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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불암산 ( 산길에 드리운 은하수 )
보름을 이틀 앞둔 달빛이 휘영청 밝다.
1주일 전부터 출정 일의 일기예보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는데 다행히 내일까지 날씨는 쾌청하다는데,
제일 문하의 기상이 우뚝하니,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것인가?
요즘은 기상청을 ‘구라청’이라고 부를 정도로 일기예보가 엉망이어서 원망을 사고 있는데,
어디 요즘 세상에 뜻대로 안 되는 일이 일기예보만이겠는가?
시절이 하 수상하다가 보니 만사가 다 믿기 어려운 일 뿐인 것 같다.
어쨌거나 극한의 산행에서 비옷을 여분으로 챙기지 않는 것만도 행복한 일이다.
달빛이 비록 휘영청 밝다고는 하나 야간 산행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잠시만 방심하거나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바로 엉뚱한 길로 빠지기 십상이다.
각자 이마에 호롱불 하나씩을 밝히고 첫걸음을 옮기는(21:00) 호흡소리가 비장하다.
아무리 빨라도 내일 어스름이 되어야 족두리봉을 넘어 불광동에 도착한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선두 예정 시간이 오후 7시 30분 도착이니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개똥벌레처럼 반짝이는 불빛의 행렬이 아름답다.
하늘에는 별이 반짝이고, 산속에는 우리 행렬이 밝히는 불빛이 산길 위에다 또 다른 새로운 별을 만들고,
불빛으로 번쩍이는 산길은 길게 이어져 은하수를 드리운다.
20분을 세게 올라 치니 목표로 했던 제1쉼터(21:20)에 다다른다.
넓직한 바위 위다.
10분을 쉬면서 간식과 음료수로 목을 축이고 다시 출발한다.
누구도 쉽게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이 긴장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기야 골수까지 다 짜내야 하는 extreme(극한) 산행이니 긴장하는 것도 당근이겠지...
거북산장에 도착(21:45), 다시 5분을 휴식한다.
애초 계획한 대로 꾸준하게 걷는 것이 장거리 산행에서는 가장 중요하다.
서두르다가 나중에는 지쳐서 실패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처럼 많은 인원에다 순수 아마추어 산꾼들로만 뭉친 종주대는 처음부터 길을 잘 잡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너무 빨라도, 너무 늦어도 안되니, 완급을 잘 조절해야 하는 것이다.
보통 5산 종주는 소수 정예로 구성하고 행동식 위주로 배낭을 최소화하여 빠르게 움직인다.
그래도 성공율은 70%를 잘 넘지 않는다.
나도 작년까지 강남 7산을 포함, 4번을 도전하여 모두다 성공은 하였지만 기록은 그다지 좋지 못하였고,
대간킴과 2년 전에 마지막 강남 7산을 종주할 때는 정말 죽을 맛이었었다.
오죽하면 완주를 끝내고 마지막 하산한 후, 맥주 한 컵을 마실 기력도 없어서 잔을 앞에다 놓은 채, 졸고만 있었겠는가?
그 때의 악몽 때문에 다시는 목숨(?)을 건 산행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맹세 했었는데...
얄궂은 운명으로 천의무봉 사제에게 이렇게 또 코가 꿰이고 말았으니.....
매 번이 그렇다.
할 때마다 다음에 또 하면 내가 견자(犬子)지 하면서도, 옛날의 힘들던 기억은 희미해지고,
다시 도전의 유혹에 휘말리게 되는 것 같다.
인간의 성취욕은 끝이 없는 것인가?
더군다나 모교 개교 70주년을 기념하는 뜻 깊은 산행이니 여지껏 했던 어떤 도전보다도 더욱 의미 있는 산행이고,
그런 만큼 더 책임감을 느끼고 긴장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쉬는 중에 사미 본산 사제들은 곡차를 마시는데, 조심스럽게 권하는 것을 우리 사명 진산은 쳐다도 보지 않는다.
그런데 초장부터 탈이 생겼는가 보다. 나중에 올라온 산도책사 후미장의 말에 의하면
결단존자가 급하게 저녁 먹은 것이 안 좋아 토하고 힘들어 한다는 것이다.
이곳 산길은 자신이 잘 알고 있으니 먼저 진행하라고 했다는데.. 초장부터 걱정이다.
별탈 없기를 바라며 대원들과 함께 불암산 암릉을 타고 오른다.
씩씩대며 밧줄을 잡고 올라 치니, 드디어 해발 507m, 불암산 정상(22:05)!
내려다 보이는 시내의 야경이 휘황찬란하다.
서울에서 야경이 가장 좋은 곳 중의 하나이다.
오늘 이렇게 청명한 날씨가 시야를 환하게 밝히니 이 또한 제일 문하의 축복이리라!
기념촬영을 마치고 다시 석장봉(다람쥐 공원)으로 이동(22:20)하여 5분을 휴식한다.
그런데 다행히 결단존자가 컨디션을 회복했는지 뒤쫓아 올라와 우리 모두는 박수로 환영한다.
이런 극한의 산행에서는 자신의 몸 상태를 스스로 점검하고 챙겨야 한다.
조그마한 허점만 있어도 바로 치명적인 결과로 연결된다.
사전에 그렇게 공지를 통해 강조했건만, 과연 오늘의 도전에서 몇 명이나 성공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과연 절반이나 성공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은 결과가 말해 줄 것이다.
야간 산행에서 곧잘 헷갈리는 고개능선 갈림길에도 무사히 오르고(22:40), 다시 덕능고개로 하산한다.
상당히 가파른 비탈길 내리막이다.
야간 구간만큼은 우리 모두가 함께 이동하기로 한다.
그래도 선두와 후미는 차이가 나게 마련이고 다음 휴식 장소를 미리 예고하고 선두가 먼저 가서
후미를 기다리는 방식으로 산행을 진행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체의 행렬이 길어지고 시간이 지체 되기 때문이다.
