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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에서 어느 누구보다 깊은 울림을 주는 양희은이 각양각색인 12명의 창작자와 함께 돌아왔다. 어떠한 미사어구 없이 솔직 담백한 양희은식 음악이 한 해가 마무리 되는 지금 따뜻한 위로로 다가 온다. 올 한 해도 참 고생 많았다고 토닥여주는 듯 하다.
올 한해 음악 한 구절 한 구절뿐 아니라 음반 디자인까지 정성스레 준비해 만든 [2014 양희은]의 시시콜콜 제작일기부터 Daum뮤직에서만 공개하는 양희은의 직접 쓴 44년 음악 활동 ‘베스트 5’까지 양희은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아봅니다.
이번 음반 자켓 디자인으로 어머니의 작품을 싣게 된 이유에 대해 질문에 대해 양희은은 “어머니가 수 놓은 작품에는 오랜 시간이 들어가 있다. 쉽게 모사 할 수 없는 거죠. 그런 어머니 작품처럼 제 음악도 오랜 시간을 통해야 완성되기도 하고, 어머니의 그림과 같이 가고 싶었다. 특히 마지막 곡 ‘넌 아직 예뻐’ 곡에 실린 뚱뚱한 발레리나는 어머니가 저희 딸들을 생각하고 만든 작품입니다.”라 말한다.
하나하나 정성 들여 수놓은 양희은과 윤순모(양희은 모친)분의 작품들이 예쁘고 따뜻하다. 양희은은 이번 음반 녹음기간 창작작업이 잘 안 풀릴 때마다 수를 놓아 어느 날 보니 실력이 일취월장해 있었다는 후일담을 들려주었다.
또한 양희은은 디자이너에게 음반 커버를 항상 지치고 힘들 때 기대어 쉬며 노래했던 느티나무를 그려 달라고 주문했다. 그렇게 매우 의미 있는, 오랜 마음 속의 안식처가 일러스트로 탄생되었다.
양희은. 김나영 작사 | 전승우 작곡 | 전승우. 김영국 편곡
김나영이 쓴 [마음에 들어]라는 책을 새벽 두 시까지 단숨에 읽고 나영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 책에서 노랫말 좀 추려서 쓸까 하는데 그래도 되냐고…’ 여러 곳이 책 제목대로 마음에 들었고, 짠하기도 해서 가슴이 먹먹했다.
이 노랫말은 단숨에 썼다. 전승우의 곡에 얹으니 말과 멜로디가 딱 맞아 떨어지는 얘기로 변했다. 집! 그러면 일단은 식구끼리 앉아 김 폴폴 나는 갓 지은 밥과 반찬을 맛나게 먹는 그림이 그려진다.
웃으며 하루를 얘기하고, 중요하지 않은 일도 털어놓는 사이… “식구…” 세상에서 지치고 고단한 몸과 마음을 끌고 들어와 소박한 밥을 먹고, 기운 차리고, 잘자고, 일어나 다시 새 기운으로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해주는 곳. 집에서 나와 낯선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허기진 마음으로 애쓰는 모든이에게 이 노래를 드린다.
이경 작사-작곡-편곡
난 이 노래를 듣자마자 반했다. 토를 달고 자시고 할게 없다. 꼭 이성친구, 배우자, 또는 애인이 아니더라도 내게 세상은 아직도 살아 볼만한 곳이라는 믿음을 주는 당신. 그런 사람을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다.
기쁠 때나 힘들 때, 아플 때, 또 삶이 날 흔들 때, 사람이 힘들고 일이 버거워질 때, ‘그 사람’ 생각을 하면서 이겨낼 수 있다는 것도 복이다. 그 사람이 있어 세상이 더 아름다워지고 마음 든든하고, 기댈 수 있는 언덕이고… 마음 둘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인지 !?
이 노래를 쓴 이경씨를 우린 그냥 경이라 부른다. 경아! 고맙다. 이렇게 좋은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해줘서 참 고맙다.
육중완 작사-작곡 | 육중완. 유지훈. 강준우 편곡
워낙 장미여관 팬이었지만, 육중완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조심스럽게 문자를 보내고, 기다려 이 노래를 받았을 때 너무 기뻤다. 그냥 내 가슴으로 들어오는 노래!!! 그리고 육종완의 맑고 깨끗한 마음이 읽히는 곡이다. 어쩜 이렇게 노랫말이 고울까? 눈물이 핑~돌았다. 더욱 맹렬한 팬이 되었다.
