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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םיטפשׁ; Judices) 1. 사사기의 시대적인 위치 / 김성수
사사기는 비평가들에 있어서는 굉장히 논란이 있다. 하솔왕 야빈의 사건과 갈렙의 정복사건도 doublet였다고 말한다. 즉 이것은 두 사건의 중복표현이라는 것이다.
1장 여호수아의 정복은 원칙적인(도면상의) 정복이었고 그 이후에 구체적 정복사역이 계속 필요했다. 아직 정복되지 않은 땅은 믿음으로 쳐서 이길 과제로 남았다. 사사기의 도입 부분은 여호수아가 죽은 후라고 시작한다.
2:10절에 보면 2세대가 죽고 3세대가 시작되어 그들은 הוהי께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일을 알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들의 처음 질문은 하나님께 ‘누가 정복사업의 주도역할을 감당할 것인가?’를 묻는다. 모세가 죽을 때는 새로운 지도자를 세웠는데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는 아무도 계승자가 없어서 그들은 혼란에 빠졌다. 즉 지도자의 공백기가 온 것이다. 그들은 누가 우리의 지도자가 될 것인가를 알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지파’(유다지파는 후에 다윗 왕조와 연결)가 먼저 올라가라고 하셨다. 사사기 끝 부분은 왕이 없어서 각기 제 소견대로 행했다고 함으로써 처음부터 끝까지 지도자가 없던 시대였음을 말해준다.
이 시대의 정복사역의 특징은 이스라엘이 뚜렷한 구심점과 응집력 없이 각 지파가 자율적 위치로 행했다는 점이다. 이것에 대한 평가는 두 가지이다.
① 이 신적통치를 이상적인 형태로 볼 것인가? 모세, 여호수아 같은 중보자가 필요없이 안식의 땅이므로 하나님의 직접통치가 좋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인가? 그것이 옳다는 것을 지지하는 구절은 기드온이 말한 ‘너희 왕은 하나님이시다’라고 한 것이 근거가 된다. 종말론적 통치(계시록)에서는 인간 중보자 없는 하나님의 직접통치를 말하고 있으므로 이상적이라고 한다.
비평적 견해 : 자유주의 진영에서도 각 지파의 자율적체제를 이상적형태로 본다. 암픽티오니를 이스라엘의 시작으로 보고 최초의 정치체제로 본다. 이것이 선지자들의 이상이었고, 다윗왕조는 그 이상적체제에 대한 반발적 형태로서 백성을 착취했다고 한다. 이 왕조체제를 반발한 사람이 엘리야였다고 하며 그 입장을 지지한 자들이 선지자들 집단이었다고 한다. 이와같이 이스라엘 역사를 기술하려는 자유주의 학파의 경향은 보수주의 진영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나타난다. 다윗왕조는 결코 하나님의 적극적 뜻하심이 아니고, 허용적인 것 뿐이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직접통치는 가장 이상적인 것이었는데 ‘왕정형태’는 이스라엘이 요구하므로써 하나님이 그냥 용납하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견해는, 사사들의 출현이 ‘하나님의 직접통치’에 대해 이스라엘이 혼란스로워하므로 비상조치로 주신 것이었다고 한다. 하나님은 아무 인간적 지도자를 주시려고 안했는데 이스라엘의 요구로 인해 할 수 없이 주셨다는 것이다.
② 그러나 하나님의 직접통치 형태를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의 근거는 사사기의 기록을 전혀 하나님이 기뻐하신 역사로 보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사사기의 기록을 전반적으로 볼 때 하나님은 계속해서 ‘지도자’를 통한 구원역사를 이루시기를 기뻐하셨지, 직접적인 통치로 하시려고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나중에 왕정형태를 주심으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왕정은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시키는 구체적 도구로 하나님이 기뻐하신 뜻의 구체화이다.
1장의 정복사역은 모두 그들에게 주신 기업에서 자기들이 쫓아내야 할 가나안을 다 쫓지 못하였으므로, 가나안 주민들이 계속 살았다고 한다. 정복사업이 갈수록 지지부진해졌다. 이스라엘 가운데 가나안인이 살기도 하고(2:29 에브라임지파 경우) 가나안인 가운데 이스라엘이 살기도 할만큼(31절 아셀지파 경우) 정복사업은 부진해졌다.
