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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일
참새를 돌보시듯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시 84:3)
파세르 도메스티쿠스라는 학명을 지닌 참새는 세상에서 가장 흔한 날짐승이다. 길이 15cm에 무게가 30g 정도인 참새는 다양한 환경에 적응해 살아간다. 참새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80층에서 새끼를 먹이는 모습과 깊이 600m인 영국의 어느 광산에서 새끼를 낳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참새는 고양이, 설치류, 맹금류, 인간 앞에서 유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아기 참새 다섯 마리 중 한 마리만이 번식기까지 살아남는다.
시편에서 묘사한 참새 이야기는 특히나 가슴을 울린다. 약하고 힘없는 이 작은 새도 하나님의 집에서는 숨을 곳이 있다는 것이다.
시편 84편은 이렇게 시작한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시 84:1~2).
그리고 이어서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말한다(4절). 비록 작은 새라도 하나님의 집에서는 안전하게 보호받는다.
불안, 근심이 닥칠 때, 나약함을 느낄 때 어디를 바라보는가? 어디서 희망을 찾는가? 곤경에 처할 때, 세상이 내게 등 돌린 것처럼 느껴질 때, 마음의 안정이 필요할 때 우리는 누구에게로 향하는가? 하나님은 우리 삶에 폭풍우가 몰아칠 때도 피난처를 제공하신다. 세상이 물로 뒤덮였을 때도 그분은 노아와 그의 가족을 방주 속에서 지켜 주셨다. 법령에 의해 생명을 위협받던 아기 모세는 바구니 속에 뉘였다. 세 히브리 청년은 풀무 불에서 구원받았고 다니엘은 사자 굴에서 보호받고 살아남았다. 하나님의 집에서 어미 새가 새끼를 보살피듯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으면 안전하다. 하나님이 돌보시는 작은 새는 그분 안에 피난처가 있다는 보증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국연합회 세계선교본부
10/40 선교 프로젝트-중동 A국가 선교센터 건립을 위해
10월 2일
아주 조금이라도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갈 5:9)
내과 의사 애나는 해변에서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참나무 밑에 자라난 버섯을 보았다. 그 버섯을 집으로 가져가 요리할 생각이었다. 먹어도 안전한지 먼저 확인해 봐야 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튿날 애나는 모든 일을 까맣게 잊고 버섯을 요리해 먹어 버렸다. 다음 날 일찍 일어난 애나의 몸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자신이 먹은 것은 독버섯이었다. 그 독버섯은 반 개만 먹어도 치명적이었고, 겨우 목숨을 건진다 해도 간 이식이 필요했다.
다행히 애나는 얼마 동안 심각하게 앓고 나서 회복되었다.
애나의 경험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아프리카에서 전도회를 개최하며 겪은 일이 떠올랐다. 그곳에서는 물을 끓여 마셔야 했고 내가 마시는 물은 모두 진한 연기 냄새가 배어 있었다. 그러다 한번은 양치질을 할 때 끓이지 않은 물 한 컵을 사용했다. 삼키지만 않으면 괜찮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런데 물맛이 너무 좋았다. 남은 물을 조금 마신다고 별 문제가 있을까 싶었다. ‘조금 마신다고 어떻게 되겠어?’ 하지만 아주 적은 양이라도 그 물을 마신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이내 깨달았다. 몸이 심하게 아팠다.
나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렸고 ‘아주 조금이니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죄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별거 아니야.’, ‘딱 한 번인데.’, ‘뭔 일이 생기겠어?’ 이런 생각은 성경의 분명한 교훈을 무시하는 것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롬 6:23). 죄는 아주 조금이어도 위험하다. 순간의 부주의가 큰 피해를 낳는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성령께서 옳은 길로 인도하시도록 맡기는 편이 훨씬 낫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동혁, 김아림 선교사 부부(캄보디아)
프놈또잇 개척 선교를 위해
10월 3일
신분 도용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
남의 신상 정보를 이용해 딴사람 행세하는 것을 신분 도용이라고 한다. 주로 금전적 이득을 취하려고 신용을 도용하는데 그 피해자는 재정적 손실과 함께 신용에 타격을 입고 여러 불편을 겪는다. 신분 도용꾼은 자신을 딴사람으로 속인다.
그리스도인이란 딴사람이 되는 것이다. 믿고 그리스도께 나오기 전까지 그는 잃어버린 죄인이지만 일단 자기 삶을 예수님께 맡기면 예수님의 이름을 앞에 내걸 정도로 완전히 그분에게 동화되어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 즉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그는 마음에 예수님을 영접하며 그의 삶은 그분에게 복종한다.
한편 그리스도인이라고 떠벌리지만 신분 도용꾼에 불과한 사람도 있다. 주민 등록 번호나 운전면허 번호를 도용해 딴사람 행세를 하는 사람은 진짜가 아니다. 그것은 부당한 이익을 얻으려는 계략이다. 예수님의 이름을 앞세우지만 성령께 마음을 맡기지 않는 사람 역시 사실상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다. 예수님과 같은 사람으로 행세하지만 예수님에게 굴복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이 될 때 얻는 유익이 많다. 대체로 그리스도인은 가족, 친구, 교인들에게 존경받는다. 그리스도인은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가족이 되며 영원한 삶을 보장받는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희망의 삶이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황금 거리를 거닐며 새 땅에서 구원받은 이들과 영원히 함께 산다.
이러한 신분을 도용한다는 것은 참 한심한 일이다. 하나님의 모양대로 빚어진 우리 모두는 예수를 따르는 척할 필요 없이 진짜로 예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다. 새 마음을 달라는 기도는 언제나 확실하게 응답받는다. 구하는 자에게 성령님은 흔쾌히 찾아가 그의 안에 거하신다. 2,000년 전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어 인간과 같아지셨다. 우리가 지금 바로 그분과 같아질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갑숙 선교사(말라위)
고아와 극빈자들을 위한 고등학교 설립을 위해
10월 4일
입을 크게 열라!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시 81:10)
하나님은 우리가 담대히 기도하며 대단한 것을 요구하기를 기다리신다고 엘리사는 마지막 행동으로 분명히 보여 주었다. 어린 임금 요아스가 몰려오는 아람 군대에 겁을 먹고 엘리사를 찾아왔다. 적군이 있는 방향으로 활시위를 당기는 요아스의 손을 붙잡고 엘리사가 말했다. “왕이 아람 사람을 멸절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왕하 13:17).
그러고 나서 엘리사는 요아스의 믿음을 테스트했다. “또 이르되 화살들을 집으소서 곧 집으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하는지라 이에 세 번 치고 그친지라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이르되 왕이 대여섯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18~19절).
선지자가 언짢아했다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요아스의 믿음이 탐탁지 않았다는 표시이다. 적군을 물리치도록 선지자가 도와줄 것을 알면서도 요아스는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지 않았다. 땅바닥을 고작 세 번밖에 치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 은혜를 별로 구하지 않았음을 가리킨다. 하나님 백성의 지도자다운 결단력과 헌신이 있었다면 여러 차례 바닥을 쳤을 것이다. 왕은 하나님에 대해 무관심했고 하나님의 이름은 굴욕당했다.
