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우리가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발명에 대한 일반적 통념에 따르면
발명가 필요의 역할이 디비뀔 수 있고,
와트와 에디슨 같은 드문 천재들의 중요성이 과장 될 수 있다.
게다가 특허법이 이런 '발명영웅론'을 부추긴다.
특허 신청자가 자신이 제출한 발명품이 새로운 것이란 걸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명가는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과거의 것을 깎아내리거나 무시할 수밖에 없다.
변리사의 관점에서 이상적인 발명이란 전례가 없는 독창적인 발명이다.
아테나 여신이 제우스의 이마에서 완전한 모습으로 태어났듯이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많이 다르다.
최근에 발명된 게 분명해 보이는 유명한 발명품이라도 "X가 Y를 발명했다"고 주장하기까지
그 뒤에는 알려지지 않은 발명가들이 많이 있었다.
예컨대 우리는 "제임스 와트가 1769년에 증기기관을 발명했고",
찻주전자의 주둥이에서 증기가 나오는 걸 보고 영감을 얻었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이 멋진 이야기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지만,
진실은 와트가 토머스 뉴커먼(Thomas Newcomen)의 증기기관을 수리하던 중
아이디어를 얻어 새러운 증기기관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실제로 와트가 수리하던 증기기관은 뉴커먼이 57년 전에 만든 것이었고,
당시 영국에서만 100대 이상의 증기기관이 이미 제작되어 있었다.
한편 뉴커먼의 증기기관은 영국인 토머스 세이버리(Thomas Savery)가
1698년에 특허를 얻은 증기기관을 개량해 만든 것이고,
세이버리의 증기기관은 프랑스인 드니 파팽(Denes Papin)이 1680년경 설계했지만
제작하지는 못한 증기기관을 구체화해서 만든 것이었다.
파팽 이전에도 네델란드 과학자 크리스티안 하위헌스(Christiaan Huygens)를 비롯한
여러 과학자의 아이디어가 있었다.
물론 뉴커먼이 세이버리의 증기기관을 크게 개선했듯이,
제임스 와트가 분리된 증기 응축기와 복동 실린더(double-acting cylinder)를 도입함으로써
뉴커먼의 증기관을 크게 개선했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충분한 자료가 남아 있는 현대의 발명에 대해서는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어떤 장치의 발명가로 인정받는 영웅은
대개 과거에 이미 비슷한 목표를 추구하며 설계도를 완성해 견본을 제작하거나,(뉴커먼의 증기기관처럼)
상업적으로 성공한 제품까지 내놓았던 발명가들의 것을 개량해낸 사람이었다.
예컨대 토머스 에디슨의 유명한 '발명품'으로 1879년 10월 21일의 밤을 밝혔던 백열전구는
1841~1878년 동안 다른 발명가들이 특허를 출원한 백열전구들을 개선한 것이었다.
오빌 라이트(Orvklle Wright)와 윌버 라이트(Wilbur Wright)형제의 유인 동력 비행기도 마찬가지였다.
라이트형제 이전에 오토릴리엔탈(otto Lilienthal)의 유인 무동력 글라이더,
새뮤얼 랭글리(Samuel Langley)의 무인 동력 비행기가 있었다.
새뮤얼 모스(Samuel Morse)의 전신 이전에는 조지프 헨리(Joseph Henry), 윌리엄쿡(William Cooke),
찰스 휘트스톤(Charles Weatstone)의 전신이 있었고,
엘리 휘트니의 단섬유 육지면용 조면기는
수천 년 전부터 사용되던 장섬유 해도면 조면기를 개량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와트와 에디슨, 라이트형제, 모스, 휘트니가 큰 개선을 이루어냈고,
그 결과 상업적 성공을 거두거나 제품을 향상시켰다는 걸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 장치의 최종 발명가로 인정받는 발명가의 공헌이 없었다면,
최종적으로 채택된 발명품의 형태는 약간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책에서 제기하는 질문은
"어떤 위대한 발명가가 특정한 시대에 특정한 장소에서 태너나지 않았다면,
큰 틀에서 세계의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까?"라는 것이다,
답은 명백하다.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장소에서 태어났다는 조건만으로 위대한 발명가가 된 사람은 없었다.
두루 인정받는 유명한 발명가에게는 예외 없이 유능한 선임자와 후임자가 있었고,
그 발명가는 사회가 어떤 물건을 사용할 만한 역량을 가졌을 때
그 물건을 개량한 발명품을 내놓았을 뿐이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 파이스토스 원반에 사용한 도장을 만들어낸 영웅의 비극은
당시의 사회가 대대적으로 활용할 수 없는 것을 고안해냈다는 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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