2장 보김에서의 사자가 와서 그들을 책망한다.
우는 자들의 울다는 뜻, 1장에서 다 쫓아내지 못한 이스라엘의 실패를 이스라엘이 언약을 지키지 못한 불순종으로 꾸짖고 그 벌로 3절에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소리 높여 울었다. 따라서 1장은 2장의 서론이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연약의 신실하심을 천명하셔서 끝까지 지키심을 말씀한다. 그러나 언약관계의 의무는 쌍방적이므로, 이스라엘의 할 일은 있는 것이다.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고 그 단을 헐라 하였거늘’ → 죄와의 연합은 하나님과의 연합을 포기하는 것이다.
a. 그들과 언약 맺은 것은 민족간의 화평조약이다(하나님과 연합, 창기와 연합). 가나안과 공존하는 길을 택함으로 결국 타협해버렸다. 정치적인 평화공존의 언약 → 이것이 하나님과의 언약파기, 이것은 정복사업 사명의 포기요 상실이다.
b. 가나안의 제단을 헐지 않은 것은 종교적인 공존을 뜻한다. 가나안 종교를 용인하고 묵인한 것이다. 하나님이 가나안 원주민을 진멸해 버리라는 근본 뜻은 그들의 타락과 부패상을 본받지 말도록 하시는 것이다. 종교, 도덕적인 타락을 막는 하나님의 뜻이다. 이런 하나님의 뜻은 거룩하고 성결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겠다는 것이며 창 12장과 출 19:5,6의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려는 뜻인데 이스라엘은 그것을 반역한 것이다. 사사시대의 어두운 타락의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통곡하고 울었으나 그것이 회개의 차원에까지 가지 못하고 책망에 대한 ‘자기 좌절’, ‘자신의 무력감’을 느낀 정도였다.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앞길에 대한 절망감’을 절실히 느낀 것이다. 이런 사건들은 절망적인 역사를 암시한다.
6절 이하는 어려운 문맥인데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냈다고 되어있다. 여수아가 1장에서는 죽었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다시 살아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어 8절에서는 여호수아가 죽은 사건이 다시 나온다. 비평가들은 2:6절의 서론과 1장의 서론이 서로 다른 서론으로 되어 있다고 하며 그 이유는 사사기의 편집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서론 사이에 ‘보김사건’이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사사시대의 성격을 논함에 있어서 2개의 다른 관점에서 논할 수 있다. 사사시대 전체를 보는 관점을 2가지로 놓고 볼 수 있다면 1장-2:5절의 관점과 2:6절 이하의 관점으로 구분지을 수 있다. 이 상이한 관점은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한다. 사시시대의 의미를 다양하게 밝힌다.
3장에서는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남겨 놓으신 이유가,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전쟁을 가르쳐 알게하기 위해서라고 하신다. 또한 율법준수 여부를 알고자하심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의도, 전쟁을 가르치는 것이 지정학적 위치로 인한 생존의 전쟁 때문일까? 그것은 영적훈련과 믿음에의 훈련 때문이다.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 믿음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약속의 땅의 전투적 성격을 말하는 것이다. 2:22, 3:4절의 목적과 관계 있는데 이 전쟁 속의 시련 속에서 그들의 믿음을 훈련시키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그러나 6절에 보면 그들은 가나안과 통화하며 그들의 신을 섬겼다. 정치적으로 공존, 지역적 혼합생활, 물리적 교환 등은 종교적으로 발전하여 혼합주의의 이방 우상숭배로 발전한다. 이를 통해 가나안 진멸의 이유를 알 수 있게끔 된다.
가나안 → 이방신 숭배 → 종교, 도덕 타락 → 이스라엘의 올무가 되어 타락에 빠짐 → 그들의 신을 섬기게 됨 → 이스라엘의 배도 → 하나님의 심판(징계) → 그들의 간구 → 하나님의 구원(응답) 이러한 도식이 사사기에 성립된다.