하나님께 큰 것은 구하지 않고 시시콜콜한 것만 구하는 사람도 요아스와 같다. 여러분이 가족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나라를 구하고자 기도하던 존 녹스를 생각하라. 병마와 싸울 때는 눈을 뜨게 해 달라던 맹인 바디매오를 떠올려 보라. 하나님은 사막에서 한 민족을 먹이셨고 반석에서 물을 내셨다. 바다를 갈라 길을 내고 이집트 군대를 물로 덮으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것까지 준비해 놓으신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늘의 하나님은 위대한 선물을 주시는 기적과 구원의 하나님이다. 우리를 위해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라. 그분께서 놀라운 일을 이루어 주시기를 기대하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에스라 선교사(기타 지역)
선교 세미나의 예산 마련을 위해
10월 5일
불을 지피라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어릴 적 내가 살던 집은 주방 난로에서 물을 데웠다. 뜨거운 물을 얻기 위해 여름에도 겨울에도 매일 나무나 숯을 넣고 불을 지폈다. 불이 붙지 않으면 더운물을 사용할 수 없으므로 언제나 신문지와 불쏘시개를 구비해 두었고 꾸준히 석탄을 배달받았다. 그것은 일상의 하나였다. 불을 붙이고 꺼지지 않게 살피고 더운물을 얻었다. 하루라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물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그와 비슷하다. 매일 믿음의 불꽃을 피워야 한다. 하나님께 다가와 믿음을 달구지 않으면 통에 남아 있는 믿음으로 연명할 수밖에 없다. 더운물, 즉 믿음은 금세 식어 차가워진다.
『정로의 계단』에 진술한 엘렌 G. 화잇의 권면을 지금도 마음에 되새겨야 한다. “아침마다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라. 이것을 첫 번째 일로 삼으라. ‘주님 저를 온전히 주님의 것으로 삼아 주소서. 제 모든 계획을 주님 발 앞에 놓습니다. 오늘 저를 사용하시어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 저와 함께하시고 모든 일이 주님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라. 매일 그렇게 하라.”
이 중요한 진술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잘 보여 준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을 우리 삶에 초대하는 특권을 부여받았다. 우리는 온전히 자신을 내맡기며 ‘저를 온전히 주님의 것으로 삼아 주소서. 제 모든 계획을 주님 발 앞에 놓습니다. 주님 좋으실 대로 저를 사용하소서. 제 안에 거하시어 제 모든 행위가 주님의 성령을 따르게 하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 완전히 내맡기고 그분의 뜻이 매일 이루어지게 하는 이것이 바로 믿음의 삶,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이 신성한 계획을 따르는 사람의 믿음은 영원히 식지 않는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교린, 이미화 선교사 부부(아랍 에미리트)
아랍 현지인을 위한 디지털 선교가 활성화되도록
10월 6일
자신을 내맡기면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에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욥 14:4)
가장 먼저 기록된 성경인 욥기에서는 시대를 초월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영원히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려면 반드시 대답해야 할 질문이다.
삶, 죽음, 고통과 씨름하면서 욥은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에서 낼 수 있으리이까”(욥 14:4)라고 물었다. 또 다른 성경에서는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사 64:6) 같으며 우리는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계 3:17) 존재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영생에 걸맞게 순결해질 수 있을까?
『실물교훈』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분은 온전히 순종하셨고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게 하셨다.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치면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과 결합하고 우리의 뜻은 그분의 뜻에 녹아든다. 우리의 정신은 그분의 정신과 하나가 되고, 우리 생각은 그분께 사로잡히며 마침내 우리는 그분의 생애를 살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그분이 주시는 의의 옷을 입는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주께서는 우리를 보실 때 무화과나무 잎으로 엮은 옷이나 죄로 인해 벌거벗고 뒤틀린 우리 몸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 자신이 만들어 낸 의의 두루마기를 보신다. 그 의의 옷이란 여호와의 율법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다”(312쪽).
구원은 예수께 달려 있다. 그분이 “온전히 순종”하신 덕분에 우리도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할 수 있다. 예수의 죽으심에 대해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반응은 우리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하늘의 역사로 우리의 마음, 뜻, 정신, 생각은 그분과 하나가 된다. 자신을 예수님에게 내어 드리면 그분이 이 일을 이루신다. 우리 힘으로 할 수 없지만 영생을 얻기 위해 필수적인 일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는 일은 일평생 계속된다. 우리는 갈수록 예수님께 자신을 내려놓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죽음을 맞이하셨다. 십자가 없이는 구원도 없다.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께 자신을 내맡기면 하나님이 우리 삶에 임하시며 성령께서 죄인의 마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돌이켜 주신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1000명선교사 운동
하나님의 보호와 공급하심이 선교 현장의 선교사들에게 함께하도록
10월 7일
어려운 질문들
“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완전히 알겠느냐”(욥 11:7)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한계를 파악해야 한다. 하나님은 크고 영원한 분이시다. “하늘도, 하늘 위의 하늘마저도 그분을 모시기에 좁을 터”라고 성경은 말한다(대하 2:6, 새번역). 그분은 무에서 세상을 창조하셨고 허공에 행성을 매달고 홍해를 가르고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셨다. 그러나 인간은 유한하며 실수투성이다. “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완전히 알겠느냐”(욥 11:7)라고 나아마 사람 소발이 질문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인간의 이해력은 매우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보다 더 잘 알 수 있다는 유혹에 빠지곤 한다. 하나님은 말씀이라는 위대한 빛을 주셨고 우리의 지혜는 그분을 뛰어넘을 수 없다.
좀 뜸하다 싶으면 재림의 시기에 관한 주장이 고개를 다시 내민다. 그 예측가들은 대부분 “정확한 시각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예언을 보면 제 생각에는 대략 이때쯤입니다.”라는 식으로 설명한다. 이런 예측은 전혀 득이 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누구도 재림의 때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마 24:36).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 문제는 끝난 것이다.
성경에서는 어려운 질문들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어떻게 세 인격체가 한 하나님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아버지, 아들, 성령은 영원히 분리된 존재이면서도 한 분이신가? 성경은 수많은 질문에 충분한 대답을 제공하지만 제기될 수 있는 의심과 반대를 모조리 제거하지는 않는다.
