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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blog.naver.com/angol-jong
□ 때 : 2024. 10. 27(일)
□ 곳 : 늘재~밤티재~문장대~신선대~천왕봉~피앗재~삼형제봉~갈령 삼거리
□ 낙동산악회, 백두대간 19기 22구간
□ 참여 : 모두 24명
□ 날씨 : 구름
□ 길 : 바윗길+푸석돌길+플라스틱 널빤지 계단+흙길
□ 걷는 데 걸린 시간 : 2024. 10. 27(일) 02:41~14:24(11시간 43분, 쉰 시간 포함)
□ 간추린 발자취(제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 02:41 늘재(380m) 나섬
○ 03:40 697.1m-(‘준희’)
○ 04:13 밤티재
○ 07:23 헬기장
○ 07:29~07:35 문장대(1028m-‘김형수’, 1054m-‘푯말’), 머묾.
○ 07:37 ‘문장대’ 푯돌
○ 07:39~08:01 아침밥
○ 08:28~08:33 신선대 매점. 머묾
○ 08:35 「법주사 · 경업대」 갈림길
○ 09:08~09:12 플라스틱 널빤지 계단, ※ 커피 마심
○ 09:21 「천왕석문」
○ 09:30 「법주사」 갈림길
○ 09:36 「장각동」 갈림길
○ 09:47~09:54 천왕봉(1058m-‘푯돌’), 머묾.
○ 10:04 「도화리 · 형제봉 갈림길」, 「도화리 안부」
○ 10:18 아주 작은 봉우리
○ 11:41~11:54 아주 작은 봉우리, 머묾. ※ 과일 나눠 먹음.
○ 12:17~12:20 피앗재(614m), 「만수리 갈림길」, 머묾.
○ 13:08~13:16 형제봉(832m-‘푯돌’), 머묾.
○ 13:39~13:50 갈령 삼거리, 머묾.
○ 14:20 헬기장.
○ 14:24 갈령(葛嶺)(445m-‘푯돌’), 산행 끝.
당겨본 문장대
문장대에서 바라본 천왕봉
천황석문
당삽주
흔히 '창출' 이라고 한다
산부추
갈령
□ 줄거리(글쓴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2024. 10. 26(토) 23:40쯤 000 역을 떠난 버스는 거의 3시간을 달려 다음 날인 10. 27(일) 02:39 쯤 늘재에 이르렀다.
다들 차 안에서 미리 준비했기에 이내 늘재를 나섰다.(02:41)
늘재에서 거의 1시간 쯤 뒤 697.1m 봉우리(‘준·희’)에 닿았다.(03:40)
‘준·희’ 님은 나라 이곳저곳 수많은 산, 작은 봉우리에도 자신들이 만든 깃[리본]을 달아두어 많은 이들이 걷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697.1m 봉우리에서 33분쯤 뒤 밤티재에 내려섰다.(04:13)
밤티재에서 문장대 구간은 출입을 금지한 구간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규정을 위반하여 산으로 들어섰다.
이럴 때 마음이 편치 않다.
제 나라 백성이 제 나라 땅을 자유롭게 다닐 수 없는 얄궂은(?) 규정....
귀중한 자연을 보호하고자 하는 충심은 이해한다.
자연을 보호하자면 ‘금지’가 맞고, 인간이 자연에 안겨 또 다른 기쁨과 희망을 얻으려면 ‘해제’가 맞고...
이 둘 사이에 조화로운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백두대간을 걸을 때마다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과제다.
밤티재에서 문장대 아래 헬기장까지 구간에는 바위+밧줄 구간이 많이 있다.
그 가운데 까다로운 서너 군데를 지난다.
다른 구간도 그렇지만, 특히 까다로운 구간은 혼자서 지나가려면 아주 힘들 것이다.
대원들 모두가 합심하여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고, 등 가방[배낭]을 벗어 앞선 대원이 받아주고, 뒤에 오는 분이 밀어 올려주는 ‘협업’과 서로에 대한 관심과 보살핌이 큰 힘이 된다.
다른 험한 산도 이렇듯 관심과 보살핌, 배려가 중요하지만 특히 백두대간 길에서는 특히 중요하다.
우리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겨 천천히 움직였다.
마지막 좁은 구간을 지나 산등성(이)에 올라섰더니 동쪽 구름 사이로 이미 해가 솟았다.
발빠른 대원들은 이미 문장대에 올라서 있었다.
당겨 사진을 찍었으나 사람을 식별할 수준은 아니었다.
밤티재에서 무려 3시간 10분쯤 뒤 헬기장에 닿았다.(07:23)
구름이 없었다면 찬란한 해를 맞이할 수 있었을 것인데 조금 아쉬웠다.
