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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소설
회색 눈꽃
나도 나의 병을 알고 싶다.
병명을 알아야 살든지 죽든지 할 수 있을 테니까.
오늘 상담실에서 담임선생님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작문 시간에 내가 쓴 글을 읽고는 물어본 것이었다. 내가 대수롭지 않게 이미 오래된 이야기라고 하자 죽을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다는 거냐고 다시 물었다. 선생님 눈빛은 내 머릿속에 있는 어떤 결심을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죽을 생각이 아니라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라고 정정해 주자 그건 또 무슨 말이냐며 내 두 눈을 힐끗 응시하더니, 그러니까 죽겠다는 건 아니냐고 고쳐 물었다. 내가 말을 너무 어렵게 했거나 난해하게 한 모양이었다. 내가 자살할 생각이 없다고 하자 그러면 됐다고 했다. 이번엔 내가 선생님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됐다고요? 죽을 생각을 하든 죽을 수도 있든 어차피 죽는 건 똑같은 것 아닌가요? 내가 스스로 죽지 않으면 죽어도 괜찮다는 건가요? 정말 그러면 된 건가요?”
선생님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더니 무슨 안 좋은 병에 걸린 거냐고 물었다. 병에 걸렸으면 죽어도 괜찮은 거냐고 다시 묻자,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금방 죽을 것 같지는 않다며 그만 나가보라고 했다. 내가 죽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나와 말하는 게 귀찮은 모양이었다. 자기 문제만 해결하고 내 문제는 해결해 줄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던 거다. 그렇다면 상담은 왜 한 거지? 혹시, 우리 집 가정 형편을 잘 알고 있나? 우리 학교에 우리 집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선생님이 있었다. 그래서 만약 담임선생님이 우리 집 사정과 내게 처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거라면, 내 아픔에 관여하고 싶지 않은지도 몰랐다. 어쩌면 내가 도무지 헤어 나올 수 없는 어떤 수렁에 빠져 있다고 믿는지도 몰랐다. 손을 내밀어도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깊이의 수렁, 더구나 함께 빠질 수는 없는 비좁은 수렁, 어느 누가 나와 함께 그 깊고 좁은 구멍에 빠지고 싶을까? 담임선생님은 그렇게 내밀었던 손을 다시 접었던 거다. 딱 거기까지가 책임의 전부인 양.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건 이미 오래전부터 생각했다. 그러니까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시작되는 오늘이란 나에게 있어 오래된 미래일 뿐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아파서 차라리 죽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러다가 쓰러지고 또 쓰러지고 마치 죽음을 연습하듯 잠들었다. 매 순간 서서히 죽어가듯 그랬다. 언제부턴가 어지럽고 눈앞이 보이지 않아 침실에서 일어나다가 그냥 주저앉았다. 그런 일이 자주 반복됐다. 어느 날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자 할아버지는 밥을 먹지 않아서 그럴 거라며 대수롭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는 나를 데리고 동네 병원에 갔다. 나를 진찰한 의사 선생님도 특별히 문제가 없다며 괜찮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영양제 링거주사를 맞고도 다시 쓰러지자, 할아버지는 가까이에 있는 종합병원에 갔다. 이번에도 의사 선생님은 특별한 문제가 없어 보이니 잘 먹고 잘 자고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했다. 주사 맞고 약을 먹으면 괜찮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이튿날 나는 다시 쓰러졌고, 할아버지는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을 찾아갔다. 할아버지는 대학병원이니까 병명이 뭔지 알 수 있을 거라며 뭔가 속 시원한 답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내가 물었다.
“병명을 알면 내가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거예요?”
순간 할아버지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다행히 담임선생님과는 그 눈빛이 달랐다.
“죽기는 네가 왜 죽어? 그런 이상한 소리 하지 마!”
그러나 할아버지의 기대와 달리 대학병원도 마찬가지였다. 그 어떤 의사 선생님도 나의 병명을 찾아주지 못했다. 기껏해야 영양실조, 스트레스 장애, 심리적 문제 등을 언급했을 뿐이었다. 이상한 것은 누구도 병명을 모른다고는 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마도 모른다고 하면 체면에 금이 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나는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으나 의사 선생님들은 병명을 찾아내지 못했다. 병명이 없다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었지만, 죽을 만큼 힘든데도 병명이 없다는 것은 죽음을 선고받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치료법이 없으니, 병명조차도 모르는 거라고 믿었다.
그래도, 그래도 병명을 알고 싶어 나 스스로 하나하나 꼼꼼히 진단했다. 먼저 영양실조에 관해 진단했다. 입맛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다. 밥보다 과자를 더 많이 먹으니, 영양이 부족할밖에. 두 번째 스트레스 장애에 관해 진단했다. 이 스트레스 장애의 원인은 가정이었다. 특히, 아빠였다. 아빠를 포기한 지 이미 오래됐다. 이미 오래됐으니 내게는 스트레스가 장애가 없는지도 모른다. 아니, 나는 내게 놓인 상황을 애써 외면하고 있으나 그 상황이 내 생각과 달리 내 몸 어딘가에 장애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모른다. 마지막으로 심리적 문제에 관해 진단했다. 이것 또한 내 심리상태가 어떤지 나는 알 수 없다. 벌써 6개월째 심리상담 선생님과 상담하고 있으나 그 선생님도 특별한 해결책을 주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엔 내가 심리상담 선생님에게 나도 내 병을 알고 싶다고 말하자 좀 더 찾아보자고만 했다. 그래서 난 이렇게 말했다.