좁은 문을 통과하려면 답이 없는 질문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풀어내지 못할 의문에 빠져 곁길로 새거나 길을 멈추기보다 하나님이 분명하게 알려 주신 사항들에 만족하며 지내는 것이 백 번 낫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이효신, 이은화 선교사 부부(아드라 캄보디아)
ADRA 구호 활동이 캄보디아에 큰 복이 되기를
10월 8일
하나님을 보는 법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 55:8)
우리는 인간적인 관점으로 하나님을 판단할 때가 있다. 충분히 시간을 내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그분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용서하지 않으려는 것이 인간의 특성이다. ‘그가 저지른 짓을 생각하면 절대 용서할 수 없어.’와 같은 말을 우리는 자주 듣는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고통당하고 상처받았기 때문이다. 위기 속에서 은혜와 평화를 꿰뚫어 보기란 쉽지 않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용서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사하겠다고 거듭 말씀하시지만 하나님의 용서를 쉽게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라고 시편 86편 5절에서는 말한다. 하나님의 용서가 절실했던 다윗은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다고 시편 103편 12절에 기록했다.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일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냐고 한 여성이 내게 물었다. 50년도 더 전에 그는 무언가 죄를 지었다. 50년이 넘도록 하루 수차례씩 매일매일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단순히 계산해도 5만 번이 넘었다. 그 죄악보다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이라고 나는 그에게 말해 주었다. 그는 수긍하지 않았고 나는 요한일서 1장 9절을 읽어 보라고 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하나님은 하늘의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신다. 이사야 55장에서 하나님은 회개하는 죄인을 용서하겠다고 약속한 뒤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8~9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그분이 어떤 분인지 제대로 알 수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지성배, 김영란 선교사 부부(파키스탄 삼육대학)
선교사들의 사역과 신변의 안전을 위해
10월 9일
모든 성경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대부분 성경책을 살펴보면 복음서 부분이 특히 닳아 있다. 여백은 빛이 바래고 모서리를 접어 둔 곳도 많다. 시편, 사도행전, 로마서, 요한계시록도 비슷하다. 자주 읽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머지 부분은 새것이나 다름없다. 성경의 어떤 책은 반복해서 읽지만 어떤 내용은 한 번도 펼쳐 보지 않는다.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다. 구약 성경의 족보를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사람은 드물다. 신약에서 많이 인용된 스가랴도 요한복음에 비하면 읽기 어렵다. 하지만 디모데후서에서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며 “유익”하다고 말한다. 대부분 자기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 책,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나머지 부분을 그냥 지나치거나 무시하면 손해가 크다. 아모스와 호세아의 이야기, 전도서의 지혜, 예레미야의 예언을 읽을 때 얻는 유익이 있다. 사도행전은 읽기 쉽고 히브리서는 노력이 조금 더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덜 유익한 것은 아니다. 열왕기상·하, 사무엘상·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관심을 사로잡고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유다서는 하나님의 성품과 구원의 계획에 관하여 아름다운 통찰을 전한다. 성경은 폭넓게 읽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최대한 크게 전해져서 성경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게 하자. 하나님의 감동으로 지어진 모든 말씀은 영원한 유익을 위해 주어진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진성, 김종숙 선교사 부부(기타 지역)
체계적인 선교사 훈련을 위해
10월 10일
희망을 얻고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
그는 나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마음의 큰 짐이 있는 듯했다. “목사님, 제가 천국에 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동안 그는 천국에 가려면 죄를 짓지 말고 도덕적으로 완벽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들어 왔다. 죄를 완전히 그쳐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살기가 불가능하다는 거죠?”내가 물었다. “예, 절대로 되질 않아요.”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그는 귀를 기울였다. “성경적인 관점으로 이 문제를 보는 겁니다.”
우리가 그분께 믿음으로 나아가면 예수님은 확실하고 완전하게 우리를 구원하신다고 나는 그 젊은 친구에게 설명했다. “삭개오, 십자가의 강도, 간음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떠올려 보세요. 그들은 즉시 용서와 구원을 받지 않았나요?” 그는 맞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고 그게 사실이었다.
“살면서 저지른 죄악을 그들이 모두 극복했다고 생각해요?” 답은 뻔했다. 그들은 극복하지 못했다. 그들은 계속해서 예수님께 자신을 내맡기며 하나님의 모양을 따라 꾸준히 성장하는 가운데 계속 그리스도의 의를 지녔다. 그 친구와 나는 이 점에 대해 동의했다. 알려진 모든 죄를 극복해야 구원을 선물로 얻는다면 구원을 보장받을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요한은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고” 글을 쓴다고 했다(요일 5:13).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사람은 그분께 자신의 삶을 맡기며 더욱더 하나님의 모습을 따라 자라난다. 죄악이나 자신의 도덕적 결함에 집중하면 안 된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게 집중해야 한다. 예수를 바라보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의를 입으며 자아를 부인하고 “날로 새로워”(고후 4:16)진다.
나와 이야기했던 청년은 희망을 얻고 돌아갔다. 그는 자신의 삶을 예수께 드리고 자신의 구원을 믿으며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매일 자라날 수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종철, 윤미경 선교사 부부(몽골)
지역 사회 선교 거점인 문화 센터 건립을 위해
10월 11일
오라는 초청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마 22:9)
중국 동관에 있는 사우스 차이나 몰은 2005년 완공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쇼핑몰이었다. 실내 면적만 93만m2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에 2,350개 점포가 들어섰고, 파리, 로마, 카리브 연안 등 유명 도시를 테마로 한 7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길이 2km에 이르는 운하와 이집트의 스핑크스, 25m 높이의 개선문 모형도 위용을 과시했다. 그러나 입지 조건이 나빴고 지역 거주민은 수입이 변변치 못한 공장 근로자가 대부분이었다. 이용객은 많지 않았고 하루 고객 10만 명을 예상했지만 수년 뒤에 사용되고 있는 면적은 1%에 불과했다.
오늘날 발 디딜 틈이 없어야 할 교회가 대부분은 거의 비어 있다. 경제적 요인과 인구 변화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교회는 오늘날 세상이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답을 가지고 있다.
마태복음 22장의 혼인 잔치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9절)고 말씀하신다. 스스로 교회에 찾아가거나 하루아침에 그리스도인이 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들을 예수께로 이끌려면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봉사하고 초청하고 예수님의 성품을 보여 주어야 한다.
교인들은 너무 쉽게 패배를 인정하며 성장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작은 것에 만족하고 마는 교인은 하나님의 큰일을 이루기에 부적합한 자이다. 믿음을 전해 줄 사람이 있는가? 교회로 인도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 교회는 성장할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왕국이 확장되기를 바라신다. 그분의 백성이라면 그 사역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PCM(캠퍼스 선교사 운동)
한국과 일본에도 PCM 선교사가 파송될 수 있도록
10월 12일
가장 치열한 싸움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수백만 명이 죽거나 다쳤다. 2차 세계 대전 때는 그 수가 수천만으로 늘었다. 그러나 “가장 치열한 싸움은 자신과의 싸움이다”(정로, 43).
이 말은 성질을 억누르거나 초콜릿 케이크를 먹고 싶은 욕망과 싸울 때 자주 사용지만 자신과의 싸움은 생각보다 훨씬 더 교묘하다.
너무 멀리 와서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은 용서하실 뿐 아니라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해 주신다고 성경은 말한다(요일 1:9).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다. 이 진리를 마주한 그리스도인에게는 두 가지 선택권이 있다. 하나는 성경을 믿고 죄인도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 대신 자신을 바라보며 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는 그리스도인은 돌아가기에 너무 멀리 왔다는 유혹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집 떠난 자들이 돌아올 때 하나님이 반갑게 맞이하신다는 사실을 탕자, 므낫세왕, 그 밖의 많은 이야기에서 알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실수투성이 인간을 받아 주신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낙담하거나 이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은 자아에 얽매여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는 예수께서 우리의 하늘 제사장이며 믿음으로 그분께 나아가는 자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는다고 분명하게 밝힌다(히 4:16). 이러한 증거를 두고도 그분의 용서를 저버리거나 인간의 연약함과 실패만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다.
