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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역사정의실천연대 원문보기 글쓴이: 역사연대
대한민국헌법의 민주주의*
오 동 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학)
Ⅰ. 여는 말
민주주의 논쟁이 뜨겁다. 초⋅중⋅고 역사 교과서의 “민주주의” 용어를 “자유민주주의”로 대체하려는 시도가 정부 주도로 막무가내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연구자로서 헌법에서부터 문제를 제기하자면,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헌법 전문(前文)과 제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자유민주주의와 동일시하기도 하고 다른 이들은 자유민주주의와 다른 그 무엇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편 헌법 제8조 제4항은 “민주적 기본질서”라고 표현하고 있어서 이것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의미하느냐 아니면 사회민주적 기본질서를 포함하느냐 하는 것도 쟁점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 번째로 헌법은 민주주의나 자유민주주의 표현 대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이냐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두 번째로는 헌법 전문은 헌법이 지향하는 바를 근본적으로 제시하는 면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헌법적 지향점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세 번째로 헌법 제4조는 남북분단 상황에서 평화통일의 원칙을 지시하고 있기 때문에 또한 중요하다. 네 번째로 헌법 제8조 제4항은 정당의 위헌성을 판단하는 기준이기 때문에 또한 중요하다. 다섯 번째로는 헌법재판소가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등 표현행위에 대한 처벌기준으로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제시하였기 때문에 또한 중요하다. 그 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헌법의 후광 아래 개정 국가보안법에 반영되어 국민의 사상·양심·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첨병으로 활약하고 있다. 여섯 번째로 헌법재판소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내용 중에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하는 경제질서”를 포함시키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대한민국헌법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냐의 문제이다.
Ⅱ.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해석론
헌법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등장한 것은 1972년 헌법이다. 즉 헌법 전문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서”라는 표현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해석론을 이른바 유신헌법과 연결 짓기도 한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개념과 논란이 되는 ‘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이 1960년 헌법에서 등장했다는 점이다. 이를 이어받아 1972년 헌법에는 제7조 제3항에 정당해산의 기준으로서 제시되었으며, 현행 1987년 헌법 제8조 제4항으로 이어져온 것이다.
그런데 1960년 헌법 개정시 헌법개정안기초위원장이었던 정헌주는 국회 본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그 다음에 물으신 것은 헌법에 민주적 기본질서의 한계는 무엇인가 이것을 물으셨는데 이것은 여러 번 되풀이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만 자유스럽고 민주적인 사회질서와 정치질서를 말하는 것입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 교정 및 밑줄은 인용자, 아래 직접인용 같음)
즉 1960년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는 이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요 도입된 표현인 것이다. 이러한 입법사적 논거는 기존에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 이해하는 입장과도 맞아떨어진다. 더욱이 그는 이 제도가 “이태리헌법 및 서독헌법의 전례에 따라서 제13조 2항에 정당에 관한 규정을 신설했습니다.”라고 답변하였다. 이러한 제도를 도입한 까닭은 진보당에 대한 이승만 정권의 탄압을 억제하기 위함이다.
물론 정당에 관한 규정은 … 헌법에 이것을 두는 것을 정당의 자유를 좀 더 효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까닭입니다.
그 목적이나 활동의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반되는 경우에 한하기로 하고 그 해산은 대통령의 승인을 얻은 정부의 소추에 의해서 헌법재판소만이 이것을 판결하도록 했습니다.
