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뮐러(Friedrich Max Muler, 1823~1900)는 독일의 낭만주의 시인 빌헬름 뮐러의 아들로 태어나 그의 학문적 생애의 대부분을 영국에서 보낸 산스크리트 언어학자이자 근대 종교학의 창시자이다. 그는 처음에는 시인이나 음악가가 되고자 했으나 1843년 라이프치히대학에서 스피노자의 윤리학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베를린에서 셸링 아래에서 일을 하며 인도학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는 쇼펜하우어와도 만나 베다와 우파니샤드 등 인도의 고대 경전에 대해 토론하였으며 산스크리트 문헌학을 더 공부하기 위해 1845년 파리로 갔다. 파리에서 그는 당대 산스크리트 불교학의 대가였던 유진 뷔르누프(Eugene Burnouf, 1801~1852)의 제자가 되었다. 뮐러를 처음 본 뷔르노프는 “나는 브라만이며 불교도이며 조로아스터교도”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고 한다. 뷔르누프는 뮐러에게 영국의 동인도회사에서 수집한 『리그베다』사본을 번역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는 이 번역 작업의 완성을 위하여 영국에 건너가 전4권의 교정 번역본을 출판하였는데 이것은 서구에 인도종교 문화를 소개하는 초석이 되었다.
梵語에 정통한 비교종교학자
영국에 귀화한 뮐러는 1850년부터 옥스퍼드대학의 교수가 되어 인도-유럽어족을 중심으로 한 언어학과 비교신화학을 통하여 종교의 본질을 해명하고자 하였다. 신화와 언어와 인간의 심성에 깃들어 있는 종교성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해석하는 작업이 그의 평생의 학문적 과제가 되었던 것이다. 100여권이 넘는 방대한 저술이 보여주듯 뮐러는 다방면의 학문에 관심이 있었고, 47세 때는 『독일인의 사랑』이라는 소설 작품도 출판하였다.
1870년 뮐러는 영국왕립연구소에서 행한 강연에서 신학이나 종교철학으로부터 독립한 객관적인 종교학(Science of Religion)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하나의 종교만을 아는 이는 종교를 모른다(he who knows only one, knows none)”는 말은 그 후 종교학도들의 슬로건이 되었다. 뮐러는『종교학입문』(1973)에서 종교의 비교 연구는 종교 간의 우열을 가리는 데 있지 않고 여러 종교를 비교하여 유사점과 차이점을 이해하고 나아가 종교의 궁극적 본질을 해명하는 데 있음을 강조하였다.
뮐러는 종교는 태양과 같이 자연현상 뒤에서 이를 초월하여 있는 무한을 인식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인간의 무한에의 탐구를 뮐러는 “내 생각에 담을 수 없는 것을 생각에 담으려는 투쟁,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는 노력, 무한에 대한 열망, 신의 사랑에 대한 추구, 곧 영의 절박한 신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인간에게 종교 경험은 다른 이름과 형태를 지닌 무한한 것(the infinite)을 인식하려는 노력이라는 것이다. 뮐러는 베다시대의 종교를 통해 이러한 종교의 본질과 기원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베다의 종교는 자연현상의 배후에서 무한을 찾아내려는 인간의 종교적 본능을 확인할 수 있는 모델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뮐러는 이른바 사제적 종교를 비종교적이라고 비판한다. 사제의 권력으로 발전한 종교는 종교의 제도화와 함께 자연종교에서 멀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참된 종교는 유한한 자연과의 접촉을 통하여 무한을 인식하는 것이며, 무한에의 인식이 인간의 도덕적 특성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양상으로 표현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뮐러는 여러 종교의 신들은 주인 없는 가면이며 인간이 창조해 낸 것이지 인간의 창조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신화는 언어의 왜곡에 의해 창조된 언어질병으로서의 신들은 누미나(Numina, 신성) 자체가 아니라 노미나(Nomina, 명칭)일 뿐이라고 하였다.
뮐러는 아리안계, 셈계, 투라니안 어계 등 어족에 따라 종교를 분류하였다. 또한 고대 산스크리트어와 그리스어의 어원이 동일함을 알고 따라서 인도신화와 서구 아리안족의 신화의 연계성을 밝힘으로서 인도-유럽어족에 의해 형성된 신화와 종교문화의 유사성을 해명하였다. 이와같이 언어학의 창을 통해 종교를 바라보고자 했던 뮐러의 종교 읽기는 종교 간의 우열논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으나 종교의 내적 구조와 특성을 간과하는 과단순화의 오류가 많다고 볼 수 있다.