주님 대신 죄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거절하는 사람은 구원 대신 자아를 택한 사람이다. 자신과의 싸움은 실로 치열한 싸움이다. 자신의 죄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보다 더 크다는 생각은 자기 본위로 심각하게 뒤엉켜 있는 사고방식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권순범, 강지희 선교사 부부(대만)
대만 교회를 섬길 현지 목회자 양성을 위해
10월 13일
보면 살리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민 21:8)
예수님이 구원의 계획에 관하여 니고데모에게 설명한 요한복음 3장 16절은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일 것이다. 그런데 그에 앞서 예수님은 존경받는 이 바리새인에게 특이한 성경 구절을 언급하면서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는지를 일깨우셨다.
거듭나야 한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을 때 니고데모는 그 의미를 혼동한 듯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민수기 21장을 가리키며 니고데모가 오해할 수 없을 만큼 분명하게 이야기해 주셨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15).
광야를 지나며 낙담한 이스라엘 백성은 불평을 늘어놓았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마련해 주신 수단까지도 멸시하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민 21:5). 그러자 독사가 나타났고 사람들이 죽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놋쇠로 뱀을 만들어 장대에 올려 두라고 명하셨다.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8절).
멀리 순례를 떠날 필요도, 고행도, 돈도, 남들과 구분될 필요도 없었다. 살기 위해서는 그저 장대 위의 뱀을 쳐다보기만 하면 되었다. 이것이 구원의 계획이라고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설명하셨다.
우리는 예수님을 쳐다보기만 하면 살 것이다. 구주를 우러러보고 예수께 눈을 돌리는 사람은 생명 그 자체를 향하여 눈을 돌린 것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우리는 죄를 바라봄으로써가 아니라 세상 죄를 지고 죽으신 분을 바라봄으로 영생을 얻는다. 예수를 바라보는 사람은 그분의 모습으로 변화된다. 옛것은 지나가고 예수께서 자신의 모습처럼 우리의 삶을 바꾸어 주실 것이다. 예수님을 쳐다보면 살 수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최봉길, 최경미 선교사 부부(필리핀 1000명선교사 훈련원)
한국 재림교회가 세계 선교의 더 많은 부분을 감당할 수 있도록
10월 14일
마차를 끌고 있는 말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딤전 1:5~6)
지혜로운 어느 목사가 교회의 결속력과 관련해 여섯 단어로 된 의미심장한 교훈을 전했다. “목회하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라면서 그는 말했다. “마차를 끌고 있는 말은 뒷발질하지 않습니다.”
게으른 손은 악마의 도구라는 속담이 있듯 선교와 봉사에 소극적인 교회는 미래가 암담할 수밖에 없다. 교인들이 일하지 않고 교회에 명확한 전도 계획이 없으면 별거 아닌 일에도 교회 전체가 마비될 수 있다.
의미와 진리를 찾는 이에게 성경을 펼쳐 주거나 다른 이에게 예수의 사랑을 전하는 사람은 시시한 정치나 사소한 교회 논쟁에 휘말릴 시간도 그럴 마음도 없다. 길 잃은 자들에게 예수를 전할 기회와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젊은이들을 너그럽게 대하며 잘못된 행동에도 측은함을 느낄 것이다. 어떤 교회든지 교인 중 절반이 매일 성령을 받는다면 그 성령께서 그들에게 자비와 관용을 길러 주셔서 왼뺨을 돌려서 대는 사람, 문제를 일으키기보다 해결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전 교인이 그렇게 기도한다면 교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 보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마 28:19) 삼으라고 명하셨을 때는 가까운 데서부터 시작하도록 의도하신 게 분명하다. 가정, 공동체, 학교, 일터는 모두 예수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밝게 비출 수 있는 장소이다. 개인 전도를 진지하게 여길수록 교회 성장, 영혼 구원, 복음 전도, 선교와 같은 중요한 일이 삶의 최우선을 차지할 것이며 교회 카펫의 색상이나 집사·장로직과 같이 부차적인 일에 필요 이상의 관심을 쏟지 않을 것이다. 선교에 초점이 맞춰질 때 교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중요한 일을 위해 연합한다. 마차를 끌고 있는 말은 뒷발질하지 않는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하지홍, 황고은 선교사 부부(기타 지역)
선교지의 연합과 부흥을 위해
10월 15일
불멸의 여인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요 6:58)
헨리에타는 한때 노예의 숙소였던 버지니아주 시골의 작은 오두막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자랐다. 일거리를 찾아 남편, 아이들과 함께 메릴랜드주 볼티모어로 이사했을 때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1951년 헨리에타는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았고 그해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의학적으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보통 사람의 세포와 달리 헨리에타의 몸에서 채취한 세포는 실험실에서 계속 증식하며 의학 연구 분야의 막중한 자산이 되었다. 그의 사후에도 헨리에타 랙스의 이름을 딴 헬라(HeLa) 세포는 계속해서 증식했고 소아마비 백신, 에이즈 치료제, 그 밖에 많은 치료제와 연구에 이바지하며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조용히 살다가 흑인 차별 정책에 따라 지정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서른한 살에 숨진 한 사람이 다른 어떤 여성보다도 의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가 사망한 지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헬라 세포는 증식하고 있다. 그래서 헨리에타는 종종 불멸의 여인이라 불린다.
하나님은 예수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약속하셨다. 이 땅에서의 삶은 너무나도 짧다. 인도의 기대 수명은 70세이다. 자메이카는 75세, 푸에르토리코는 80세, 일본은 85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창조하셨다. 창세기에서 아담은 930세, 야렛은 962세, 노아는 950세까지 살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오늘날에는 기대 수명이 100세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영연방 국가는 100세 생일을 맞은 사람에게 국왕이 생일 축하 카드를 보내 주기도 한다.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하신 예수님은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고 말씀하셨다. 영원한 삶은 끝이 없는 삶, 예수님과 천사들과 구원받은 자들과 함께하는 삶을 의미한다. 수백 년간 사람들은 불로의 샘이라는 전설적인 이야기를 믿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훨씬 전부터 더 대단한 것을 약속하셨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영원한 삶을 얻는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광성, 이은정 선교사 부부(대만)
대만 동역자들과 하나 되어 일할 수 있도록
10월 16일
무제한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닐 암스트롱은 달 표면을 걸었다. 로사 파크스는 버스 뒷좌석에 앉기를 거부했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는 활자 인쇄기를 발명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은 전화기를 발명했고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현대 간호학의 기초를 다졌다. 이들은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겼고 지금도 세상은 그들의 영향을 받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발명하고 개발하고 창조하고 개척하지만 어떤 한 사람이 가장 유명한 발명가나 산업의 거장보다도 훨씬 큰 영향력을 지닐 수 있다.
