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의 삶
살후 3 : 6-15
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에 쓴 편지입니다. 이 당시 상황이 사도행전 17:1~9절까지 기록되어 있는데,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3주간가량 머물면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훼방으로 바울은 급히 데살로니가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유대인들의 핍박 중에서도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가 데살로니가 전서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바울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통해 그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이 편지를 받고 나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이 곧 오시는 줄 알고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갖고 있는 돈도 다 쓰고, 놀고, 즐기자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일하지 않고 게으르게 사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바울이 다시 편지를 썼는데 그것이 데살로니가 후서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안의 문제의 원인은 그들이 잘못된 종말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전서를 쓴 이유도 보면 그들이 재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세상의 고난과 핍박을 견디면서 살도록 하기 위해 쓴 편지입니다.
그런 면에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오히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에도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분이 계시다면 내가 예수님의 재림을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또는 세상적인 즐거움에 빠져 있거나 예수님의 재림을 먼 훗날의 일처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 미혹의 영을 떠나라.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6절)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금 바울은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명령한다!' 하면 그게 무슨 명령이나 되겠습니까? 자신이 사도라 하더라도 명령할 권한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즉 이 명령은 말은 자기가 하지만 실상은 자기의 지시가 아니라 예수님의 명령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간곡히 부탁하시는 말씀이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사도로 하나님을 대리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목사님들이 자신의 권위로 설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님 대신하여 전하는 것입니다.
그럴 권한이 목사님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수 그분은 우리의 '주' 이시다. 주인이시다.
그는 나를 구원하신 분이시기에 나의 주인이시다, 그러므로 주인의 말에 순종함이 마땅하지 않겠나, 그런데 주인이 원하시는게 무엇이냐? 하면 규모없이 행하고 즉 규모없이 하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다음 우리에게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는 말씀은 그런 사람을 닮지 말라는 뜻이 강합니다.
그런 사람과 교제를 끊으라는 것입니다. 자주 만나다보면 그 사람을 닮아가기 싶습니다.
늘 불평 원망하는 사람과 가까이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런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옆에 누가 같이 있느냐? 가 아주 중요합니다. 그저 감사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졌고 늘 기도하고 말씀묵상하는 자와 가까이 하다보면 자신도 닮아 갑니다.
이것을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너희들에게 전해 준 하나님의 말씀과 전통을 따라서 바른 신앙 생활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둘째 :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8절)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의 삶의 자세는 매일 매일 예수님의 재림을 의식하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7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였다, 다시 말하면 자신은 게으르지도 않고 무질서하게 살지도 않았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남에게 공짜로 밥을 얻어먹으려고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밤낮으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당시 바울의 직업이 천막을 만드는 일이었는데, 아마 바울은 복음도 전하고, 돈을 벌기 위해 천막도 만드느라 밤낮으로 부지런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9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그렇게 산 것이 그들로 하여금 자신을 본받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바울처럼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일을 안 하고 놀다 보면 게을러지기가 쉽고 남의 일에 참견하기가 쉽습니다.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11절)
여기서 일만 만든다는 말의 의미는 남의 일에 간섭하고 참견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한테 예수님이 곧 오실 텐데 일해서 뭐하냐고 참견하면서 꼬드긴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 대해 바울은 12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이 말은 쓸데없이 돌아다니면서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고 자기가 먹을 양식을 위해 조용히 일하라는 뜻입니다.
셋째 ; 낙심치 말고 선을 행하라.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13절)
여기서 선을 행한다는 말의 원어적인 의미는 ‘잘 행동하다’, ‘올바르게 행동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NIV 영어성경 같은 경우 ‘doing what is right’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13절의 말씀은 우리가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면서 실망하지 말아야 된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사는 것이 잘 행동하는 것이고,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종말론자들이 세상을 버리고 주님을 맞을 준비하며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라 하더라도 우리는 성실하게 믿음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실하게 살다가도 때때로 베짱이처럼 편하고 게으르게 사는 사람이 부러워 보일 때가 있습니다.
또 그러다 보면 우리 자신이 초라해 보여서 낙심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실하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이고, 게으르게 사는 것이 잘못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라틴어 중에 ‘Carpe diem’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죽은 시인의 사회' 라는 영화에서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자주 했던 말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이 말의 뜻은 '현재에 충실하라'입니다.
영어로는 ‘seize the day!’(오늘을 붙잡으라!)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이 지나고 나면 이 시간은 우리 인생 가운데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과거의 시간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이 이 땅에 곧 다시 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하루 24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