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실미도>가 관객동원 1,000만명의 대기록을 향해 질주 중인 가운데 당시 사건 목격자의 새로운 증언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목격자에 따르면 1971년 8월23일 실미도 684부대원들이 탄 채 폭파된 버스 안에는 민간인이 있었으며, 폭파상황도 자폭이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조사 결과나 영화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영화 <실미도>에서도 부대원들이 민간인을 전부 하차시킨 뒤 자폭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목격자는 당시 보안사 수사과장의 운전병으로 근무했던 장인석씨(가명·57). 장씨는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는 것을 꺼려 3일 본지와 전화 인터뷰로만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장씨가 수사과장과 함께 서울 대방동 유한양행 앞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버스가 폭파되고 5분이 지난 뒤. 당시 일등병이던 장씨는 사령부 소속 현역 중사와 함께 자폭한 버스에 가장 먼저 접근했다.
버스 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뒤에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무장군인들이 엄호했다. 그는 먼저 버스의 앞범퍼를 딛고 올라가 조심스럽게 내부를 둘러봤다. 버스 통로에는 5∼6명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다시 뒤로 돌아가 뒤범퍼를 딛고 내부를 봤다. 의자 사이사이에 죽은 대원들이 널브러져 있었으며, 버스 내부는 피투성이였다. 한쪽에서 신음소리도 들렸다. 살아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증거다.
''생존자는 움직이지 말라'고 소리쳤습니다. 이들이 무장공비라고 들었기 때문에 무서웠습니다. 총격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는 2∼3분 기다리다 현장에 출동한 30사단장의 지프를 버스 옆에 댄 뒤 대검으로 비상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출입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버스 안으로 들어갔더니 피비린내가 코를 진동해 구역질이 날 정도였습니다. 15∼17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운전석 옆 보닛 부분에 머리가 긴 사람이 고꾸라져 있었다. 부대원들은 모두 예비군 복장인 데 반해 이 사람은 민간인 복장이었다.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여성인 듯했다. 그는 팔 한쪽이 떨어져 나간 채 보닛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장씨는 현장만 확인하고 버스에서 나왔다. 이들 중 살아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은 앰뷸런스에 실려갔다. 그리고 버스는 사망자를 실은 채 견인차에 끌려 현장에서 사라졌다.
'당시 버스 내 현장을 봤을 때 이들이 자폭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이들이 수류탄을 밖으로 던지다 총에 맞고 놓치는 바람에 폭파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장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추정했다.
'버스의 중간 부분 천장에만 핏덩이가 뭉쳐 있었습니다. 자폭을 했다면 수류탄을 여러개 터트렸을 텐데 한두개에 불과해 자폭이 아닌 것으로 추정되더군요.'
기록으로는 이날 버스에 탑승했던 684부대원은 모두 23명으로, 이중 17명이 현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돼 있다. 생존자 6명 중 2명은 병원 이송 후 사망했으며, 4명은 사형이 집행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장씨는 '71년 1월 보안사에 입대한 지 7개월 만에 이같은 사건을 접해 큰 충격을 받았다'며 '그해 11월 가정문제로 의가사 제대했다'고 말했다. 장씨는 현재 서울의 한 조그만 건설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