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사단의 초기작전과 이태영 하사의 활약, 뛰어난 야전 감각과 용맹으로 사단 최고의 전과달성 (최용호 베트남 정글의 영웅들 17)
이 내용은 다음의 창에서 유튜브 영상으로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ms-bqiPb_Ng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시간 제9사단 즉 백마부대 파병 경과를 말씀드렸는데요
오늘은 백마부대의 초기작전과 제28연대 제9중대 2소대 1분대장 이태영 하사의 활약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965년 1월 12일 입대한 후 25사단에 근무하고 있던 이태영 하사는 갑작스런 전출을 명 받았습니다.
정부가 제9사단의 파병을 결정하면서 전후방 각급 부대에서 유능한 전투요원을 선발 보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베트남파병은 형식상 본인의 자원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앞서 파병한 청룡·맹호부대에서 많은 전·사상자가 발생하면서 파병을 꺼리는 분위기가 되자 사실상 지명 차출하고 있었습니다.
차출된 장병도 자신의 의사를 주장하기보다는 대부분 국가가 필요로 한다면 내 한 몸 바치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태영 하사가 찾아간 제9사단은 경기도 양평에 있었습니다.
이태영은 제28연대 9중대 2소대 1분대장의 보직을 받았습니다.
제9사단은 각급 부대에서 차출한 병력과 장비로 창설 수준의 재편성과 함께 전투훈련이 임했습니다.
8주간의 훈련을 마친 제9사단은 8월 27일 중앙청(현 광화문) 동측 광장에서 박대통령이 주관하는 파월 환송식을 가졌습니다.
사단의 선발대가 된 이태영 하사와 제28연대는 8월 30일 부산항 제3부두에 대기하고 있던 미군 수송선에 승선해 항해 7일 만인 9월 5일 남베트남의 나짱에 상륙했습니다.
그때 나짱의 해변에는 많은 사람이 가족과 함께 해변의 정취를 즐기고 있어 전쟁 중인 나라의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는 별천지의 세계였습니다.
제28연대에 이어 나짱에 상륙한 제9사단은 사단 사령부를 칸호아성 닌호아에 두고,
제28연대를 북쪽의 뚜이호아에, 29연대를 사령부가 위치한 닌호아에, 30연대를 남쪽의 깜란에 배치해 1번 도로를 연하는 해안의 요충지역을 담당하였습니다.
제9사단의 책임지역은 북쪽 뚜이호아의 바강(song Ba)을 경계로 남쪽 판랑까지
200여 km에 이르는 1번 도로 구간의 해안지대를 담당했는데,
남베트남의 핵심지역이었습니다.
이태영 하사와 제28연대는 뚜이호아 남쪽 비행장에 임시 주둔지를 설치하고 4주간의 현지 적응훈련에 돌입했습니다.
이하사가 소속된 제9중대는 중대장 이수희 대위, 1소대장 박동린 소위, 2소대장 황재휴 소위, 3소대장 김성초 소위, 화기소대장 김정중 소위, 포병관측장교 윤여방 소위로 편성되어
모두가 훌륭한 전투요원으로 성장했습니다.
제28연대장 최명재 대령은 훈련의 마지막 단계로 연대의 핵심지역인 븡로만 혼바 산악지역에서 1박2일 간의 실전훈련을 계획했습니다.
제28연대 2.3대대는 10월 14일 아침 5시에 주둔지를 출발해 비교적 안전한 혼바 능선 하단부를 택해 실전훈련에 돌입했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연대 수색중대가 베트콩의 개인화기 4정을 노획하면서 훈련이 아닌 작전(독수리1호)으로 전환했습니다.
그때 이태영 하사와 9중대는 베트콩의 동굴 13개를 폭파하면서 작전을 마무리했습니다.
반면 연대 수색중대 2소대가 베트콩의 습격으로 소대장이 부상을 입고, 엄주한 일병 등 2명이 전사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엄주한 일병의 시신조차 회수하지 못했습니다.
연대장 최명재 대령은 작전을 연장하면서, 어떠한 희생을 무릅쓰고서라도 동료의 시신을 회수하라고 엄명했습니다.
수색중대는 다음날 여명작전으로 베트콩의 동굴을 습격해 8명을 사살하고 엄일병의 유해를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실전훈련의 대가는 컸지만 얻은 경험 역시 귀중한 것이었습니다.
실전훈련을 마친 제9중대는 뚜이호아평야의 남쪽 들판 표고 51m의 조금만 고지에 중대기지를 설치했습니다.
청룡부대 예하 중대가 사용하던 기지였습니다.
화면에 보여드리는 51고지 사진은 2011년 현지를 답사하신
이명주, 박은재, 김주환, 강기웅 참전용사님이 촬영하신 자료를 활용하였습니다
그때 베트콩들은 기지로부터 대략 3km 동남쪽에 있는 524m의 혹놈산, 510m의 다쩡산, 216m의 짜이산 등 정글과 가시덩굴이 우거진 난공불락의 자연 요새에 은거하고 있었습니다.
