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34주일(다해/그리스도 왕 대축일)
돌을 치운 착한 농부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은 연중 마지막 주일로서 그리스도 왕 대축일입니다. 이번 주간은 특별히 성서주간으로 성서의 중요성을 깨닫고 하느님 말씀에 맛들이는 주간입니다.
오늘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지내면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만왕의 왕으로 받들어 섬기기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며 왕이신 그리스도께 충성을 다할 것을 새롭게 맹세합니다. 가톨릭 성가 79번에“그리스도 승리”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 가사를 보면 “그리스도 승리 그리스도 왕국 그리스도 다스리신다.”(Christus vincit Christus regnat Christus Christus imperat) 이 노래는 바티칸 시국의 국가이면서 흔히 성체강복 때 부릅니다. 1925년 12월 비오 11세 교황은 당시 이태리에 의해 교황권이 추락된 점을 감안, 오늘의 그리스도 왕 축일을 제정하기에 이릅니다. 세속적인 권력에 휩싸여 그리스도교의 존립, 특히 교황권이 위협을 당했던 역사적 상황에서 나온 조치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모든 시간의 주인이시고,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께 충실한 종이 될 것을 결심하면서 우리의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상에 자신의 목숨을 바치시기까지 아버지 하느님께 순명하신 예수님께서는 남에게 대접을 받으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남을 섬기고 받드는 삶을 사셨고 가난하고 소외받는 형제들을 위해 벗이 되셨고 병자들의 머리와 상처에 손을 얹어 치유해 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그분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습니까? 과거의 유대인들과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유다인의 왕으로 조롱하며 그를 채찍질하고 침 뱉고 비웃는 유다인들은 가장 열심히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법을 실천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기대하였던 것과는 반대되는 모습으로 나타난 가난하고 보잘것없어 보였던 예수님을 단죄하였고 그분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것입니다. 로마의 압제에서 자신들을 구해 주리라 믿었던 메시아가 지극히 초라하고 형편없는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그들은 그분을 용납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그릇된 삶과 비리를 과감히 고발하였던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정의와 진리의 수호자시며 시대의 양심을 밝히신 예수님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들의 파멸을 뜻하는 것이었기에 그들은 진정한 왕이신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한 것입니다.
민심은 천심임을 깨닫고 왕의 직분을 행사한 다윗 임금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 그는 결국 세상 사람들의 반대와 억압에서 아버지 하느님께 바쳐진 희생양이 되신 것입니다. 그가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오롯한 마음으로 자신을 봉헌할 수 있었던 십자가상의 죽음이 죽음이 아니라 부활에 이르는 영원한 삶의 길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곧 절망의 나락에 떨어졌어도 끝까지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하시면서 사람들을 품어 안으시고 아버지께 향하셨기에 그는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고 말씀하시며 그 뜻을 이루실 수 있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남을 억압하고 짓누르는 그런 지도자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남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여 빛과 소금이 되신 분으로 우리 삶에 희망을 주시고 기쁨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사랑으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나라는 오늘 감사송에 나오는 것처럼 진리와 생명의 나라요,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이며,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입니다.
제 1독서 중 2 사무 5,2에서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고,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될 것이다.’ 라고 다윗에게 말씀하신 주님은 참된 사랑의 목자로서 우리를 아버지 하느님께로 이끌어 가십니다. 또 제 2독서 중 콜로새 1,20의 말씀처럼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신 분”이 바로 우리가 섬기는 왕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어느 날, 한 임금이 신하를 시켜 큰 돌 하나를 길 한가운데에l 가져다 놓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임금은 숨어서 누가 그것을 옮겨 놓는가를 살폈습니다. 그러자 그곳을 지나는 사람마다 누가 이렇게 큰 돌을 가져다 놓았느냐고 불평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누구 하나 그 돌을 치울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한 농부가 수레에 채소를 가득히 싣고 시장에 팔러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씨 좋은 농부는 큰 돌을 보자 아무 말 없이 치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큰 돌을 끙끙대며 굴린 후 개울가에 놓아두었습니다. 이를 본 임금은 “참으로 참한 사람이구나.” 하며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그런데 농부는 돌을 옮겨 놓은 그 자리에서 이상한 주머니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무심코 농부는 주머니를 열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계 웬일입니까.
그 안에는 많은 돈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머니 안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이 돈은 누구든지 이 돌을 치우는 사람의 것이다."
농부는 임금께서 쓴 것을 알고 즉시 감사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편지 내용은 “그저 할 일을 하였을 뿐인데 이렇게 큰 선물을 받게 되어 송구스럽다.”는 것이었습니다. 농부는 그 돈으로 일생 동안 좋은 일을 많이 하였다고 합니다.
돌을 치운 착한 농부처럼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사람들의 아픔을 몸소 짊어지시고 그것을 자신의 희생으로 치유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온갖 조소와 침 뱉음, 채찍질, 저주에도 굴하지 않으시고 원수를 사랑으로 대하시어 이 세상에 구원을 가져왔고 참 평화를 이루신 것입니다.
오늘 복음 (루카 23,35ㄴ-43)에서 보는 것처럼 마지막 순간에서조차 당신의 사명을 이루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알아보던 한 강도에게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라고 하시며 천국 낙원의 문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에게는 구원의 기쁜 소식이 전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도 그를 조롱하였던 강도와,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고 그의 죽음을 저주하던 자들에 대해서는 안타까워하시면서 그들을 용서하시는 기도를 바치셨습니다.
우리는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습니까? 우리도 예수님처럼 우리의 삶을 바쳐 정의와 진실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겠고, 죄 중에서도 주님의 너그러우신 용서와 자비를 믿고 그분 자비의 손길을 요청하는 신자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