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사역의 시작
(수 1:1-4)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4.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오늘부터 여호수아서를 강해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세상에서 승리하고 저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누리려면 꼭 배워야 하는 것이 여호수아서입니다. 대략 서론을 말씀드리면 여호수아서는 여호수아가 썼고, 분류상으로는 역사서이고, 그 내용은 광야에서 40년을 마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를 대장 삼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기업을 분배 받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라는 그 이름 자체가 예수님을 예표하는 이름입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의미이고, 헬라어 표기로는 ‘예수스’ 이처럼 발음과 의미이고 행적 역시 예수님의 사역을 잘 예표해줍니다. 즉 여호수아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자기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셔서 천국백성들로 삼으시는지 그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귀한 책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봅니다.
1. 구속사역의 시작을 봅니다.
1절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그리고 2절에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모세가 죽은 후 바로 이어지는 사역이 여호수아의 사역입니다. 모세는 율법의 대표요 여호수아는 복음의 대표라는 점에서 모세가 죽었다는 것은 율법의 끝이 바로 복음의 시작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율법에 머물러서는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갈3:19에 "율법은 무엇이냐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마11:13에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라 말씀합니다. 롬10:4에도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사역은 율법의 상징인 세례요한의 죽음을 분기점으로 시작됩니다.
그래서 마4:12에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17절에 "이 때로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하였습니다. 이렇게 율법이 끝날 수밖에 없는 것은 율법은 그리스도를 예고하는 예표였기 때문이고, 또 한 편으로는 율법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율법으로는 구원 받지 못함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결정적인 사건은 므리바에서 혈기를 내어 백성들의 악함을 잘 드러냈지만 한 편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 모세가 백성들을 책망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으신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해 반석에 생수를 예비하셨으니 감사히 마시고 다시는 원망하지 말라”고 했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을 텐데 너무 노한 나머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율법이 꼭 이와 같습니다. 이처럼 율법은 우리 악함은 잘 드러내도 우리를 거룩하고 의롭게 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 집중적으로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무엇인지 율법학교를 충분히 수료해야 예수 믿을 기초가 닦아지게 됩니다. 즉 율법을 통해서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율법이 여러 모양과 방법으로 예표하듯이 오직 예수 만이 나를 구원자임을 믿어야 합니다. 바로 이 때가 우리에게 진정한 구원이 시작되는 때입니다.
2. 구속사역의 원리를 보여줍니다.
어떻게 예수이 우리를 구원했다 하시는가? 예수님의 공로가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는 건가? 2절에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했습니다. 여기 "더불어"란 "함께" "같이" "안에" 란 뜻입니다. 여호수아 혼자만이 아닙니다. 자기 백성과 더불어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바울서신에 중요한 단어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이런 용어입니다.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설명하는 아주 중요한 단어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은 그리스도 혼자만의 사건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구원받을 모든 택한 백성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롬5:18-19에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했습니다.
마치 아담의 범죄의 결과를 그의 모든 자손들이 공유함과 같고, 아브라함의 축복 역시 그의 후손들이 공유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대표원리의 특징은 후손의 모든 것들이 그 조상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우리가 아담 자손으로만 태어나지 않았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그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복음도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모셔들임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들임으로 우리는 예수와 함께 모든 구원의 복을 공유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예수를 구주로 믿고 늘 경외함으로 그 예수의 생명을 더욱 충만하게 받는 것입니다. 그럴 때 바울처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 함을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3. 구속자의 신분이 나타납니다.
3절에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했습니다. 여기 발이라 하지 않고 발바닥이라 했는데 이 표현 하나도 의미 없는 말씀이 아닙니다. 당시에 노예는 신을 신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는 신을 벗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너는 종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너는 하나님이 아니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메시야로 임하실 때 천한 종의 신분인 육체를 입으시고 오신다는 것을 그렇게 보여주셨습니다. 빌2:6-7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성육신이라고 하는데 성육신이란 여인의 태를 통하여 육신으로 나시지만 아담의 혈통을 받지 않고 거룩하게 탄생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가 없습니다(히4:15). 이와 같은 몸으로 오셔야 하신 이유는 죄인이 죄인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에 죄인을 위해 죄 없는 대속의 제물이 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4. 구속사역의 목표가 나타납니다.
4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라 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주시는 땅은 "광야"입니다. 이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연단 받던 곳으로 이 세상의 상징입니다. 즉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도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 다음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이라 했습니다. 헷 족속은 먼저 가나안에 이주한 족속으로 헤브론 지역(창23:3-20)과 가나안의 중심부 중앙산지(민13:29)에 거주한 족속으로 유브라데까지니까 저 북방까지 주시겠다는 것은 미래 들어갈 내세천국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해 지는 쪽 대해"는 영원한 영생을 상징합니다. 예수 믿으면 그 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수아가 자기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에 들어가듯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의롭고 영광스럽게 구원하셨습니다. 이 객관적 구속사를 믿는 자가 각자 주관적으로 구원을 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고 더욱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예수로 충만하여 생명을 얻되 더욱 풍성하게 얻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