여기에서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반되는 정당이라 하는 것은 여러분이 아실 줄 압니다만 우리의 경우로 보아가지고 공산당이나 일당독재를 꿈꾸는 ‘파시스트’당이나 왕정복고를 꾀하는 정당 등이 우리 헌법의 기본질서에 위반되는 정당으로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1960년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 개념은 독일의 ‘자유민주적인 기본질서(freiheitliche demokratische Grundordnung)’와 동일한 개념이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경제적 질서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헌법에 있어가지고도 자유로운 기본질서라고 하는 것은 이것은 정치적 사회적 질서를 말하는 것이지 경제적 질서까지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본 위원회는 해석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독일에서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질서와는 무관한 개념이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가치가 서로 다른 정치적 의견을 가지고 있었던 다양한 정치세력의 타협으로 이루어진 기본법의 기본정신을 구현한 것이며, 기본법과 그것에 의해 구체화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사회체제에 대한 문제를 국민의 자유롭고 열려져있는 의사결정과정에 맡기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이어서 이른바 투자보조금 판결에서도 “헌법제정자들은 어떤 특정한 경제체제를 결정한 바 없다. 현재의 경제제도는 독일 기본법에 합치되지만, 이것은 결코 이 제도만이 허용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베를린 고등행정법원은 강학의 자유에 대한 결정에서 이 판결을 원용 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부인하고 사회주의 체제를 적극적으로 찬양한다고 해서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라고 판시했다. 이러한 내용 역시 정헌주 위원장의 답변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요즘 여러 가지 주의 주장이 있는데 이러한 것도 이러한 범위 내에서 허용이 될 것이고 혹은 제한이 될 것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또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이 이 범위 내에서 허용이 되고 어떤 것이 허용이 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을 물으셨는데 말하자면 이종남 의원께서 사회주의의 여러 조류 또 거기에 대해 가지고 말씀을 했는데 이러한 것은 이 구체적으로 행동이 나타나기 전에는 말씀이야 이 자리에서 어떠한 것은 우리의 헌법적 질서에 맞는 것이고 어떤 것은 그 범위를 초월하는 것이다 하는 것을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그것은 제가 어제 제안설명 때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공산당이다 명백히 공산당이라든지 혹은 독재를 꿈꾸던 ‘파씨스트’라든지 혹은 왕조를 꿈꾸는 왕권당이라든지 이러한 것은 우리의 헌법의 기본질서에 분명히 위반된다
이렇게 생각을 하지만 기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무슨 주의다 무엇이다 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행동이 나타나야만 이것은 비로소 헌법질서에 저촉이 되는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을 판단하지 지금 어떠한 형식으로 나타날지 모르는 이 자리에 있어 가지고 아마 형식으로 뭐 좌파사회주의다 사회주의다 무슨 사회주의다 하는 이러한 주의만을 들어가지고서는 본 위원회로서는 판단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위반에 대한 판단은 주의․주장의 사상이나 그 표현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행동으로 실행하는 시점에서야 비로소 판단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 행동이 폭력적인 것임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공산당에 대하여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는 답변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이것은 향후 헌법과 국가보안법을 해석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기준이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이해 또한 그 기본정신은 이와 다르지 않다. 즉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를 배제하고, 그때그때의 다수의 의사와 자유 및 평등에 의거한 국민의 자기결정을 토대로 하는 법치국가적 통치질서”라고 정의하였기 때문이다.
Ⅲ. 헌법이 지향하는 민주주의
헌법이 지향하는 민주주의는 어느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 헌법의 통일성과 역사적 내지 이념사적 고찰 그리고 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고려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그렇다면 헌법이 지향하는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한정할 수 없고 한정해서도 안된다. 매우 단순하게 자유민주주의를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된 정치원리로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정치이념으로서의 자유주의는 국가권력의 간섭을 배제하고 모든 개인의 자유와 자율을 옹호하고 존중할 것을 요구하는 사상적 입장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자유주의는 18세기에 와서 신흥시민계급이 주장한 이데올로기로서 개인의 자유를 이상으로 하고, 완전경쟁에 입각한 자율적 행동원리를 그 수단으로 하는 정치철학․정치원리이다. 물론 이러한 자유주의는 정치적 영역에 한정되는 것이고 사회적 경제적 자유방임주의와는 분명히 구별된다.
더욱이 우리 헌법 전문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그것을 자유민주주의와 동일시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의미는 오로지 자유로운 사상․양심․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체제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한편에서 이해하듯 반공주의나 반(反)인민민주주의의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다만 어떤 내용의 이념․주의․주장이든지 폭력적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거의 절대적인 보장을 받아야 한다.
한편 헌법 전문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라는 표현은 우리 헌법이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진오 박사 역시 이것이 우리 헌법의 기본이념임을 확인하였다.
민주주의라 하면 과거에는 정치적 민주주의 즉 각인의 자유를 정치적으로 확보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대한민국에 있어서는 경제, 사회, 문화의 제 영역에 있어서도 또한 각인의 자유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각인의 자유를 확보한다는 것은 과거에 있어서와 같이 자유방임주의를 취한다는 의미가 아님은 물론이다. 자유방임주의 체제 하에서는 우승열패(優勝劣敗)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약자는 도리어 자유를 확보치 못하는 것이 상례이며, 그것이 또 정치적 민주주의의 치명적 결함이었으므로, 우리는 자유방임주의를 취하지 않고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는 제도를 취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헌법 제5조에서 대한민국은 각인의 자유, 평등과 창의를 존중하고 보장하지만, 공공복리의 향상을 위하여 필요한 때에는 이를 “보호”하고 “조정”하는 의무를 진다고 한 규정과 조응하여, 우리나라가 정치적 민주주의와 함께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를 입국의 기본으로 채택하였음을 명시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 헌법은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 안에 자유민주주의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치적 자유민주주의의 기초 위에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를 구축한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정치적 영역에서 헌법적 기본원리 중의 하나이다. 다만 명확히 해야 할 것은 우리 헌법이 경제적 자유방임주의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자유방임주의에 의해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약자의 자유가 침해되어서는 안되므로 헌법은 적극적으로 이러한 약자의 자유 실현을 우선순위에 놓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즉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는 곧 경제적 사회적 강자의 자유가 아니라 약자의 자유를 실현하는 의미에서 곧 자유민주주의이다.
