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0.03 11:00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학 교수가 한국을 다녀갔다. ‘21세기 자본’의 한국어판 출간을 계기로 지난 9월 18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피케티는 방한 강연과 인터뷰 등에서 한국 역시 ‘21세기 자본’의 법칙에서 예외가 될 수 없음을 역설했다. 그는 “불평등은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효용이 있지만 너무 심해지면 성장을 저해한다” “한국의 불평등 수준은 소득 상위 10%가 전체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일본•유럽보다는 심하다”며 한국도 부자들에 대한 세금을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한국도 이미 자신의 제3 일반법칙인 ‘r(자본수익률)이 g(경제성장률)보다 커짐으로써 자본이 주도하는 불평등도가 상승하는’ 세습자본주의의 위험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피케티가 지적한 한국의 소득불균형과 소득 상위층에 대한 현황은 동국대 김낙년 교수(경제학)의 연구를 인용한 것이다. 김 교수는 기존 소득불균형 지표로 활용되는 통계청 가계동향 조사 대신 국세청의 소득세 자료를 활용해 피케티와 똑같은 방식으로 한국의 고소득층과 소득 분배 현황을 몇 년간 추적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이 결과를 지난 6월 3일 ‘Top Incomes in Korea, 1933-2010:Evidence from Income Tax Statistics’라는 영어 논문으로 발표했다. 이 논문은 피케티 등의 외국 경제학자들이 각국의 고소득층 현황을 파악해 올려놓은 ‘월드 톱 인컴 데이터베이스’(World Top Income Database, http://topincomes.parisschoolofeconomics.eu/)에 지난 9월 2일 등재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회원국들의 소득불균형 통계를 만들 때 이 ‘피케티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기 때문에 김 교수의 연구성과는 한국의 소득불균형에 대한 OECD 첫 공식 통계로 활용될 전망이다.
피케티가 지적한 한국의 소득불균형과 소득 상위층에 대한 현황은 동국대 김낙년 교수(경제학)의 연구를 인용한 것이다. 김 교수는 기존 소득불균형 지표로 활용되는 통계청 가계동향 조사 대신 국세청의 소득세 자료를 활용해 피케티와 똑같은 방식으로 한국의 고소득층과 소득 분배 현황을 몇 년간 추적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이 결과를 지난 6월 3일 ‘Top Incomes in Korea, 1933-2010:Evidence from Income Tax Statistics’라는 영어 논문으로 발표했다. 이 논문은 피케티 등의 외국 경제학자들이 각국의 고소득층 현황을 파악해 올려놓은 ‘월드 톱 인컴 데이터베이스’(World Top Income Database, http://topincomes.parisschoolofeconomics.eu/)에 지난 9월 2일 등재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회원국들의 소득불균형 통계를 만들 때 이 ‘피케티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기 때문에 김 교수의 연구성과는 한국의 소득불균형에 대한 OECD 첫 공식 통계로 활용될 전망이다.
-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학 교수 /사진=김연정 조선일보 객원기자
피케티가 주장하듯이 한국의 소득 불균형은 김낙년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은 2012년 현재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5%를 차지한다. 이는 전 세계에서 소득 불균형이 가장 심한 미국(소득 상위 10%가 48.16%를 점유)에 육박하는 수치이며 일본(40.50%), 프랑스(32.69%)보다 높은 수치다. 상위 10%의 소득 비중은 1979~1995년만 해도 30%대에 머물렀지만 2000년 35%를 넘어섰고 2006년 42%로 치솟았다. 상위 10%의 소득점유율이 2000년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한 국가는 미국과 한국 정도다.
그런데 피케티 데이터베이스에 떠있는 한국 고소득층 관련 수치를 보면 약간 의아한 점이 발견된다. 여기에 나타난 한국 소득 상위 10%의 세전 연 소득은 3940만원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고소득층의 소득 규모보다 훨씬 낮다. 소득 상위 1%는 이 수치가 1억1114만원으로, 0.1%는 3억3138만원으로 상승한다. 4000만원에도 못 미치는 소득 상위 10%의 연 소득 규모라면 웬만한 월급쟁이들은 다 포함될 수 있을 정도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이 수치를 도출한 김낙년 교수를 지난 9월 24일 동국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김 교수는 소득 상위층의 기준이 되는 ‘분모’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소득 상위 10%라고 할 때 20세 이상 전체 성인 남녀가 기준입니다. 근로소득자나 취업자 기준이 아닙니다. 이럴 경우 소득 상위 10%는 대략 20세 성인 남녀 4000만명 중 400만명, 1%는 40만명, 0.1%는 4만명에 해당합니다.”