동물 이동 통로를 건너고, 드디어 덕능고개에 도착한다(22:55).
의정부와 서울을 잇는 고개이다.
불암산 구간에, 순수 산행 시간 1시간 30분, 휴식 시간 30분, 총 2시간 5분이 소요 되었다.
10분을 휴식하는데 모두들 조금은 힘들어 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제 겨우 산 하나를 넘었는데...
사미 본산의 주당들은 또 곡차 대령이다.
저 좋아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갈 길이 멀고 먼데, 영향을 끼칠까 걱정이다.
하기야 나도 더없이 좋아하는 곡차인데, 대 부대를 인솔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으니 참고 있을 뿐이지...
아마 시간이 지나면 마시라고 해도 못 본 척 할 터인데...
스스로 깨닫기 전엔 명약도 소용이 없다.
7. 수락산 ( 아쉬운 ‘결단존자’의 하산 )
10분의 휴식을 끝내고 다시 배낭을 둘러 멘다(23:05).
다음 휴식은 전망이 좋은 철탑 위 쉼터 마당바위다. 이제부터는 수락산 구간이다.
군부대 철조망을 끼고 계속 오르는 가파른 비탈길이다.
맨 앞에서 길을 잡아 쉬지 않고 30여 분을 올라 치니(23:38) 드디어 철탑 위 쉼터 마당바위다.
밤에 오르는 산길이라 조금은 수월하다.
보통 밤에는 곧잘 바람이 살랑거리는데, 오늘은 한 점 바람도 없으니 산신님께서 노하신 겐가? 도무지 인색하다.
좀 빡세게 올라 친 셈인가?
뒤따라 올라오는 대원들마다 인상이 험악하게 일그러진다.
10분을 쉬어 가기로 하는데, 원사백을 비롯한 몇 분은 아예 양말까지 벗고 발 마사지다.
그런데, 갑자기 꽥~ 하는 호통소리가 들려, 모두가 긴장한다.
미성사형의 느닷없는 기합이다.
급경사 오르막에서도 쉴새 없이 출수되는 대단한 내공을 지닌 구례염사의 구화공은 무림의 절공(絶攻)인데,
아마도 오해가 있었던 듯하다.
어제 친구와 같이 산행을 하는 중에 늦게 올라온 친구 때문에 힘들었던 얘기를 했다는데,
마침 누운 채 휴식을 취하고 있던 미성사형께서 본인의 얘기를 하는 줄 알고 일갈을 하신 모양이다.
미성사형의 무공이야 절정 고수이신데 누가 감히 대적한단 말인가?
안될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쉬는 것도 힘든데, 오르막 힘든 길에서도 쉴새 없이 출수되는 구례염사의 대단한 구화공의 위력이 문제이다.
정말 가공할 공력이다.
이내 싹싹하게 가서 해명을 구하는 구례염사. 그러나 쉽게 노염을 거두지 않는 미성사형.
마침내 실버지존께서 ‘그만 하라’는 점잖은 일갈로 상황을 마무리한다.
분명 힘든 상황에서 모두가 긴장하고 있고, 또 신경이 곤두선 탓이리라.
힘든 산행일수록 서로 배려하고 또 서로 삼가야 할 일이다.
그것을 배우기 위해 우리는 힘든 고행을 자청하며, 입산 수도는 물론, 이렇게 힘든 도전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각자 나름대로 터득한 노하우로 휴식 10분을 보내고 다시 출발, 치마바위까지 쉬지 않고 오른다(00:15).
다시 또 10분의 휴식이 주어진다.
그런데 염려하던 상황이 또 재연되었다.
후미장 산도책사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결단존자가 도저히 힘들어하며 처졌다는 것이다.
오늘 5산 종주를 하는 팀이 두서너 팀은 되는 것 같은데 그 사람들과 같이 갈 테니 먼저 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진중대협이 전화를 시도하더니 기차바위까지 먼저 진행하라는 전갈이다.
허긴 처진 사람을 무작정 기다린다는 것은 전체가 실패할 위험성이 있다.
본인이 알아서 빨리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야간이라 사고의 위험이 문제인데, 수락산 길을 잘 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다시 철모바위에 올라(00:40) 또 10분을 휴식하고 수락산 정상, 주봉에 오른다(00:55).
해발 637.7m, 태극기가 펄럭이는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5분을 휴식한다.
뒤이어 올라온 지방 산악회에서 왔다는 5산 종주대를 만난다.
같은 목적지를 가는 일행이라 그런지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반갑다.
오늘 5산 종주 팀은 두서너 팀은 되는 것 같다.
그 중에서 우리가 가장 대부대인 것 같다.
구간답사 때 건전지를 갈아 넣었던 랜턴 불빛이 점점 희미해 지니,
철저하지 못한 자신의 준비성에 혀를 차며 자책해 보지만, 그나마 달빛이 밝으니 조금은 다행이다.
바로 뒤따라 선두에서 길을 잡는 당천대인이 염려를 하는데,
태양처럼 환한 당천대인의 랜턴 덕분에 조금은 의지가 된다.
야간산행에서는 뭐니뭐니해도 랜턴이 바로 생명이 아닌가?
까마득히 내려다 뵈는 기차바위를 하강하며 피사체의 포즈를 잡아 본다.
힘든 상황에서도 열심히 기록을 남기는 천의무봉의 헌신이 눈물겹다.
‘5산 쟁투’ 내내 그 무거운 사진기 메고 기록을 남기느라 곱빼기로 더 힘들었을 천의무봉과 대간킴,
두 분에게 우리 모두를 대신해서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언제나 우리는 무심히 순간을 지나지만 나중에 돌이켜 보면 보이지 않는 헌신에 의해 큰 일이 성사되는 법이다.