이렇게 볼 때 헌법 제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의 의미는 일방적인 흡수통일 또는 무력적인 통일의 방법을 최대한 회피하면서 모든 사회경제체제의 토론가능성을 열어놓고 남북한 체제가 공존하면서 평화적으로 통일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헌법적 명령이다. 즉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남북한 상호간 사상․이념․표현의 공개시장을 강조함으로써 통일과정에서의 철저한 평화주의를 다시금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민민주주의에 입각한 통일을 규정한 북한헌법에 대응하여 서구적 민주주의하의 통일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은 적절치 않다.
Ⅳ. 헌재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해석에 대한 비판
국순옥은 국가보안법에 대한 1990년 6월 25일 헌법재판소의 한정합헌결정으로부터 “헌법의 틀밖에서 초헌법적 법률로 기능해 오던 국가보안법을 헌법의 틀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이의 이데올로기적 토대에 관한 논의가 헌법내재적 관점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전개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찾았다. 즉 그것은 헌법의 최고규범으로 하는 단일지주적 법체계로 국가보안법을 포섭하는 일이었는데, 그는 그 매개고리 역할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정식이 담당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구체적 내용으로서 독일연방헌법재판소와 유사한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 선거제도”, “사법권의 독립” 외에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를 덧붙여 포함시켰다. 이것은 덧붙여진 내용만 본다면, “국체를 변혁하거나 또는 폭행ㆍ협박 기타 불법수단에 의하여 헌법상의 통치조직 또는 납세ㆍ병역 또는 사유재산제도를 변혁할 목적으로 결사를 조직하거나 또는 정을 알면서 그에 가입하는”것을 처벌했던 ‘치안유지법’을 떠올리게 한다.
헌법재판소가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하는 경제질서”를 추가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 헌정사적 측면에서도 당시 회의록은 “헌법에 있어서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라고 하는 것은 정치적 사회적 질서를 말하는 것이지 경제적 질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설하고 있다.
결국 헌법재판소처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요약한 헌법체제는 곧 “국가보안법의 핵심적 정체성”이며, 이에 대한 사상 고백 없이는 대한민국의 참된 국민의 범주에서 배제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뒤리히(Dürig)식(式 ) “소거방식”으로 이해하면, 그것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반(反)[파시즘+공산주의+사회주의+전체주의+‘북한과 유사한 주장’+테러리즘+반(反)신자유주의+ … n]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헌법재판소에 의해 헌법을 농락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해석은 사유재산제 강조는 사회적 민주주의와 어긋난다. 헌법은 제31조에서 제36조에 걸쳐 교육을 받을 권리, 근로의 권리, 근로3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환경권, 주거권, 혼인 및 가족에 관한 권리, 보건권 등 구체적인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근대 절대시되던 재산권은 상대화되어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는 헌법이 아닌 법률로써 정해지며(헌법 제23조 제1항),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하는 헌법적 의무를 지고 있다. 그것은 특히 소수의 사유재산권보다 다수의 생존권이 우선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헌법재판소의 해석은 헌법의 경제적 민주주의와도 어긋난다. 헌법 제119조 제1항에서 규정한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는 기본적 인권이 아니다. 그것은 문언적으로도 명백히 드러난다. 그것은 기본적 인권과 민주주의의 한계 속에서의 자유와 창의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에 대한 존중의무와 달리 여기에서의 존중은 선언적 의미에 가깝다.