“전 어쩌면 이상한 나라에서 살고 있는지도 몰라요.”
나는 참 이상한 집안에서 산다. 그래서 내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아닐까 하고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산다. 정확히 말하자면 할아버지가 내 보호자다. 지금 할머니가 친할머니가 아니란 걸 알게 된 건 초등 4학년 때다. 친할머니가 아니라서 그런지 할머니는 내게 특별히 관심이 없었다. 내가 아프거나 밥을 먹지 않아도 뭐라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오히려 서로에게 관심 없이 지내는 게 편했다. 아빠가 내 또래였을 때 할아버지는 친할머니와 이혼하고 지금 할머니와 재혼했다고 했다. 재혼도 유전이 되는 건지, 내가 여섯 살 때 아빠도 엄마와 이혼하고 재혼했다. 그날 이후 난 할아버지와 살았다. 아빠가 말은 하지 않았으나, 새엄마라는 사람이 우리와 함께 사는 걸 원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아빠와 새엄마는 내가 사는 이 도시의 하늘 밑에서 자기들의 아이를 낳아 셋이 살고 있고, 나와 오빠는 할아버지 집에서 사는 것이다. 새엄마가 나에게서 아빠를 빼앗은 것이다. 돈보다 더 귀한 걸 빼앗았는데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아빠는 웬만해선 자기가 먼저 나와 오빠를 찾지 않았다. 그래서 난 아빠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집안이다. 사실 집안도 이상하고 집 안도 이상하다.
내가 집안과 집 안의 서로 다른 숨은 뜻을 명확하게 구분하게 된 건 담임선생님 때문이다. 내가 시장 한복판에 있는 선인장 모텔 옆 작은 건물 3층에서 산다고 하자 집안 상황만큼이나 집 안 환경도 위험할 것 같다고 했다. 집안 상황만큼이라니! 그렇다면 담임선생님도 내 처지를 알고 있었던 거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으나 집 안 환경이 위험할 것 같다는 담임선생님의 말은 공감할 수 있었다. 나에게 관심 없는 할머니도 이상하지만, 함께 사는 오빠도 이상하기 때문이다. 오빠는 1년 전부터 내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전엔 가끔 심부름시키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쥐어박기라도 하더니 이젠 눈에 거슬려도 때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오빠는 나를 인형 취급한다. 사실 오빠는 친구 이외엔 누구와도 말하지 않는다. 자기 친구와 이야기할 땐 의외로 웃는 얼굴도 봤었다. 결국, 이상한 집안과 위험한 집 안이 내 머릿속에 병을 만들었을 거다. 이처럼 병의 원인은 많았다. 또한, 내 머릿속은 그만큼 복잡했다. 그런데도 담임선생님은 위험할 거라는 말만 하고는 더 묻지 않았다. 도와주겠다는 말은 고사하고 위험하니 벗어나란 말도, 도무지 벗어날 방법이 없으니 그냥 주저앉아 함몰하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이 내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 것처럼 의사 선생님들도 병명이 정확하지 않으면 치료하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지금 심리상담 이외엔 어떤 치료도 하지 않고 있다. 감기에 걸리면 감기약을 먹고 소화가 되지 않으면 소화제를 먹는 게 전부다. 어쩌면 담임선생님이나 의사 선생님들은 목적 없이 시간을 기다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병명이 없으니 죽지 않고 산다면 언젠가는 내가 좀 더 클 것이고, 그다음엔 나 스스로 이러한 상황들을 다 이해하라는 것일 거다. 그게 아니면 이러한 상황들을 그냥 받아들이거나 무시하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간을 기다리는 게 담임선생님의 문제 해결 방법이고 의사 선생님들의 처방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시간이 과연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인가? 기다리는 동안 내가 죽으면 어쩌나!