구름이 끼었어도 비가 내리지 않은 것만도 감지덕지해야 할 일이다.
헬기장에서 6분쯤 뒤 문장대에 올라섰다.
독특하고 멋진 통바위다.
문장대에서는 360도 사방에 펼쳐진 산봉우리들을 볼 수 있다.
날씨가 맑고, 눈썰미 좋고 산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다소곳이 솟은 봉우리 이름들을 다 꿰고 있겠지만 나는 그런 수준까지는 아니다.
늘재 위 청화산, 조항산, 대야산 정도까지만 어림짐작했다.
6분쯤 머문 뒤 문장대를 나서(07:35) 가파른 계단을 내려서 이내 ‘문장대’ 푯돌 두 개가 서 있는 곳에 닿았다.(07:37)
“문장대는 본래 구름 속에 감추어져 있다 하여 운장대(雲藏臺)라 불리었으나, 조선 7대 임금인 세조가 속리산에 행차하였을 때 이곳에 올라 신하들과 강론을 하고 시를 mfv‘ㅅ다고 하여 문장대(文藏臺)라고 바뀌었다고 한다.”《여기까지 문장대 푯말에서 따옴》
조카 단종을 내쫓고 왕위에 올랐던 세조.
옛날에는 지금처럼 쇠사다리도 없었을 터인데, 어떻게 문장대에 올랐을까?
신통한 도력(道力)이 있었다고 믿어야 할까?...
어차피 정사(正史)는 아닐 터이니 ’설화‘(說話)로 이해하면 어떨까 싶다.
종교와 마찬가지로 신화, 설화에 과학적인 잣대를 들이대서는 재미없다고 생각한다.
문장대 높이는 기록마다 다르다.
1028m(‘김형수’), 1056m(‘푯말’)로 28m 차이가 있다.
사진 두어 장을 찍고 조금 아래, 화장실이 있는 곳에 닿았다.(07:39)
앞선 대원들이 아침밥을 먹고 있었다.
나도 아침밥을 먹었다.
화장실 옆에서 밥을 먹는 일. 보통이라면 꺼렸겠지만, 특수한 상황이었으니 장소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괜찮은 곳은 신선대 매정이 있는 곳인데, 그곳까지 가기에는 어중간하고, 또 그곳에 등산객들이 많이 몰려 있을 수도 있는 일...
아침밥을 치르고 화장실 있는 곳을 나섰다.(08:01)
길을 나섰더니 오른쪽 산등성(이)으로 천왕봉 쪽에서 문장대 쪽으로 걷고 있던 다른 무리 사람들이 “대간 길은 이곳으로 걸어야 한다...”고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면서 걸어갔다.
전에 나도 대간 길을 고집하여 그쪽 산등성(이)을 걷곤 했다.
화장실 있는 곳에서 27분쯤 뒤 신선대 매점 있는 곳에 닿았다.(08:28)
이곳에는 길 푯말과 ’신선대‘ 푯돌이 있다.
신선대는 여기서 천왕봉 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봉우리이다.
5분쯤 머문 뒤 신선대 매점을 나서(08:33) 2분쯤 뒤 「법주사 · 경업대」 갈림길에 닿았다.(08:35)
이 갈림길에서 33분쯤 뒤 플라스틱 널빤지 계단을 오르다가 미정 님이 “커피 한 잔 하고 가자...”고 하여 맛있는 커피를 마셨다.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커피를 마시고 길을 나서(09:12) 9분쯤 뒤 「천황석문」에 닿았다.(09:21)
일본 왕이 연상되어 부르는 것이 내키지 않는 이름이다.
석문에서 6분쯤 뒤 「장각동」 갈림길에 닿았다.(09:36)
왼쪽 헬기장을 거쳐 장각동으로 갈 수 있다.
이 갈림길에서 11분쯤 뒤 천왕봉(1058m-’푯돌‘)에 닿았다.
무쏘 꿈 · 승승장구 님이 월악산을 묻고 있었다.
날씨가 흐려 정확하게 보이지 않았다.
대야산으로 보이는 봉우리 뒤로 아주 흐릿하게 보였다.
무리 지어 사진도 찍고, 7분쯤 머문 뒤 천왕봉을 나서(09:54) 10분쯤 뒤 「도화리 · 형제봉 갈림길」에 닿았다.(10:04)
’안전 푯말‘에 「도화리 안부」 라 쓴 글이 있었다.
’안부‘는 “말, 나귀 따위의 등에 얹어서 사람이 타기에 편리하도록 만든 도구”《여기까지 표준 국어대사전에서 따옴》를 일컫는 말로, 산등성(이)이 잘록한 곳, 즉 ’잘루목‘을 뜻한다.