이런 기록이 다시 또 같은 길을 걷는 후예들에게는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진도 그렇거니와, 중간 보급기지까지 사모와 함께 일일이 각자에게 배분될 행동식과 기타 준비물을 챙겨서
현지까지 미리 배달해 놓은 천의무봉의 철저한 헌신이 없었다면,
어찌 ‘5산 쟁투’가 90%에 가까운 대 성공을 거둘 수가 있었겠는가?
5명 전후의 정예멤버로 구성된 전문 산꾼들도 한 두 명은 탈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성공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철저한 기획과 책임감 있는 준비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물론, 그에 못지 않게 도전하는 모두가 오늘을 기다리며 수없이 많은 땀을 흘리면서 몸을 만들고 산행로를 익히는 등
철저한 예습을 한 덕분이었음도 물론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 제일 문하의 저력이자 기상이기도 하리라!
기차바위 30m 직벽도 무사히 하강하고(01:10) 후미가 하강을 마칠 때까지 15분을 더 기다린 후,
다시 출발, 도정봉까지 올라 친다.
누구 하나 힘들다는 말은 안 하지만 서로의 눈빛만 봐도 상대가 무엇을 얘기하고 싶어하는지 읽을 수가 있다.
그것이 또 서로에게 무언의 위로가 되는 것이겠지..
도정봉에 도착(01:45), 넓다란 바위에 퍼질러 앉은 채, 나는 야식을 예약한 오리학교에 열심히 무전을 날린다.
그러나 전파가 잘 잡히지 않는다.
위치를 옮겨 가면서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보니 어쩌다 신호가 가는데 이번엔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핸펀도 가게도.....
예정 시간보다 40분이나 일찍 도착한 셈인데, 아마도 교장 선생님께선 주무시고 계신 것만 같다.
우리를 위해서 특별히 예약을 받아 주셨고, 새벽 3시 반에서 4시 사이에 도착,
식사를 할거 같다고 했으니 여유 있게 주무시고 계실 것이다.
식사 시간을 절약하려면 통화가 되어야 하는데 안타까운 마음만 급하다.
그러나 서두른다고 될 일도 아니고 수락산 마지막 능선에 올라 다시 시도해 보기로 한다.
사미 본산 사제들은 아직도 지치지 않았는지 그 사이 또 곡차를 꺼내서 시음을 하고 있으니
그 동안 미성 사숙과 함께 천하를 주유하면서 갈고 닦은 내공이 대단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그런데 실버지존 단장님께서 일이 벌어졌다면서 안타까와 하신다.
말씀인즉, 지금껏 힘들어 하던 결단존자가 기차바위에서 기다려달라고 얘기하는 바람에
후미장 산도책사 사제가 혼자서 기다리다가 끝내 만나지도 못하고 연락도 안되고 하여 혼자 남은 채
그만 석림사 계곡 길로 하산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야간 산행 중에는 같이 이동하기 때문에 배터리도 아낄 겸 무전기를 사용하지 않기로 한 불찰을 뒤늦게 안타까워 해보지만,
그저 주어진 임무 때문에 혼자 고생하고 있는 후미장에게 미안할 뿐이다.
누군가 핸펀으로 후미장과 통화하여 동막골 오리학교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매사 철저한 판단과 진행을 해야 하는데,
난 후미장이 혼자 남은 것도 모르고 있었으니 정말 답답한 일이다.
애초 결단존자의 상황은 초장부터 완주가 가능한 상황이 아님을 알고 적절한 판단과 결정을 했어야 하는데,
애궂은 후미장만 혼자서 고생했으니, 대장으로서 너무 무심했던 것 같아 더욱 미안한 마음이다.
마음이 상한 채, 캄캄한 비탈진 계곡 길을 혼자 내려 갔을 후미장에게 미안한 마음을 속으로 띄워 보낸다.
달콤한 20분의 휴식을 끝내고 마지막 능선 벙커 쉼터를 향해 다시 비탈길을 치고 오른다.
마지막 능선 벙커 쉼터에 도착하여(02:20) 무전을 날리니 겨우 오리학교 정영택 교장선생님과 통화가 연결된다.
그래서 마지막 능선에서 하산함을 급히 알리고 바로 식사할 수 있도록 준비를 부탁한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부터 장암동으로 하산하는 동막골 구간은 꽤 지루한 길이다.
그러나 통화도 되었겠다, 야식을 먹고 잠시 쉬어갈 생각에 쉬지 않고 걸으니 동막골 입구 수락산 날머리가 나온다(03:00).
다시 10분간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냇가에 자리잡은 오리학교 동막골 맛집이 나오는데,
더욱 반가운 것은 반대편으로 헤어졌던 산도책사 후미장이 올라오고 있었으니,
절묘한 타이밍이다.
얼른 미안한 마음 담아서 굳게 손을 맞잡는다(03:10). 미안하이 사제...
이렇게 힘든 산행을 단체로 진행하다 보면 이런저런 일들이 늘 있게 마련이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내공 또한 강해지는 것이려니.....
땀으로 흠뻑 젖은 배낭을 내리고 준비한 식사를 마주하니 구수한 청국장 향기가 코 끝을 간지럽힌다.
누가 청국장을 일러 퀘퀘하다고 흉을 봤던가?
그날 우리가 먹은 동막골 맛집의 청국장은 중국이 자랑하는 일품요리 ‘만한전석’에 견주어
결코 부족함이 없었다는 것이 우리 모두의 한결 같은 품평이었다.
선조가 물려주신 우리 고유의 발효식으로 우리는 그 힘든 사패와 도봉산 암릉도 거뜬히 넘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식사와 휴식 겸 마무리 커피타임까지 45분간을 오리학교에서 머무른다.
덕능고개에서 이곳까지 수락산 구간에, 순수 산행시간 2시간 55분, 식사 겸 휴식시간 1시간 55분,
합계 4시간 50분이 소요 되었다.