김 교수에 따르면, 국세청 소득세 자료에 나타나는 소득 계층에는 1700만명에 이르는 근로소득자와 650만명의 사업소득자를 포함한 취업자 외에 비취업자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아르바이트생, 연금으로 생활하는 은퇴자, 금융계좌를 갖고 이자를 받는 주부 등 다양한 계층이 비취업 소득자에 속한다는 것이다. 또 소득이 없는 비경제활동인구도 전체 성인 남녀의 20%가량을 차지한다. 김 교수는 “피케티 DB에 올라 있는 각국의 소득 불균형 통계는 모두 각국 국세청 자료를 동일하게 활용한 것이고 우리처럼 대부분 전체 성인인구를 분모로 삼는다”며 “그래야 똑같은 조건에서 국제비교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소득 상위 10%의 소득이 일반적인 예상보다 훨씬 낮다는 사실이 갖는 함의를 강조했다. “우리 정책 당국자가 세제 개편을 하면서 중산층 부담을 경감해준다고 할 때 머릿속의 중산층은 연 소득 5000만~7000만원 정도입니다. 그만큼 지금까지는 우리나라 소득 분포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와 전체 그림 없이 자기 레퍼런스만으로 중산층을 짐작한 겁니다. 정책이 위쪽으로 편향돼 있었다는 얘기인데 우리 사회 저변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침묵하는 저소득층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김 교수는 소득 상위 10%를 쪼개 보면 더 중요한 함의가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소득 상위 10%를 기준으로 하면 우리의 소득 불균형이 가장 심한 미국에 근접하지만, 소득 상위 1%를 기준으로 하면 미국에 한참 못 미친다. 미국의 경우 소득 상위 1%의 소득점유율이 2012년 20%에 이르지만 우리는 12.41%다. 반면 소득 상위 1%를 제외한 2~10%의 소득점유율을 따지면 우리나라가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라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소득 상위 10% 내에서 진짜 부자인 40만명을 제외하더라도 나머지 360만명이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부를 많이 갖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소득 상위 10%와 그 아래 그룹 간에 건너가기 힘든 벽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제도권 정규직 레벨과 그렇지 않은 그룹과의 단절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그만큼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들을 감안하면 우리 사회 소득불평등의 문제가 이건희 회장 같은 1%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피케티에 따르면, 어떤 나라를 막론하고 소득 상위 10%의 고소득층은 두 가지 범주로 양분될 수 있다. 최상위 1%는 자본소득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지배층(dominant class)인 데 비해, 나머지 9%는 의사•변호사 등 노동소득의 비중이 큰 부유층(well-to-do class)이다. 소득 상위계층으로 올라갈수록 노동소득보다 자본소득이 상대적으로 많아진다. 자본소득이 노동소득을 능가하는 것은 최상위 0.1% 계층뿐이다.
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도 고소득층일수록 지난 몇 년간 자본소득이 느는 경향을 나타낸다. 상위 0.1%의 경우 2007년 57.5%를 차지하던 자본소득은 2012년 60.5%로 증가했고 임금소득은 같은 기간 42.5%에서 39.5%로 줄었다. 상위 1%층도 자본소득은 같은 기간 37.3%에서 40.1%로 는 반면 임금소득은 62.7%에서 59.9%로 줄었다. 상위 10%의 경우 같은 기간 임금소득이 83.1%에서 82.6%로 줄긴 했지만 그 폭이 미미했다.
이런 통계로 한국이 세습자본주의에 진입했다고 할 수 있을까. 피케티에 따르면, 소득 최상층에서 상속 자본이 낳는 소득이 노동소득을 압도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총족되어야 한다. 우선 민간 소유 국민순자산이 국내총생산(GDP)의 6~7배 규모가 돼야 한다. 이 정도 규모로 민간의 부의 축적이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이진순 숭실대 교수(경제학)는 얼마 전 발표한 ‘피케티의 자본론과 한국경제’라는 논문에서 한국은 피케티가 강조한 세습자본주의의 첫 번째 조건은 이미 충족시켰다고 진단했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지난 5월부터 우리나라 각 경제주체가 보유한 유무형의 비금융자산과 금융자산 및 부채 가액을 추정해 만들기 시작한 ‘국민대차대조표’를 활용해 파악한 바에 따르면, 2012년 말 현재 우리나라의 국민순자산은 1경640.6조원(국민 1인당 2억1259만원)으로 GDP의 7.7배에 이르렀다는 것이 이 교수의 진단이다. 이는 호주 5.9배, 캐나다 3.5배, 프랑스 6.7배, 일본 6.4배에 비해서도 높은 수준이다. 물론 이들 선진국들의 국민순자산은 대부분 민간 소유지만 우리의 경우는 정부 소유 자산이 상대적으로 많긴 하다. 2012년 말 우리나라 국민순자산 중 정부 소유분은 25.7%. 이를 제외하더라도 민간 소유 국민순자산은 GDP의 5.7배에 이르러 피케티가 강조한 세습자본주의의 첫째 조건에 육박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피케티가 강조한 세습자본주의의 두 번째 조건은 상속받은 재산이 최상층 1%의 총자산 중 20% 이상 집중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이 부분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아직 부동산을 포함한 전체 재산에 대한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김낙년 교수가 파악한 한국의 고소득층은 국세청에 신고된 소득세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종합소득과 근로소득만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부동산 양도소득, 주식거래 차익 등은 빠져 있다. 