이 갈림길에서 14분쯤 뒤 작은 봉우리에 닿았고(10:18), 이 봉우리에서 23분쯤 뒤 다시 작은 봉우리에 닿아(11:41) 등 가방[배낭]에 든 과일을 나눠 먹었다.
맛있는 과일을 내준 대원들에게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13분쯤 머문 뒤 작은 봉우리를 나서(11:54) 23분쯤 뒤 피앗재(614m)에 닿았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1km쯤 내려서면 만수리로 갈 수 있다.
10년 전 2014년 8월 충북 알프스 구병산~신선대~형제봉~피앗재~만수동 구간을 걸었을 때 피앗재에서 만수리[만수동]로 내려선 적이 있다.
피앗재~천왕봉~문장대~관음봉~북가치~묘봉~상학봉~활목고개 구간 가운데 문장대~관음봉~북가치 구간은 출입 금지 구간이라 걷지 못했다.
규정을 준수해야 했으므로...
문장대~관음봉~북가치 구간은 출입 금지 구간이라 걷지 못했다.
반칙할 벗이 있었다면 무리해서라도 충북 알프스를 끝냈을 터인데...
3분쯤 머문 뒤 피앗재를 나서(12:20) 48분쯤 뒤 형제봉(832m-’푯돌‘)에 닿았다.
(13:08)
형제봉에 서면 천왕봉~비로봉~신선대~문장대를 잇는 속리산 산등성(이) 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 맛에 반했는지 형제봉은 내가 유난히 많이 올랐던 봉우리다.
10분쯤 머문 뒤 형제봉을 나서(13:16) 23분쯤 뒤 갈령 삼거리에 닿았따.(13:39)
간이 쉼터 같은 곳에 등 가방[배낭]을 벗어놓고 쉬었다.
그때까지 무겁게 지고 왔던 과일을 등 가방에서 꺼내 나눠주셨던 대원들에게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11분쯤 머문 뒤 갈령 삼거리를 나서(13:50) 30분쯤 뒤 간이 헬기장에 닿았다.(14:20)
헬기장에서 4분쯤 뒤 갈령에 닿아(14:24) 산행을 마쳤다.
속세를 떠나 어쩐지 불교적 느낌이 물씬 풍기는 속리산에서 나는 무엇을 얻었을까?
내면의 속살이 풍부한 우리 대원들께서는 많은 소득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도 정신 수양을 많이 하여 마음으로 느끼고 깨닫는 것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속리산에 상륙한 단풍 물결은 속리산 여기저기에 터를 잡아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마치 바위+밧줄 구간을 힘겹게(?) 오른 대원들에게 보상이라도 하듯이...
집행부 수고하셨고, 대원 여러분도 고생 많이 했습니다.
□ 그밖에
◎ 흘러가는 생각을 잠깐 붙들고...
피를 흘리며 우리를 열심히 따라왔던 개 한 마리
2008년 1월 낙동산악회 백두대간 5기 25구간을 걸을 때였다.
밤티재~문경대 구간을 생략하고, 당일치기로 문장대로 바로 갔다.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 시어동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문장대로 올라 신선대~천왕봉~피앗재~형제봉~갈령으로 내려왔다.
그때 속리산 일대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우리가 천왕봉에서 사진을 찍고 길을 나섰는데, 힌색 털이 있는 개 한 마리가 우리를 따라왔다.
대원 몇 사람이 빵조각 같은 것을 개에게 주었다.
그 개는 피가 묻어 있던 다리를 절며, 눈길에 미끄러지면서도 꾸준히 우리를 따라 걸었다.
처음에는 조금 따라오다 말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꾸준히 지치지 않고 따라왔다.
그때도, 지금도 그 개가 우리를 따라왔던 까닭을 알 수 없다.
어떤 사람이 그 개를 속리산에 데려왔다가 어쩌다가 주인과 개가 헤어졌고, 개는 주인을 찾으려 바위 구간을 헤매다 다쳤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개는 헤어진 주인을 찾을 일념으로 다리를 절뚝거리며 끈기 있게 우리를 따라 걸었을 것이다.
갈령 삼거리를 거쳐 갈령에 도착해서 보았더니 우리를 따라왔던 그 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갈령에서 자기가 살던 곳을 찾아 무사히 갔을까?
지금도 살아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믿지 않지만, “머리 검은 사람은 사람을 배신해도, 개는 배신하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눈밭 수 km를 아픈 다리를 절며 한 발 한 발 걸었던 그 개는 내 기억 솎에 또렷이 남아 있다.
