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과 물리학] 20. 시간과 공간
- 추상적 관념이지만 물질처럼 변화무쌍 -
- ‘절대시공간 없다’ 상대성이론 출발점 -
사람들은 우주와 물질에 관해 얘기할 때 보통 시공간(時空間)은 생각지 않는다. 물리학자들도 아인슈타인이 나와서 상대성이론을 발표하기 전까지는 시공간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았다.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을 한데 묶어 시공간이라고 부르는데 일상적 경험의 세계에서 볼 때 시간과 공간은 서로 관련이 없고 물질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시간은 공간이 어떻게 되었던 아득한 과거에서부터 미래를 향하여 흘러가고 있고 시간을 측정하는 사람의 상태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동시성(同時性)도 의심없이 우주 어디에나 적용되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이순간 미국에 있는 내 아버지는 무얼하고 계실까? 누구도 이런 질문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의심하지 않는다. 이순간이라는 것이 나에게나 아버지에게나 또다른 누구에게나 다 똑같이 정의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다 똑같이 주어지고 흘러가며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상의 한점인 어떤 한 순간마저도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고 경험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시간과 마찬가지로 공간도 누구에게나 똑같이 보일것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나에게 100m인 거리는 다른 사람에게도 100m이며 물질과 상관없이 무한히 넓게 퍼져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일상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시공간은 물질이 있건 없건 무한히 펼쳐져 있는 관념적인 것이다. 공간이 비어 있어도 거기에서 공간의 길이를 생각할 수 있고 물질로 꽉 차 있어도 똑같은 길이를 생각할 수 있는 하나의 추상적인 관념이 시공간인 것처럼 보인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것처럼 보이는 시공간을 절대시공간이라고 부른다. 시공간은 길이를 잴 수 있다는 뜻에서 물리학적인 개념이지만 ‘사랑’이나 ‘슬픔’같은 비물리학적인 추상적 개념보다 더 추상적인 개념이 절대시공간의 개념이다.
사랑이나 슬픔은 물질처럼 존재를 느낄 수 있는 실체가 아니지만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슬픔과 기쁨을 느낌으로써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뜻에서 비록 추상적이긴 하지만 공허한 것은 아닌데 절대시공간은 물질에 아무런 영향을 주고 받지 않는다는 뜻에서 공허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무런 형체도 없고 물질과 영향을 주고 받지도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시공간이 형체도 있고 물질과 영향을 주고 받을뿐 아니라 물질처럼 태어나기도 하고 없어질 수도 있으며 자연을 바라보는 사람의 운동상태에 따라 시간이나 공간의 길이도 달라진다는 것을 밝힌 것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속담이 있는데 까마귀가 날고 배가 떨어졌다는 사건이 있다면 세가지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까마귀가 먼저 날고 그 다음 배가 떨어지는 것, 까마귀가 날고 배가 떨어지는 것이 동시에 일어난 것, 배가 먼저 떨어 지고 다음에 까마귀가 난 것 세가지 경우이다. 절대시공간의 개념이 옳다면 세가지 경우 중 하나만 옳겠지만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세가지 모두 옳다.
배나무 과수원의 동쪽 끝에 있던 까마귀가 날 때 서쪽 끝에 있는 배가 떨어지는 것을 과수원에 앉아 있는 사람이 보고서 “까마귀가 나는 것과 배가 떨어지는 것이 동시에 일어났다”고 주장한다면 분명이 그 사람에게는 동시에 일어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동쪽에서 서쪽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이 본다면 배가 먼저 떨어지고 까마귀가 나중에 날은 것처럼 보인다.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본다면 까마귀가 먼저 날고 배가 나중에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셋중에 누가 옳다는 법이 없다. 셋 다 옳다.
이렇게 하나의 사건에 대해 세가지 해석이 다 옳다는 것을 분석한 것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의 출발점이 된다. 절대시공간이 붕괴되고 시공간이 물질과 똑같은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상대성이론이 보여준다.
시공간은 정말 공(空)한 것처럼 보이므로 무색이라 할 수 있으나 그것은 물질과 똑같은 의미를 갖는다.
김성구 <이화여대 교수.물리학>
[출처 : 부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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