이렇게 우리는 두 번째 힘든 고지를 넘고 어둠에 잠긴 세 번째 고지, 사패산을 올려다 본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덩이를 가슴 속에 숨긴 채......
이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사패산을 향해 출발할 시각이다.
뒤처진 ‘결단존자’로부터 수락산 하산을 끝으로 ‘5산 쟁투’ 도전을 접겠다는 연락을 접한다.
어렵게 결단을 내려준 ‘결단존자’가 고맙다.
오늘을 기다리며 여러 날의 수련을 거듭하였을텐데, 아쉬움이야 어찌 없겠는가?
그러나 자신의 몸 상태가 여의치 않고, ‘5산 쟁투대’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어려운 결단을 내린 것임을 안다.
그렇기에 무명(武名)도 ‘결단존자(決斷尊者)’가 아니겠는가!
결단존자 사제가 하산하면 따뜻한 식사를 대접하도록 오리학교 교장선생님에게 당부하고,
우리는 각자 행동식을 배정받아 배낭에 챙긴다.
사과, 쵸코렡, 영양갱, 포카리, 생수, 등을 대원 숫자만큼 꼼꼼히도 챙겨 놓은 천의무봉 부대장!
같이 고생한 사모에게도 감사를 올린다.
목도 축일 겸 미리 준비해 놓은 탁배기는 이제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다.
주림 천하(酒林 天下)의 대권을 쥐고 있는 사미 본산 무사들도.....
참으로 불가사의(?)한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한 셈이다.
이제 서서히 주님(?)의 위력(!)을 실감하는 모양이다. ㅎㅎ...
극한 산행에서 멋모르고 주님을 섬기다가 얼마나 많이 혼이 났던가...?
경험하지 않고선 아무리 강조해도 실감하지 못한다. 남아 있는 생수와, 이젠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탁배기를
교장선생님에게 선물 했더니 자신은 탁주 광이라면서 흡족해 하시는데,
꼭 착한 일을 하고 나서 칭찬 받는 유치원생이 된 기분이다.
아직도 까마득히 남은 구간에 대한 투지를 불태우면서 배낭을 챙겨 멘다(03:55).
냇가를 따라 가다가 다리를 건너고 다시 아파트가 즐비한 고가 밑 굴다리를 빠지는데...
순간적으로 나는 그만 회룡역 방향으로 좌회전을 하고 만다.
청국장을 잘못 먹은 탓인가?
순간적인 착각이다.
앞서 가던 대원들에게 고함을 친다. 이리로 가야 한다고... ...
실버지존 단장님께서는 판단이 잘 서지 않는지 중간에서 어쩔 줄 모르시는데....
내가 안내하여 구간 답사까지 마친 길인데도 왜 이런 노망인가?
그때 대간킴이 달려와 소리친다.
“김대장! 아직 잠이 덜 깬 거야? 왜 그래?”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든다. 맞아~ 세상에,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굳이 지름길을 두고서도 돌아서 가자고 소리치는 경우는 어느 나라 법인가...?
어둠과 방심이 불러온 순간적인 착각이다.
미안한 마음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적어도 대장(隊長)은 이런 실수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다시 한번 뼈아픈 교훈을 가슴에 새긴다.
외곽 순환도로 밑 콘크리트 터널을 빠지니, 드디어 악명 높은 시멘트 포장도로 오름 길,
700m를 치고 오르는 급경사 구간이다.
각자의 내공을 시험하는 깔딱 코스이기도 하다.
항상 선두에 서는 무한쾌두, 구례염사와 함께 단참에 호암사까지 선두로 오른다(04:45).
대간킴과 당천대인에 이어 실버지존 단장님이 노익장을 뽐내시고, 원사백도 씩씩거리며 내공을 출수한다.
대단한 급경사를 단참에 올라 치는 제일 문하의 막가파(?)들!
몇 분 차이로 모두다 올라오니 참으로 제일 문하의 위용이 대단함을 느낀다.
15분 동안 충분한 호흡조절을 하면서, 마지막 화장실이므로 특히 여랑(女娘)들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출발을 앞두고, 나는 특별히 잠깐 행선지를 착각한 실수에 대해 석고대죄를 올린다.
“제가 아마도 잠시 뭐가 씌웠나 봅니다. 길을 착각하고 불편을 끼쳐 대단히 죄송합니다.
앞으론 더욱 조심하여 심려를 끼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 안내하겠습니다.”
“대장님, 또 실수해도 괜찮습니다.”
누군가가 웃으면서 외치는데, 때리는 회초리보다 더 아프다.
어둠에 잠긴 산사(虎巖寺)는 조용하기만 한데, 혹여 시끄러운 중생들이 법문을 어지럽힐까
걱정이다.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석탄일(釋誕日: 5월 12일)을 앞두고 높이 걸린 현수막이
내 혼탁한 마음을 조금은 맑게 씻어 내리는 듯싶다.
“ 봉축. 불기 2552년 마음을 밝게 세상을 향기롭게 T. 873-1386 ”
연등 불빛이 환하게 내 마음까지 비춘다.
그 동안 산을 접하면서 특별한 신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조용한 산사를 찾을 때마다
이렇게 참배도 올리면서 미망으로 뒤덮인 불 같은 마음을 많이 다스리지 않았나 싶다.
15분의 휴식을 끝내고 범골 능선 3거리를 향하여 조용히 출발한다(05:00).
역시 가파른 오르막 길이다.
여기서부터 범골 능선 오르막은 알아주는 된비알이다.
어디선가 들리는 산새 소리가 감미롭다. 새벽을 구르는 화음으로 이마의 땀을 식힌다.
10분을 올라 치니 전망 좋은 너래 반석이다(05:10).
한 30명은 둘러 앉아 식사를 할 수 있는 넓은 식당바위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5분을 휴식하며 산 아래로 펼쳐진 야경을 감상하고 다시 출발한다.
