등을 보관 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전임(專任) 문신들이 학문을 연구하고 왕의 자문에 응하는 기능, 국정 운영의 참고 자료인 국내외 전적(典籍)을 수집 ·보관하는 기능, 서적을 출판하는 기능을 담당하였다.
한 때는 각신(閣臣)들이 왕의 친위세력을 형성하면서 국정 전반에 관여하기도 했다.
규장각은 창덕궁 정문 부근에 위치한 궐내각사에 처음 세워졌으며, 정조대에는 창덕궁 후원 주합루에도 규장각이 설치되었다. 또한 소장 도서의 안전한 보관을 위해 강화도에 외규장각이 설치되어 있었다. 외규장각에서 보관하고 있는 다수의 문서들은 구한말 프랑스와 전쟁인 병용양요시에 프랑스군이 침탈하여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으므로, 이의 반환문제가 논의되고 있는 중이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내에 문화재 보존 설비를 완비한 전통 양식의 기와집 건물을 지어 규장각 도서들을 관리하고 있으며, 도서관, 박물관, 국학 연구, 사회 교육의 기능을 겸하여 수행하고 있다.
규장각의 소장 자료는 7종의 국보, 8종의 보물을 포함하여 18만여 책의 고도서와 5만여 장의 고문서, 1만 8천 장의 책판, 현판 등 총 27만여 점의 고전적(古典籍)들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국보인 《조선왕조실록》과 국보 《승정원일기》는 세계기록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인류 문화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