물론 부동산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도 파악할 수 없다. ‘번 것’을 기준으로 한 부자는 파악할 수 있지만 ‘가진 것’을 기준으로 한 부자는 파악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특히 부의 집중도가 심할 것으로 추정되는 토지 소유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이진순 교수는 자신의 앞서 논문에서 “1988년 현재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의 65.2%를 토지소유자 상위 5%가 소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1980년대 말 토지로부터 천문학적 규모의 자본이득이 상위계층에 집중적으로 귀속되었다”며 “토지자산의 GDP 배율이 일본, 프랑스, 호주 등은 2.4~2.8배, 캐나다와 네덜란드는 각각 1.3배, 1.6배 수준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4.1배로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토지를 포함한 전체적인 부의 분배 상태에 대한 자료가 없어 피케티 둘째 조건의 충족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부의 집중도는 소득의 집중도에 비해 훨씬 높은 것이 보편적이며, 우리나라 상위층에의 소득 집중도가 이미 유럽 대륙 국가들의 수준을 넘어 미국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춰 보면 둘째 조건도 충족될 개연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논문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 경제의 고도성장기에는 임금도 빠르게 상승하여 젊은층이 노인세대와 맞먹는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자산의 대부분을 이미 노인세대가 소유하고 있는 여건하에서, 2000년대 들어 경제성장률이 5% 이하로 하락하여 임금상승률도 크게 둔화된 반면 자본수익률(제조업 자기자본 순이익률)은 경제성장률을 크게 상회하였다. ‘부등식 r>g는 과거가 미래를 집어삼키게 되는 경향을 의미한다:과거에 축적된 부는 자동적으로 노동으로부터의 부보다 빠르게 성장하게 된다.’(피케티) 그 결과 세습자본주의화도 심화될 전망이다.”
세습자본주의에 대한 피케티의 처방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세금이다. 고소득층에 세금을 매겨 인위적으로 소득의 균형을 맞추고 그 재원으로 교육과 복지 등에 투자하면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오히려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소득세 최고세율이 떨어져 왔다. 우리나라 소득세 최고세율은 1960~1970년대 빠르게 상승하여 70%까지 갔다가 1980년대 이후 매년 인하돼 2008년 35%까지 하락했고 2012년 현재 38%다. 이와 맞물려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처럼 2000년대 이후 금융기관과 재벌기업 최고경영자들의 임금이 급상승하면서 근로자 전체 평균임금과의 격차가 심하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김낙년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근로소득자 상위 0.1%의 보수는 1990년대 말까지 전체 근로자 평균의 10배 전후의 수준을 유지하다 외환위기 이후 급등하여 최근은 20배가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이진순 교수는 우리도 피케티의 처방대로 부유세를 매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교수는 “소득분포 최상위 1%, 혹은 0.1%에 대해 최고세율 계급을 신설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우리나라는 소국개방경제라는 점을 고려하여 최상층에 대한 세율을, 피케티가 제안한 80%보다는 프랑스나 독일의 50~60% 수준에서 결정하는 것이 현실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현재의 종합부동산세를 부유세로 확대 개편해 자산보유에 대해서도 매년 과세함으로써 소득세, 상속세와 함께 부의 과도한 집중을 억제하는 견제장치로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진단과 처방이 과연 맞는 것일까. 피케티에게 한국의 소득불균형 자료를 제공한 김낙년 교수는 오히려 이에 대해 유보적이다. 김 교수는 우리가 진짜 세습자본주의에 들어갔는지부터 정확히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피케티가 강조한 ‘r>g’에서 평균자본수익률을 의미하는 r을 산출해 내는 방식은 복잡하다. 국민소득계정에서 이윤•배당•지대•이자•특허료 등 각종 자본소득 총계를 국민순자산으로 나눠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대한 데이터가 아직 부족하다. 김 교수는 “이진순 교수처럼 r을 제조업 자기자본 순이익률로 대치하는 시도는 해볼 수 있지만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피케티의 논리에는 허점도 있다. 소득불균형이 가장 심한 미국의 경우는 소득불균형을 가져온 주된 원인이 자본소득이 아니라 임금소득이다. 대기업 CEO들의 임금이 천정부지로 솟아오른 게 불균형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피케티가 유럽을 지칭하는 ‘올드월드’와 미국 등 ‘뉴월드’를 구분하기는 하지만, 미국의 경우를 피케티의 세습자본주의 이론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김 교수의 지적이다. 