2. 몹시 지쳐 바람 불어오는 곳에 퍼질러 앉아 쉬었던 날
내 블로그를 봤더니 2010. 8. 22(일) 낙동산악회 백두대간 9기 14구간 늘재~밤티재~바위+밧줄 구간~문장대~신선대~천왕봉~피앗재~형제봉~갈령 삼거리~비재 구간을 걸었다.
그날 날씨가 몹시 더웠다.
땀을 많이 흘리고 먹을거리도 목에 잘 넘어가지 않았다.
작은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약한 바람도 감지덕지하면서 퍼질러 앉아 쉬었다.
그렇게 쉬고 비재에 닿았다.
늘재에서 비재까지 12시간 23분 걸렸다.
쉬면서 온몸으로 느낀 그 달콤함이란...
맛으로 빗대면 ‘꿀맛’ 이란 이럴 때 빌려 쓴다고 해도 손색이 없이 적절한 말일 듯 싶었다.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모를 것이다.
지금도 그 ‘시원했던 바람’을 잊을 수 없다.
유난히 더웠던 올해, 7~8월을 피해 속리산 구간을 걸었으니 다행이었다.
첫댓글 '피를 흘리며 우리를 열심히 따라왔던 개 한 마리'에게 느껴지는 연민의 정이라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따듯하게 하는가를 곰곰히 되새김질하고 있습니다.
피 흘리는 하얀 강아지 미래를 어떻게 하겠습니까마는 수많은 시공의 공백에도 기억속에 또렸함이란, 자비심의 근간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늘 함께여서 고맙습니다.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대간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땀으로 얽켜있어 남다른 애정이 있습니다
11월 둘째주에 19기가 모여 저녁을 함께 하려고 합니다 공식 일정이 정해지면 초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큰 부상을 당하고도 주인을 찾아, 눈밭에 다리가 푹푹 빠지면서도 주인을 찾을 일념으로
대간 길 걷는 사람들을 결사적으로 따라 왔을 갸륵한 충성심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인간 세상에는 '배신'이 적지 않다고 하는데....
속리산 천왕봉에 갈 때마다 그 개 생각이 납니다.
같이하는 걸음이 대원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지 걱정하기도 합니다.
멋진 분들과 함께하는 대간 길. 즐겁고 행복합니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참가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길님이 아니셨다면 저멋진 머릿사진을 어떻게 찍었을까요
대단하십니다
한자 한자 흐트러짐 없이 여러 스토리를 들려 주시고
잼나게 읽었습니다
산행모습 담아 주시느라 너무 감사합니다
든든하니 함께 산행해주셔 집중산행 할수 있었어요
한구간 한구간 대간길 선배님으로써 존재자체 만으로 후광이 비추어 지십니다
사진 남여 주셔 다시한번 인사드려요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고, 멋지게 찍지 못해 미안합니다.
매번 쓸데없는 넋두리를 늘어놓아,
늘 바쁜 현대인들에게 불편과 귀찮게 하는 일은 없는지 주저하기도 합니다.
글이나 문자도 짧고 강렬한 표현을 좋아하는 세상에, 무미건조하고, 완전히 구닥다리 행세를 합니다.
알맹이는 찾을 수 없고, 쭉정이투성이인 이야기를 즐겁게 읽으셨다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내 발걸음이 다른 대원에게 폐가 되지 않는지 걱정입니다.
고맙습니다.
걷기 좋은 가을 날.
덕분에 여러 포즈 취해 보기도
하였고 옛 에피소드 잘 읽었습니다.
함께여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았고, 많지 않아 미안합니다.
빠른 걸음을 뒤쫓지 못해 벌어진 일입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19기 천왕봉 단체사진 정말 보기좋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뒤처져 걷다가 겨우 천왕봉에서 많은 대원들을 만나 건진 사진입니다.
산이랑 님이 워낙 빨리 걸어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매번 산행기록을 보며 감탄합니다.
풍부한 스토리텔링도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스토리만큼 풍성한 한길님의 삶을 엿봅니다.
천왕봉에서의 많은 단체사진도 고맙습니다.🥰
평소 생각합니다.
재미없고, 지극히 개인적인 넋두리 비슷한 이야기가 남에게 불편을 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
뭔가 끄적거리고, 걷고 또 걷는 것은 게으르고, 적당히 편안하고, 쉬운 길을 가고 싶은
달콤한 유혹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작은 몸부림이라고 할까요?
안일함을 탐하면 자꾸 더 쉽고, 편한 길을 찾지 않을까 하는 내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엄격함을 잃지 않으려는 태도가 남들에게 불편과 거리감을 주는 것도 알고 있기에
남들과 어울리는 노력을 하기는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이것도 쓸데없는 넋두리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