오히려 기본적 인권을 구체화한 규범은 헌법 제119조 제2항의 경제민주화 조항이다. 즉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할 수 있다”는 표현은 재량의 의미라기보다는 일반적 수권규범이다. 이를 재량으로 이해한다면, 국가의 자의적 개입을 의미하게 되어 민주공화국, 주권재민, 재산권 행사의 공공복리 적합의무, 사회적 기본권 보장 등의 헌법규범구조를 훼손하게 된다. 그 폐해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정경유착에 의한 재벌 위주 경제정책으로 나타난 바 있다. 헌법규범구조 속에서 이 조항은 경제민주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국가의 의무에 가깝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제119조 제1항과 제119조 제2항의 관계에서 제119조 제1항을 우선시한다. 헌법의 경제질서의 원칙은 시장과 자유이며, 국가의 조정과 개입행위는 시장의 실패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보충적․예외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헌법 제119조 제2항은 이하의 다른 조항들, 예를 들면 제120조, 제122조, 제123조, 제125조, 제126조, 제127조 등에 의해 다양한 구체적 근거를 가짐으로써 헌법이 지향하는 경제민주주의의 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헌법 제119조 제2항은 단기속성의 경제성장과정에서 재벌 위주의 경제력 편중과 그로 말미암은 정치경제적 폐해를 통제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최근 자본과 시장의 권력 막강해지는 시점에서 이 조항의 쓰임새가 절실하다. 이를 보더라도 헌법이 예정하고 있는 시장은 자유주의 시장이 아니라 ‘조정된 시장’(the coordinated market)으로서 ‘사회민주주의 시장’임을 알 수 있다.
자본 측은 개헌 얘기만 나오면 제119조 제2항의 경제민주화 조항을 없애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곤 한다. 그러나 헌법은 “국민경제”적 관점에서 여러 조항을 통해 국가의 균형 발전과 계획국가적 지향 그리고 약자적 지위의 생산주체에 대한 보호 및 육성의 의무를 국가에게 지우고 있다.
헌법 제119조 제2항은 헌법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라든가 시장메커니즘의 자동조절기능이라는 골격은 유지하면서 근로대중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소득의 재분배, 투자의 유도․조정, 실업자구제 내지 완전고용, 광범한 사회보장을 책임있게 시행하는 국가, 즉 민주복지국가의 이상을 추구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헌법이 지향하는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는 근로대중의 인간다운 생활 보장, 가파른 누진세제를 통한 소득의 재분배, 실업자구제 내지 완전고용, 도달가능한 최고 수준의 사회보장 등이다.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까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포함시키는 헌법재판소의 판례는 헌법의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를 배제함은 물론 자유민주주의를 왜곡한 것이다. 이는 헌법에 대한 이중의 오독(誤讀)이다. 경제민주화 조항은 다양한 민주주의 이념 및 제도 중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헌법 제119조 제2항을 삭제한다고 해서 우리 헌법의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헌법상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조항들을 모두 제거하려는 것은 비가역적 헌법개악행위이다.
Ⅴ. 닫는 말
대한민국헌법은 그 통일적 해석을 통하여 보더라도 그리고 그 제․개정사를 되돌아보더라도 사회적 경제적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함으로써 사회적 경제적 약자의 자유(민주주의)를 보장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무법상태가 아닌 헌법규범 아래에서 약자의 자유(민주주의)는 모든 이의 자유(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 자유민주주의를 통하여 반공주의의 구태를 되살림은 물론 전투적 시장경제 자본주의인 신자유주의를 강화하려는 시도와는 완연히 대립한다.
결국 헌법규범의 부재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에 ‘저항’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구성’하는 ‘헌법제정’을 향한 주권자 인민의 실천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이 더불어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모든 선택지를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헌법은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요설(妖舌)상자가 아니다. 헌법재판소의 눈으로 재단되는 권력의 장식물도 아니다. 대안적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으로서 공정하고 강력한 조세정책, 은행 사회화를 포함한 공적 소유부문의 확장, 자본시장에 대한 엄격한 통제, 경제민주주의의 확대, 참여민주주의의 강화 등이 필요하다면, 헌법전에 기대기보다는 그 구체적 내용을 획정하기 위하여 주권자인 인민이 구체적 방안을 처음부터 새로 짜야 한다. 집행권력․사법권력․입법권력의 국가권력 그리고 언론권력 및 자본권력에 저항하는 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권력 자체를 인민의 권력관계로 교체하여야 한다. 기존의 권력을 공략하여 또 다른 권력을 획득하기보다는 인민들이 직접 정치적인 것을 만들어내면서 대의민주적 방법과 제도를 새로 구성해내야 한다. 다른 한편 그 백년지대계는 가정이나 학교 또는 사회에서 신민으로서 훈육되고 있는 아이들을 해방시켜 그들에게 시민권과 공민권 그리고 인민권을 되돌려주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아직 주권자로 나서지 못한 ‘미성숙 어른’의 과거 상처를 치유하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