이제는 모두들 슬슬 지치기 시작할 지점이다.
선두와 후미의 차이가 점점 벌어지기 시작하는 구간이기도 하다.
서서히 여명이 찾아 들기 시작한다.
날이 밝을 때까지는 전체가 같이 움직이기로 했기 때문에 능선에 올라(05:35) 후미를 기다린다.
사패산을 다녀와야 하는 1.2km의 왕복 구간이다.
무거운 배낭을 내려 놓고 맨몸으로 다녀와야 한다.
독자공(獨自孔) 노사(老師)를 비롯한 3명은 벗어 놓은 배낭을 지키면서 쉬기로 하고
13명의 무사들이 사패산으로 향한다.
배낭도 벗었겠다, 랜턴도 내렸겠다, 훨훨~ 날아서 해발 552m, 사패산에 오른다(05:50).
환갑을 훌쩍 넘기신 실버지존 단장님과 미성산인 부단장님도 사패산까지 오르셨으니,
대단하신 내공이시다.
허긴 600리를 함께 밟으신 내공들이니 더 말해 무엇 하랴!
젊은 도전자들도 5산 종주에서 곧잘 사패산을 생략하기가 일쑤인데...
나이는 다만 숫자에 불과한 것인가?
원앙현(鴛鴦玄) 사매 역시 ‘유연경공’과 ‘원앙합공’을 모두 출수하고 거뜬히 이곳 사패산 정상에 올라 포효하였으니,
제일 문하 여류 낭사(娘士)의 넘치는 기상과 위엄을 새롭게 무림천하에 유감없이 선포하고 있다.
장하다! 제일 문하 원앙 사매(鴛鴦 師妹)여!
훤하게 밝기 시작하는 사패산 정상에서 불도저팀(‘5산 쟁투대’)의 현수막을 배경으로 하여 단체로 기념촬영을 하는데
갑자기 구례염사 사제가 느닷없이 외친다.
“와~ 일출이다! 야~~ 정말 기분 째지는 일출이다아~~~~~!! ”
우리 모두 고개를 돌려 동쪽 하늘을 우러러 본다.
발갛게 물든 얼굴로 부끄러운 듯 살포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는(05:55) 해님!
감동! 또 감동!
누가 저렇게 훤출한 동자를 우리 제일 문하 무사들에게로 보냈단 말인가?
고결한 때깔과 상서로운 품위가 온통 동쪽 하늘을 휘감는다.
그 날 그 자리에서 그 일출을 보지 않은 이들은 ‘기분 째진다’는 그 의미를 결코 이해할 수 없으리라!
설악산, 지리산, 태백산, 정동진, 유명하다는 일출은 다 보아 왔지만 우리 ‘5산 쟁투대’에게
산신님께서 특별히 하사하신 ‘기분 째지는 일출’은 난생 처음이었다.
발갛게 진분홍으로 떠오르는 일출을 보면서 얼른 두 손 모아 기도를 올린다.
“우리 모든 대원들이 마지막 고지까지 사고 없이 무탈하게 오를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옵소서...! ”
다른 이들도 저마다 일출을 보면서 기도를 올리고 있다.
무엇을 빌었을까?
저마다 소원하는 것은 다 달랐겠지만, 염원하는 간절한 마음만은 한결같았으리라.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우리 ‘5산 쟁투’ 대원들의 염원은 오직 하나 같이 자랑스런 5산 완주였을 뿐이다.
그런 염원을 우리는 해님과 함께 사진에 담는다.
어쩌면, 일생에 한번 만날 수 있을까 말까 한 이런 축복받은 일출은 ‘5산 쟁투’에 출사한
우리 제일 문하 무사들에게 내리는 산신님의 격려이고, 안전 산행에 대한 약속인 것만 같아
갑자기 용솟음치는 의욕으로 가슴 가득, 충만한 기운이 넘쳐 흐른다.
“사패산이 반환점에 해당 하나요?”
‘백리주공(百里走攻)’의 공력을 자랑하는 마라돈사 사제의 느닷없는 질문이다.
“아니, 절반은 안되고 5분의 2, 지점쯤 될 거야. 도봉산 정상쯤 가야 반환점이지.”
실망한 표정으로 마라돈사 사제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아니, 이건 마라톤보다 훨씬 힘든 거요! 마라톤도 반환점을 돌 때에는 쌩쌩한데,
이렇게 지치지는 않거든요. 이건 비교가 안되네요~!!! ”
역시 ‘1백 5리 대전’의 전문가다운 견해를 피력한다.
‘1백 5리 대전’보다 ‘5산 쟁투’가 휠씬 힘들다는 전문가의 진단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까지 피나는 수련을 쌓아 왔고, 모교에 영광 드리기 위해서 이런 고행을 자청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가 어떤 고난을 무릅쓰고라도 꼭 완주를 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정상에는 벌써 당일 산행객들로 제법 붐비고 이제 막 올라오는 산꾼들도 많다.
역시 우리만 모르고 있을 뿐이지, 이렇게 세상엔 부지런한 사람들도 참 많은 것 같다.
자기의 주어진 여건 하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우리의 선량한 이웃들.....
우린 다시 사패산을 출발하여(06:00) 배낭지기들이 기다리고 있는 범골 능선 3거리로 모두 복귀하고(06:10),
각자 배낭에 저장한 비장의 영양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하며 15분을 휴식한다.
마치 먼 길을 떠나면서 애마에다 만땅, 기름을 채우는 기분으로.....
다시 한번 깊숙이 심호흡을 하면서 길게 이어진 포대 능선의 급경사 오르막을 노려 본다.
이제부터는 포대 능선과 도봉산 암릉이 이어지는 멀고도 긴 구간이다.
특히 야간에는 조난을 당하기 쉬운 구간이기도 하다.
