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올챙이 적]
남부 지방에 다가온 장마 전선의 영향인지 며칠 째 오르기만 하던 기온이 한풀 꺾여 서늘한 공기가 피부에 닿는다. 해마다 이맘때면 곳곳에서 물난리를 겪고 인명과 재산 피해가 생기는 아픔이 전해진다. 자연 앞에 인간은 손쓸 겨를도 없이 막무가내로 당하기 일쑤다. 어쩌면 사람들이 상당한 부분 그 원인을 제공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구덕 도서관과 중앙 도서관 등 몇 군데의 공공 도서관에서 행한 글쓰기 프로그램에 발을 들여 놓은 지 일 년이 지났다. 지금까지는 혼자서 언뜻 떠오르는 글귀를 문장으로 옮겼다. 퇴직을 한 후 오전 시간에 여유가 생겨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어떻게 하면 문장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글을 잘 쓰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라는 고민 속에 접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매주 사 오십 분 씩 걸리는 시간도 아랑곳없이 십 주를 빠지지 않고 동참하면서 나의 글쓰기 걸음마는 시작되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맡은 업무와 역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 년에 한 두 편 글을 낸 적은 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내 삶을 되돌아보면서 일상의 일을 활자로 녹아들게 만드는 일은 처음이다. 무슨 내용을 어떻게 펼쳐낼 것인가. 걱정과 기대감으로 강의실을 찾았다. 십 여 명의 참석자들이 자신을 소개한다. 각자가 강좌를 신청한 계기와 이전의 경험을 들려준다. 말하기와 글쓰기는 다르다. 멈춤 없이 말하기를 이어 가는 사람도 글쓰기는 잼병일 때도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본다. 주어진 주제에 따라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다. 종이 반 장을 채우는 과정에도 손에 땀이 고이고 떠오르는 글귀가 반복될 뿐이다. 강의 참여 횟수가 거듭되면서 고민에 빠진다. 도서관 글쓰기 강좌 듣기를 이어 갈 것인지 아니면 여기서 자리를 박차고 나설 것이지 선택의 순간에 결정을 뒤로 미룬다.
글쓰기 강좌에 참석한 동료들의 응원과 강사님의 지도 덕분에, 한 줄 한 줄 글을 채워 나가면서 서로의 글에 공감하고 감정의 밑바탕을 끌어안는다. 강좌에 참석하는 날이 계속되면서 채워야 하는 글의 분량도 늘어난다. 회를 거듭할수록 글 길이도 한 쪽까지 메운다.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에 입꼬리가 올라간다. 사전에 준비해야 하는 일은 강좌 참석 사흘 전까지 원고를 메일로 제출해야 한다. 원고 마감 시간을 지키기 위해 글을 쓰다가 지우고 또 쓰기를 반복하면서 노트북에 담아낸다. 마감 시간을 넘기기도 하지만 빠진 적은 없다. 어쩌면 버텨 내기로 강좌에 참석하는 수강생의 기본 자세를 지니고 강사의 가르침에 따른다.
수업 듣는 날에는 각자의 글을 복사하여 공유하고, 자신의 글을 소리내어 읽고 수강생들과 생각을 나눈다. 강사가 문장에 대한 교정 표시를 해주면 퇴고 된 원고를 정리하여 다시 제출한다. 어느덧 참석자 개개인의 글 성향과 표현 기법들이 드러난다. 나 자신이 글쓰기에 빠져들고 나도 모르게 성장해 가는 기쁨에 흥얼흥얼 콧노래와 즐거운 마음으로 강좌 참석 날짜가 기다려졌다. 글쓰기 일정이 마무리로 내달린다. 강좌가 끝나면 글쓰기를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지, 혼자 글쓰기가 가능할지 고민에 빠진다. 글은 활자로 표현되어질때 비로소 내 것이 된다. 가슴에서 끄집어 내어야 수정도 할 수 있고 판단도 가능하다. 강사의 당부가 이어진다. 비록 강좌는 끝나지만 각자의 마음속 조각들을 문장으로 엮어 꾸준한 글쓰기 활동을 당부한다. 일 주일에 한 편 씩의 글을 쓰기로 스스로 다짐을 한다. 한 편 한 편 완성하면서 읽고 고치기를 반복한다. 한 달 째 이어간다. 과연 내가 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이제는 자신감으로 채워진다.