(건지는 자들) : 사사를 이렇게 타락으로부터 건지는 구원자들로 말한다. 이것은 여호수아의 직책과는 다른 것이다. 심판에 이른 백성에게 구원을 주는 것이 사사이다. 그러나 이러한 직책은 다윗왕가에서 절정을 이루고 메사야적 성격이 드러난다. 그러나 이러한 사사들의 직책마저도 백성의 타락과 함께 타락됨을 볼 수 있다. 예) 입다의 경거망동한 human sacrifice, 삼손의 비참한 최후 등은 사사들의 타락을 보여주는 것이다.
후에 미가의 사건에 보면 드라빔(우상)을 만들고 사적으로 레위인을 삼아 섬기고, 단 자손이 그 레위인을 자기들의 제사장으로 삼는다. 이러한 종교적 죄악은 전 백성에게 편만하게 되었다.
기브아사건에 보면, homosex를 하는 모습을 본다. 꼭 소돔성과 같다. 그대신 여자를 주매 밤새 강간하고 내어주어 죽게하고 그 여자를 남편이 12토막내어 온 지파에 보낸다. 그래서 베냐민지파가 모두 멸절당한다.
이러한 모든 사건들은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 속에 버려진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이 백성에게 왕이 없으므로 백성들이 자기 옳은 소견대로 했다는 것으로 결론 맺는다. 왕(지도자)이 없는 것은 이스라엘의 혼란스런 모습의 이유로 보므로 하나님의 자기 백성 통치는 왕으로 연결된다.
사사기는 어떻게 해서 여호수아가 지도자를 남겨두지 않고 진행되었나? 무언가 필요해서 그 중간기로 두었는가? 아니면 왜 그랬을까? 우리가 고려해야 할 사실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시험하기 위해서 남겨 놓으신 원주민을 통해 이스라엘은 훈련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패역하여 통혼하고 동거하게 되었다. 혈연적 혼합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주위세력으로써 징계하셨고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으로 다시 구원자를 보내셨다. 그러나 점점 타락한 이스라엘은 기브아와 미가사건에 와서 완전히 종교적 배도로 일관되었다. 그것은 가나안 종교의 깊은 영향이었다(마치 소돔과 고모라의 타락에 방불했다).
완전히 와해된 이스라엘의 상태는 사사기 마지막 21:25절에 볼 때 각기 자기 소견대로 행했으며 왕이 없었다고 기록한다. “기브아 사건과 미가 신상 사건”「dischronologization」(연대기를 흐트리는 기술방법) 그것은 사시기 전체의 타락적 성격을 규정짓는 사건들이며 사사기에서도, 초기에는 정복사업이 있었다가 후에 그들과 동화되어 버린 과정으로 나가므로, 그 사건들은 말기적 세대의 사건들일 것이다.
사사들의 성격은 일차적으로는 여호수아 뒤를 잇는 지도자들이다. 초두 1장에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정복을 이끌 것인가?라는 문제에 답변하는 자들이다(이렇게 본다면 하나님의 직접통치가 이상은 아니다). 그러나 또한 달리 생각해보면 신 17:14-15절에는 왕제도가 나온다. 왕제도에 대해서 본문은 긍정적이지 않다. 왕을 세우는 것은 백성들이 ‘열방처럼 우리에게 왕을 세우자’고 할 때이다. 사무엘 시대 때 백성들이 왕을 주소서하고 할 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배역하는 것이라고 하심으로써 왕제도 자체가 부정적 대응으로 나타난다. 왜 그렇게 부정적인가?
간헐적 구원자 → 완전한 통치(다윗왕) 영원한 아들 예수
부정적 당 대 → 영원성(다윗왕조) 그리스도의 오심.
(실패) 이 동(성 막) → 성전(하나님의 온전한 통치)
백성은 안식했으나 하나님은 안식않음
긍정적 구원자(여호수아를 잇는 עישׁומ; 모쉬아)
(예비적) 정복사업을 이끌어 간 자들
구약전체의 frame으로 보면 ...와도 같다. 다윗왕조(예비적) → 영원한 왕조(실재).