다행히 우리는 이른 아침 시간에 이 길을 밟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기사 출중한 무공을 지닌 무사들이거늘 산세의 험악을 탓하랴!
다만 예기치 못한 불의의 사고를 염려할 뿐이다.
15분의 휴식을 끝내고 범골 능선 3거리를 출발한다(06:25).
날은 이미 훤하게 밝았고, 이제부터는 자기의 능력대로 산행을 진행한다.
밤길을 모두가 같이 진행하느라 그 동안은 조심스러웠는데, 날은 이미 밝았고 평소에 많이 올랐던 익숙한 길이니
자신의 체력을 스스로 판단하여 완주 여부도 본인이 직접 결정해야 한다.
다만 전원(全員)이 불광동 종착 지점에서 만나 감동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염원할 뿐이다.
드디어 각자가 그 동안 갈고 닦은 공력에 의해 자유롭게 자신의 무공을 맘껏 출수할 수 있는 순간이 도래하였다.
따라서 단체 사진 촬영도 사패산에서 모두 끝이 난 셈이다.
선두, 본대, 후미도 이젠 각자의 공력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다.
본대장인 대간킴도 선두 구간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우리 선두팀과 같이 합류하기로 하였다.
이제 모든 것은 본인이 알아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날씨는 더 없이 청명하게 맑았고 아침공기도 상쾌하였다.
사패산 정상에서 맞이한 ‘기분 째지는 일출’의 공력 탓인지 발걸음 또한 가벼웠다.
회룡 계곡 3거리를 바람같이 지나고(06:35), 다시 가장 악명 높은 된비알 오르막 급경사 계단 길을 치고 오른다.
5산 종주 시 악명 높은 마(魔)의 구간 중 하나이다.
이런 알아주는 구간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꾸준히 쉬지 않고 급경사를 오르면서 고통을 즐기는 기분으로 한발한발 옮기다 보면 어느새 고개에 닿게 된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도 다 그런 것이 아니랴?
어찌 평탄한 평지만 있겠는가?
그렇게 순탄한 삶이 꼭 훌륭한 것만도 아닐 것이다.
위대한 사람들일수록 어려운 환경과 싸우면서 그것을 극복하고 자기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어낸 경우가 많다.
포대 능선 된비알을 오르면서 잠시 그런 상념에도 젖어 본다.
다시 한번 몸 속 깊숙이 간직한 진수를 뽑아내며 심호흡과 함께 빡쎄게 올라 치니,
전망 좋은 산불 감시초소 쉼터(06:55)이다.
후미도 기다릴 겸 15분을 휴식하며 무전 연락을 취해 보는데 된비알을 힘차게 올라 치고 있다는
후미장의 반가운 목소리를 접한다.
이제 선두와 후미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체 산행에 대한 완급을 조율해야 한다.
너무 빨라도 안되고 너무 늦어도 안 되는 것이다.
애초 준비한 산행계획표를 참조하면서 휴식과 산행 시간을 조절해 나간다.
뒤쳐져 올라오신 독자공 사숙부(獨自孔 師叔婦)께서는 양해를 구하면서 앞질러 진행하신다.
혹시 길이 어긋날까 봐 염려가 되긴 하지만, 이미 날이 훤하게 밝았고 평소 많이들 다녔던 길이니
너무 빨리 앞서서 진행하지 말라는 당부만 하고 만다.
뒤쳐지면 불안해하는 사숙부의 성격 탓인 듯하다.
후미가 고개로 오르는 것을 확인하면서 다시 출발(07:10), 산행객들로 붐비는 Y계곡은 우회하기로 한다.
후미는 점점 뒤쳐지는 것 같은데, 호암사까지 선두로 따라 붙으셨던 지존 단장님께서는
후미 대열에 묻혀버리고 마신 듯하다.
들리는 얘기로는, 호암사로 오르는 급경사 700m 포장도로에서 선두 속도를 따라 붙으시느라
오버페이스를 하신 것 같다는 것이다.
허긴, 고희에 가까운 최고령의 연세로 ‘5산 쟁투’를 제창하시고 선두에 서시려고 하셨으니
조금은 힘드셨을 것도 같다.
그래도 그 동안 쌓으신 무공이 출중하시기에 망정이지,
내가 저 연세에 과연 ‘5산 쟁투’를 엄두 낼 수 있을까..?
언감생심(焉敢生心)일 듯하다.
여러 번 오르막 내리막을 거듭하면서 드디어 해발 740m인 도봉산 정상, 신선대에 오른다(07:50).
마라돈사 사제가 그토록 염원하던 ‘1백5리 대전’의 반환점에 해당하는 지점이다.
지금까지 온 것만큼 더 남은 산길을 가야 한다.
그러나 점점 체력이 떨어지는 시간이니 남은 구간이 훨씬 더 힘들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선두대를 이룬 당천대인과 대간킴, 무한쾌두, 구례염사, 풍족선사와 같이 잠시 숨을 돌리면서,
반환점에 오른 것을 감사해하며 눈 앞에 펼쳐진 자운봉과 만장봉의 암릉을 감상한다.
원사백이 뒤이어 오르고, 원앙현도 마라돈사 낭군을 어디다 버렸는지 혼자서 올라 온다.
우리는 모두 정상에 오른 기념으로 증명판을 남기고, 일그러진 표정으로 힘들어 하면서
뒤늦게 올라오는 독자공 사숙부를 맞이한다.
쇠줄을 잡고 올라 오시는 모습이 몹시도 힘들어 보인다.
분명 우리보다 한참을 앞서서 가셨는데 이제서야 올라 오시는걸 보면 혼자서 좌충우돌,
고군분투 하셨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기에 혼자서 너무 앞서지 말 것을 당부 드렸었는데…
독자공 사숙부에게 가능하면 선두와 행동을 같이 할 것을 다시 부탁 드리면서 20분의 긴 휴식을 끝내고.