글쓰기가 6개월을 넘기면서 모은 글도 제법 된다. 글쓰기 분량도 점점 늘어난다. 두 장까지도 빈 줄이 없다. 글감은 지나간 날들의 이야기와 오늘 경험한 일이 선택된다. 어떤 날은 글감과 제목 선정에 머리가 빙글빙글 돈다. 다양한 삶의 경험치가 매주 글자판에 올려져 문장으로 옮겨진다.
휴대폰 알람이 울린다. 새로 도착한 메일에 눈길이 멈췄다. 글쓰기를 지도한 강사님의 연락이다. “무슨 일이지.” 인연이 되어 두어 번 강좌를 듣게 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글쓰기가 이어지는 셈이다. 문자와 전화가 번갈아 연결된다. 상반기에 부산시민 도서관에서 글쓰기 강좌를 개설하였는데, 지난 번 도서관 강좌에 참석하면서 남긴 내 글을 도서관 프로그램에서 본보기 글로 수강생들에게 제공해도 되겠냐는 일종의 저작권 사용에 대한 동의 요청이다. 내가 쓴 글의 내용이 좋고 나쁨을 떠나 책을 몇 권 출간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강사의 선택을 받았다는 사실에 긴장을 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허용을 하였다. 부끄러운 내용도 아랑곳없이 실명은 공개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마음을 내려놓는다.
무슨 요일에 강좌가 있는지 궁금했다. 목요일로 확인이 되었다. 출강하는 시간과 겹치지만 시간을 내어 한 번 찾아가겠다는 인사를 건넨다. 이런 저런 이유로 도서관 방문이 미뤄졌다. 그사이 강좌는 끝나 참관할 기회를 놓쳤다. 내 글이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어떻게 다루어 지는 지 궁금하였지만 결국 생각뿐이었다.
매주 한 편 씩 글을 완성하고 다듬으면서 떠올린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말의 의미가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도록 ‘처음처럼’ 배우는 자세로 나아갈 것이다.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다. 다만 글쓰기가 반복되고 경험이 쌓이면서 어떻게 표현하면 나아질 것인가 고민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글쓰기를 한다고 공표한 것에 부담도 가진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과 따로 서로의 의견을 주고 받는 시간도 가진다. 연령층이 다양하여 삶의 지혜를 담아내는 기회가 된다. 이들의 응원을 받는다. 가까운 시일에 책을 내라는 요구가 이어진다. 아예 2년 안에 출판을 하라는 요청이다. 구체적으로 다섯 가지 정도로 글감을 주제 별로 나누어 묶어 두란다.
언젠가는 모아둔 글을 정리해 책으로 펴내리 라는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는 나에게 길을 제시하고 있다. 출판사도 연결해 주겠다며 두 팔 걷고 자기 일처럼 나선다. 만남을 거듭할수록 각자의 색깔이 뚜렷하지만 공통의 목표로 모임이 이어진다. 글쓰기는 힘든 일이다. 자신의 몸을 발가벗겨 세상 밖으로 내놓는 과정이기에 글이 세상에 놓이는 순간 이미 내 것이 아니다. 어떤 감정으로 되돌아 올지 알 수 없다.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판단하고 표현한다. 글을 쓰고 다듬어 여러 공모전에 도전하고 싶다. 아직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모인 글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선택은 어려워진다. 지역 내 세 개의 도서관이 함께 ‘책 읽기와 글 쓰기 프로그램’을 주관하여 참가자들의 글을 묶어 책을 만들었다. 처음으로 내 글이 책으로 나와 두 편의 글이 공개되어 책꽂이에 자리 잡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글을 쓰기 위한 과정이 순탄치 않다. 책을 펴낸 작가들의 일상이 존경스럽다. 살아온 이야기와 살아가는 이야기가 글이 된다. 생각이 정리되는 날까지 내 감정을 담아 글 쓰기를 시작하는 이들과 지속적으로 도전해보련다. 기대가 된다. 한 권의 책으로 묶어질 때까지 쉼 없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