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료식 인사말
한때 저는 공부하고 시험을 치고 학교에 다니기 위해 도시로 나왔습니다.
한때 저는 더 큰 졸업장을 따기 위해 더 큰 도시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과 더 큰 빌딩에서 모여 일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태풍으로 홍수로 농작물에 피해가 갔다거나 농산물가격이 떨어지고, 시장이 개방되고 농업현실이 힘들어도 정책이 잘못돼서 그렇지, 내 일이 아니니까 나는 몰라라 했습니다.
전라도나 강원도로 여행을 갈 때면 시골풍경이 보이면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마음 한켠에는 시골로 가서 싼 땅에다 좋은 집짓고 살아보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귀농학교에 입학하고 화요일, 목요일 저녁시간 수업 한시간 한시간을 들으며 모든 것이 다 충격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농사에 다 쓴다는 비닐농법은 충격이었습니다.
농약회사가 씨앗까지 송두리째 다 지배할려고 한다는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전체전력량의 50%를 위해 늘어나고 있는 면적 대비 세계 최고 많은 원전발전소는 충격이었습니다.
생태뒷간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때까지 단 한 번도 화장실에 물을 내리며 오물이 되어 버린다는 사실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배출해낸 것이 다시 거름으로 쓰여져 내가 먹을것에 쓰인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순환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부장님의 입학식 강의를 시작으로 3번의 현장실습을 포함한 6주간의 교육은 이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 같은 교육이었습니다.
끈기로 버텨온 홍성에서, 영광에서, 치열하게 일어서는 화천에서 귀농선배들의 어려운 농촌현실에서 살아남은 의지와 열정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한 뙈기의 땅은 수천만년에 걸쳐 흙으로 되었을 것이며, 그 땅에는 수도 없는 풀과 나무가 자라고 물과 공기를 만났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 논과 밭에는 수천마리의 벌레들과 수억마리의 미생물들이 살고 있을 것입니다.
세상을 살며 어느 것 하나 생산한 것이 없이 소비만 하고 살았습니다. 내가 먹는 밥알하나, 채소하나, 전등의 전기하나 수돗물하나 생산한 것이 없이 매순간 소비하고 삽니다.
귀농학교를 듣고 되돌아 보니 농부는 가장 오래된 직업이자 가장 위대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고, 누구도 그들의 삶을 존중해주지 않을 지라도 모든 이의 먹을 것을 생산하는 사람입니다.
흙과 저렇게 많은 미생물과 채소와 벼들을 키운다는 것은 아마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이 될 듯합니다. 자식을 보살피는 부모의 마음으로 흙과 곡식을 키운다면 내 삶이 더욱 아름답고 행복해질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먹고 살아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는 아마도 모든 농민이 가진 가장 어려운 현실입니다. 가장 위대하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어려운 일, 그것이 아마 우리가 가야 할 길이며, 우리가 뛰어넘어야 하는 가장 큰 인생의 과제를 안은 사람인 우리는 61기 예비귀농인이라 생각됩니다.
장충동 골목에서 뒤풀이 시간은 아마 바쁜 삶과 경쟁속에서 지치고 스트레스 받는 이들을 위한 치유의 자리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안에서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 교육받는 사람들과 또 소중한 시간 달려와준 강사님들과의 자리가 더욱 소중했던 자리였구나 생각합니다.
짧지만 여운이 긴 귀농학교를 수료하면서 마지막으로 잠자는 토끼가 깰까봐 조용히 앞지르는 거북이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공동체에 대한 고민, 땅은 단순히 돈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땅에서 농사짓던 사람들의 역사가 아로새겨진 곳이다. 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34명이 함께 한 61기는 아마도 용기를 내신 분들이 앞서 귀농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울러 귀농을 현실적으로 못하는 더 많은 61기도 우리가 함께 배웠던 삶의 새로운 방향에 대해 함께 하는 삶들을 살아가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 길은 도시텃밭일 수도 있고, 또 농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일 수도 있고, 어떤 다양한 새로운 시도일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달에 한번정도는 함께 공부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보았으면 합니다.
61기가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주신 많은 분들의 노고가 보입니다. 이 자리 참석해주신 귀농학교 선배님들과 우리기를 챙겨주신 박호진 간사님께 뜨거운 마음으로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우리 이후에 들어오는 귀농학교 후배기들에게 여러분이 보내주신 뜨거운 사랑과 지지를 더 크게 이어갈 것을 우리 기 모두의 마음을 모아 약속드립니다.
마지막 학력을 서울생태 귀농학교 61기라고 쓸 수 있게 해주신 모든 분들게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2013. 4.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