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일체의 모든 형상이 있는 것들은
꿈과 같고, 환상(탈춤)과 같고, 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보아야 한다.
<금강경> 3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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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힘 단상 2018년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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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일체의 모든 형상이 있는 것들은
꿈과 같고, 환상(탈춤)과 같고, 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보아야 한다.
<금강경> 3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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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 김만중의 ‘九雲夢’
숙종시대 김만중(1637-1692)이 남해로 귀양 가서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생각해서 지은 한글소설이다. 그가 죽기 3-4년 전 일이다. 주인공 성진은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북방에 오랑캐를 정벌해서 큰 전공을 세우고 승상에까지 오르며 극진한 왕의 총애를 받았다. 오며가며 가지가지 인연으로 처자를 만나 절세의 미인들을 둘은 부인으로 여섯은 첩으로 해서 모두 아들딸들을 낳고 부귀영화 속에 잘 살았다는 이야기다. 어느 가을날 두 부인, 여섯 낭자를 거느리고 정자에 올랐는데 마침 고승이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다 고승이 지팡이로 난간을 두드리니, 순간 모든 것이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절에서 도를 닦던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하룻밤 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만중의 시대에 남자가 부귀를 누리고 더 할 수 없는 영락을 즐기는 것은 무엇이었나를 생각하게 한다. 미인들과 어울림에 음악과 시와 술이 있었다. 아마 김만중은 서글프고 고달픈 귀양살이 중에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부귀영화를 나름대로 상상해보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음직 하다.
김만중 자신이 16세에 진사에 일등으로 합격하고 47세에 공조판서를 거쳐 대사헌에까지 이른 사람이다. 말년에 사소한 일로 죄를 얻어 유배를 당하고 말았다. 유배지에서 홀로 생각해보니 지난 삶이 모두 꿈속에 일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마침내 꿈에서 깨어나, 이것이 한 순간의 일장춘몽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바탕 꿈을 꾸고 나니 부귀영화는 간 곳이 없고 삶이 허무하고 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삶이 진정 허무하고 무상한 것이라면 그런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부귀가 되었든 빈천이 되었든 모두가 실상이 없는 허무이기 때문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이것은 곧 ‘삶을 순명으로 살아라!’라는 뜻이다.
부귀가 오면 오는 대로, 빈천이 오면 오는 대로 거기가 거기일진대 구태여 분수를 넘어서 명을 거역하며 살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숙종시대 김만중(1637-1692)이 남해로 귀양 가서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생각해서 지은 한글소설이다. 그가 죽기 3-4년 전 일이다. 주인공 성진은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북방에 오랑캐를 정벌해서 큰 전공을 세우고 승상에까지 오르며 극진한 왕의 총애를 받았다. 오며가며 가지가지 인연으로 처자를 만나 절세의 미인들을 둘은 부인으로 여섯은 첩으로 해서 모두 아들딸들을 낳고 부귀영화 속에 잘 살았다는 이야기다. 어느 가을날 두 부인, 여섯 낭자를 거느리고 정자에 올랐는데 마침 고승이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다 고승이 지팡이로 난간을 두드리니, 순간 모든 것이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절에서 도를 닦던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하룻밤 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만중의 시대에 남자가 부귀를 누리고 더 할 수 없는 영락을 즐기는 것은 무엇이었나를 생각하게 한다. 미인들과 어울림에 음악과 시와 술이 있었다. 아마 김만중은 서글프고 고달픈 귀양살이 중에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부귀영화를 나름대로 상상해보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음직 하다.
김만중 자신이 16세에 진사에 일등으로 합격하고 47세에 공조판서를 거쳐 대사헌에까지 이른 사람이다. 말년에 사소한 일로 죄를 얻어 유배를 당하고 말았다. 유배지에서 홀로 생각해보니 지난 삶이 모두 꿈속에 일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마침내 꿈에서 깨어나, 이것이 한 순간의 일장춘몽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바탕 꿈을 꾸고 나니 부귀영화는 간 곳이 없고 삶이 허무하고 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삶이 진정 허무하고 무상한 것이라면 그런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부귀가 되었든 빈천이 되었든 모두가 실상이 없는 허무이기 때문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이것은 곧 ‘삶을 순명으로 살아라!’라는 뜻이다.
부귀가 오면 오는 대로, 빈천이 오면 오는 대로 거기가 거기일진대 구태여 분수를 넘어서 명을 거역하며 살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