암릉 지름길로 하산한다(08:10).
특히 암릉 하산 길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집중하지 않으면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되고 대형사고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단체 행사에서 가장 염려되는 것이 바로 그런 안전사고이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5산 쟁투’ 또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패산 일출로 신령님께서 우리를 기꺼이 어루만져 주셨으니,
끝까지 멋진 쟁투가 될 거라는 기대감을 가져 본다.
세계 최초로 8000m 고봉 희말리야 16좌를 완등한 엄홍길 산사(山師)님께서는 늘 말씀하고 계시지 않는가!
“제가 8천 고봉에 모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희말리야가 저를 받아 주셨기 때문에 오를 수 있었을 뿐입니다.”
나는 홍길 산사(山師)님의 이런 겸허한 마음 자세가 좋다.
사실 16좌 완등에 대해 이것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없다고 생각한다.
8천 고봉의 변덕스런 악천후와, 시시각각으로 천변 만화하는 자연의 조화와 섭리 앞에서
인간의 몸부림은 아주 작은 미동(微動)일 뿐이다.
비록 일을 도모하는 것은 인간이지만, 일의 성패(成敗)를 이루는 것은 자연이고 하늘인 것이다.
오늘 ‘5산 쟁투’ 역시 그런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성사가 결정될 것임을 알고,
따라서 ‘경외감’ 또한 갖게 된다.
조금만 오만 불손해도 산은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바로 응징하는 것이다.
내가 산을 타면서 여러 번 혼이 났던 것은 설악산이나 지리산, 한라산 같은 큰 산이 결코 아니었다.
자주 오르내리던 삼각산이나 춘천 오봉산에서 탈진하여 기진맥진하는 극한의 상황에 처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이까짓 쯤이야~’ 하는 경솔함 때문에 그런 혹독한 대가를 치루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 것이다.
자신의 무공을 과신하고 함부로 출수하는 오만 방자함도 거대한 자연 앞에서는
아주 미미한 창해일속(滄海一粟)일 뿐이다.
우리가 받은 모든 공력은 산이 우리에게 베푼 아주 작은 미력(微力)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 작은 미력을 망각하는 오만을 우리는 늘 경계해야 할 터이다.
이번 ‘5산 쟁투’를 성공리에 완주하고 을지로 ‘문화옥’에서 종주 자축연을 가질 때,
미성 사형께서 들려 주신 여담을 들으면서 우리는 모두가 웃은 적이 있었다.
‘5산 쟁투’의 완주를 끝낸 다음에, 그것을 기념하여 사미 본산 무사들은 관악산 종주를 하였다는데,
그때 원앙 사매는 관악산 정상에 올라서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관악산은 산도 아니네~! ”
원앙 사매가 결코 오만불손한 마음에서 뱉은 말이 아니라, 만 하루를 넘게 악전고투한
‘5산 쟁투’의 대단함과 고생스러웠음을 강조한 말임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산은 그런 불경한 언사를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언젠가 내가 그 곳에 오르는 날,
신심을 다해 우리의 불경불초(不敬不肖)함을 사죄하는 용서를, 신령님께 구하리라……
잠시 빠졌던 깊은 상념을 다시 떨치고, 낙타 등처럼 굽은 암릉 능선 길을 밟고 오른다.
4월 중순의 서울 근교 산은 진달래가 한창인데, 도봉산 역시 능선마다 진달래가 만개하여
꽃 길로 터널을 이루고 있다.
해마다 이 맘 때쯤이면 일부러 진달래 산행을 하곤 하는데, ‘5산 쟁투’에 골몰하는 마음이
그런 아름다움을 감상할 마음의 여유를 주지 않는다.
어쩌면, 지난 일요일 사명 진산의 내노라 하는 무사들과 함께 강화도에 출사하여
그 유명한 고려산 진달래를 맘껏 감상하고 온 여유로움 탓도 있으리라.
그래도 진달래의 산뜻한 때깔과 내음이 ‘5산 쟁투’로 쇠잔해지는 체력에 조금은 원기를 북돋아 주는 듯하다.
도봉산 칼바위 뒤쪽으로 비스듬히 펼쳐져 있는 암릉, 기차바위를 조심조심 타고 오른다.
전혀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 위험통제 구간이지만, 나무 계단을 타고 한참을 내려 섰다가
급경사를 다시 오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지난 도봉산 구간 답사 시에 지름 길인 이 구간을 통과하다가 공익 어른(?)에게 들켜서
된통 혼났던 기억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오늘은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어른(?)께선 아직 행차하지 않은 듯하여 기차바위를 무사히 오른 후,
능선 고개에서 삼쾌(三快-유쾌, 상쾌, 통쾌)한 미소를 지어 본다(08:35).
목을 축이며 15분의 휴식 시간을 갖는데, 뒤따라 오던 대간킴과 원사백이 기차바위 지름길을 몰랐던지,
악명 높은 나무 계단을 헉헉(?)대며 힘들게 올라오고 있다.
얼마나 힘들까?
얼른 배낭을 벗겨 주며 시원한 물을 권한다.
헬기장을 지나고(09:15) 다시 또 나무 계단을 올라 치니, 시원한 전망대가 설치된 ‘오봉 전망대’ 쉼터이다(09:25).
전망 좋은 오봉(해발 625~660m)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면서 다시 15분을 쉬어 간다.
원사백은 두 번씩이나 수술 받은 발목 때문인지, 틈만 나면 등산화를 벗고 발목 마사지다.
멀쩡한 우리도 어쩌네, 저쩌네, 탈들이 많은데, 시원치 않은 몸으로 ‘600리 국토 횡단’과 ‘5산 쟁투’가 웬 말인가?
대단한 강골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제일 문하의 넘치는 에너지와 기상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리라.