제28연대는 혹놈산 일대를 평정하기 위한 작전을 계속했지만 별다른 전과를 획득하지 못했습니다.
제9중대는 1967년 1월 21일 시작된 마두1호 작전에서 미군 헬기조종사의 착각으로 예상보다 3km 서쪽에 착륙하면서 연대장으로부터 많은 질책을 받았습니다.
특히 작전 중 베트콩의 지뢰에 걸려 3명의 발목 절단 부상자가 발생하면서 작전은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작전의 새로운 계기는 2월 3일 밤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날 밤 제2중대의 매복대가 푸옌성 간부 베트콩을 생포했는데 그 가족이 9중대 인근 마을에 살고 있었습니다.
연대는 포로를 9중대에 인계해 작전에 활용하도록 했습니다.
중대는 포로를 가족에게 데려가 회유를 계속하자 포로가 다쩡산 기슭의 베트콩 군사기지에 대해 자백을 시작했습니다.
9중대는 12월 6일 포로를 앞세워 다쩡산으로 은밀히 접근했습니다. 문제는 시간이었습니다.
불과 2일 후인 2월 7일 08:00부터는 뗏(tet, 설) 명절을 맞아 임시 휴전이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작전은 2월 7일 새벽까지 모두 마쳐야 했습니다.
제2소대 황재휴 소위와 제1분대 이태영 하사가 앞장섰습니다. 베트콩 진지는 밀림 속 동굴에 은밀하게 위장하고 있었습니다.
포로의 안내가 없었다면 좀처럼 발견하기 어려운 위치였습니다.
물론 이태영 하사의 주도면밀함과 직감이 작용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보고를 접수한 황재휴 소위는 동굴 주위를 포위하고 이태영 하사는 강언수 병장과 함께 동굴에 진입해 플래시를 들고 15m가량을 조심스럽게 전진했습니다.
이윽고 지하층으로 연결된 동굴을 따라가자 은거하고 있던 베트콩들이 도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위를 포위하고 있던 소대장 황재휴 소위의 차단병력에 일망타진되면서 아군은 피해 없이 10명을 사살하고, 소총 4정을 비롯한 수류탄 등 각종 탄약을 노획했습니다.
박동린 소위가 지휘하는 좌측의 제1소대도 도주하는 베트콩과 20분 정도의 교전으로 15명을 사살하고 17정의 소총을 노획하는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제9중대는 2월 7일 새벽 작전을 마칠 때까지 베트콩 52명을 사살하고 40정의 소화기와 3정의 공용화기를 노획하는 전과를 달성했습니다.
그때까지 제9사단에서 중대급 전투로는 최대의 전과였습니다.
특히 매번 작전에서 항상 선두에 나서는 이태영 하사의 용맹과 주도면밀한 수색으로 은폐된 적의 기지를 찾아낸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뗏 휴전을 앞두고 긴장을 늦추어 버린 베트콩의 과오도 9중대의 전과에 기여했습니다.
정부는 수훈을 세운 이태영 하사에게 인헌무공훈장을 수여하고 황재휴, 박동린 소위와 이수희 중대장 등 수훈자 모두에게 적절한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이태영 하사의 용맹과 활약은 마두1호 작전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작전에 앞장을 서면 아군의 피해 없이 전과를 거두는 행운이 계속됐습니다.
그러나 그건 행운이 아니라 그가 끊임없이 연마한 전술 전기와 야전 감각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중대의 첨병 분대장이 되면 중대원 모두가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중대원 모두를 위해 꼭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1967년 9월 1년간의 파병을 마무리하고 귀국하자 부대는 그의 재파월을 요청했습니다.
그는 귀국 2개월만인 11월 중대에 복귀하여 중사로 특진, 소대 부사관으로 소대를 이끌었습니다.
제9사단의 제3대 사단장 유창훈 소장 부임 첫날밤인 1968년 7월 31일 혼바(산)에서 그의 매복대는 베트콩 18명을 사살하고 소총 13정을 노획하는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정부는 그의 공로를 높이 평가해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동성무공훈장을 남베트남 정부는 동성, 은성훈장에 이어 금성무공훈장을 잇달아 수여하며 공적을 치하했습니다.
이태영 중사는 베트남에서 상사로 특진하여 귀국한 후 제7사단에서 복무하였으며, 1981년 전역 후에는 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 경북 지부장으로 12년을 재임하면서
국민의 안보의식 고취와 함께 무공수훈 장병의 명예선양, 복지증진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태영 영웅과 백마부대 장병의 활약에 경의를 표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청룡부대의 뚜이호아 지역 작전과 고 이인호 소령의 활약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