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술은 우리의 현주소
이태호
포장마차 사열(査閱)을 마친 다음, 비좁은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촘촘히 줄지어 선 식당마다 고기들이 매캐한 연기와 함께 지글거리며 타고 있다. 안을 들여다보니, 온갖 이야기들이 꽉! 들어차 있다. 문을 열면 소리들이 와르르 쏟아질 것만 같다. 슬픔과 기쁨, 외로움과 고통이 서로 융합되어있는, 삶의 매개들이다. 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정겹게 들리는 시각이다.
너무 일찍 왔나?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약속 시각보다 30분 일찍 도착한 것이다. 그만큼 그리운 얼굴들이다.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들은 30년 지기지우(知己之友)다. 사회 초년생부터 맺어진 건설회사 입사 동기다. 처음엔 열두 명이었으나 이런저런 사유(事由)로 지금은 다섯 명으로 줄었다. 열두 명 중에 술을 전혀 못 마시는 친구가 세 명이 있었다. 그들은 주당(酒黨) 반열에 낄 수 없음을 자인한 친구들이다. 솔직히 술자리에서 술과 어깨동무할 수 없는 체질이라면, 피차 고역이다. 우선 소통에 문제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술의 정의가 상반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술을 일러 정신을 혼탁하게 하는 약물이라고 단정한다. 반면 애주가들은 술의 순기능을 예찬한다.
술을 즐기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정직한 고백에는 적당량의 알코올이 진실의 선명도를 높인다는 것을. 술은 가식의 껍데기로부터 자유를 원하기 때문이다. 오만과 위선, 시기와 질투 같은 허접한 껍데기들이 스스로 벗겨짐을 느낄 수 있다. 한 까풀씩 벗겨질 때마다 잠겼던 흉금(胸襟)의 문이 활짝 열린다. 그 개운하고 신선함이라니……. 이처럼 술은 ‘진실’을 더욱 선명하게 요구한다. 어불성설이라고 대들어도 나의 진리는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그 때문에 그들은 술꾼의 집합개념에 낄 수 없었다. 나머지 아홉 명 중 두 명은 하늘에 있고, 다른 두 명은 술 대신 정맥에 링거를 꼽고 있다. 참석할 수 없는 네 명도 술꾼의 집합에 앞줄을 차지했던 친구들이다. 분명한 것은 술의 작용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전적으로 술 때문에 사망했거나 입원했다는 정확한 근거는 밝혀진바 없다.
약속 시각 몇 분 차이로 다섯 명이 모였다. 으레 그렇듯이 술병이 늘어남에 따라 주제가 바뀐다. 처음 한두 잔에는 가족의 건강 등,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친구들의 동향에 초점을 맞춘다. 술이 거나해지면 담론의 색깔이 달라진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정치, 경제, 사회 전반으로 치닫는다. 대체로 긍정적이기보다 부정적인 시각이다. 평소 심각하게 품고 있던 사안들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다. 별의별 이야기 속에서 얻는 것은 결국 각자 처해있는 불안에 대한 서로의 위안이다. 술은 이처럼 불안정한 상태를 풀어주는 카타르시스의 기능이 있다. 어디 그뿐인가 관계를 형성시키고 더욱 돈독히 하는 매개이기도 하다. 이것이 일차적인 술의 기능이다. 이때가 가장 좋다. 사람이 술을 먹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술은 죄악의 씨앗이라고 무작정 매도한다. 그것은 술이 갖는 순기능보다 역기능만을 부각하려는 위험한 발상이며 술에 대한 모독이다. 분명한 것은 음주도 하나의 중요한 문화이다. 물론 음주로 인한 여러 유형의 패가망신도 있다. 특히 요즘이 더욱 도드라진다. 경제여건이 겉으로 보기에는 좋아졌기 때문일까? 그도 아닌 것 같다. 속을 들여다보면, 상대적 빈곤은 물론 절대적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이 또한 술자리를 늘리는데 일조한다. 그래서 그런지 과거의 주도(酒道)와는 사뭇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 그만큼 술의 양면성이 도드라지고 있다.
작금의 술은, 풍류(風流)를 제치고 향락문화로 변질하는 경향이 깊다. 그 때문에 음주로 인한 사회문제는 날로 심각하다. 이러한 현상은 술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치부하는 데 크게 작용했다. 이런 경우를 두고 “술이 술을 마시고, 결국 술이 사람을 마신다.” 라고 말한다. 이처럼 술은 한쪽 면만 보면 무섭고 추한 얼굴이다.