사실 가장 이상한 건 나 자신이다. 코로나에 감염됐을 때 나는 결국 죽을 거라고 믿었다. 기저 질환자가 감염되면 위험하다고 했으니까, 드디어 때가 왔다고 믿었다. 하지만 독감처럼 아팠을 뿐 죽지는 않았다. 따지고 보면 의사 선생님들이 병명을 찾아내지 못했으니 나는 기저 질환자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죽지 않는 건가? 기분이 아주 묘했다. 마스크를 두 장 겹쳐 쓰고는 문득 내가 살 수도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꿈에서도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 자살을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 그리고 죽을 만큼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희망이다. 그것은 추운 겨울날 서리에 눌려 바닥에 누운 풀잎이 다시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골목 입구에 전통이란 간판을 내걸고 나름 단장은 했으나 오래되어 낡고 허름한 시장 골목, 골목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건물 3층, 그 3층에 내 방이 있다. 이 건물은 자기보다 높은 건물들로 에워싸여 있어 뭔가 짓눌린 느낌이다. 그나마 내 방 창문은 시장 골목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다. 할아버지는 건물 1층에서 식당을 운영한다. 이런 시장 골목에서 산다는 건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처럼 고립된 느낌이다. 친구 중 누군가가 일부러 찾아오지 않는다면 그 어떤 친구와도 마주칠 일이 없다. 그래서 좋을 때도 있지만, 이따금 비가 오거나 해서 시장 골목에 사람이 없으면 섬에 표류한 것만 같아 괜히 눈물이 나기도 한다. 그런 날은 엄마가 더 생각나서 그렇다. 하필 내가 가지고 있는 사진 속 엄마가 우산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내가 상상하며 그리워하며 또 원망하는 엄마는 나만큼이나 슬프다.
이런 나에게도 천사 같은 친구가 생겼다. 지지난달에 앞집 식당에 작은 강아지가 한 마리 들어왔다. 누군가는 하찮게 생각할지도 모르나 내게는 아주 소중한 친구였다. 흰둥이 푸들인데 식당 문밖에 자리를 잡고는 첫날부터 버젓이 주인행세를 했다. 기특하게도 자기가 할 일을 정확하게 이해했다. 꼬리를 흔들며 가게에 오는 손님을 마중하고 가는 손님을 배웅했다.
처음 녀석과 마주쳤을 때 녀석은 내가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대번에 알아봤다. 보통 강아지들은 나를 보면 못 볼 걸 본 듯 슬금슬금 우회하거나 만만하게 보고는 멍멍 짖는데 녀석은 그러지 않았다. 멍하니 바라만 봤다. 어쩌면 우리가 같은 편이라는 걸 알아봤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녀석도 마음속에 회색 눈꽃이 핀 거다. 회색 눈꽃! 내가 내 마음대로 정한 내 병명이다. 지난겨울 옥상에 올라갔다가 국화 화분에 내려앉은 눈꽃을 보았다. 메마른 국화 꽃송이가 하얗게 핀 거다. 그때 옥탑방 언니가 다가오더니 왜 눈꽃이 회색으로 보이느냐고 했다. 눈을 씻고 다시 쳐다봤다. 내 눈에도 회색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내 병명이 되었다.
비록 강아지이지만 초면에 병명을 들키자 싫었다. 그래서 그렇게 보지 말라며 고개를 젓자, 순간 녀석이 쪼그리고 앉더니 눈을 감았다. 녀석도 내가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걸 알아본 게 분명했다. 그러더니 이튿날 아침 녀석이 나를 보더니 꼬리를 반갑게 흔들었다. 내가 뭔가 불안해 보이니까 녀석이 나를 위로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면 자기도 아프니까 친구 하자고 그러는 건지도 몰랐다. 그 모습이 왠지 짠했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는 그렇게 친구가 됐다. 나는 내 병명을 알아본 녀석의 신통력을 높이 샀다. 기꺼이 녀석을 박사라고 불렀다. 주인 할머니도 박사가 좋다고 했다. 내 병을 유일하게 알아봤으니까, 박사라는 이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박사라고 부르자 좋아했다. 그 이후 박사는 나를 보면 항상 반갑게 꼬리를 흔들었다. 그 어떤 가게 손님보다 훨씬 더 살갑게 반겼다.
내 처지에서 박사에게 마음을 준 건 내게 어떤 것도 질문하지 않아서였다. 의사 선생님들은 대답하기 곤란한 것을 계속 물었지만, 박사는 그 무엇도 묻지 않았다. 묻지 않고도 나를 치료했다. 나는 확실히 좋아졌다. 심리상담 선생님이 그런 나를 알아보고 처음으로 칭찬했다. 표정이 한결 좋아진 것 같아서 보기 좋다고 했다. 모든 게 다 박사 덕분이었다. 그날 상담을 끝내고 집에 와서는 오랜만에 거울 속의 나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내 얼굴이 칭찬받을 만큼 좋아진 게 분명했다. 박사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에 나는 안 되는 건지, 어느 날 박사가 나를 반기지 않았다. 주인 할머니가 박사를 보며 어디가 아픈 모양이라고 했다. 박사에게 어디가 아픈 거냐고 물었으나 인상만 쓸 뿐 대답하지 않았다. 처음 내 병명을 알아봤을 때 녀석도 나처럼 아프다고 예상은 했으나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게 꼬리가 있다면 꼬리라도 흔들겠지만. 고민 끝에 마음이 아픈 거냐고 물었다. 너도 회색 눈꽃이 핀 거냐고 물었다. 그러다가 몹시 난감했다. 내가 의사 선생님처럼 대답하기 어려운 걸 박사에게 물었던 거다. 난 묻지 않고는 박사의 상태를 알 수 없었다. 그냥 등을 쓰다듬자, 박사가 눈을 감았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고 확신했다. 그렇게 박사 옆에 앉아있다가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박사가 혹시라도 주인 할머니의 비밀을 알게 된 건 아닐까 싶었던 거다. 주인 할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이 하필 보신탕집이었다. 박사가 그걸 알게 됐다면 나보다 더 심각한 병에 걸릴 수 있었다. 그 이후 힘없이 누워있는 박사를 보면 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누군가의 비밀을 안다는 건 슬픈 일이다. 박사 처지에선 주인 할머니의 비밀을 알았으니 슬픈 일이었다. 내가 아빠의 비밀을 알았을 때 나도 가슴이 아팠었다.