“자아를 버리고 마음속에 성령께서 활동하실 자리를 마련하고 하나님께 완전히 헌신하는 사람의 유용성에는 제한이 없다.”(치료, 159)라는 말씀을 기억하라. 다윗은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부국강병으로 이끌기 전에 젊은 목동이었다. 기드온은 스스로를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삿 6:15)라고 표현했지만 이스라엘을 적군의 손에서 구하고 위기에 빠진 나라에 평화를 안겨 주었다. 야고보와 요한은 어부였고 나아만 장군은 노예로 끌려온 어린 소녀 덕에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하나님을 위해 큰일을 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갖추어진 사람을 부르시지 않고 부름받은 사람을 갖추어 주신다.
예수께서는 시몬과 안드레를 제자로 부르면서 자신이 그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고 말씀하셨다. 영향력 있는 복음 전도가 되기 위해 그들에게 필요한 자격을 하늘에서 갖추어 주었다. 예수님 자신이 그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려고 하셨다.
한계에 부딪히지 않으려면 경고를 받아들여야 한다. 자아를 버리고 성령의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하나님께 온전히 내맡긴 삶은 “한없이 유용한 삶”이다. 훈련, 교육, 경험도 다 좋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될 사람의 진짜 자격은 그분께 자아를 맡기는 것이다. 예수님의 뜻대로 쓰시도록 자신을 내맡기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할 수 있는 일은 끝없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국연합회 세계선교본부
10/40 선교 프로젝트-북인도연합회 북벵골 지역 교회 개척
10월 17일
우리 안에 계시는 분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2~13)
손전등을 사용할 때면 배터리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 배터리 없는 손전등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유용한 손전등과 쓸모없는 손전등은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으로 결정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진짜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는 그 속에 무엇이 또는 누가 활동하고 있느냐로 갈린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이 점을 강조했다. 왜 바울이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했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 수도 있다(빌 2:12). 그런데 바울은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를 이야기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는 바로 다음 구절에 이렇게 설명한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13절).
참다운 그리스도인은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드러내야 한다. 마음속에 예수가 계시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배터리 없는 손전등이나 마찬가지다. 예수님이 빠진 공간을 선행, 바른말, 올바른 식생활로 채우려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마음속에 예수가 계시지 않으면 이 모든 것은 배터리 없는 손전등과 같다. 이러한 행위는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한 뒤 무화과 잎사귀로 몸을 가린 행위와 똑같다.
하나님이 우리 삶에 오시면 그분의 능력, 순결, 임재가 함께한다. 우리 안에 계시는 그분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자신의 놀라운 은혜를 보여 주는 공연장이 되게 하신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삶을 맡기는 일이 일상이 된다. 그렇게 하는 법을 더욱더 배워 갈수록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시키어 영생을 얻게 하신다. 예수께서 마음에 계시지 않으면 영원한 삶은 환상에 불과하다. 마음속에 예수님이 계실 때 믿음이 살아 움직인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병섭, 이세주 선교사 부부(대만)
타이동 교회 성도들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10월 18일
진짜 자유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 8:36)
노스캐롤라이나주 터카시지강에서 강제 노역을 하던 19명이 사망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쇠사슬에 묶인 그들은 광업과 벌목에 이용할 철로를 건설하려고 카위 터널을 뚫는 중이었다.
케이블을 당겨서 움직이는 보트를 타고 강을 건너던 그들은 보트 바닥에 물이 고인 것을 보았다. 보트가 침몰한다고 생각한 몇 사람이 앞쪽으로 몰렸고 보트는 뒤집혔다. 30명이 물에 빠졌고 11명만 살아남았다. 19명은 1882년 12월 30일에 그렇게 목숨을 잃었다.
이 비극적인 사고는 결코 일어나지 말아야 했다. 죄수였던 그들은 당시 수많은 미국 흑인이 그러했듯 주정부에서 기업체에 임대한 노동력이었다. 노예제 폐지에 따른 인력 부족 때문에 시작된 죄수 임대 사업은 주정부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 주었다.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체포되었고 벌금을 못 내면 노예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었다.
노예제는 오래전 폐지되었지만 자유인이 자신의 자유를 빼앗겨 버렸다. 권력과 수익이 정의와 인간성보다 우선시되었다. 임대된 죄수는 자유인이었지만 결코 자유롭지 않았다.
세상과 교회에는 무늬만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 차고 넘친다. 예수님은 갈보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서 인류를 위해 하늘의 문을 여셨다. 영원한 삶이라는 선물을 택하는 모두에게 영생을 선물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신 자유를 누리며 그분을 섬기는 대신 자유를 버리고 죄의 노예가 되는 사람이 많다. 우리는 섬기기로 선택한 대상의 종이 된다. 예수님은 우리를 옭아매는 죄의 사슬을 끊고 새 마음과 새 삶을 주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
진정한 자유는 예수를 믿을 때 생긴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 8:36).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원상, 김수경 선교사 부부(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 치과 대학 설립을 위해
10월 19일
사슬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롬 6:20)
1882년 노스캐롤라이나주 딜즈버러 인근의 카위 터널에서 익사한 19명 중에는 15살짜리 찰스 이슨과 18살짜리 앨런 틸먼, 제임스 피셔, 짐 매캘럼도 있었다. 그들은 자신을 통제하고 발전을 가로막고 자유를 빼앗는 체제에 결코 발을 들이지 말아야 했다.
이 젊은이들은 죄수 신분으로 쇠사슬에 묶여 철로에서 임대 노동자로 일했다. 수영할 줄 모르는 데다가 서로 묶여 있던 탓에 그들은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사고에도 살아남지 못했다.
예수님은 우리를 옛 삶에 붙잡아 두는 쇠사슬을 끊기 위해 오셨다. 우리는 “죄의 종”이었지만 “이제는…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다(롬 6:20, 22).
정욕에 지배당하는 사람은 자유인이 아니라 욕망의 포로이다. 분노, 부정, 중독의 사슬에 매여 예수께서 주신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하나님은 누구라도 죄에서 구원하실 수 있다. 우리는 옛 삶에 매여 있을 필요가 없다,
베드로는 감옥에 갇혔을 때 “두 군인 사이에서 두 사슬에 매여 잠을 자고 있었고, 간수들은 문 앞에서 감옥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고 빛이 감옥 안에 비치었다. 천사가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서 그를 깨우며 ‘빨리 일어나라.’고 말하자, 사슬이 그의 손에서 벗겨졌다”(행 12:6~7, 바른).
찰스 웨슬리는 자신의 찬미 ‘주 보혈로 날 사심은’에서 베드로의 경험을 이렇게 묘사했다. ‘사슬이 풀리고 내 맘 자유 얻었네.’ 우리 자신을 맡기기만 하면 예수님은 죄로 얼룩진 삶의 사슬을 끊어 주시며 우리 마음은 자유를 얻는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정태, 김성진 선교사 부부(베트남)
자녀들이 하나님의 방법대로 교육받고 성장할 수 있도록
10월 20일
정화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깨끗한 물과 더러운 물이 늘 쉽게 구별되지는 않는다. 보통의 수돗물이나 정수기로 거른 물은 눈으로 보면 차이가 없다.
