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6월 초순에 사흘 정도 비가 와서 더위는 어느 정도 가셨다. 내가 사는 산골에는 초저녁만 되어도 서늘한 기운이 돌아 그의 말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생각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잠시였다. 비가 그치고 며칠 사이에 날씨는 작년의 7월 말 수준으로 돌아왔다. 불볕더위였다. 한 날, 마을 이장 집에서 나온 다급한 방송을 듣고 마을 회관으로 갔더니 마을 사람들이 벌써 와있었다. 앞서 논길로 질러오는데 곳곳에 개구리들의 사체가 보였다. 아랫마을에 닭 키우는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오다 나를 지나칠 즈음, 큰일 났어. 키우는 닭들이 다 죽어버렸어, 했다.
“오늘은 이놈의 더위 때문에 이렇게 모이라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며칠 사이에 더위 땜씨로 닭들이 죽고, 벼가 타고, 어제는 저 밑에 마을에 혼자 사는 강 할머니가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다가 변을 당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으니 오늘 우리가 다 서명받아서, 지가 면사무소에 가서 경로당에 일단은 에어컨 한 대를 설치하도록 말을 하겠습니다.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은 추후, 일체 밭일을 삼가시고 에어컨이 설치되면 아예 여기 계십시오. 그라고, 쪼매 젊은 우리는 오늘부터 양수기를 비롯하여 장비란 장비를 다 챙겨서 논에 물 좀 대입시더. 벼가 타 죽고 있슴다.”
이장의 목소리는 침통했다. 마을주민들은 다들 이구동성으로 하늘을 원망했다. 특히 키우던 닭을 폭염으로 모조리 잃어버린 할아버지의 울분은 모두의 슬픔이었다. 이놈의 날씨, 내 살아생전 처음이여, 하며 동네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최 할머니는 가녀린 어깨를 들썩였다. 그새 노인 한 분이 라디오를 켰다. 뉴스에는 온통 더위, 때아닌 폭염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전국에서 노숙자를 비롯하여 노약자 수십 명이 죽었다고 했다. 그리하여 오늘부터 관공서는 물론 기업체 등에서는 하루 몇 시간씩 절전이 의무적으로 시행되며 공장 및 산업현장에서는 이례적으로 전력수요가 많은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오침 시간을 실시한다고 했다. 초등 및 중고교도 이르면 다음 주부터 방학에 들어갈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모든 게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온종일 논에 물대기며 마을 가축사육 지에 물을 뿌리고 난 후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와 딸아이는 벌써 와있었다. 해거름이었지만 날씨는 여전히 더웠다. 집 앞에 매어놓은 개 두 마리는 나무 그늘 밑에서 혀를 내놓은 채 축 늘어져 있었다. 아내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여름 방학이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데 낮에 딸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으니 아무래도 에어컨을 사야 하겠다고 말했다. 아내의 말에 나는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나마 딸아이의 표정이 밝아서 다행이었다.
그날 밤에 나는 도시의 정확한 상황을 알고 싶어 서울, 전 직장동료인 최 림에 전화를 걸었다. 그는 윤태식과 함께 입사동기생이었다. 그는 오랜만의 전화를 반갑게 받아주었다. 내가 그쪽은 어때, 하고 물으니 그는 한 마디로 죽을 맛이라고 했다. 그 회사도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에어컨을 꺼둔다고 했다. 그러니 업무능력이 오를 리 없고 야근을 한다 해도 원칙적으로 냉방을 못 하니까 모두 정시에 퇴근은 하는데, 집에 가면 오히려 더 덥다는 것이다. 그가 사는 아파트에는 수시로 과부하가 걸려 정전이 된다고 한다. 별수 없이 돗자리 하나 챙겨 한강 변으로 나가는데 거기도 사람들로 인산인해라, 정말 도시를 떠나고 싶다고 했다.
“아무래도 이상하지? 아직 6월인데⋯. 그렇다면 내달, 그다음 달은 어떨까? 더 심해지지 않겠어? 서울은 그야말로 죽은 도시 같아. 이러다 대규모 정전이 되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완벽히 마비되지 않겠어?”
그는 지금도 한강 변에 있다며 속사포처럼 더위를 쏟아내었다. 그의 말에 나는 당연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나는 최림과 윤태식에게 혹 더위를 못 견디겠으면 내가 사는 마을 근처에 있는 ‘파아골’로 올 것을 당부하며 대충 위치를 문자로 보냈다. 그리고 난 후 라디오를 켠 채 거실 소파에 그대로 누워버렸다. 지역방송이었다.
「지금 이 시각 두류산 일대는 피서객들로 인해 모든 계곡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습니다. 때아닌 폭염으로 예년보다 한 달 반 정도 빨리 휴가철이 시작되면서 사흘 전부터 찾아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입니다. 현재 이 시간에도 두류산으로 오는 모든 도로는 정체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