아빠가 재혼하고 내가 할아버지와 살게 됐을 때, 당시 여섯 살이었던 나는 아빠에게 왜 함께 살 수 없냐고 물었다. 아빠는 당분간만 떨어져 살면 다시 함께 살 수 있다며 나를 달랬다. 어린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일주일, 그러고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할아버지에게 엄마가 보고 싶다고 말하자, 엄마는 도망갔다고 했다. 그러니 찾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 말도 믿었다. 또 많은 시간이 흘렀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동안 아빠는 며칠만, 한 달만, 일 년만 기다려달라며 계속 거짓말을 해왔다. 뻔뻔하게도 어른이, 그것도 아빠가 어린 딸을 거짓말로 속였던 거다. 언젠가부터는 아빠와 함께 산다는 희망도 없었다. 그러다가 내가 아빠의 비밀을 알게 된 건 작년이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나누는 이야기를 우연히 엿들었다. 그날은 할머니가 술에 취했는지 언성을 높였다. 대뜸 제 자식들도 버린 나쁜 놈이라며 아빠를 욕했다. 그러더니 아빠가 새엄마와 결혼하기 위해 엄마를 궁지에 몰아넣고는 내쫓았다고 했다.
내 마음에 핀 회색 눈꽃이 단단하게 얼어붙었다. 내 기억에 나는 무려 9년 동안이나 엄마를 원망하며 살았다. 나와 오빠를 버리고 도망가서는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다며 미워했다. 그 미움 때문에 내 몸에 어떤 병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집을 나간 건 내가 다섯 살 때였으므로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언제나 안개 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뚜렷하지 않았다. 사진마저 없었다면 엄마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누구도 엄마에 관해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어쩌면 나보다 두 살 많은 오빠는 엄마를 또렷하게 기억할 텐데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아빠의 비밀을 알게 된 이후 더는 아빠를 믿을 수가 없어 그날 이후 아빠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빠는 아무렇지도 않은지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벌써 10개월째다. 그 10개월 동안 누구도 기억하지 않았던 내 생일이 있었고 아빠가 없는 명절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아빠를 포기하자고 마음먹고 나니 다 괜찮았다. 하지만 걱정되는 게 있었다. 이러다가 내가 죽었을 때 아빠가 오지 않을까 봐 고민됐다. 아빠가 오지 않아도 나는 괜찮지만, 할아버지는 괜찮지 않을 것 같아서다. 할아버지가 힘든 건 싫다. 비록 할아버지가 엄마에 관해 내게 거짓말을 했으나 지금 내게 애정을 주는 건 할아버지뿐이다. 내게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보고 병원에 데리고 다니는 것도 할아버지뿐이다. 나와 상관없이 할아버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박사가 일주일째 아팠다. 아무래도 주인 할머니의 비밀을 아는 게 틀림없었다. 주인 할머니에게 박사가 비밀을 알게 된 것 같다며 다른 곳으로 보내 달라고 하자 강아지가 그런 걸 어떻게 알겠냐며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박사 탈출 계획을 세웠다. 우선 먼저 박사를 데리고 있어 줄 사람을 찾았다. 맡아줄 사람만 있다면 내가 박사를 도둑질할 생각이었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몇몇 친구들에게 부탁하자 모두가 의아하게 나를 쳐다봤다. 뜻밖이라는 표정이었다. 모든 일에 시큰둥했던 내가 열의를 보이자 무슨 일인가 싶어 그런 것 같았다. 내가 다시 부탁하자 도둑질한 강아지는 맡아 줄 수가 없다고 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병든 강아지를 누가 맡아주겠냐며 아예 마음 쓰지 말라고 했다. 여기저기 수소문했으나 내 편도 박사 편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보신탕집으로 들어서던 어떤 아저씨가 시무룩한 박사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녀석이 처음엔 꼬리를 흔들더니, 이젠 이 골목이 갑갑한가 보네.”