'나영이네 냉장고' 뮤직비디오를 찍는 날도 행사가 있는데 먼 거리를 오며 가며, 낮에도 밤에도 기꺼이 즐겁게 찬조 출연을 해주었다. 신세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박호명 작사-작곡 | 김영국. 염승재 편곡
작사-작곡자 박호명씨는 녹음하는 날 처음 뵈었는데, 사람이 좋아 보였다. 웃음이 특히 그랬다. 노랫말, 노래, 다 지은이를 닮았다.
김영일 작사 | 이봉룡 작곡 | 김영국. 염승재 편곡
만약에 리메이크할 옛날 노래를 한 곡 고르라고 한다면, 당연 이 노래를 고를 것이다. TV에서 음식프로그램을 한지도 7년여 세월이고, 우리나라 김치 깍두기는 세상 어디에 있든 잊을 수 없는 우리 마음에 새겨진 맛이라서 슬금슬금 비위가 상하거나 속상할 때, 신경 많이 써서 속이 이상할 때, 김치 한 점 입에 넣으면 비위가 쑤~~욱 내려간다.
지구별 어디서라도 김치 깍두기가 있으면 우린 정신도 차리고 기운도 낼 수 있다. 아자! 아자! 김치깍두기 파이팅!
06. 하루만
김령 작사 | 김한년 작곡-편곡
나의 첫 콘서트 때 반주를 맡아준 김한년. 노래그림 출신이다. 드문 드문 만나왔는데, 요사인 자주 만나 더 좋다. 이 앨범이 나오는데 옆에서 많이 도와 주었다.
07. 이제야 나는 날 펼친다
한동준 작사-작곡 | 배영길 편곡
이 곡을 붙잡고 가사 쓰느라 반년쯤 헤매다 다시 원작자인 한동준에게 넘겼더니 자기도 좀 헤매다가…. 드디어 담담한 가사가 붙어졌다. 담담하지만 그 세월 속 사연이야 많기도 하겠다.
08. 나는 사랑할거야
지근식 작사-작곡 | 김영국. 염승재 편곡
지근식은 고교생 때 나를 만나러 와서 카세트 테이프에 자기가 만든 노래를 녹음해서 주고 갔다. 나는 공부나 하라고 야단을 쳤다. “너 그러다 대학 떨어진다” 했더니 진짜 그렇게 되어서, 홍대 앞 길을 걷다가 다시 만났다. 어느새 작곡가가 되어 87년 그리고 35주년 기념음반에도 아름다운 노래를 써주었다. 고등학생일 때 만나서 50줄을 넘어섰으니. 참 세월도 세월도… 어린 날의 근식이가 아직도 내 눈에는 선하다.
이한철 작사-작곡 | 이한철. 고형석 편곡
여러 해 동안 시골밥상 취재로 산골마을, 구비구비 낯선 시골을 많이도 다니며 이 땅의 할머니들로부터 귀한 조리법을 배웠다. 지금도 [찾아라 맛있는 TV] 진행을 하고 있지만, 나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의 건강에 앞서 건강한 우리 교육의 먹거리와 조리방법을 가까이 할 필요를 느낀다.
술로 보자면 막걸리가 우리술이다. 집집이 동네마다 맛이 다르고 술이라기 보담 밥이라 하겠다. 그리고 힘들고 고단한 일을 이겨낼 힘이라고도 할 수 있다. 보다 걸쭉한 목소리가 막걸리처럼 쉬어서 나와야 하는 건데….
10. 봄 그리고 가을
양희은 작사 | 김정욱 작곡-편곡
어느 늦가을 날 아침, 문득 미화원아저씨들을 눈으로 따라가다가 흐드러지게 물든 단풍을 보았다. 봄꽃이 곱다고 눈에 들어온 건 50대부터인데 대의 가을 단풍이 그렇게 화려할 줄은 몰랐었다. 그날 아침부터는 단풍이 꽃보다 더 화사하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나도 봄꽃이 부러워할 만한 가을 단풍으로 물들어가리라.