알코올이란 말은 원래 아랍어(Al Kohl)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 뜻은 ‘눈과 포도주의 정령을 아름답게 윤색하다.’라고 했다. 여기서 나는 윤색(潤色)이란 단어에 유감을 표한다. 윤색은 ‘어떤 사실을 본디의 내용보다 과장되게 꾸미거나 미화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해석에 따라 다르겠지만, 애주가인 나보고 해석하라면, 공평하게 말할 것이다. “술은 추한 모습과 아름다움이 공존한다. 때문에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40여 년의 술자리 경험으로 볼 때 사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이처럼 술자리에는 고통과 아픔, 추함도 있지만, 그것들을 덜어낼 수 있는 순기능의 힘 또한 지니고 있다. 한잔의 술잔에 지난날의 아름다움을 추억하거나 어떤 말 못한 괴로움을 지울 수 있는 묘약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술을 일러 망우물(忘憂物)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요즘엔 여럿이 보다 혼자 술을 마시는 횟수가 늘었다. 특히 오늘처럼 원고를 마무리한 다음에는 홀로 술상을 본다. 우선 번거롭지 않아서 좋고, 실수할 확률이 낮다. 그보다도 홀로 술잔을 들면, 어수선한 삶의 도그마에서 빠져나와 나만의 세계에 몰입할 수 있다. 우리는 아무리 꽉 짜인 하루의 계획표에도 잉여 시간은 있게 마련이다. 그 잉여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발산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조용한 공간에서 내가 나에게 술잔을 권한다. 이러한 나의 행위는 내면의 관조를 통해서 미학을 산책하는 것이다.
친구들과 헤어진 다음, 그들과의 끈끈한 우정을 되짚어본다. 3개월에 한 번 갖는 모임이지만, 예외 없이 술병도 동참한다. 물론 술병이 없는 만남도 있다. 하지만 술병이 함께할 때 진실은 더욱 돋보여서 나는 참 좋다. 술잔 속에는 알코올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응어리진 가슴을 풀거나 즐거움의 향유, 방종을 걸러낸 자유도 누릴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값비싼 술이라고 해서 더욱 많이 함유된 것은 절대 아니다. 한 병에 1억 원짜리의 술도 있다. 술 이름이 ‘맥칼렌’이라고 들었다. 1926년산이니까 올해로 91년이 된 술이다. 그것을 잔술로 환산해보니 한 잔에 4백만 원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술을 함부로 논하지 말라는 경고와도 같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한 잔에 4백만 원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병당 2천 원 남짓한 막걸리에도 술의 요소는 충분히 녹아 있다. 이런 노래도 있잖은가. “양주 먹고 취한 X 너만 잘났냐? 막걸리 먹고 취한 나도 잘났다.” 이쯤에서 나는 생각을 정리한다. 진정한 술꾼이라면 술의 질이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술의 순기능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역기능에서 머무를 것인가? 그것이 문제일 뿐이다. 그러므로 술은 여전히 우리의 현주소다.
밤이 깊다. 탈고(脫稿)를 위해 잠시 숨을 가다듬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휘영청 달이 밝다. 언 듯 이백의 ‘月下獨酌’이란 시구가 떠오른다.
“내가 노래하면 달도 따라다니고 / 내가 춤추면 그림자도 덩실덩실 춤을 춘다.”
첫댓글 술을 잘 마시면 글도 잘 쓰나 봅니다. 탈고 후의 술, 부럽습니다.
월하독작의 주인공이 바로 이태호 선생님이시군요~~~~~^^*
술, 잘만 마시면 약주입니다. 그 때문에 만취하는 경우가 젊은 날을 제외하고 거의 없습니다.
요즘엔 좋은 안주가 있으면(바다 생선) 술을 즐기는 편입니다. 가끔 달이 휘영청 박으면 월하독작도...
무슨 술을 혼자 드실까요? 전 맥주밖에 못 마시는데, 황금색에 몽글몽글 뜨는 거품이 좋고
독하지 않아서인데 그마저 코 삐뚤어지게 마시는 시절(?)은 한참 지났습니다. 이렇게 쓰니
술꾼 같네요. ㅋ 술에는 마취 기능도 있는 것 같습니다. 휘영청 밝은 달이 보입니다.
언젠가 혼자 마실 날이 올 것 입니다. 몽글몽글 뜨는 맥주라..캬! 또 생각나네요^&^
술 취해본 지가 하, 오래 되어서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술없는 세상은 앙꼬없는 찐빵이오, 고무줄 없는 ㅇ이요, 잘난 사람만 사는 세상이 될 뻔 했지요.
그나저나 그리워라,
곡차를 바께스에 찰랑찰랑 채워놓고 달랑 오꼬시와 포식하던 시절이...
지난번 형님 고등학교 동창생들과 만리포횟집에 들리셨을 때 바다를 바라보고 계시던 모습이 멋있었습니다.
그때가 가장 적당할 때죠? 술은 잘만 다스리면 훌륭한 벗이라고 생각합니다. 오꼬시란 말 오랫만입니다.
술의 순기능에 한 표 던집니다. '탈고 후의 독작' 참으로 멋지십니다.^^
건강하시죠? 봄날입니다. 오늘은 아내와 함께 텃밭과 화단을 정리했습니다.
동생이 낙지를 잡아와서 또 한잔 해야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