아! 그런 거였구나. 나처럼 섬에 갇힌 느낌이었구나. 나는 고민 끝에 산책을 생각해 냈다. 박사가 시장 골목을 벗어나면 상태가 좋아질 것 같아서였다. 산책길을 탐색한 후 주인 할머니에게 이야기하자 좋다고 했다. 박사를 안고 시장 골목 저 끝을 바라봤다. 쿵쾅쿵쾅 까닭 없이 괜히 내 심장이 더 신났다. 오랜만에 가슴이 설렜다. 순대볶음 골목, 통닭 골목, 난전 골목을 쭉쭉 빠져나가자, 큰길이 나왔다. 큰길을 건넌 후 하상 주차장으로 내려서서 한내천 산책길을 걸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박사를 길 위에 내려놓았다. 하지만 박사는 쭈뼛거릴 뿐 걸으려고 하지 않았다. 걸을 힘이 없는 건지, 이 길이 낯선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힘이 없고 길이 낯선 건 나도 마찬가지였으나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은 기분 좋았다. 다시 박사를 안고 걸었다.
주차장을 벗어나자, 왼쪽엔 핑크뮬리 꽃밭이 있었고 오른쪽 하천가엔 버드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었다. 바람이 불자 핑크뮬리 꽃대가 살랑거렸다. 흘러가는 물을 내려다보던 버드나무 가지도 한들거렸다. 또 저쪽에선 목이 긴 새가 물속을 빤히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저 새는 나와 달리 혼자서도 우아해 보였다. 그때 저 앞쪽에 할머니가 나타났다. 키 크고 날씬한 할머니는 예순을 넘긴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예쁘고 젊었다. 나를 보고 놀랐는지 제자리에 멈춰서서 다가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두어 걸음 앞까지 다가가자, 웬일이냐고 물었다. 박사가 아파서 산책 나왔다고 하자 빙그레 웃더니 잘 생각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 그렇게 사는 거야.”
그러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 지나쳐 갔다. 역시 할머니는 내게 관심이 없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거라는 말이 다시 귓가에 울렸다. 할머니도 지금의 내 모습이 보기 좋은 모양이었다. 다시 길을 걷다가 생각해 보니 언젠가 할머니가 나에게 산책하지 않겠냐고 물었었다. 그러고 보면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닌 모양이었다. 만약 그때 내가 산책을 시작했다면 지금 나는 좋았을까? 아프지 않았을까?
박사가 낑낑거리며 몸을 되틀었다. 길 위에 내려놓자, 한 발 걷고는 머뭇머뭇하다가 또 한 발 걸었다. 그러더니 기운이 나는지 여기저기 냄새를 맡으며 제법 빠르게 걸었다. 박사도 이 바람이 좋은 모양이었다. 나오기를 진짜 잘했다. 나 같은 사람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니 놀라운 사실이었다. 하지만 다시 시장 골목으로 돌아와 가게 앞에 내려놓았을 때 고개를 숙이고 누워버렸다.
이튿날 방과 후에 박사에게 다가가자, 나를 보며 애원하듯 낑낑거렸다. 그 눈빛이 다시 산책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기꺼이 박사를 안고 시장 골목을 빠져나가 한내천 산책길 위에 섰다. 박사는 길 위에 내려놓자마자 앞으로 달려 나갔다. 박사도 좋고 나도 좋았다. 이렇게 좋은 걸, 나는 왜 이제야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됐을까? 우리의 산책은 일주일째 계속됐다. 날마다 조금씩 더 멀리 걸었다. 놀라운 건 그 만큼씩 살 수 있다는 희망도 커졌다. 그러다가 그만 내가 침대 위에서 주저앉았다. 일어날 수 없었다. 산책하느라 무리한 모양이었다. 병원에 가서 영양제 주사를 맞았다. 입맛이 돌아오지 않은 탓으로 과자만 먹고 밥을 먹지 않아서 시도 때도 없이 쓰러지는 것 같았다. 병원에서 나와 시장 골목으로 들어서자 저만치 앞에서 박사가 반겼다. 그 모습이 빨리 산책하러 가자는 모양새였다. 가까이 다가가 기운이 없어 미안하다고 말하자, 표정이 좋지 않았다. 돌아서서 집으로 올라가 창밖으로 박사를 내려다봤다. 박사도 저 밑에서 나를 올려다봤다. 못 본 척 침대 위에 누워 잠들었다. 눈이 자꾸 감기는 걸 보면 아무래도 주사약에 수면제를 탄 모양이었다. 이렇게라도 잠을 자면 가끔은 몸이 가벼워지기도 했다.
다시 날이 밝고 창밖을 내다봤다. 박사가 어제 그 모습 그대로 내 방 창문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밤새워 저러고 있지는 않았을 것 같았지만 박사가 걱정됐다. 그렇다고 내려가서 박사를 안아줄 기운은 없었다. 간신히 일어나 할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죽을 먹고 약을 먹고 다시 누웠다. 자꾸만 잠이 쏟아졌다. 이대로 영영 잠들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잠결에 창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밖을 내다보자 벌써 시장 골목에 어둠이 찾아오고 있었다. 보신탕집 앞에 차가 한 대 서있었고 그 옆에서 주인 할머니와 어떤 아줌마가 싸우고 있었다. 이 좁은 골목에 차를 끌고 들어오다니! 그것 때문에 주인 할머니가 화를 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박사가 보이지 않았다. 박사가 있을 자리에 차가 버젓이 서 있는 것이었다. 순간, 끔찍한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털썩 주저앉았다. 정신을 차리고 간신히 일어나기는 했으나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내려갈 수 없었다. 다시 창밖을 내다봤다. 어디에서도 박사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창문 앞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다가 또다시 주저앉아 잠들었다.