막스 뮐러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1870년부터 시작한 동방성서 시리즈의 편찬 작업이었다. 당대의 동양학 분야의 대가들이 대거 참가하여 완성한 『동방성서』(SBE)의 출판은 19세기에 이룩한 동양종교학에 대한 금자탑이라 할 만한 일이었다. 『동방성서』에 수록된 내용을 살펴보면 막스 뮐러의 주요 관심사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동방성서』50권 가운데 인도고대종교 관련 문헌이 20권이며 불교문헌은 10권이다. 그 외에 조로아스터교, 유교, 도교 자이나교, 조로아스터교, 이슬람 경전 등이 약간씩 수록되어 있다. 뮐러는 인도의 종교 고전 가운데 『베다』와 『우파니샤드』 등을 번역하였으며, 다수의 불교 경전도 직접 번역하였다.
제도화된 권위적 종교 비판
뮐러는 1881년에 『동방성서』 제10권으로 출판된 『법구경(Dhammapada)』과 제49권에 수록된 『금강경』, 『대품반야심경』, 『소품 반야심경』, 『아미타경』, 『무량수경』 등 산스크리트 대승경전도 번역하였다. 제49권 가운데 『관무량수경』은 대정신수대장경의 편찬자 다카쿠스 준지로(高楠順次郞)가 번역한 것이다. 이 밖에도 『동방성서』에는 『법화경』(제21권), 『불소행찬』(제19권), 그리고 『율장』(제13, 17, 20권)과 『미린다왕문경』(제35, 36권)등이 수록되어 있다.
막스 뮐러의 대승경전 번역은 난죠 분유(南條文雄, 1849~1927) 등의 일본 유학생 협조로 이루어졌다. 난죠는 서구의 문헌학을 수용한 최초의 동양의 불교학자였다. 그는 옥스포드 대학에서 1880년부터 막스 뮐러로부터 서구의 산스크리트와 불교문헌학을 공부하였다. 뮐러는 난죠에게 일본에 소장되어 있는 산스크리트 불교문헌 사본의 입수를 부탁하였다. 난죠는 자신의 출신 종파인 정토진종 동본원사 계통의 여러 사찰에 의뢰하여 다수의 범본 불경을 구하였다. 이렇게 수집된 불전 가운데 뮐러는 1880년 아미타경을 먼저 교정 번역하였다. 이 때 밀교 계통의 『불정존승다라니』(The Ushnisha-vigaya-Dharani) 도 범본 교정본과 번역본이 출판되었다.
각 종교를 언어에 따라 분류
베다와 비교종교학에 대한 업적에 비하여 뮐러의 불교학 연구에 대한 기여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뮐러는 빨리본 『법구경』을 비롯한 다수의 범본 불경을 직접 교정 편집하고 번역하였으며, 「열반의 의미」, 「붓다와 불교」,「불교의 순례자들」, 「불교 허무주의」, 「비밀불교」 등의 논문을 통하여 서구사회에 불교를 소개하는 데도 노력한 불교연구가였다.
뮐러의 불교에 대한 이해는 다음의 네 차원으로 집약할 수 있다. 첫째, 불교를 윤리체계로 보았다. 특히 불교의 자비사상에서 기독교와의 공통 연결요소를 발견하고자 하였다. 둘째, 불교의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브라마니즘과의 관계에서 이해하였다. 셋째, 불교는 무신론적 종교라는 점이다. 넷째, 불교의 열반은 절대 허무주의라는 해석이다. 뮐러는 불교를 브라마니즘에의 반작용과 그 연속선상에서 발생한 종교라고 보았다. 이러므로 불교를 독립된 종교라고 보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붓다를 당시 인도인을 억누르고 있던 윤리적 정신적 삶의 올가미를 풀어준 성인으로 평가했다. 붓다의 위대한 성취는 계급제도와 특권층에 억눌려 있던 인도인에게 참된 평등과 자유의 길을 가르친데 있었음을 발견한 것이다. 뮐러는 붓다가 가르친 자비의 윤리가 내포한 사회복지적 의미를 주목하고, 평등과 무아의 윤리적 탁월성을 찬양하였다.