늘어지고 싶은 유혹을 간신히 떨친 후, 15분의 휴식을 끝내고 다시 또 출발(09:40),
나무 계단을 밟고 한발한발 오르니 처녀바위 암릉 터널 계단 입구,
“이 곳을 지날 때 자기의 소원을 빌면 이루어 진답니다. ”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맞은 편에서 내려오던 산행객이 내 손을 덥썩~ 잡는다.
“이게 누구야? ”
세상에나~~!
잠실 벌 콘테이너 임시 막사 사무실에서 여러 해를 동고동락하였고,
지금은 롯데건설 빌딩 신축공사 건설 현장을 책임지고 계신 ‘안우영’ 부장님이 아니신가!
그 동안 근황을 몰라 궁금해하던 차에 이렇게 이른 시간에 이처럼 절묘한 장소에서 해후를 하다니…?
5산이 이어주는 대단한 인연에 감동하면서, 하산하면 일 잔을 나눌 것을 짧게 약속한다.
참으로 5산이 맺어주는 인연이 대단하지 않은가!
우리야 5산 종주를 한다고 하지만, 이렇게 이른 시간에 혼자서 암릉을 산행하는 우영 형의 내공 또한
대단하지 않은가?
역시 산중 무림엔, 자기만의 독특한 무공을 간직하고 있는 숨은 고수들이 많음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우이암(해발 542m)을 바라보면서 원통사로 하산하지 않고 암릉 길을 택한다.
특히 야간이면 여지 없이 조난을 당하는 구간이다.
멋모르고 1차 5산 종주할 때 심야 시간에 1시간이 넘게 혼자서 조난을 당했던 쓰라린 기억이 있는 곳이다.
암릉을 타다가 계곡 하산 길을 택한다.
느낌이 꼭 지름길인 것만 같은, 2차 5산 종주할 때 오르던 기억이 아련한 길이다.
그러나 역시 확인되지 않은 길은 미망의 길이다.
어차피 우이 매표소 하산 길은 길게 이어진 지루한 길이기도 하다.
군사 통제구역 철조망이 길게 쳐진 계곡 하산 길은 멀기만 하다.
인적이 드문 호젓한 길이라 가끔씩 이른 시간에 남녀 데이트(?) 객들만 쌍쌍이 눈에 띄는데,
영롱하게 빛나는 이름 모를 산벗꽃에 잠시 넋을 잃는다.
이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맛볼 수 없었을 황홀감이다.
환하게 밝은 길이 이어지니 결코 조난 당할 염려는 없다.
자꾸만 뒤쳐지는 후미가 길을 잃을까 염려하면서 선두에서 길을 잡는다.
드디어 우이 매표소로 하산하는 철탑 능선 길에 올라(10:40) 우이 공원 민속식당으로 선두를 먼저 보내고
나는 후미를 기다린다.
독자공 사숙부가 길을 잘못 들어 고생한 줄 알고 투덜거리며 올라 오시는데,
몹시도 지친 탓일테지.. 하고 이해하기로 한다.
어차피 어느 길을 택하더라도 이 코스는 1시간이 넘게 걸리는 하산 길이기 때문이다.
후미에 있는 구력괴공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혹시나 길을 잘못 든 것은 아닌가 싶어 소리쳐 부르니,
전화 통화 때문에 늦었다면서 미안해 하는 표정을 지으며 마지막으로 올라오는 구력괴공과 함께
우이 공원 민속식당으로 하산한다(11:00).
소식이 없는 후미대와 무전 연락을 취해 보지만 잘 연결되지 않는다.
누군가 휴대폰으로 연결하더니 방학동 쪽으로 하산했다는 전갈이다.
아마도 하산 길을 잘못 잡았나 보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겠지, 생각하면서 먼저 김치찌개를 주문한다.
인내를 시험하는 최대 고비 구간을 통과한 셈이다.
보통 이 구간 하산을 끝으로 지쳐서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
완주가 조금은 염려스러운 몇 사람이 눈에 띄긴 하지만, 누구 하나 포기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넘은 4산의 수고가 너무도 억울한 탓이리라.
또한 그러한 강기 때문에 몸 속의 진액을 다 짜내 가며 5산을 완주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양말까지 죄다 벗고 시원한 수돗물로 발을 헹군다.
온 몸에 울려 퍼지는 짜릿한 전율!
‘5산 쟁투’에 도전하지 않은 사람이 어찌 이 황홀한 오르가즘(orgasm)을 느낄 수 있으랴!
식사를 끝낸 후, 후미도 기다릴 겸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1시간 동안을 이곳 민속식당에서 머무른다.
특히 이곳에서부터 풍족선사의 사모께서는 우리 일행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우리 종주자들과 합류하여
삼각산 구간 동반 산행을 하겠다고 한다.
현모양처 형의 어진 인상이 어쩌면 풍족선사와 그렇게도 잘 어울리는지, 완전 무결한 찰떡 궁합이다.
준비해온 얼음 물을 권하는데, 오장육부까지 전해지는 그 씨원함!
식사를 하고 나니 갑자기 솟구치는 폭탄(?) 발사의 욕기에, 서둘러 인근 경찰 지구대의 해우소를 찾아 든다.
불손하게도, 종주 중에 신령스런 5산 기슭에다 생경한 폭탄을 발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폭탄까지 제거(?)하고 나서자, 그제서야 터덜터덜 계곡 길을 내려서고 있는
후미대를 맞이 한다(12:00).
기다리고 기다리던 후미대다.
그때의 반가움은 말로서는 설명이 안 된다. 완전 이산 가족 상봉이다.
그렇게 우리는 후미대와 바톤을 터치하고, 다시 마지막 남은 가장 긴 구간,
삼각산 오르막을 노려보면서, 다시 한번 강렬한 투지에 불을 붙인다.
사패산-도봉산 구간에, 순수 산행 시간 5시간 50분, 휴식 시간 2시간 15분,
총 산행 시간 8시간 5분이 소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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