모든 게 꿈이겠지!
눈을 뜨자 아침이었다. 지난밤 악몽을 꾼 것 같았으나 약발 덕분인지 몸이 가벼웠다. 창밖에 비가 내렸다.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섰을 때 보신탕집 주인 할머니가 문턱에 서서 박사 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박사를 찾았지만 없었다. 아, 꿈이 아니었나? 나와 텅 빈 박사 집을 번갈아 바라보던 주인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박사가 저 자리에 서서 네 방을 지켜보더라. 차가 와도 움직이지 않았던 거지. 네가 정말 좋았나 보다.”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주인 할머니는 잠시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좋은 곳에 갔을 테니 너무 슬퍼하지 말 거라. 그런데 비는 왜 이렇게 온다니.”
주인 할머니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더니 우산이 손에서 떨어져 나가 배를 보이며 바닥에 누웠다. 나는 등을 보이며 털썩 주저앉았다. 눈물이 쏟아졌다. 엉엉 울었다. 주인 할머니가 뛰어나왔다. 그때 집에서 나오던 오빠가 길바닥에 쓰러진 나를 보며 뛰어왔다. 내 손을 잡더니 돌아서서 할아버지를 부르자 할아버지도 뛰어나왔다. 그렇게 엉엉 울다가 잠들었다.
눈앞이 온통 뿌연 안개 속이었다. 안개 속에서 엄마가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엄마는 사진 속에서 보았던 옷을 입고 있었다. 나를 무릎 위에 눕히더니 자장가를 불러줬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라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나는 스르르 눈을 감고 잠들었다.
눈을 뜨자 엄마는 없고 오빠가 눈앞에 있었다. 내가 눈을 치켜뜨고 바라보자, 오빠는 아무 말도 없이 돌아섰다. 나를 보는 게 여전히 힘든 모양이었다. 1년 전 그날도 그랬다. 내가 오빠 방을 청소하다가 책상 서랍에서 핑크빛 여자 속옷을 발견했다. 그때 오빠가 방에 들어서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말을 못 하고 얼굴만 쳐다봤다. 오빠는 순식간에 내 손에서 여자 속옷을 빼앗더니 방에서 나갔다. 오빠는 그 이후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난 그렇게 충격받지 않았다. 언젠가 친구가 말하기를 자기 오빠가 집에서 자위행위를 하다가 식구들에게 들켰다고 했었다. 그때 나는 남학생들의 자위행위에 관해 알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한 충격은 이미 그때 다 받았다. 그러니까 나는 오빠가 가지고 있던 여자 속옷이 내 속옷만 아니면 괜찮았다. 난 핑크빛 속옷을 입은 적이 없으니 내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옥탑방에 사는 술집 언니들 속옷일지도 몰랐다. 언젠가 빨랫줄에 널어놓은 속옷이 없어졌다며 투덜대는 소리를 들었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나는 오빠에게 괜찮다고 했다. 나중에 어른이 됐을 때, 그러니까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을 때, 아빠처럼만 하지 않으면 무슨 짓을 해도 다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오빠밖에 없으니 무슨 말이든 하라고 했다. 하지만 오빠는 1년 넘게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오빠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거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를 걱정하는 오빠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괜히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오빠를 되찾은 기분이었다. 어쩌면 엄마가 오빠 꿈속에도 나타난 모양이었다.
그때 뜻밖에도 반갑지 않은 손님이 병실로 들어섰다. 아빠가 깨어있는 나를 보고는 한순간 반가운 얼굴을 하더니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너! 아빠가 죽기라도 한 것처럼 서럽게 울었다던데, 그까짓 강아지가 죽었다고 그렇게 서럽게 운 거냐?”
먼저 괜찮냐고 물어줬으면 좋았을 것을! 10개월간 아무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나타나서는 왜 저렇게 말하는 걸까? 그런데 난 아빠가 죽으면 그렇게 서럽게 울까? 웃는 아빠 얼굴에 똑바로 저항하며 말했다.
“그러니까요. 그까짓 강아지도 저와 산책을 해줬어요. 아빠는 꿈도 꾸지 않는 걸 해줬다고요.”
아빠가 당황했는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내 얼굴을 쳐다만 봤다. 그 눈빛에 반항하며 내가 물었다.
“그리고 아빠가 죽으면 내가 그렇게까지 서럽게 울까요?”
나는 내 속마음을 속 시원하게 보여줬지만,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할아버지가 옆에서 꾸짖듯 말했다.
“아빠에게 그게 무슨 말이야!”
파르르 떨리던 입술이 한 번 더 힘을 냈다.
“할아버지도 나빠요. 왜 엄마를 지켜주지 않았어요?”
“엄마는 도망…….”