사사의 성격은 구원자(עישׁומ 였다. 사사제도는 사사 자신이 타락함으로 인해 마지막 사사 삼손은 비참한 최후로 마친다. 사사시대가 이스라엘의 실패였고 지도자(왕)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라고 기록한다. 그러므로 사사제도는 이스라엘을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없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기에서는 간헐적 사사의 출현으로는 불완전했고 보다 완전한 통치의 필요가 소망되었다. 이와같은 필요는, 시편 등에서 볼 때 사사를 통한 통치의 완성이 다윗에게 와서 이루어졌다고 본다. 사사는 통치의 불완전성의 성격이 있었고, 그런 성격은 다윗왕에 있어서 극대화 되었다.
또 하나 사사시대는 단대로 끝났지만 왕조는 영원성으로 이루어진다. 정착기에는 사사의 간헐적 출현이지만, 정착한 후에는 왕권의 정착을 요구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통치는 성막인데 성막 자체가 이동적 성격을 가지나 다윗 -솔로몬의 성전은 곧 영원한 왕권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으로 이어진다. 시 110편 ‘너는 영원한 제사장이라’(멜기세덱의 반차). 하나님의 통치가 영원한 아들의 통치로 이루어진다.
1. 사사기의 시대적인 위치
여호수아 시대 때의 가나안 정복이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13장에 보면 아직도 정복할 땅이 많이 남아 있다고 되어있다. 그리고 그 남아있는 땅이 어떤 땅인가에 대해 열거하고 있다. 13장 이전에 여리고 전쟁이나 남방 연합군들을 쳐부순 것이나 13장 이후의 북방왕 하솔왕 야빈이 이끄는 왕들을 격파한 전쟁들은 결정적인 승리이긴 하지만 가나안이 완전히 이스라엘에 의하여 평정이 된 것은 아니다. 단지 원칙적으로 굴복 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후에 요셉 지파와 유다 지파가 나뉘어서 남쪽으로, 북쪽으로 정복을 시작하지만 그 정복도 역시 완전한 것이 아니다. 요셉과 유다지파는 여호수아 시대 때 정복 사역을 어느 정도 행하지만, 다른 지파는 18장에 나타나는 말씀을 보면, 요셉과 유다 지파외 다른 일곱 지파(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강 동편 곧 트랜스 요단 이라는 곳에 기업을 얻었음. 그렇기 때문에 남은 지파는 아홉 지파라고 할 수 있음. 물론 레위 지파는 기업이 없다.)의 정복사역은 아주 지지부진하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언제까지 이렇게 지체하려고 하느냐?”고 책망한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각 지파에서 세 사람씩 뽑게 해서 가나안 전 지경을 돌아보게 한 뒤 요셉과 유다 지파가 차지한 나머지 부분들 가운데 자기들이 원하는 곳의 지도를 그려 그것을 놓고 실로에서 일곱 지파가 도면상의 분배를 한다. 이렇듯 아직도 여호수아의 정복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었다.
사사기 2장을 보면 여호수아 사후 그리고 여호수아와 동시대에 속했던 모든 사람들이 죽고 난 이후에(삿 2:6-10) 사사시대의 본격적인 역사가 진행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사시대가 끝나면 사무엘을 거쳐서(사울은 사실 큰 의미가 없는 것이고) 다윗 시대로 역사가 진행된다. 그렇다고 한다면 사사시대는 출애굽하여 가나안 정복이 시작되고 이 정복이 다윗에 의해서 완전히 마감이 되면서 이스라엘에 다윗왕조가 들어서는 그런 역사적 흐름 사이에 끼어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출애굽해서 가나안의 정복전쟁이 시작되고 이 정복사역이 다윗에 와서 마감이 된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어떤 의미에서 사사시대는 실패한 시대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정복사역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것을 다윗 때 완수 했다. 때문에 우리는 여호수아로부터 시작해서 다윗시대 때까지를 가나안정복이라는 하나의 시대로 묶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사기는 이 일의 진행과정에 위치한 시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