봄 그리고 가을 / 만남과 헤어짐 / 젊음과 중장년 / 꽃이 예쁘다고 느낀 것은 이미 더 이상 꽃이 아니기 때문이지. / 꽃이 귀하고 예쁘게 마음에 들어오는 청춘은 아마 없을 꺼야. / 젊은 날엔 꽃보다 나무, 숲이지! / 그건 즈이들이 꽃이기 때문이지.
양희은 작사 | 진수영 작곡 | 김영국. 염승재 편곡
내 나이 마흔… 39세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넘어서서야 비로서 아버지를 용서했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세상 떠날 마음이었는지. 하여튼 그 많은 재산은 다른 사람이 채갔다. 어린 딸 셋과 우리엄마는 그 후로 고생을 하게 됐다. 경영이나 이재, 관리 등은 엄마와 거리가 좀 멀었으니까.
아버지의 39년 인생을 놓고 보자면 격동기의 대한민국을 살아낸 이 땅의 80, 90대 어르신들처럼, 남으로 북으로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고향집, 그리워도 못 보는 형제 막내아들의 애끓는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으로 애간장을 태웠으리라. 내 아버지에 대한 나름의 정리이다.
용케도 살아온 길 뒤돌아보니 기댈 곳 없는 이 거친 세상 당신은 가고 난 남아있네요. 부모 없는 사람들 서러워 마시라. 이미 내 몸의 반반이 그 분들에게 물려받은 것이니, 나 사는 동안 같이 사신다.
조선형 작사-작곡 | 김영국. 장경아 편곡
[식구를 찾아서]란 뮤지컬 작품의 곡으로, 이 뮤지컬을 보며 눈물 꽤나 흘렸다. 그래서 나의 새 음반에 담게 되었다. 너무 아름다운 창작 뮤지컬이었다. 다시 무대에 올려 많은 이들이 좀 보셨으면 싶다. 나이 들어가는 이 땅의 모든 여성들이 서로에게 기댈만한 어깨가 되어주며 나이 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개그맨 송은이가 메가폰을 잡은 뮤직비디오! 가슴 짠한 이야기를 유머로 풀어낸 송은이의 MV 감독 데뷔작으로 양희은의 지인들이 총출동하였답니다. 과연 누가 나왔는지? 양희은의 파격적 모습이 숨어있는 MV를 직접 확인해보세요 !
아버지 돌아가시고, 새엄마 밑에서 여러 가지 살 걱정과 우리 세 딸의 앞날이 깜깜 할 때, 나는 가회동 느티나무에 기대어 매일 저녁이면 노래를 불렀다. 아는 노래란 노래는 다 불렀다. 느티나무에 기대 있으면 나무는 누구보다도 내 마음속 사정을 다 알아주는 듯.
나뭇잎이 바람에 살랑 일 때면, 나를 격려해 주는 것처럼 느꼈다. 노래가 위로가 된다는 걸 그때 알았다. 내가 부른 노래의 울림이 내 가슴속을 치유해 주는 걸 그때 알았다. 아랫동네 분들은 어떻셨을까 모르지만, 성에 찰 때까지 불렀다.
“세상을 알고부터 노래는 나를 떠나갔네 가슴을 잃어버린 허무한 나의 노래였네 그리운 느티나무 그리운 나의 노래”
사실 내 노래가 가장 살아있었을 때는 그때였다. 세상에 나와 돈 받고 노래를 부르면서부터는 타성에 젖었다.
“무심한 세월 속에 노래는 다시 살아남아 고단한 세상살이 어루만져 줄 친구처럼 나 떠난 후에라도 남겨질 나의 노래”
다시 살아남는 내 노래가 많이 있으면 좋겠다. 난 춤도 못 추고 무대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휘잡는 대범함도 없고, 뚱뚱하지, 입도 삐뚤한데. 44년째 노래로만 버티고 살아남았다. 물론 그 뒤에는 71년부터 진행해온 라디오프로그램 그늘이 크다. 가수는 떠나도 노래는 남는다. 이미 떠난 가수들 노래를 들으면서 나 떠난 뒤에는 어떤 노래가 남아 있을까? 궁금해진다.