1868년 타임(Time)지에 처음 발표된 「열반의 의미」에서 뮐러는 열반을 ‘신과의 합일과 교통’이 아닌 ‘궁극적 소멸(utter annihilation)’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뮐러는 불교의 열반관을 이해하는데 다소 혼란과 난해함을 느낀 듯하다. 영원한 존재자로서의 신과 영혼을 부정한 붓다의 가르침을 뮐러는 절대무의 가르침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뷔르누프를 비롯한 당시 대부분의 불교연구가들처럼 뮐러도 불교를 무신론이며 허무주의라는 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종교로 이해한 듯하다. 뮐러의 이러한 불교관은 신과 같은 영원한 존재와의 재결합이나 그의 은총을 통해 구원의 성취를 염원하는 서구의 종교적 환경에서는 불가피했던 인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뮐러는 열반을 단순한 염세주의라고 보지는 않았다.
그는 열반을 탐진치가 소멸된 정적의 상태에서 일어나는 순수한 윤리적 정신으로 이해하였다. 막스 뮐러는 기독교를 넘어선 지구상의 여러 진리에서 도출된 새로운 형태의 진정한 인간성의 종교의 도래를 희망하였다. 기독교를 상대화하며 종교학이야 말로 인간이 발전시킬 마지막 학문이라고 확신했던 뮐러의 태도는 그 시대의 많은 기독교인들의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이들에게 뮐러는 모든 종교의 바탕에는 공통적인 성스러움이 있으며 이방인의 종교에 숨겨진 진리의 보고를 더 많이 발견할수록 참된 종교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오래된 동전이나 비석에 수백 년이 지난 녹이 다 털어내면 그것이 지니고 있는 순수한 광채를 드러낼 수 있듯이 모든 종교 안에 숨겨진 비문을 읽을 수가 있다면 모든 종교의 동일한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그가 단순한 인도 문헌학자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모든 종교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려고 한 노력은 후에 종교 다원주의와 종교 간의 대화를 위한 토대를 마련케 했던 것이다.
“모든 종교는 성스럽다”주장
막스 뮐러는 19세기 말 동서종교문화의 교류와 이해에 공헌한 선구자의 한 사람이었다. 특히 그는 다수의 불교 경전을 번역 출판하여 불교를 서구사회에 소개하였을 뿐만 아니라 서구의 산스크리트 문헌학 방법론을 일본의 유학생들에게 전수하여 극동의 근대 불교학 태동에도 기여한 동양학자였다. 동국대 김용표 교수
첫댓글와~ 난해한 불교의 속성들을 한 눈에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글입니다.. 뮐러가 불교에 대해 탁월한 식견을 가진 이유도 있겠지만, 문화적 이방인인 서구인이기 때문에, 오히려 불교에 대한 관점과 정의가 더 적확하고 본질적일 수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뮐러가 정의한 열반의 의미가, 절대 허무주의(단순한 염세주의가 아닌)/ 궁극적 소멸/탐진치가 소멸된 정적의 상태에서 일어나는 순수한 윤리적 정신/... ..정말 그렇게 와 닿지 않습니까?...이렇게 간단하고도 시원히 표현하는 스님들은 안 계시자나요...ㅎㅎ
유럽을 천 수백년간을 통제해 온 기독교에 익숙한 사람들의 눈에는, 불교는 종교라기보다 철학이었겠지요..사실 그런 면이 강하다고 봅니다만.. 그리고 뮐러의 불교에 대한 정의.... 불교는 무신론적 종교라는 것 /또 브라만교(힌두교의 일파)의 반작용과 연속선상에서 태동한 종교라는 것/ 즉 부처가 당시의 계급제도에서의 특권층에 억눌린 인민들에게 참된 평등과 자유의 길을 가르친 종교라는 것/자비의 윤리는 오늘날의 사회복지 개념과 같다는 것/... 참참...올바른 불교관 위해 정말 잘 새겨 두어야할 위한 글이라 봅니다.