마실 물을 얻기 위해서는 역삼투법이나 카본 필터, 모래 필터를 이용해야 하는데 그 과정을 거쳤다고 해서 다르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면밀히 조사하면 분명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맛도 물론 다를 것이다.
어릴 때 초록빛에 가까운 집 근처의 강에서 자주 수영했다. 물속에서는 얼굴 가까이 손을 가져다 대야 간신히 보일 정도로 탁했지만 마을에서는 그 강물을 식수로 사용했다. 강물과 수도꼭지 사이에 필터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안심하고 물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 삶에도 이런 정화 작용이 일어나기를 바라신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딛 2:14) 하려 하심이라고 디도서에서는 말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순결하게 하고, 부적절한 것을 걸러 내고자 하신다. 그런 뒤에도 혹은 그 과정 중에도 특별한 차이를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의 삶 속에서 이처럼 완벽하게 활동하여 불순물을 제거하려고 하신다.
죄인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깨끗해진다. 자신의 단점과 실패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하나님조차도 자신을 순결하게 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매일 우리에게 해 주고 싶어 하시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허락하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다.
성령께 자신을 내어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을 힘입어 순결해지고 영생을 위해 준비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최중식, 이주현 선교사 부부(대만)
루주 교회 성도들의 건강과 영적인 부흥을 위해
10월 21일
사과의 전화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렘 33:8)
1980년대 초 뉴욕의 어느 예술가는 사과의 전화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과의 전화는 익명으로 전화하여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사과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그중에는 외도, 폭행, 살인을 고백하는 사람도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통화량이었다. 수십만 명이 특정한 대상을 지목하지 않고 그냥 사과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이러한 서비스에 감사를 표했다. 사람들은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면서 오랫동안 괴로웠던 마음의 짐을 덜어 낼 수 있었다.
하나님은 수천 년 전부터 사과의 전화를 시작하셨다. 전화기에 대고 사과 메시지를 남겨 봐야 실제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러나 죄를 슬퍼하며 하나님께 찾아가면 그분은 그냥 용서하시는 정도가 아니라 “너그럽게 용서”하겠다고 약속하신다(사 55:7).
하나님께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지 않을 이유는 하나도 없다. 죄는 죄책감, 수치, 후회, 슬픔을 낳는다. 고백하지 않은 죄는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으며 자주 잘못된 길로 이어진다. 타인의 삶에 고통과 상실을 안겨 주었다는 부담감을 지니고 살면 몸과 마음이 무너진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을 용서하겠다고 약속하셨다. 마음의 짐을 가져와 죄로 물든 과거를 그 앞에 내려놓으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씻어 주시고 자신과 하나가 되도록 고쳐 주신다.
뉴욕에서 예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된 사과의 전화 서비스는 규모가 커져 1995년까지 지속됐고 TV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하늘의 용서는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했다. 하나님은 너그럽게 용서를 베푸신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삼육대학교 해외선교센터
삼육대학교 해외 선교 운동과 선교 동아리 회복을 위해
10월 22일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9)
우상과 죄에 빠져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필요한 반역자들에게 선지자 이사야는 이렇게 호소했다.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사 55:7).
이기적이고 죄로 물든 인간은 이처럼 엄청난 용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릴 때부터 인간의 뇌리에는 마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얌전히 있으면 집에 가서 아이스크림 줄게.”, “제한 속도를 초과했으니 벌금을 내셔야 합니다.”라는 방식에 익숙하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 편견이 생긴다. 하지만 그분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일하신다.
회개하는 죄인을 하나님이 너그럽게 용서하신다고 보증하면서 이사야는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 생각은 다르다고 설명한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8절).
모세가 하나님께 십계명을 받는 동안 그의 형 아론은 금송아지를 숭배 대상으로 만들어 이스라엘 백성을 간악한 배신의 길로 이끌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아론을 용서하셨을 뿐 아니라 그를 대제사장으로 삼으셨다(출 40:13). 이방인 창녀였던 라합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예수님의 선조가 되었고(마 1:1~16), 종교 지도자들이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려 할 때도 예수는 정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요 8:11). 예수께서 유다에게 배반당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베드로도 그분을 부정했지만 예수는 베드로를 자기 백성의 지도자로 세우셨다(요 12:15~17).
하늘 아버지께서 죄를 가볍게 여긴다는 의미가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자비로운 하나님은 인내, 연민, 용서의 사랑으로 죄인을 대하신다. 하나님의 길은 우리와 다르지만 그분의 은혜로 우리는 그분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해성, 백관희 선교사 부부(네팔)
가족의 건강을 위해
10월 23일
영광으로 환하게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계 18:1)
우리 자신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성경 구절은 무엇인가?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서는 의인이 부활하고 각 시대의 구원받은 자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묘사한다. 우리에게 해당하는 장면 중 하나일 수 있다. 요한계시록 14장은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6절) 영원한 복음이 전해진다고 말한다. 이 구절은 마지막 날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 12절에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하나님의 시점에서 진술한 이 구절 역시 우리의 이야기일 수 있다.
요한계시록 18장 1절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땅이 밝게 빛난다. 요한계시록에서 천사는 심부름꾼을 상징한다. 여기서 심부름꾼은 하늘의 기별을 세상에 전하며 그 결과 이 땅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환하여진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 요한계시록 18장 1절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자기의 계획을 밝히는 내용이다. 하나님은 자기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충만히 임하여 그분의 품성이 세상에 드러나기를 바라신다.
고귀한 부르심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더 숭고한 일로 우리를 부르신다. “자녀를 위한 하나님의 이상은 인간의 생각으로 이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보다 더 높다. …구속의 계획은 우리를 사탄의 세력에서 완전히 회복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회개하는 영혼을 죄에서 언제나 분리시키신다”(소망, 311).
중독이나 떨쳐 내기 힘든 옛 습관, 약점과 씨름하는 사람에게 이러한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죄인 스스로 해내지 못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는 게 바로 복음의 능력이다. 우리의 연약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해내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절대로 의심하지 말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윤성결, 황혜원 선교사 부부(기타 지역)
선교지에서 온 가족이 건강하고 아프지 않도록
10월 24일
그들 사이에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9)
‘교회’는 그 시작부터 여러 큰 문제와 씨름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믿음의 조상은 한 입으로 두말을 했다. 또 이스라엘 백성은 40년간 광야에서 헤맸다.
신약의 초기 교회는 그리스도인에게 유대 전통을 강요하는 비뚤어진 신학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오늘날도 교회가 하나님의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아우성치는 사람이 넘쳐 난다. 물론 이 말은 사실이다. 교회는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고 인간은 실수투성이다. 그러니 교회는 교인들의 실수에 당연히 영향을 받는다. 교회 지도자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분노의 표적이 될 때가 많다. 또 구원보다는 책망에 집착하는 교인들이 지도자들의 행동을 그릇 해석하는 경우도 흔하다.
