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324)빗나간 화살
암행어사가 한밤중에 영주 관아로 쳐들어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옥이다.
뒤따르던 사또와 육방관속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옥을 지키던 옥졸도 내보낸 뒤
창살을 사이에 두고 죄수 한사람 한사람을 면담했다.
모두가 창살에 매달려 하나같이 자신은 억울하다고 아우성인데, 두사람만 창살에
다가오지도 않고 구석에 쪼그려 앉아 얼굴을 두 무릎에 묻은 채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암행어사가 기이하게 여겨 자세히 보니 둘 다 댕기 머리에 덩치가 왜소하기 그지없었다.
옥졸을 불러 두사람을 동헌으로 데려오도록 명했다.
밝은 불빛 아래 드러낸 모습은 어린 머슴애들이었다.
“몇살이냐?” 암행어사가 물었다.
“열두살이요.”
“아홉살, 흑흑.”
형제가 울음을 멈추지 못하자 사또가 기막힌 사연을 풀어놓았다.
형제의 아버지는 병자호란 때 전사했다.
두 형제는 장차 군인이 돼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며 나무칼을 휘두르고 활을 만들어 쏘며
산과 들을 휘젓고 다녔다. 그날도 이들은 전쟁놀이를 하고 있었다. 물론 사람이 다칠세라
화살촉은 뭉툭했는데, 그때 마침 산자락 길을 지나던 말의 콧잔등에 화살이 맞았다.
놀란 말이 펄쩍 뛰는 바람에 말을 타고 가던 유 진사의 아들이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진사의 아들은 열세살로, 부러진 오른쪽 다리에 부목을 대고 집에 누워 있었다.
두 형제가 유 진사 집에 가서 싹싹 빌고, 그의 어머니도 하루도 빠짐없이 유 진사 집에 가서
머리를 조아렸지만 소용없었다. 쌕쌕 독을 쓰고 누워 있는 유 진사 아들의 주장은 딱 하나
활을 쏜 놈도 다리가 부러져야 한다는 것이다.
유 진사네는 천석꾼 부자에다 한양의 백형은 판서라 이 고을 사또도 유 진사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처지다.
두 형제의 어머니가 유 진사의 안방마님을 찾아 방에도 못 들어가고 처마 밑에 꿇어앉아 용서를 빌었지만
문도 열지 않은 채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라는 말뿐이었다.
사또가 이방을 유 진사에게 보내 두 형제 집안의 딱한 사정을 얘기하고 선처를 부탁했지만
호통만 듣고 돌아와 할 수 없이 감옥에 가두지 않을 수 없었다.
유 진사의 주장은
“살인을 한 자는 사형을 당해야 한다는 게 국법에 정해져 있으니 남을 다치게 한 자는 자신도
그만큼 다쳐야 하는 법!”이라며 다쳐 누운 아들의 주장과 한치도 다르지 않았다.
사또는 기가 막혔다.
두 형제를 불러
“누구 화살이 말을 맞혔느냐?”라고 사또가 물으니
형이 “제 화살이요” 대답하자
동생이 “아니에요, 제가 쏜 화살이 빗나가서 말을 맞혔어요!”라며
형제가 울면서 서로 자기가 쐈다고 다퉜다.
사또가 말했다.
“말을 맞힌 사람은 동헌 마당에서 형틀에 묶여 떡메로 무릎이 찧여 절름발이가 될 것이야.
누구 화살에 말이 맞았느냐?”
형제는 공포에 질려 대답했다.
“제가 쏜 화살이에요.”
“아니요, 제 화살이에요.”
초여름 밤, 동헌 마루 아래서 어린 두 형제는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있고, 여태 일어난 일을
얘기하던 사또는 눈시울을 붉히며 마루가 꺼질 듯이 한숨을 토했다.
자초지종을 알게 된 암행어사는 이방에게 두 형제의 어미를 데려오라 일렀다.
새파랗게 질린 두 형제의 어미가 이방을 따라와 암행어사 앞에 단정히 앉아 흩어진 머리를 매만졌다.
암행어사가 물었다.
“부인, 두 아들 중 하나는 절름발이가 되게 생겼소. 어느 아이의 화살이 말을 맞혔소?”
부인은 얼굴을 무릎에 묻은 채 어깨를 들썩이더니 고개를 들고 나지막이 말했다.
“동생입니다.”
암행어사가 흠칫 놀라
“어째서 동생이오?” 하고 묻자 한참 뜸을 들인 두 형제의 어미가 말하길
“제가 낳은 아이거든요.”
형제 중 맏이는 본처가 낳은 아이고 본처가 죽은 뒤 이 부인이 동생을 낳았으니 둘은 이복형제다.
“부인, 훌륭하오. 두 아들을 잘 키웠소.”
암행어사도 감격에 겨워 목이 메었다.
“사또는 잘 들으시오. 이 사건의 판결관은 주상께서 내려보낼 것이오. 그때까지 기다리시오.”
암행어사가 한양으로 올라간 후 임금님이 보낸 판관이 내려왔다.
놀랍게도 유 진사의 백형인 유 판서였다.
유 판서는 고향에 내려오자마자 벼락처럼 화를 내며 동생 유 진사의 뺨을 철썩 후려갈기자
퍼질러 앉아 “아이고, 아이고 내 팔자야~” 하며 손바닥으로 땅을 쳤다.
임금님의 명으로 판서 자리에서 파직을 당한 것이다.
곧이어 임금님이 보낸 말 한필에는 어린 두 형제가, 사인교 가마엔 어미가 타고 한양으로 갔다.
첫댓글 또 한주가 시작 가을이 너무 짧은
느낌이 들 정도로 조석으로는
쌀쌀해 금방 겨울이 올것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