그 순간 옆에서 오빠가 할아버지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내 기억에 오빠가 어른들에게 소리친 건 처음이었다.
“아니, 엄마는 도망가지 않았어요. 저는 다 기억하고 있다고요.”
오빠는 그렇게만 말하고는 병실에서 뛰쳐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순간 엄마와 박사가 떠올라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오려고 했다. 눈물을 막듯 두 눈을 꼭 감고 쓰러져 다시 자는 척했다. 간호사가 뛰어와 흔들었으나 눈을 뜨지 않았다. 이대로 죽고 싶었다. 잠이라는 건 내게 죽는 연습 같은 거였다. 이젠 연습 말고 영원히 잠들고 싶었으나 눈은 또 떠졌다. 할머니가 내 이름을 불렀다. 의외로 병실엔 할머니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할머니가 괜찮냐고 묻더니 아빠가 눈물을 흘리더라고 말했다. 믿기지 않아 내가 빤히 바라보자, 아빠가 잘못했다며 미안하다는 말도, 바쁜 일 때문에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말도 전해달라더라고 했다.
나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고개를 돌렸다. 믿기지 않으면서도 괜히 또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할머니가 등 뒤에서 말했다.
“네 오빠는 이틀이나 학교에 빠졌어. 네 걱정 많이 하더라.”
가기 싫다는 오빠를 아빠가 데려갔다고 했다. 또 할아버지는 장사 때문에 갔다고 했다. 그리고 믿기 어려운 말을 덧붙였다.
“있잖니, 네가 사는 게 힘든 건 나도 알 것 같구나. 하지만 나도 이렇게 살지 않니. 그러니 너도 어떻게든 살아라.”
내가 다시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할머니는 속에 있는 말을 내뱉었다.
“사람들이 그러더라, 내가 나쁜 년이라고!”
뜻밖의 말이었다. 할머니가 또 말했다.
“특히, 네 아빠는 내가 자기 엄마를 내쫓은 줄 알고 욕을 했지.”
당시, 할머니는 삼촌을 임신한 상태였다고 했다. 유부남의 아이를 가졌으니 잘한 건 없지만, 친할머니의 자리를 빼앗을 생각은 절대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떠나겠다고 하자 할아버지가 임신한 자기를 때렸단다. 할머니는 무서워서 도망갈 수가 없었다고 했다. 결국, 아이를 지키기 위해 할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했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때렸다는 말은 사실일지 몰랐다. 할아버지가 평소에 폭력을 일삼는 것은 아니지만 나와 오빠도 맞은 적이 있었다. 엉엉 울면서 엄마를 찾아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을 때 뺨을 맞았었다. 할머니는 아빠 이야기도 했다. 그때 중학생이었던 아빠가 자기 엄마를 내쫓았다며 날마다 욕을 했다고 했다. 여기까지 이야기한 할머니는 감정이 격해졌는지 아빠를 욕했다.
“그래 놓고는 자기도 커서는 똑같은 짓을 하더라.”
할머니는 이렇게 말해놓고는 아차 싶은지 내 눈치를 살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도 알고 있지? 네 아빠가 네 엄마 내쫓은 거?”
“네, 작년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누는 이야기를 우연히 엿들었어요. 죄송해요.”
“그랬구나. 하여간 네 아빠가 네 엄마를 얼마나 때렸는지, 마치 괴물 같더라.”
깜짝 놀랐다. 아빠가 엄마를 때렸다는 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할머니가 또 말했다.
“얼마나 무섭게 때렸으면 엄마가 너희들을 한 번도 찾아오지 않겠냐! 떠나는 날 나를 찾아와서는 너희를 잘 부탁한다며 신신당부하는데, 얼마나 맞았는지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더라.”
순간 숨이 꽉 막혔다. 본능적으로 숨을 쉬려고 컥컥거렸다. 할머니가 왜 그러냐며 허둥지둥 간호사를 불렀다. 난 또 기절하듯 잠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다시 눈을 떴을 때 아무도 없었다. 저절로 눈물이 났다. 찾아오지 않는 엄마를 원망했던 내가 미웠다. 아빠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그때 할머니가 병실로 들어왔다. 울고 있는 나를 보더니 괜한 말을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또 이렇게 말했다.
“네 엄마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앞으론 너에게 잘하마.”
할머니는 그동안 아빠 때문에 얼마나 속상했는지 그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마구 쏟아냈다.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난 불쌍한 엄마가 보고 싶을 뿐이었다. 원망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얼마 후 동조할 수는 없지만, 할머니는 나와 자기 신세가 비슷하다고 했다. 이 집안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게 그렇다고 했다. 그러다가 별안간 나보고 어떻게든 살아보라고 했다. 또 내게 이렇게 제안했다.
“너! 강아지 키워 볼래?”
나는 절대 강아지를 키울 수 없었다. 그것보다 할머니가 나를 정상이라고 생각하는지가 궁금했다. 강아지 이야기는 못 들은 척했다.
“잠깐만요! 사람들이 나를 보고 이상하다고 하는 건 정상이 아니라는 뜻인가요?”