문제는 기복(祈福)적 행위인데...기독교에서야 본래 그런 속성이 있다지만, 불교에서 부처를 신의 존재로 믿고 복을 빌며, 극락과 지옥을 말하며, 이런저런 신들을 섬겨 제례를 하는 것...참참....종교를 포함한 문화의 전파가 본래의 순수성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는 속성이 있지만... 부처의 가르침이 중국을 거쳐 한국에 오면서....온갖 분칠, 떡칠이 다 되어...고유의 순수함이란 경전 뿐일 것입니다...그 외의 사찰에서의 의식들은, 출가자들의 권위와 편의를 위해 정교하게 습속화한, 불교의 비 본질적 요소라 보는데....이런 의식자체가 종교의 본질인양 호도되는 측면이 강한 것 같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제사가 있었는지 저도 경전을 자세하게 볼 실력이 안되어서 모릅니다. 하여튼 유교와 접합이 되면서 제사(천도재,49재)등이 생겼다고 알고 있습니다. 불교는 부처를 신격화 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무신론 입니다. 온갖 분칠, 떡칠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초기 부파불교에는 부처라는 말도 등장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냥 각자(붓다) 라는 말 밖에 등장하지 않지요.
부처님 재세시에 많이 배우지 못한 시골 촌장이 어떻게 하면 천계(천상계)에 갈 수 있느냐고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무지한 촌장의 눈높이에 맞춰, 후손들이 제사를 아니지내도, 공덕과 복덕을 많이 지으면, 천계로 갈 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천계도 윤회 내의 세계라서 다 복을 까먹고 나면, 축생이나 인간계로 와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최상의 기도로 살아가는 브라만 이라 할지라도 쌓은 복이 없고, 바르게 살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말합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부처님은 당신 본인이 직접 자기는 영겁의 세월 전에 벌써 깨달은 부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을 수십년간 옆에서 시봉한 아난존자에게 중생이 원하면 이 세상에서 3 아승지 겁을 더 머물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의 깊은 진리를 체득하지 못한 아난존자에게 많은 제자들이 비난을 하였습니다. 우명님의 덧글과 상관없이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전개 하더라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출가자들의 권위와 편위... 우리나라 스님들은 내가 낸데 하는 아상을 좀 드러내신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절에서 무위도식 하는 것 같지만, 다 전생의 공덕과 복덕, 그리고 부처님과의 인연이 있는 분들이 염부제(사바세계)에서 불제자로 출가하게 된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언어적으로 표현이 서툴어서 마음속에 있는 표현하기 힘든 말이 있는데요. 잘 표현이 안되네요.
보통 기독교인들이 부처님을 인간(그냥 성인)이라고 하시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말그대로 부처님 오신날, 즉 부처님이 오신 겁니다. 그리고 흔히 기독교 인들이 부자나라는 다 기독교 믿는다고 하는데요, 우스울 따름입니다. 전세계의 흥망성쇠는 돌고도는 것인데, 중국 수.당나라 때 중국이 가장 강대국이었고, 현재 모든 역사학자들이 그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바로 수당불학의 꽃을 피운때가 이 때입니다.
이제는 기복행위가 아니라 스스로 작복(복을 짓는 행위)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불전에 1백만원 보시하고, 부처님께 5백만원 벌게 해달라고 하는것은 제불보살을 엄청나게 모욕하는 행동입니다. 부처님께서 선업과 공덕,복덕 쌓아서 행복하게 이 세상에 살다가 가라고 했지, 자기에게 보시하면 몇 배 더 벌게 해주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중생의 신행은 기복에서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과경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불전에 청정한 삼보정재로 1냥을 베풀고도 만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하.....두루두루 좋은 말씀을 해 주셨군요...이래서 아미타 본원 님께 또 몇 자락 귀한 지식을 얻어 취하게 됩니다... 부처란 존재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석가모니 부처님 외에도 여러 부처님들이 계시더만요...부처님들은 수억,수십억년 뒤에 바톤을 받아 다시 부처로 태어난다고 들었고.. 석가모니도 그 수억년 전에 이땅에 있었던 어느 부처님이 다시 태어난 존재라고 들었는데, 제 기억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ㅎ.....그런 종교관이니 당연히 내세관이 있겠고... 선악을 구별하는 장소가 따로 있다고 여겼겠지요...종교들의 공통점이기도 합니다만.....ㅎ