2. '인생의 선물' 바다 건너 뮤지션의 배려로 히트한 노래
내 나이랑 갑쟁이인 일본의 통기타 가수가 있다. 사다 마사시! 그에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평화콘서트(원폭투하 기념으로 해마다 8월에 나가사키 출신인 사다마사시, 큐슈 출신 미마미 고셋트는 히로시마 성당에서 평화콘서트를 열어왔다.)에 초대받아 협연을 한 적이 있었다. 이 공연을 기획하면서 사다 마사시가 곡을 써서 보냈다. 나는 그 곡에 가사를 붙였다. 일본어로 번역했다. 그리고 그는 우리말로 나는 일어로 공연을 했다.
그 엄청난 공연의 날! NHK가 생방송 중계를 할 때, 사다 마사시는 일부러 멘트를 늘려서 하다가 생방송 큐가 들어오자마자 내게 싸인을 주며 “인생의 선물”이 생방송 중계와 물리게 해주었다. 얼마나 놀라운 배려인지! 이 곡은 일본에서는 제법 알려져 있다. CM송으로까지 나왔다. 우리나라에선 내가 좀 더 늦게 판으로 내놨지만, 나이 드신 분들은 이 노래를 부르면 눈물을 지으신다.
3. '내 어린 날의 학교' 여고시절 시작되어 30년 후 나일강에서 완성된 긴 추억이 담긴 노래
영화 [선생 김봉두]의 주제가인 이 노래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이다. 가수가 좋아하는 노래와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노래는 다르다. 그래서 나는 앨범의 타이틀 곡을 못 고른다. 고를 수가 없다. 타이틀 곡을 잘 고르는 사람들은 남다른 촉이 있어서 어떤 곡이 뜰지 알아 맞출 수 있는 감각이 있는 사람이다. 난 44년을 노래해도 잘 모르겠다.
2000년 졸업 30주년 기념으로 여고 동창들과 이집트 여행을 떠났다. 2인 1실로 방을 배정 받았는데, 나는 이 노래 작사를 해주려면 밤 늦게까지 또는 새벽에 일어나서도 뒹굴거리며 뭔가 떠오르기를 기다려야 했기에 혼자서 방을 쓰기로 했고, 나일강가에서 이 노랫말이 완성되었다. 내 마음에 꼭 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노래를 잘 모른다.
4. '들길 따라서' 작사대상이라는 창작의 힘이 되어준 노래
75년에 발표 되어서 나는 이 노래로 작사대상이라는 큰 상을 탔다. 상을 탄 일이 계기가 되어, 자신이 붙었다. 주변에 노래 만드는 분들이 죄 다 남자 사람들이라, 여자 사람이 감수성을 보태어 표현하고 싶었다.
작곡 쪽으로는 소질이 없어 생각도 못했고, 노래 만들기에 내 이야기도 보태고 싶어서 열심히 썼다. 이 노래 후로, 내가 작사한 노래가 늘어났다. '하얀 목련'(1983년),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1991년), '내 나이 마흔살에는'(1995년), 양희은 30주 (2001년), 양희은 35주년(2006년) 그리고 2014 이번 새 노래들에 이르기까지 꽤 많은 노랫말이 쌓여 있는 셈이다.
5. '백구' 초등학교 동생이 글짓기 한 이야기를 노랫말로 담은 노래
이 노래를 들으면 어린 날 우리가 자라던 가회동 언덕과 우리 집이 그림처럼 그려진다. 막내 동생 희정이 재동초등학교 다닐 때 글짓기 한 것을 우연히 작곡가 김민기가 보고는 이 노래를 만들었다. 저작권협회에는 작사 김민기로 되어 있지만, 노래로 각색되기 전에는 200자 원고지에 씌어진 양희정의 글짓기가 먼저였다.
나는 지금도 개를 기르고 있지만, 아버지의 영향이 큰 듯싶다. 가회동 우리 집은 제법 넓었는데, 뒤뜰 가득 우리를 만들어 온갖 개들이 종류별로 있었다. 나는 널린 게 개라서 별로 각별하지 않았지만, 내 동생 희경이는 늘 강아지 몸에서 나는 젖내를 맡으며 한 마리를 이부자리로 데리고 들어왔었다. 어린 날 우리가 찍힌 사진에는 늘 발발이가 같이 있었고, 나는 지금도 발발이를 여러 마리 기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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