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정등각
(無上正等覺)
심완 박전상환
1.
망상(妄想)의
생각(思念)으로
헤아리지 말지어다
헛 것의 시비분별(是非分別心)
그 생각이 곧(卽) 번뇌(煩惱)다
말과 글 생각과 행동
탐진치(貪嗔痴)의
삼독심(三毒心)
2.
만고의 병통(病痛) 잡고
존재(存在)라고
착각(錯覺)하네
나(我)라는 이 한 물건(無一物)
실체라고 말(實存言說)을 하네
물거품(泡)
그림자(幻影)같고
꿈과 같은 이 생명(生命)
3.
무상(無常)의
존재의 나(存在我)
실체(實體)를 바로 보라(直觀)
무생(無生)에 사는 법(法)을
깨우치고(正等覺) 깨우쳐라
불염오(不染汚) 연꽃 한 송이
하루 빨리
피워라.
ㅡ 마음그릇 心椀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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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이란 무엇일까 ?
마음그릇 心椀 박 찬
옛말
고사성어(古事聖語)에
"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이라는 말이 있다
"
계절(季節)의 봄은 왔으나
아직 마음의 봄은 오지 않았다.
"
라는 뜻이다.
한자를 풀이해 보면
* 춘(봄 春) :
봄 또는 청춘, 젊을 때,
남녀의 연정(戀情), 내지
움직이다. 의 뜻이며
* 래(올 來) :
오다 또는 불러들이다.
~에서, ~부터
* 불(아니 不) :
아니다 또는 금지(禁止)
없다. ~~하지 않음의 뜻을
지닌다.
*사(닮을 似(사) :
같다 또는 비슷하다
* 춘(봄 春) :
봄 또는 청춘, 젊을 때
남녀의 연정(戀情), 내지
움직이다.의 뜻을
지닌다.
불교적으로는
수행자의 깨달음을 비유해서
"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한 신도(信導)가
깨달음을 얻는 법(得法)에 대해
큰 스님께 여쭈었다.
스님께서 대답하시길
"
옛날에 어떤 사람이
봄(春)을 찾아 길을 떠났다가
결국
그토록 간절히
찾던 봄(春)은 찾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집 뜰(정원)
매화(梅花) 나무 가지에
매화꽃이 흐드러지게(滿開)
벙글어져 있더라.
"
라고 말씀하셨다.
찾으러 가면
찾아지지 않고
오히려
지금 여기(現前當處)
자기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고와 최선을 다하고
있다가 보면
그 자리에서
저절로 꽃(花 깨달음)이 피고
향기(香氣)가 우러져 나오며
열매(果實)을 맺게 되는
이치(理致)이다.
깨달음(見性)이란
어디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깨달음으로
내가 꽃(花 깨달음)이 되어
피어 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수행자(修行者)는
아득히
먼 수평선(水平線)을
따라 잡으려 집착(執着)하지
않는다.
내일은 내일(來日)
오늘은 오직 오늘(至今)
하루하루 한 순간(瞬間)
한 찰나(刹羅)
이 자리
지금 여기(堂處)
오직 최고와 최선을 다해
진심(眞心)과 열심(烈心)
노력(努力)할 뿐
부처님,
부처님(如來佛 世尊)하며
찾아다닐 필요도 없고
깨달음,
깨달음(無相正等覺)하며
집착할 이유도 없다.
부처님에 대한
그 마음도 집착심이요
깨달음에 대한 마음도
집착심(集着心)이기 때문이다.
수평선(水平線)이란
따라 가면 또 그만큼 멀어져
언제나 저만큼에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오늘, 지금, 여기를
불만족스럽게 여기고
언제나(항상심) 내일,
저기 멀고 먼 피안(彼岸),
그 언젠가,
그 어떤 곳,
그 무엇에 뜻(의미)을 두고
막연히 그리워하며 살아 간다.
우리가 사는 것은
어제도 내일(미래)도 아니요
오직 오늘뿐이며
저 곳도
그 곳도 아닌 이 곳(現在),
여기(當處 지금)를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깨달음을 애닯게 바라기만 하고
추구(쫒아감)하기보다는
지금(至今)
여기서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작고 부족하다고 생각치 말고
항상
최고와 최선을 다해
진심(眞心) 열심(烈心)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사실,
그토록 따라가려고만 했던
그 수평선(水平線)이란
바로
인간사 생사윤회(生死輪廻)의
자기가 탄 배(船 일엽편주)의
가장 밑바닥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토록 찾고 찾아 헤매던
봄(春)이요
참되고
참 된 진리(眞理)의
부처님 깨달음(春, 정등각)으로
가는 반야용선(般若龍船)에
오르기 위한
하심(下心)의 경계점이요
무명(無明)의 어둠 속
지혜광명(般若龍船, 즉 槃若
菩提 智慧 光明)인 것이다.
참고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의 어원(語源)을 거슬러 가면
후 한(後漢) 시대(時代)
원제(元帝
원나라 황제)는
궁정화가(宮廷畫家)
모연수에게
궁녀(宮女)들의 생김새를
그림(畵)으로 그리게 한 적이
있었다.
궁녀(宮女)들은
원제(원나라 황제)의
은총(恩寵)을 받기 위해서
모연수에게
성의를 표시해서
실물보다 예쁘게 그려달라고
앞다투어 부탁했다.
요즘 말로 하면
보정작업(補正 作業)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가운데
왕소군(王昭君)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청탁(請託)을 하지
않았다.
모연수는
왕소군(王昭君)을 더 못생기게
생김새를 그리니
그 녀(王昭君)는
원제(元帝 원나라 황제)를 만날
기회조차 없었다.
북쪽의
훙노족(匈奴族)은
화친(和親)을 이유로
궁녀(宮女)를 조공물로서
보낼 것을 요구했다.
원제(元帝 원나라 황제)는
그림책 중(中)에서 제일 못생긴
궁녀(宮女) 왕소군(王昭君)을
흉노족에게 보내기로 했다.
원제(元帝)는
흉노족으로 가게 된 날에야
비로소
왕소군을 처음 직접 만나고는
깜짝 놀랐다.
왕소군(王昭君)은
자신이 본 궁녀(宮女)들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고
제일 예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라와 나라(國家) 사이에
이미 약속을 했기 때문에
왕소군(王昭君)을
보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흉노족 추장에게
시집간 왕소군(王昭君)은
늘 고국(故國)
한나라를 그리워하며
시름에 쌓여
날이 갈수록 몸(肉身)이 야위고
허리띠가 느슨해졌다.
이러한
비운(悲運)의 여인을 위해서
후대에 이백(李白)을 비롯하여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그 녀(왕소군)를
애석(哀惜)하게 생각하는
시(詩文)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中)에서도
《동방규》의 이 작품(作品)이
가장 널리 알려졌다.
"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못지않게 회자(膾炙) 되었던
구절(句節)이다.
“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이 없으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돌아와도 봄 같지 않구나.
자연의대완(自然衣帶緩)
자연히 옷의 혁대가 느슨해지니
비시위요신(非是爲腰身)
그 것은 단지 야윈 몸 때문만은
아니라네.
"
여시아문(如是我聞)
나는 이와같이
보고 듣고 배웠다.
- 終 -
강원도 정선 동강 변
별빛총총한
초가삼간두옥
묵우당(墨友堂 글벗터)에서
우바새(優婆塞)
마음그릇 心椀 박 찬
(박전 상환)
두손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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