신흥국의 경우도 시간이 지나면 피케티 이론으로 수렴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중국, 인도의 소득불균형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는 아직 모른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소득불균형이 심화된 것은 불과 지난 15년간에 벌어진 일”이라고 강조한다. IMF가 주요 계기로 작용했지만 고도성장기에 우리가 선진국으로부터 빼앗았던 일자리를 중국 등 후발국가에 빼앗기면서 산업구조가 달라진 것이 소득불균형의 주 원인이라는 게 김 교수의 진단이다. 김 교수는 “지난 15년간 이뤄진 우리의 소득불균형에는 자본소득 격차와 임금소득 격차가 절반씩 작용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 김낙년 동국대 교수 /사진=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15년 이전의 상황을 되새겨보면 지금의 소득불균형 해결책으로 성장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김 교수는 “구조적으로 더 이상 활로를 뚫기 힘든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의 질을 제고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성장률을 높이는 게 불평등 해소에 매우 중요하다”며 “서비스업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결국 내부 제도의 문제, 규제를 없애고 경쟁 룰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같은 맥락에서 피케티식의 세금 처방이 불평등을 해소할 절대적인 해법이라고 보지 않는다. 일단 최고 소득층에 대한 중과세는 정치적 선택의 문제라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이건희 회장 같은 최고 소득층에 50%의 세금을 매기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당사자들 말고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세전 소득이 20억원이라면 3억원만 공제하고 17억원의 소득에 대해 50%의 세금을 매기면 됩니다. 번 것의 거의 절반을 내놓으라는 얘기이고 이게 피케티가 주장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닙니다.”
김 교수는 최고 부자들에게 중과세를 하는 것보다 전체적인 조세 시스템을 어떻게 짜느냐가 더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득세 최고세율과 함께 간접세 비중을 얼마로 하느냐, 의료보험과 같은 사회보장부담금을 소득 구간별로 어떻게 부과하느냐는 것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소득세의 경우 우리나라는 최고세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져 왔긴 하지만 공제가 많이 늘어 선진국에 비해 부자들이 세금을 더 많이 내는 누진적 경향이 매우 강하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공제 때문에 소득 하위 40%는 세금을 거의 내지 않지만 선진국의 경우 공제가 별로 없기 때문에 소득이 적은 사람도 6% 정도의 최저 세금은 냅니다. 그만큼 우리의 소득 상위층이 상대적으로 많이 세금을 부담한다는 얘깁니다.”
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근로소득세에 한정할 경우 2013년의 세제 개편으로 고소득층의 세 부담은 더 늘어났다. 김 교수는 지난 4월 ‘재정학연구’에 기고한 ‘2013년 소득세제 개편과 계층별 소득세 부담률’이라는 논문에서 올해부터 적용되는 2013년 소득세제 개편으로 근로자 소득 상위 10%가 부담하는 세액이 전체의 76.6%에서 개편 후에는 80.8%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하위 60% 이하 근로자의 세 부담 비중은 개편 전에는 전체 세액의 1.94%에서 개편 후에는 0.25%로 더욱 낮춰진다는 계산이다.
김 교수는 소득세와 함께 간접세의 기능에 대해서도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간접세가 고소득층에 유리한 역진세라고 비판받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우리의 경우 소득세 비율이 낮아서 간접세가 상대적으로 높아 보이지만, 고복지 선진국은 간접세도 우리보다 높고 사회보장부담금도 우리보다 높습니다. 특히 고복지 선진국들이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 복지 시스템을 유지하게 해준 게 조세저항이 적고 세금 부과가 용이한 간접세입니다. 역진적이라고 무조건 비판만 할 게 아니라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해온 간접세에 대한 인식도 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 교수는 “소득불평등에서 출발해 지난 몇 세기를 아우르는 거대 이론으로 발전시킨 피케티를 우리에게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고소득층에 대한 연구를 차근차근 진행해 데이터를 축적하는 게 중요하다”며 “부의 분배에 대한 전체적인 데이터와 그림이 없는 상태에서 소득 상위 몇 %가 전체 부의 몇 %를 소유하고 있다는 점만 강조해서는 우리 소득불균형의 해법을 제대로 짚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피케티 DB에 올라간 우리나라 고소득층에 대한 연구의 후속 작업으로 종합부동산세 자료를 바탕으로 소득 상위계층의 토지 집중도에 대한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소득세 자료를 바탕으로 한 기존 연구에서는 소득 상위 10%층에 대한 분석에 집중했지만 앞으로 근로소득뿐만 아니라 사업소득, 금융소득 등을 쪼개서 소득 상층과 중층, 하층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연구도 진행 중에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