불교의 윤회설과 내세관은, 힌두교의 한 갈래인 브라만교의 교리내용이며, 당시 널리 유포되어 있던 브라만교의 교리를, 신흥하던 불교가 답습 내지 차용한 것이라던데... 석가모니께서도 직접 윤회와 천상계와 지옥 등에 대해 설법을 했었군요....저는 부처님은 억조창생들에게 그저 착하고 지혜롭게 살아라~는 말씀만 하시고 그런 교리체계는 후대에 만들어진 줄로 알았습니다..ㅎ....그러고 보면, 이는 마치 예수가 유대교리나 모세의 가르침을 차용한 것과 맥락이 같은 셈이군요...ㅎ.;. 아무튼 아미타 님 덕분에 새로운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종교를 문화사적으로 보면, 문화의 전파를 용이하기 하기 위해서, 이미 선점되어 있던 문화를 차용하는 패턴은 흔한 일이지요.....그러다 보니 원래의 순수함이 퇴색되고, 차용문화의 토속적인 요소들이 섞여 문화의 혼합이 일어나기도 하고요...그런 맥락에서, 천축에서 출발한 순수한 불교의 의식들이, 중국을 거쳐오며 부득불이겠지만, 문화의 융합이 심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이고요...사실, 오늘날 사찰에서 행해지는 많은 행사나 의식들이, 옛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토속적 신앙과 문화에 상당히 오염(?)이 되었음은, 남방불교 등에 비교하면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 의식들이 마치 종교의 주체인양 중시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인데, (천도재, 삼진날,칠석날..등등..울 엄니 절에 가신다고 쌀봉지 여미시는 날..ㅎ ) 그래서 저로서는, 종교의식 보다는 순수한 경전중심의 가르침 체계로 돌아가자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랍니다..ㅎ...종교의 의식이 본질을 앞서는 모습은 불교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종교들의 특색이기도 합니다...문화적 차원에서 보면, 종교는 대중을 설복할 수 있는 권위가 생명이므로, 그 권위를 더욱 권위있게 하기 위해, 때로는 정략적으로, 때로는 폭력적으로 위세를 떨치며 국민들 위에 군림해 온 것이 생생한 역사이기도 하죠...이런 점은 기독교에서 더욱
확연하게 드러납니다만...ㅎ..그런 중에 백성들을 쉽게 굴복시키고 자금의 조달을 위해, 기복적 요소를 정략적으로 주입시키는 종교로서의 이율배반적인 태도도 드러나고요... 아무튼...어떤 종교이든., 원래의 본질에 충실하는 쪽으로 나아가도록 깨어 있는 의식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종교도 사람이 관리하는 만큼, 타성에 젖거나 기득권에 안주하여 본질을 망각하거나 권위와 본질을 바꾸어 놓기 쉽거든요....ㅎ..근래의 조계종 지도자들간의 내분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것 같더군요... 세속적 권력에 맛들여 보신과 잿밥에 눈이 먼, 종교 지도자들의 타락이 늘 문제거리입니다..
저는 무신론자요, 무종교인으로서, 공부는 안 하지만 그냥~ 불교철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만...아미타 본원 님께서는 불교계에서 상당한 소임을 맡고 계신 것 같습니다. 마침, 살롱의 벗님들 중에는 불자분들이 상당히 많이 계시므로, 모쪼록 자주 듭시어, 좋은 지혜의 말씀들 많이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좋은 글 또 주실 것으로 기대해 보겠습니다...ㅎ. 감사합니다...
첫댓글 와~ 난해한 불교의 속성들을 한 눈에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글입니다..
뮐러가 불교에 대해 탁월한 식견을 가진 이유도 있겠지만, 문화적 이방인인 서구인이기 때문에, 오히려 불교에 대한 관점과 정의가 더 적확하고 본질적일 수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뮐러가 정의한 열반의 의미가, 절대 허무주의(단순한 염세주의가 아닌)/ 궁극적 소멸/탐진치가 소멸된 정적의 상태에서 일어나는 순수한 윤리적 정신/...
..정말 그렇게 와 닿지 않습니까?...이렇게 간단하고도 시원히 표현하는 스님들은 안 계시자나요...ㅎㅎ
유럽을 천 수백년간을 통제해 온 기독교에 익숙한 사람들의 눈에는, 불교는 종교라기보다 철학이었겠지요..사실 그런 면이 강하다고 봅니다만..
그리고 뮐러의 불교에 대한 정의.... 불교는 무신론적 종교라는 것 /또 브라만교(힌두교의 일파)의 반작용과 연속선상에서 태동한 종교라는 것/
즉 부처가 당시의 계급제도에서의 특권층에 억눌린 인민들에게 참된 평등과 자유의 길을 가르친 종교라는 것/자비의 윤리는 오늘날의 사회복지 개념과 같다는 것/...