예수님은 교회에 대한 유감을 분명하게 표시하셨다. 요한계시록 3장은 이 땅의 마지막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를 두고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다.”라고 묘사한다. 예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회개를 요청하기 앞서 동질감을 느끼신다. 요한은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를 보았다고 말한다(계 1:12~13). 요한이 본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이다(20절).
예수께서는 교회들 사이에 계신 모습으로 묘사된다. 요한계시록의 이어진 구절에서는 각 교회의 문제점과 고칠 점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런 교회에도 예수께서는 함께하신다. 오늘날도 그분은 교회 가운데 계신다. “비록 연약하고 결점이 있다 해도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교회에 가장 큰 관심을 쏟고 계신다”(목사, 15).
만약 교회가 비판받는 만큼이라도 기도한다면, 교회 지도자들이 비난받는 만큼 주님께 탄원한다면, 비판자들이 헐뜯고 비난하는 대신 그 에너지를 봉사와 전도에 쏟는다면 교회의 모습과 세상의 모습은 지금과 매우 다를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조장원, 이성혜 선교사 부부(동인도네시아 1000명선교사 훈련원)
인도네시아 선교사들의 사역과 안전을 위해
10월 25일
잃어버린 시간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폴린은 겨우 열네 살 나이로 임신했다. 열다섯 살 때 딸을 낳아 루이스라고 이름 지었고 가족들의 의견에 따라 루이스를 입양 보냈다. 이후 폴린은 결혼하여 네 자녀를 더 낳았다. 그러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첫째 아이에 대해 남편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폴린은 루이스를 다시 보고 싶었다.
루이스를 입양한 가족은 그에게 캐럴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새로운 가족은 루이스가 생모를 찾는 게 달갑지 않았다. 관할 기관에서도 캐럴에게 입양 관련 서류가 화재로 소실됐다고 말했다. 답답한 마음으로 캐럴은 생모를 찾지 못하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캐럴은 태어난 지 50년이 지나서야 어느 TV프로그램에서 생모와 재회했다. 알고 보니 오랫동안 두 사람은 서로 10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살고 있었다. 그렇게 가까이 살면서도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들은 너무나 통탄스러웠다.
진작 예수님을 믿지 못해 아쉽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분과 떨어져 지낸 시간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신다. 그분은 만날 수 없이 멀리 계신 분이 아니다. 그분은 범접할 수 없는 차가운 존재가 아니다. 모세에게 성전을 지으라 명하시며 그분은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나를 위하여” 지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교회 사이에 계신 분으로 묘사된다(계 1:12~13). 선지자 이사야는 아하스왕에게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말했다(사 7:14). 임마누엘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뜻이다(마 1:23). 예수님은 자기 백성에 대해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라며 통탄하셨다(요 5:40).
폴린과 딸 루이스는 함께 보내지 못한 시간을 아쉬워했다. 하늘 아버지와 함께할 기회를 절대로 허투루 흘려버리지 말자. 하나님이 자신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자고 부르시면 그분의 은혜로운 초청을 받아들이고 그분께 다가가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조성규, 최지혜 선교사 부부(대만)
싸루전애 국제교회가 위치한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10월 26일
그분 앞에서는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요 2:16)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보내려고 이스라엘 전역에서 많은 사람이 몰려왔다. 더 멀리서 온 사람도 있었다. 그들 중에는 희생 제물을 가져오지 못한 사람이 많아 성전 바깥에서는 동물을 사고파는 일로 북적거렸다. 헌금을 성전에 가져왔고 외국 화폐는 현지 화폐로 환전했다. 이러한 거래는 대부분 부정직하게 진행됐다. 탐욕이 그 추악한 고개를 내밀었다.
이러한 배경에 맞서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셨다(요 2:14~16).
그때까지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유명한 인물이 아니었다. 아직 죽은 자를 살리거나 맹인의 눈을 뜨게 하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성전에서 돈 바꾸는 자들과 동물 파는 자들을 쫓아내고 탐욕스러운 거래를 중단시키며 유대의 가장 큰 명절에 소란을 피울 수 있었을까? 라스베이거스나 애틀랜틱시티의 카지노에서 그렇게 했다면 그냥 두지 않았을 것이다. 경비가 나타나 현장에서 그를 끌어내 경찰에게 넘겼을지도 모른다.
그날 성전에 있던 사람들은 단순히 성난 사람을 피해 달아난 것이 아니다. 그들을 성전에서 쫓아낸 것은 예수의 손에 들린 채찍이 아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앞에서 받는 책망을 피하려고” 성전에서 달아난 것이라고 엘렌 G. 화잇은 『시대의 소망』에 진술했다.
죄악은 하나님 앞에서 달아난다. 예수님과 맞닥뜨린 죄인들이 거룩한 성전에서 달아났듯이 신자들의 삶에 예수님이 거하시면 죄가 그 마음에서 달아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정지훈, 신은주 선교사 부부(미얀마 MPM 직업훈련센터)
직업훈련센터에서 배출되는 청년들이 스스로 독립하여 남을 돕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10월 27일
전문가의 증언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시 19:7)
2004년 캐머런 토드 윌링햄이 서른여섯의 나이로 사형당할 당시 진범 여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그가 집에 불을 지르고 세 어린 딸을 살해한 동기를 밝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검찰에서는 윌링햄이 전과자이며 팔의 문신과 집에 붙어 있던 헤비메탈 밴드의 포스터로 그가 사이코패스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의도적인 범행이었다고 배심원이 믿게 만든 것은 전문가의 증언이었다. 윌링햄의 집에서 발견된 일정한 패턴의 탄화 흔적은 가연성 물질을 사용해 일부러 불을 지른 증거라고 조사관들은 말했다.
하지만 윌링햄의 형이 집행되기 몇 주 전, 저명한 과학자와 화재 조사관이 증거를 재검토했다. 제럴드 허스트 박사는 그 화재가 우연히 발생한 것이며 윌링햄을 사형대에 올린 보고서는 ‘쓰레기 과학’에 불과하다고 결론지었다. 윌링햄을 범인으로 몰아간 전문가의 증언은 전혀 전문적이지 못했다고 허스트 박사를 포함한 여러 사람이 일침을 가했다.
누구를 믿을지 결정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특히 법원의 판결은 기득권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다. 종교적인 상황에서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기독교계의 다양한 의견에 혼란을 느끼며 누구 말이 맞는지 쉽게 판단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교회 내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둘 이상으로 견해가 갈리는 이슈에 대해 무엇이 참인지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한다.
신앙 문제에서 신뢰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목소리뿐이다. 이러한 질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눅 10:26).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말한다(딤후 3:16).
사람에 따라 의견이 다양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성경을 믿음의 근원으로 삼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짜 전문가의 증언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PMM(목회자 개척 선교 운동)
PMM 개척 선교 운동의 목적에 따라 새로운 지역에 교회가 개척될 수 있도록
10월 28일
독립성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모든 교회가 똑같이 겪는 문제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을 교회에 붙들어 두는 것은 큰 과제이다. 오늘날은 하나님에게서 젊은이들의 관심이 멀어지게 하는 유혹거리가 예전에 비해 훨씬 많다. 수년 전만 해도 좋아하는 스포츠 경기와 영화를 곧바로 시청하고, 즉각적으로 연락하고, 손끝 하나로 방대한 자료를 얻는 일은 꿈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전부 현실이 되었다.