“별안간 그게 무슨 말이니?”
“우리 집안은 이상하잖아요. 저는 허구한 날 쓰러지고요.”
할머니는 생전 처음으로 어려운 질문을 받기라도 한 듯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내 질문의 의중을 파악이라도 하듯 골똘히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상하다고 하는 건 보통과 좀 다르다는 거겠지. 정상이 아니라는 건 아닐 거야.”
“보통과 다르다는 건 정상이 아니라는 거잖아요?”
“그렇게 따지면 세상 사람이 다 정상이 아니지. 네 눈에 이러고 사는 나는 보통 사람으로 보이니? 네 할아버지는? 네 아빠는?”
“그러면 우리 집안 사람들 모두 정상이 아닌가 봐요.”
할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또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다가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 넌 아니야. 넌 아파하니까, 넌 정상이야.”
“그게 무슨 뜻이에요?”
“넌 괴물이 아니란 뜻이야. 아프면서도 멀쩡한 척 사는 게 괴물이지. 나도 할아버지도 네 아빠도 말이야.”
“그럼, 다 아픈 거예요?”
할머니는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사람이 아프지 않고 어떻게 살 수 있겠냐고 했다. 그냥 아프지 않은 척 사는 거라고 했다. 아픈 모습을 보이면 사람들이 비웃으니까. 그러더니 별안간 울기 시작했다. 처음엔 눈물을 흘리더니 감정이 격해졌는지 흐느껴 울었다. 누워있는 내 허리춤에 머리를 박고 한참을 울었다. 나는 할머니의 거친 손을 잡고 가만히 있었다. 왠지 할머니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그렇게 흐느끼다가 감정을 추스른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너 말이야. 사는 게 좀 불편하더라도 아예 사라지면 안 돼! 알았지?”
“네.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이젠 할 일이 생겼거든요. 그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할머니가 나를 쳐다봤다. 어떡하든 엄마를 찾아갈 거라는 말은 아직 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가 말했다.
“그래, 네가 가끔 이렇게 병원에 입원하기는 하지만 병명은 없지 않니. 그러니까 넌 죽지 않아.”
“진짜 그럴까요?”
“물론이지. 넌 코로나도 이겨냈잖아.”
왜였을까? 나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할머니가 빙그레 웃더니 또다시 강아지를 키워 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꼬리를 흔들던 박사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핑 돌았다. 아무래도 사실을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아니요. 그럴 기운이 없어요. 박사는 내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예요. 내가 기운이 없어서 산책하러 못 갔거든요.”
“그럼, 너! 기운부터 차려야겠다. 자 일단 벌떡 일어나!”

첫댓글 한 달에 한 번은 소설 한 편 올리려고 노력중인데 ㆍ이렇게 마지막 날 올렸네요ㆍㅋㆍㅋ
'회색 눈꽃'이 소녀의 알 수 없는 병명이군요.ㅎ
그렇지요. 몸이든 마음이든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라구요.
다 견디면서 안 아픈 척하면서 살고 있을 뿐이겠지요.
해피엔딩! 절망은 없다!!
곧 회색 눈꽃이 희망찬 하얀 눈꽃으로 변할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그래도 ㆍ그래도 사람만이 희망이 되어야 겠습니다ㆍ하얀눈꽃 기다려 봅니다ㆍ감사합니다ㆍ
재밌게 읽었어요.
한 달에 한 편이 버거울 수도 있는데 쓰는 사람은 쓰나 보더라고요.
마음 먹기 나름인가 봐요.
네ㆍ잘 쓰는 글이 뭔지 ㆍ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ㆍ문봄 덕분입니다ㆍ감사합니다
요즘 부모가 분명 있는데도 할아버지 할머니와 사는 아이들이 있어요. 이 아이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잘 읽었어요.
네ㆍ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ㆍ고등학생이 됐을 텐데 ㆍ별일 없을 거예요ㆍ
재미 있습니다. 꽤 오랫동안 먹먹합니다.
다름을 비정상으로 받아들이는 이상한 세상.
차라리 심리적 병이길,
희망의 싹을 틔워준 결말도 좋았어요.
아무래도 심리적이겠지요ㆍ그래도 아이가 밥을 잘 안 먹어서 걱정이었어요ㆍ중학교 졸업하고 6개월 보지 못했네요ㆍ연락 한 번 해봐야 겠어요
흥미진진하게 단순에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는 대학 다닐 때, 충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당선되어 지방신문에 연재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혼하면서 절필했지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절필을 하셨을까요?
다시 써 보셔도 좋겠습니다
현대의학에서 병명을 질러가기란 어려운 일인데, 안타깝군요. 아마도 자라온 환경이 문제가 아닌가 싶군요. 그 소녀, 지금은 행복했으면 싶습니다. 고양이든 강아지를 키우며.. 잘 읽었습니다. 신작가님.
지금은 고 3인데 ㆍ여전히 힘든 모양입니다ㆍ좋아지겠지요ㆍ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