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창고
ks. kim.
봄은 누구에게나 찾아 오듯이 올해도 어김없이 오고 있다.
지난 날들의 봄을 수없이 맞이하면서,
어느새 무덤덤한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은 아닌가?
연분홍 벚꽃 잎이 얼굴을 스쳐 지나갈때도
봄바람이 가슴을 파고 들때도 늘 그랬다.
이팔청춘 꽃다운 나이도 아니니 불혹의 나이를 지나 그런가
고목에도 꽃은 피고 그늘을 준다고 하지 않던가.
세상사에 능숙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이번 봄만큼은 죄인으로 지내고 싶은 것은 아닐까.
원죄의 논리를 떠나서라도 이번 봄만큼은 겸손해지고 싶다.
지나간 시간은 사랑을 전부 쏟아부어도 돌이킬 수 없고,
슬픈 추억들만이 꽃잎처럼 하늘 높이 피어 오른다.
마치 영정 사진을 보는 이들의 마음이 이와 같을까
덤덤한 삶의 여정이 누군가에게는 지나면 행복일 수도 있다지만.
우리 주위에는 자신도 모르게 찾아오는 것은 있다고한다.
그것은 생활하면서 죽을 수도, 다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크게 다치면 병원으로 가지만 가벼운 찰과상 정도는 대수롭지도 않다.
집안 구석 어디엔가 있을 법한 반창고가 있으면 다 통한다.
혹 부족하면 동네 약국에 가면 되는 값싼 취급을 받는 품목이 있다.
약사님 입장에서도 매상에 별 도움도 안되기에 구석도 감지덕지다.
누군가로부터 귀한 대접을 받는다는 것에 연연하지는 않았나.
경칩이 지나면 개구리도 얼음을 박차고 나오지 않는가
그렇게 조금은 을시년스러운 봄이 찾아오고 있다.
화창한 날씨에 바람까지 다가오니 괜스레 몸이 근질근질하다.
창고에 처박혀 두었던 자전거 바퀴가 안스러워 보인다.
마음의 먼지도 털어내듯 자전거의 변신을 시도해 본다.
물건도 이와 같은건데 하물며 남녀의 변신은 무죄일 것이다.
연 노랑 티옷에 타이트한 바지를 입고 안장에 앉으니 아직도 청춘이다.
그렇다고 누군가와의 오붓한 동행을 바라지는 않는다.
힘차게 패달을 구르니 이름 모를 새싹들이 이제 오냐고 반겨준다.
어린이들과 커플들의 모습이 물보라처럼 싱그럽게 얼굴을 스친다.
따사로운 햇살이 가슴 속 엔톨핀까지 돌게하기에는 충분하다.
한참을 타다가 어느 여인과 순간 부딛혀서 바닥에 딩굴게 되었다.
상대방도 피할려고 했으나 급한 마음뿐 정지를 못하고 다가 왔다.
천만 다행이랄까 손가락만을 살짝 다치게 되었다.
남녀칠세 부동석도 아닌데 미안한 마음에 어쩔줄 몰라하고 있었다.
마침 반창고를 갖고 있다며 응급조치를 해줄 수 있다기에,
이런 일로 통성명할 것도 아니고, 서로 미안하다는 말만 주고받는다
사소한 부딧침도 있을 수 있는 것이고 반창고 역시 흔한 것이다.
그런 조그마한 반창고로부터 따스함을 느켜지는 것이 몇 년만인가 !
자전거로 강변 도로로 계속 달려면서 따스한 햇빛 탓이라 우겨볼까.
몇칠간 반창고를 사다가 혼자서 손가락에 붙이자니 쉽지가 않다.
어느 여인처럼 정성껏, 신속하게 하는 것을 알게하려는 것인가?
어느때 보다 한주일이란 시간이 기달려지는 것은 무슨 이유이지.
자전거를 타고 강변 도로를 달리는 묵꾹꾹한 남자가 되어 있었다.
한주일이 모여 한달이 되고 계절이 바뀌어도 자전거 바퀴는 돌고 있다.
강변에 펼쳐진 하얀 구름과 청명한 하늘 빛만 있다면 흡족 할까나,
여인의 치마폭을 펼쳐 놓은 듯 넘실대고 있다. 꼭 만나야만 인연이던가?
2024. 04.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