예전에는 관련 프로그램, 행사, 주말여행, 물품에 더 많이 투자하면 젊은이들이 교회에 오리라 생각했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그 방법은 별 효과가 없어 보인다.
어린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기 혼자서 밥을 먹는다. 부모가 떠먹여 주는 밥에 만족하지 못해 자기 손으로 숟가락을 쥐고 직접 떠먹으려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직접 신발 끈을 묶고 자전거를 타려 한다. 더 자라면 직접 차를 몰고 싶어 하고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어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다. 성장할수록 더 이렇게 하려고 한다. 그들은 일정 수준의 독립성을 원한다.
스스로 밥을 떠먹고, 일자리를 얻고, 차를 몰고 늦게까지 나가 있으려는 아이들은 영적 건강에도 스스로 책임을 지도록 이끌림 받아야 한다. 교회는 언제나 젊은이들 곁에서 그들을 환영하며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만 그들이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하도록 챙기는 것은 교회의 책임이 아니다. 이것은 가정에서 가르쳐야 할 사항들이다. 매일 의미 있는 헌신의 삶을 체험하는 아이들은 결코 예수님을 멀리하지 않는다.
자녀가 예수님과 함께하기를 바란다면 우리가 먼저 그분께로 자녀를 이끌어야 한다. 고등학교와 대학에 진학하고, 자기 돈을 스스로 관리하고, 집에서 떨어져 지낼 수 있는 나이라면 충분히 복음을 이해하고 하늘 아버지와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노영, 이미진 선교사 부부(대만)
도료 교회 대학생반의 활성화를 위해
10월 29일
양식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사 55:2)
세상에는 개인 신앙에 도움 되는 자료가 많이 있다. 성경, 신앙 서적, 기도력뿐 아니라 신용 카드 명세서도 그중 하나이다. 이사야 55장에서 하나님은 자비의 초청장을 보내신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
더할 나위 없이 명확한 내용이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값없이 은혜와 자비를 받는다. 그리고 이사야는 다음 질문과 함께 도전을 던진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2절). 이 구절이 단순히 자산 관리만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이사야는 하나님께 받은 자산의 활용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신용 카드 내역서나 영수증을 살펴보는 것은 유익한 습관이다. 우리는 “양식”에 돈을 사용하는가? 아니면 생각 없이 허비하며 영원한 유익을 주지 못하는 데 투자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2절)라고 조언하신다. 균형을 찾아야 한다. 휴가, 자동차 구입 같은 것도 모두 중요한 사항이다. 어울리는 옷을 입어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한다. 그러나 휴가를 꼭 사치스럽게 보내야 할까? 반드시 새 차를 구입해야만 할까? 늘 최신 유행에 따라 옷을 골라야 할까? 이러한 질문에는 저마다 다른 답을 내놓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인의 신용 카드 빚이 1조 달러에 이르고 신용 범죄가 늘어나는 점을 보면 사람들은 분명 필요 이상으로 분에 넘치게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생활 습관은 폭군처럼 자신을 지배할 수도 있다. 필요한 것과 좋아하는 것을 정직하게 구분한다면 돈을 더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고 하나님의 계획에 더욱 걸맞은 그분의 청지기가 될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황자연, 데니 홍 선교사 부부(케냐 켄두 병원)
예수님과 항상 동행하는 선교사 가정이 되도록
10월 30일
가라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마 28:19)
영어에서 가장 짧은 문장은 ‘고(Go, 가라)’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이 문장은 매우 중요하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지막 말을 남길 때 복음의 전파라는 위대한 사역에 참여하라고 하셨다.
만약 빌립이 가지 않았다면 에티오피아 관료는 침례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바울은 선교 여행으로 이곳저곳을 다니며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만났다. 세상에는 아직도 그리스도와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는 현실을 오늘날 교회는 직시해야만 한다.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사람이 거의 없는 대도시들이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이전에 누리지 못한 기회가 많이 생겨났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여전히 현장으로 가야 한다. 편안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어둠에 처한 이들에게 직접 찾아가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낯선 땅으로 떠나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집 주변에도, 집 안에도 선교사가 필요하다. 미국은 무종교인이 점점 늘고 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서구인과 교회는 밀접한 관련이 있었지만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우리에게는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수십 년 전에는 전문 강사만 초빙해도 수많은 사람이 성경 이야기를 들으러 몰려왔다. 지금도 설교 말씀에 이끌리는 사람이 많지만 영혼을 수확하기 위해서는 전도회 개최에 앞서 기도, 씨뿌리기, 개인 접촉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았다. 이렇게 일할 때 하나님께서도 교회에 복을 더하실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현규, 최선아 선교사 부부(기타 지역)
교류하며 성경 공부하고 있는 구도자들을 위해
10월 31일
정전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 7:8)
그레그는 아프리카에 가서 전도회를 개최하는 것만도 기적임을 깨달았다.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강사는 아니더라도 그레그는 자신의 믿음을 전하고 싶었다. 교인들과 힘을 합쳐 지역 사회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일은 본인에게도 유익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아프리카에 가 본 적이 없던 그레그는 이번 여행이 여러 가지 중요한 요소가 결합해 영혼 구원 계획을 멋지게 이끄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의구심이 들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용하여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실 수 있을까?
교회는 도심지 최북단에 있었다. 기반 시설과 도로 환경이 열악했고 실업률도 높았다. 직장인 대부분이 도시까지 먼 거리로 출퇴근했다.
야외에서 개최한 전도회는 순조롭게 시작됐다. 전기선 여러 개를 이어 프로젝터를 작동할 전력을 공급했고 배터리로 조명을 밝혔다. 그레그는 프레젠테이션에 의지해 집회를 진행했고 참석자들도 스크린의 이미지와 성경 구절을 보며 메시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저녁 예상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설교 도중 그레그의 프로젝터가 멈춰 버린 것이다. 아무리 프로젝터를 다시 살피고 만져 보아도 켜지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레그와 그를 돕던 교인들은 함께 모여 기도했다. 믿음으로 그들은 프로젝터를 다시 한번 작동시켰다. 그랬더니 프로젝트에 불이 들어왔다. 그레그와 교인들은 감격했고 청중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 기뻤다.
전도회를 마친 뒤 그 사실을 말해 주었더니 사람들은 믿지 못했다. “어떻게 프로젝터가 다시 켜질 수 있지요?”라고 그들은 물었다. 그레그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기 때문이죠.”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들은 다시 물었다. “아니 어떻게 프로젝트가 켜질 수 있냐고요. 그 시간에 정전이 일어나서 마을 전체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았거든요.”
그레그는 대번에 깨달았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하나님은 그레그를 통해서도 큰일을 할 수 있음을 기적으로 증명해 보이신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최운성, 조선희 선교사 부부(대만 핑전판왕)
PCM 선교사의 대학생 선교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