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의 편견
선방이나 고립된 공간에서 탁마절차를 한다면 조그만 공력은 있을수 있지만 본각의 실상은 밝힐수 없다.
만약에 그러한다면 감옥소에 십년공력을 쌓이면 죄업과 수행력이 높아져야 하지만
감옥소를 나서는 순간 중생심의 습관으로 환지본처한다.
처처불성은 완전한 불각은 이루는 자만이 말하는 것이지 범부와 신심이 악한자는 금방 물들고 만다.
산속이나 고해절도에서는 수행이 될지는 몰라도.
오욕과 동정과 몽중.병통.
생사바다에서는 두려움을 느낀다면 이것은 불도를 이루는 행동이 아니다.
습관적인 식탐.애탐은 그러한 조건을 만나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하므로 죽은 시체는 작동을 하지 못하고. 다시 다른 몸을 받는다면 꼭 사람이 아니다.
태.란.습.화의 구부중생의 몸을 받는 축생.조류.
파충류와 양서류.곤층도 다 그곳에서 생노병사를 받는다.
모든 육신의 몸을 받는 무리는 저성동체도 있지만 음욕의 교접으로 생명이 잉태된다.
그러하므로 어느것 하나에 척 달라붙어 몸을 받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설혹 알더라도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방법이 없다.
업연의 바다는 깊고 넓어서 우주와 같다.
한번 가면 찾기가 요원한다.
그러하므로 본 마음을 봐야 하며 습관적인 업을 소멸하는 수도를 꾸준히 계속해 나가야 한다.
어떤 티끌같은 마음이 나중에는 크게 성장하여 성도를 장애한다.
초견성하여 막행막식하고 음행을 망상이라 하여 과보가 없다고 한다면 범부보다 더 못한 가면수행자 행세를 한다.
한번 들어와서 돌아가면 거만하고 교만하고 통제가 되지 않으니 마군의 행위로 불법을 선교를 한다고 부처님과 부모와 스승을 비난하는 큰 악업을 짓는다.
기본적인 계행도 모르고 법이 본래 걸림이 없다면서 재물과 법당건립과 식탐과 애탐을 부리면서 도리어 거기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행동을 한다.
나무라고 타일러도 수행상의 중병이 들어서 스승과 부모도 고치기 어려운 것이 된다.
수행도량에서 음주가무와 육식과 화투와 윷놀이를 하는 행위를 권장하는 무리가 많다.
수행도량은 염불. 참선.진언 경전독송을 선양해야 하는 곳인데 꼭 장터와 같다.
오만무리가 오만욕심과 탐심과 진심[분노]을 내고 마음수양은 뒷전이고. 사부대중의 허물만 들어내고 유희를 즐긴다.
그러하므로 수행의 공덕은 없고 도리어 재앙과 우환만 부른다.
그러하므로 자격이 없는 무리가 불도를 흥포하나 다 제 욕심을 앞세우는 행위일 뿐이다.
그리하여 이리저리 떠돌다가 눈 밝은 스승을 만나면 공부가 어렵다고 스스로 물러난다.
한번도 제대로 된 참학과 교학을 배우지 못하고 좋다고 하는 사찰은 다 방문하여도 마음은 매일 허전하고 허무함을 느끼고 산다.
방송에서 본 것과 현실에서 행하는 수행은 천양지차이다.
유선방송에서 동물의 왕국의 사자와 호랑이를 실전에서는 본다면 기절초풍을 할 것이다.
그러함을 글을 통해서 설법하는 것은 이해와 해득,증득과 증오의 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자꾸만 가까이 하여야
발심수행을 하게 된다.
수행의 큰 마장인 환멸의 시기가 올때는 더 많은 경전과 기도시간을 늘려야 한다.
하루24시간 일년365일 수행이 가능하다면 모든 일에 허물과 죄업이 붙을 시간이 없다.
그러하므로 내 노력과 정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사무치게 알기를 바란다.
묘주선원장 묘원 태허대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