참참...올바른 불교관 위해 정말 잘 새겨 두어야할 위한 글이라 봅니다.
문제는 기복(祈福)적 행위인데...기독교에서야 본래 그런 속성이 있다지만, 불교에서 부처를 신의 존재로 믿고 복을 빌며, 극락과 지옥을 말하며,
이런저런 신들을 섬겨 제례를 하는 것...참참....종교를 포함한 문화의 전파가 본래의 순수성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는 속성이 있지만...
부처의 가르침이 중국을 거쳐 한국에 오면서....온갖 분칠, 떡칠이 다 되어...고유의 순수함이란 경전 뿐일 것입니다...그 외의 사찰에서의 의식들은,
출가자들의 권위와 편의를 위해 정교하게 습속화한, 불교의 비 본질적 요소라 보는데....이런 의식자체가 종교의 본질인양 호도되는 측면이 강한 것 같습니다..
(제 문투가 좀 과격해서인지, 다른 답글들이 통~ 없기에....몇 마디를 ↑첨삭하여 보드랍게 다듬었습니다...ㅎ;;)
부처님 당시에 제사가 있었는지 저도 경전을 자세하게 볼 실력이 안되어서 모릅니다. 하여튼 유교와 접합이 되면서 제사(천도재,49재)등이 생겼다고 알고 있습니다. 불교는 부처를 신격화 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무신론 입니다. 온갖 분칠, 떡칠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초기 부파불교에는 부처라는 말도 등장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냥 각자(붓다) 라는 말 밖에 등장하지 않지요.
부처님 재세시에 많이 배우지 못한 시골 촌장이 어떻게 하면 천계(천상계)에 갈 수 있느냐고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무지한 촌장의 눈높이에 맞춰, 후손들이 제사를 아니지내도, 공덕과 복덕을 많이 지으면, 천계로 갈 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천계도 윤회 내의 세계라서 다 복을 까먹고 나면, 축생이나 인간계로 와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최상의 기도로 살아가는 브라만 이라 할지라도 쌓은 복이 없고, 바르게 살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말합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부처님은 당신 본인이 직접 자기는 영겁의 세월 전에 벌써 깨달은 부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을 수십년간 옆에서 시봉한 아난존자에게 중생이 원하면 이 세상에서 3 아승지 겁을 더 머물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의 깊은 진리를 체득하지 못한 아난존자에게 많은 제자들이 비난을 하였습니다. 우명님의 덧글과 상관없이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전개 하더라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출가자들의 권위와 편위... 우리나라 스님들은 내가 낸데 하는 아상을 좀 드러내신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절에서 무위도식 하는 것 같지만, 다 전생의 공덕과 복덕, 그리고 부처님과의 인연이 있는 분들이 염부제(사바세계)에서 불제자로 출가하게 된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언어적으로 표현이 서툴어서 마음속에 있는 표현하기 힘든 말이 있는데요. 잘 표현이 안되네요.
보통 기독교인들이 부처님을 인간(그냥 성인)이라고 하시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말그대로 부처님 오신날, 즉 부처님이 오신 겁니다. 그리고 흔히 기독교 인들이 부자나라는 다 기독교 믿는다고 하는데요, 우스울 따름입니다. 전세계의 흥망성쇠는 돌고도는 것인데, 중국 수.당나라 때 중국이 가장 강대국이었고, 현재 모든 역사학자들이 그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바로 수당불학의 꽃을 피운때가 이 때입니다.
이제는 기복행위가 아니라 스스로 작복(복을 짓는 행위)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불전에 1백만원 보시하고, 부처님께 5백만원 벌게 해달라고 하는것은 제불보살을 엄청나게 모욕하는 행동입니다. 부처님께서 선업과 공덕,복덕 쌓아서 행복하게 이 세상에 살다가 가라고 했지, 자기에게 보시하면 몇 배 더 벌게 해주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중생의 신행은 기복에서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과경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불전에 청정한 삼보정재로 1냥을 베풀고도 만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명님 저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고, 정말 못난 중생입니다.
제가 교학에 지식이 아주 많이 짧아서 더이상 논의를 전개하기 힘들겠네요.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제 내용에 불설과 잘 맞지 않는 내용이 있더라도, 너그러운 자비로 살펴 주십시요.
중국.일본의 기독교 신자는 2퍼센트를 넘지 않습니다. 대만은 80퍼센트가 불자 입니다.
아하.....두루두루 좋은 말씀을 해 주셨군요...이래서 아미타 본원 님께 또 몇 자락 귀한 지식을 얻어 취하게 됩니다...
부처란 존재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석가모니 부처님 외에도 여러 부처님들이 계시더만요...부처님들은 수억,수십억년 뒤에 바톤을 받아 다시 부처로 태어난다고 들었고..
석가모니도 그 수억년 전에 이땅에 있었던 어느 부처님이 다시 태어난 존재라고 들었는데, 제 기억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ㅎ.....그런 종교관이니 당연히 내세관이 있겠고...
선악을 구별하는 장소가 따로 있다고 여겼겠지요...종교들의 공통점이기도 합니다만.....ㅎ
불교의 윤회설과 내세관은, 힌두교의 한 갈래인 브라만교의 교리내용이며, 당시 널리 유포되어 있던 브라만교의 교리를, 신흥하던 불교가 답습 내지 차용한 것이라던데...
석가모니께서도 직접 윤회와 천상계와 지옥 등에 대해 설법을 했었군요....저는 부처님은 억조창생들에게 그저 착하고 지혜롭게 살아라~는 말씀만 하시고
그런 교리체계는 후대에 만들어진 줄로 알았습니다..ㅎ....그러고 보면, 이는 마치 예수가 유대교리나 모세의 가르침을 차용한 것과 맥락이 같은 셈이군요...ㅎ.;.
아무튼 아미타 님 덕분에 새로운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종교를 문화사적으로 보면, 문화의 전파를 용이하기 하기 위해서, 이미 선점되어 있던 문화를 차용하는 패턴은 흔한 일이지요.....그러다 보니 원래의 순수함이 퇴색되고,
차용문화의 토속적인 요소들이 섞여 문화의 혼합이 일어나기도 하고요...그런 맥락에서, 천축에서 출발한 순수한 불교의 의식들이, 중국을 거쳐오며 부득불이겠지만,
문화의 융합이 심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이고요...사실, 오늘날 사찰에서 행해지는 많은 행사나 의식들이, 옛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토속적 신앙과 문화에 상당히
오염(?)이 되었음은, 남방불교 등에 비교하면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 의식들이 마치 종교의 주체인양 중시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인데, (천도재, 삼진날,칠석날..등등..울 엄니 절에 가신다고 쌀봉지 여미시는 날..ㅎ )
그래서 저로서는, 종교의식 보다는 순수한 경전중심의 가르침 체계로 돌아가자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랍니다..ㅎ...종교의 의식이 본질을 앞서는 모습은
불교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종교들의 특색이기도 합니다...문화적 차원에서 보면, 종교는 대중을 설복할 수 있는 권위가 생명이므로, 그 권위를 더욱 권위있게
하기 위해, 때로는 정략적으로, 때로는 폭력적으로 위세를 떨치며 국민들 위에 군림해 온 것이 생생한 역사이기도 하죠...이런 점은 기독교에서 더욱
확연하게 드러납니다만...ㅎ..그런 중에 백성들을 쉽게 굴복시키고 자금의 조달을 위해, 기복적 요소를 정략적으로 주입시키는 종교로서의 이율배반적인 태도도 드러나고요...
아무튼...어떤 종교이든., 원래의 본질에 충실하는 쪽으로 나아가도록 깨어 있는 의식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종교도 사람이 관리하는 만큼, 타성에 젖거나 기득권에
안주하여 본질을 망각하거나 권위와 본질을 바꾸어 놓기 쉽거든요....ㅎ..근래의 조계종 지도자들간의 내분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것 같더군요...
세속적 권력에 맛들여 보신과 잿밥에 눈이 먼, 종교 지도자들의 타락이 늘 문제거리입니다..
저는 무신론자요, 무종교인으로서, 공부는 안 하지만 그냥~ 불교철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만...아미타 본원 님께서는 불교계에서 상당한 소임을 맡고 계신 것 같습니다.
마침, 살롱의 벗님들 중에는 불자분들이 상당히 많이 계시므로, 모쪼록 자주 듭시어, 좋은 지혜의 말씀들 많이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좋은 글 또 주실 것으로 기대해 보겠습니다...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